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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호텔에서 극장으로 가는 길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대로 한복판임에도 마차가 제 속도를 내기 힘들 지경이었다.

       나중엔 사람이 걷는 것보다 더 느려졌다.

         

       이러다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찰나, 갑자기 마차에 속도가 다시 붙기 시작했다.

       시청 앞부터 극장까지 들어가는 길은 경찰들이 울타리를 만들어 출입로를 확보해뒀기 때문이다.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갓길을 질주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마부가 3분 뒤에 도착할 것 같다고 알려왔다.

         

       도착 예정 시간이 앞당겨지자 마차 안도 분주해졌다.

       아나이스는 시녀의 도움을 받아 모자의 장식을 고쳤고, 엘라는 제복의 깃을 바로 세웠으며, 외모를 꾸미는 데 무관심해 보였던 마야도 삐쳐나온 머리를 빗었다.

       심지어 포르슈 경조차 거울을 들여다보며 콧수염을 가다듬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나는 그들처럼 치장에 힘쓸 필요가 없었다.

         

       원더스타인의 육체는 평범한 인간의 것과 달랐다.

       씻지도 다듬지도 않아도 항상성을 유지했다.

       외부에서 침입해오는 세균, 먼지 등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피부층에서 격퇴됐다.

       연달아 노숙하는 날에도 개기름이나 눈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에게 몸을 씻는 것은 여흥에 불과했다.

         

       마차가 극장 앞에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엄청난 환호와 열기가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원래의 나였다면 그 공기에 압도당해 숨이 턱 막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웃는 남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군중들의 시선을 받아냈다.

         

       우리는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극장 입구까지 걸었다.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과 카바레 직원들의 환영 도열.

       엘라, 마야와는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구경하다 피곤하면 두 분은 먼저 숙소로 돌아가도 됩니다.”

         

       나의 말에 둘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더니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같이 돌아가야지. 안에서 뭘 보고 들었는지 말해줘야 할 거 아냐.”

       “기다릴게요.”

       “후후, 그럼 4시간 뒤에 보죠. 구경들 잘해요.”

       “당신이야말로.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마. 다른 서커스단과 시비붙지도 말고.”

       “잘하실 거예요.”

         

       두 소녀는 경찰들이 선 울타리 뒤편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둘이 친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처음 마야가 서커스단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는 엘라와 성격이 안 맞지 않을까 싶어 걱정했는데…….

       역시 또래라 그런지 금방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단장님,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나이스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그녀가 초빙해준 강사로부터 예법을 배웠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을 받아들었다.

         

       “후후, 물론이죠. 그럼 가실까요?”

         

       내 대응이 적절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는 기쁘다기보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일까.

         

       우리는 그렇게 함께 로비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전 세계에서 온 취재진이 서커스 그랑프리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무려 17년 만에 재개된 대회 아닙니까? 제가 어릴 적에 동경하던 그 무대에 드디어 제 두 발로 올라서게 된 것은 큰 영광입니다. 예선전 통과 따위는 제 목표가 아닙니다. 우승을 향해…….”

         

       우리보다 먼저 온 쪽이 있었다.

         

       로비를 가득 메우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익숙하다 싶어 들여다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수탉‘ 미노바.

       이름 그대로 수탉의 볏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 모히칸과 턱수염, 수탉의 꼬리를 형상한 등 뒤의 커다란 검은색 깃털 장식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상체가 비대한 근육질의 몸에 자신을 항상 남자 중의 남자라고 자부하고 다니지만, 그 행동거지는 졸렬하기 짝이 없기로 유명했다.

         

       뻔한 말을 질질 끌며 요란하게 늘어놓는 그의 연설에 기자들은 지루해했다. 그가 말하는 와중에도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딴청을 피워댔다.

         

       그러던 중 기자 한 명이 우리와 얼굴을 마주쳤다.

       그는 아나이스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더니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베르그송 자작이다!”

       “어?”

       “뭐야, 진짜?”

       “베르그송 상회의?”

       “자작 옆에 있는 사람이 소문의 그?”

         

       기자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우리에게 집중됐다.

