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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구조대는 바위산에 당도했다.

         

       상인과 용병들은 조난된 후작 각하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등불로 하얀 바위 이곳저곳을 비추고 각종 둥지와 길목을 샅샅이 뒤적였다.

         

       그러는 한편 날아드는 괴조 떼와 곤욕을 치르고 야수 무리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내! 발자국이든 뭐든 파스텔의 흔적을 찾으란 말이다! 아직도 그 눈에 잘 띄는 애를 찾지도 못하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바위산 꼭대기까지 손수 등반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레너드는 신경질을 냈다. 삿대질을 받은 상인과 용병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수색했다.

         

       “대장, 파스텔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부하들이 불안에 떨었다.

         

       레너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 자식아, 괜한 소리 하지 마!”

         

       괜한 언급을 한 부하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치곤 외쳤다.

         

       “그럴 시간에 빨리 찾기나 해! 분홍색만 찾으면 되잖아! 분홍색만! 그걸 왜 못 찾는 거야?!”

       “대장, 이거 혹시?”

         

       부하가 상인과 용병들이 돌아다니는 주변을 의심쩍게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파스텔이 새한테 물려간 건 우연일지 몰라도 이렇게까지 안 보이는 건 어떤 상단이 감사에 불만을 품고 일을 꾸민 거 아니야?”

         

       부하들이 경악해선 말을 꺼낸 부하를 바라봤다. 그럴싸하다.

         

       레너드는 아무 말 없이 부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방금 말을 다른 상인이나 용병이 들었는지 살펴보다가 부하를 툭 건드렸다.

         

       “넌 돌아가서 기사단한테 상단들 포위하라고 전해. 크래프트 후작을 구조하는 일이라고 하면 들어줄 거야. 아니지, 하늘고래 전체를 포위하라고 전해.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

       “알겠어, 대장! 위기에 처한 파스텔을 꼭 구하자!”

         

       부하가 빠르게 떠났다.

         

       사태가 커지자 다른 부하 하나가 불안해했다.

         

       “모두 무혐의면 어쩌려고?”

         

       레너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무혐의는 무슨! 한눈에 보일 애를 여태까지 못 찾았으면 그게 무능이고 불경이지!”

       “오, 오우! 맞아! 맞아!”

         

       부하들이 호응했다.

         

       장시간의 수색이 이어졌다.

         

       한동안 아무 성과도 없다가 해가 떠오를 때쯤에야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둥지에 분홍 머리카락이 있습니다!”

       “정말이냐?!”

         

       레너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달려갔다.

         

       까마득한 경사에 덩그러니 놓인 빈 둥지였다. 큰 소동이라도 있었는지 이곳저곳이 망가져 있었다. 사람들이 침입해 둥지를 털어간 듯한 모양새였다.

         

       둥지에 장식된 분홍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휘날렸다. 광경이었다.

         

       레너드의 손길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맞아, 파스텔이야.”

         

       어디선가 날아온 벚꽃 향이 맡아지는 듯했다.

         

       “대장, 파스텔의 머릿결을 어떻게 알아? 만져본 거야?”

         

       부하들이 얼떨떨해하며 바라봤다.

         

       레너드는 움찔하다가 버럭 외쳤다.

         

       “이렇게 부드러우면 대충 맞겠지!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고 흔적을 수색해!”

         

       인원들이 서둘러 주변을 꼼꼼히 수색했다.

         

       둥지를 습격한 정체불명의 사람들에 대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본래 있던 어린 새들을 납치한 듯한 흔적이었다.

         

       하지만 새들과 별개로 레너드는 상단 중에 불경한 자들이 있다는 심증을 굳혔다. 파스텔이 물려간 곳에 찾아온 납치범들이라니.

         

       “이놈들 가만두지 않겠어!”

         

       사감이 많이 섞이긴 해도 틀린 판단까진 아니었다.

         

       “대장!”

         

       부하가 놀라며 달려왔다.

         

       “뭐야? 찾았냐?!”

       “그게 아니라 저기!”

         

       손가락이 새벽노을을 가리켰다. 웬 비공정이 하늘로 수직 상승하고 있었다. 폭주하는 듯한 속도였다.

         

       “저건 뭐야?”

         

       레너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부하에게서 망원경을 받아 비공정을 살펴봤다.