       졸지에 인터뷰를 진행하던 미노바는 관심 밖의 대상이 됐다.

       기자들은 우리보고 어서 카메라 앞에 서라고 아우성쳤고, 행사 진행자는 미노바를 서둘러 단상 아래로 내려보냈다.

         

       미노바의 얼굴이 그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는 나를 원망 어린 눈길로 노려봤다.

         

       어이, 안 그래도 다들 당신 지루해했어.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고, 준비해온 대사를 점검했다.

       내가 혹시 인터뷰에서 말실수라도 할까 봐 엘라가 짜준 것이었다.

       어차피 질문이라는 게 대부분 정형화된 몇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암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승은 먼 얘기죠. 지금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곡예사는 역시 우르수스?

       -그건 비밀입니다. 마술사가 자신의 마술을 밝힐 순 없죠.

         

       하지만 우리에게 쏟아지는 질문 중에는 상정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두 분의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정말 소문대로 사귀시는 겁니까?”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습니까?”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받는 질문 공세.

       여기저기서 퍽퍽 터지는 플래시.

       질문의 내용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뭐? 아나이스와 내가 사귀냐고?

       소문은 무슨 소문?

         

       웃는 남자는 내가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줬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게임 공략과 상관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미소만 지으며 멍청히 서 있는데, 다행히 아나이스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오늘은 개막식이 있는 날.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는 공식으로 자리를 만들어 해명하겠다.

         

       얼마 안 있어 다음 참가자가 왔고, 우리는 가까스로 회견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그녀의 침착한 대응은 결코 임기응변이 아니었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그녀는 아까 보였던 슬퍼 보이는 미소를 또 한 번 지어 보였다.

         

       “자세한 건 방에 들어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개막식이 거행되는 곳은 장미 풍차의 1번 홀이었다.

       엘라가 <울펜슈타인 백작>에서 대역을 맡았을 때 왔었던 그곳이었다.

         

       1번 홀의 관람석은 크게 두 형태로 나뉘었다.

       첫째는 무대를 바로 앞에서 관람할 수 있는 1층 테이블 석이었고, 둘째는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2, 3, 4층의 발코니 석이었다.

         

       1층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랑프리를 주최하는 데 협력해준 지역의 명사들과 유지들이었다.

         

       그랑프리 참가자들은 위층의 발코니 석을 배정받았다.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입구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베르그송 자작님 아닙니까?”

       “도스빌 남작님.”

         

       밤색 머리의 경망스럽게 생긴 젊은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남작이라 불린 걸 보니 귀족인 거 같았다.

       애초에 이곳에 귀족 아닌 이가 얼마나 되겠냐 만은.

         

       “어이쿠, 건강해졌다니 사실이군요. 그 고약한 기계도 안 보이고.”

         

       그는 유들유들한 태도를 가장한 채 끈적한 눈으로 아나이스의 몸을 훑어봤다.

       아나이스는 그의 시선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남작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죠?”

       “모르셨습니까? 제가 이 카바레의 VIP 고객입니다.”

         

       한쪽 눈을 찡긋하는 도스빌 남작.

       농담의 수준도 그렇고, 아나이스의 반응도 그렇고, 그녀의 뒤에 선 포르슈 경의 표정도 굳어지는 걸 보니 별로 평판 좋은 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누굽니까?”

         

       그는 나를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이번에 후원한 서커스단을 이끄시는 원더스타인 단장님이세요. 단장님, 이쪽은 도스빌 남작으로, 예전에 저택으로 와서 제 과외를 해주셨던 분이에요. ‘보기보다’ 학식은 있는 분이시죠.”

         

       아나이스의 빈정거림에도 그는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낄낄거렸다.

       그는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오, 소문의 그분을 만나다니!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나저나 과연 대단한 얼굴이십니다. 자작님이 껌뻑 죽는 것도 이해가 가네요. 저는 예전에 자작님께 들어댔다가 까인 적이 있는데 말이죠! 하하!”

         

       그는 일부러 크게 목소리를 내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입에 걸린 것은 분명 조소였다.

         

       아나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변에서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절대 호의적인 눈빛들은 아니었다.

         

       -뭐야? 베르그송 자작? 무슨 일 있대?

       -소문 못 들었어? 그 있잖아. 정분난 서커스단 단장.

       -저 남자? 와, 잘생기긴 했네.

       -남자에 넘어가 상회 말아먹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해.

         

       일부러 들으라는 듯 소곤대는 소리도 참고 듣고 있기 힘든 내용이었다.

         

       그는 일부러 이런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에게 접근한 것이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2 떨어졌습니다.]

         

         

       젠장.

       요 1, 2주 사이에 서커스단의 명성이 급락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공연을 하지 않아서인가 생각했는데, 역시 아까 소문인지 뭔지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명성은 단순히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었다. 악명이 쌓이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릴 쳐다보는 시선들에서 악의 섞인 조롱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도대체 뭐지.

       그 소문이라는 건.

         

       “어, 어서 가죠.”

         

       아나이스는 차마 내 얼굴을 똑바로 못 보겠는지 앞서 나갔다.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며 계단을 올랐다.

       우리가 배정받은 좌석은 4층이었다.

         

       카바레의 발코니 석은 다른 극장의 발코니 석과 비슷했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좌석 뒤에 고급 침실이 딸려 있다는 것이다.

         

       “어……침실이 참 예쁘네요…….”

         

       아나이스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도발적인 붉은색 하트 장식이 박힌 침대.

       봉춤을 출 수 있는 간이 단상.

       그리고 구석에는 왠지 모를 채찍과 입마개, 개목걸이까지.

         

       온통 붉은색의 조명과 커튼도 그렇고 러브호텔에 온 기분이었다.

         

       우리는 발코니로 나가 좌석에 앉았다.

       아래로 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웰컴 드링크로 몇 종류의 고급술과 음료가 비치되어 있었다.

         

       “단장님은 차를 좋아하셨죠?”

         

       아나이스가 나에게 얼음이 담긴 홍차를 따라 건네주었다.

       받기는 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단순히 차가 질렸기 때문이었지만, 아나이스는 내가 속으로 화를 삭인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안절부절못했다.

         

       “오늘 많이 당황하셨죠?”

       “조금요.”

         

       나는 미소지으면서 말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 것 같았다.

       자꾸 내 눈치를 보며 뭔가 말을 꺼내길 주저했다.

         

       자신감 없이 머뭇거리는 태도.

       어떤 상황을 마주해도 항상 코웃음 치며 당당하게 독설을 내뱉던 그녀 아닌가.

       나도 많이 당했었고, 그 사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주눅 든 모습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까 1층에서 자신의 뒷소리를 하는 귀족들을 한껏 비꼬고 쏘아붙였으면 차라리 반가웠을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위축되게 한 것일까?

         

       그녀는 내 표정을 조심히 살피더니 본론을 꺼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어요. 단장님과 제가……사귀는 사이라고요.”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쑥스러워하는 아나이스라니.

       오늘 진기한 풍경 여럿 보는군.

         

       “그것만으로 끝이 아닌 것 같던데요?”

         

       그래서는 이렇게 명성이 죽죽 떨어질 리 없었다.

       그녀의 태도도 그렇고, 아까 우리를 보며 쑥덕대는 사람들도 그렇고.

       나는 뭔가가 더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퍼트린 소문인지 짐작이 가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유리잔을 긁어대다가 나도 알고 있는 이름을 꺼냈다.

         

       “피에르 모파상.”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작님의 삼촌 말이군요.”

       “저를 죽이려 한 사람이죠.”

       “잡히지 않았습니까?”

       “이미 카리브해에 어딘가로 숨어들어 간 거 같아요. 거기는 이름이 없는 섬만 해도 수백 개가 넘어요. 그렇게 되면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죠.”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과 다르게 끝나버린 퀘스트가 기어이 나비 효과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1년 8월 19일
    -파페포포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50화! 요즘 글 쓰는 속도가 붙어서 그런지 100화는 더 빨리 맞이할 거 같습니다!
    -가을전어 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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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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