         

       소속 불명의 비공정이다. 뻔뻔한 파스텔에게 무임금 인력으로 반쯤 끌려온 신세긴 해도 감사가 맡은 일이니 상단들의 비공정과 구성원은 기억해 뒀었다. 저건 전혀 모르는 비공정이다.

         

       “이 자식들이?!”

         

       어떤 상단이 학생회 감사를 피해 숨겼거나 뭔지 모를 집단이 존재하는 거다. 어느 쪽이든 파스텔 실종과 관련이 있을 거다.

         

       손아귀 힘에 망원경이 소리를 냈다.

         

       “당장 모두 집결시켜! 지금부터 모든 정박장을 폐쇄하겠다! 한 놈도 하늘고래에서 도망치게 두지 않겠어!”

         

       수색 인원들을 불러 모으라 시키곤 비공정을 돌아봤다.

         

       우주까지 날아갈 듯이 솟구친 비공정은 큰 파편들로 조각났다. 큼지막한 잔해가 하늘을 수놓고 웬 괴조 떼가 비공정 파편을 감싸듯 날았다. 사람 형상 몇몇이 추락했다.

         

       그 와중에 매우 눈에 띄는 분홍색상이 보였다.

         

       “저건?!”

         

       레너드는 입이 벌어졌다.

         

       “분홍색! 파스텔이다!”

         

       부하들이 맨눈으로 대강 때려 맞추곤 경악했다.

         

       “쟤가 왜 저깄어!”

         

         

         

       #

         

         

         

       “살려주세요오!”

         

       파스텔은 비공정 파편들과 함께 슝 추락했다.

         

       슝~.

         

       “으아아!”

         

       납작 파스텔이 되려는 순간!

         

       양팔과 다리를 버둥대다가 코앞에 있는 웬 나무 테이블을 향해 헤엄쳤다.

         

       손을 파들파들 떨며 테이블을 향해 뻗다가 힘겹게 잡아채곤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테이블을 꼭 붙든 파스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허공에서 추락하다가 테이블에 몸이 안착하니 완전 안도되는 기분. 사람은 역시 발이 땅에 닿아야 해.

         

       파스텔은 만족하며 테이블과 함께 추락하다가 문득 혼자 놀랐다.

         

       헉?

         

       전혀 나아지지 않았잖아?!

         

       여전히 추락 중이야……!

         

       “으아아!”

         

       파스텔은 비명을 지르다가 품에서 마석 나이프를 꺼냈다. 나이프를 테이블에 적절히 꽂고 손으로 고정시켰다.

         

       테이블, 넌 지금부로 UFO야!

         

       마석 조작의 권능을 전력으로 발휘했다.

         

       “날아라, UFO!”

         

       나이프가 힘을 내고 테이블이 소음을 냈다. 중력이 점점 상쇄됐다.

         

       추락 속도가 줄어들자 파스텔 위에 있던 비공정 파편들이 덮쳐왔다. 나무 기둥과 철제 프레임이 하늘을 덮었다. 테이블에 찰싹 달라붙은 파스텔을 각종 그림자가 물들였다.

         

       으아아!

         

       “지그재그 회피이!”

         

       UFO의 위력을 보여줘어!

         

       테이블이 이리저리 휘청대며 비행했다. 화분과 접시를 피하자 나무 기둥이 머리 위를 덮쳐왔다.

         

       파스텔은 일어나며 주먹을 휘둘렀다. 기둥과 주먹이 충돌했다. 충격파가 일었다. 나무 기둥이 갈라지고 잔해가 폭발했다.

         

       잔해를 뚫고 테이블이 솟구쳤다. 기괴한 수직 궤도를 그리며 철제 프레임들을 회피하고 비행했다.

         

       어느새 비공정 파편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시야가 트이고 하늘이 펼쳐졌다.

         

       “우아!”

         

       테이블이 속도를 줄이다가 멈췄다. 파스텔은 하늘에 고정된 테이블 위에서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살았나?

         

       부딪힐 비공정 파편은 없었고 추락도 멈췄다.

         

       파스텔은 안색이 밝아졌다.

         

       양팔을 번쩍 들었다.

         

       “살았다아!”

         

       납작 파스텔이 되지 않았어!

         

       문득 그림자가 졌다.

         

       잉?

         

       거대한 괴조 떼가 테이블을 둘러싸듯 비행했다. 괴조 안장에 올라탄 교단원들이 노려봤다.

         

       “원인 파악은 차후다! 습격자부터 배제해라!”

         

       엣.

         

       병장기가 번뜩였다. 마법 지팡이가 움직였다.

         

       『포위 상황이군. 지면이 매우 약하다. 힘 싸움보단 기교에 중심을 둬라.』

         

       으아아.

         

       “전 무고해요!”

         

       파스텔은 억울한 표정이 됐다.

         

       “그냥 여러분 동료의 뒤통수를 돌덩이로 몇 번 후려쳤을 뿐이라고요오!”

         

       허억?

         

       말하고 보니 별로 무고하진 않은?

         

       으아아.

         

       “그냥 살려주세요오!”

         

       제가 살인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창을 든 교단원이 괴조의 고삐를 움직였다. 괴조가 날개를 펄럭이고 날아들었다.

         

       창날이 소녀를 노렸다.

         

       파스텔은 심장을 노려오는 창날을 겁먹은 표정으로 지켜봤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정신이 집중됐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소녀의 표정이 돌변하고 검날이 뽑혔다. 검과 창이 빗겨 충돌했다. 검날이 창날을 갈아내듯 흘려보냈다. 금속음이 울렸다. 창의 궤적이 뒤틀리고 소녀를 스쳤다.

         

       소녀는 흘려냈음에도 여전한 충격량을 그대로 이용해 회전했다. 검날이 둥근 원을 그렸다. 검격이 스쳐 가던 교단원을 휩쓸었다. 피육음이 울렸다. 피분수가 일었다.

         

       두 동강 난 신체가 괴조에서 굴러떨어졌다. 괴조가 괴성을 지르며 휘청이고 테이블과 충돌했다. 나무 테이블이 충격을 못 이겨 부서졌다.

         

       소녀는 한차례 검을 휘둘러 괴조의 목을 베곤 다음 주변을 비행하는 교단원을 향해 도약했다.

         

       마석 나이프가 날아와 발판을 만들었다. 연이은 도약음이 울렸다. 분홍 실루엣이 솟구쳐 교단원을 덮쳤다.

         

       괴조를 탄 채 멍하니 바라보는 교단원을 검격이 수직으로 쪼갰다. 피분수가 하늘을 적셨다.

         

       소녀는 수직으로 회전하며 추락했다. 은색 검격이 소녀를 따라 회전했다. 검격은 회전 곡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바로 아래에서 날던 교단원이 스치고 갈려 나갔다. 시체 파편과 핏물이 소녀를 물들였다.

         

       혼비백산한 혼란이 일었다.

         

       소녀가 도약할 때마다 교단원이 도륙났다. 검격이 마법 탄환을 튕겨 내고 새로운 시체 조각을 만들었다.

         

       도망치려는 일부 무리를 나이프가 노렸다. 은빛 궤적이 하늘을 가르고 교단원들을 덮쳤다. 피륙음이 일었다. 날개를 잃은 괴조와 교단원들이 그대로 추락했다. 비명이 길게 울렸다.

         

       나이프가 돌아와 추락하는 파스텔의 발을 받쳤다. 기우뚱한 충격이 일다가 안정됐다.

         

       파스텔은 하늘에 선 채 지상을 내려봤다.

         

       교단원들이 괴조와 뒤섞여 추락했다.

         

       “으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했다. 어차피 프레지 상단이 남았으니 무리한 생포보단 전투에 집중한 건 좋은 선택이다.』

         

       호르몬 과잉으로 정신이 살짝 몽롱한 파스텔은 지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녀엉.”

         

       추락하는 교단원 한 명과 시선이 마주쳤다. 교단원은 인사 없이 멍하게 시선을 주다가 그대로 바위에 충돌했다. 잔해가 산산조각 났다. 넓은 핏자국이 대지를 물들었다.

         

       “으에에?”

         

       놀란 파스텔은 딸꾹질했다.

         

       딸꾹, 딸꾹.

         

       『……흠.』

         

       악마가 말해왔다.

         

       『애가 볼 게 못 된다.』

       “네에.”

         

       파스텔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완전 착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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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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