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1

       마탑은 신비를 추구하는 마법사들이 모인 장소답게 상식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특히 처음 입탑한 수습생들 사이에서는 매년 기이한 괴담이 나돈다.

       

        한 밤 중, 메릴랜드 관 앞에 있는 메릴린 동상이 움직인다든지.

        여자 기숙사에서 새벽에 때때로 찢어지는 여인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든지.

        구내식당 근처에서 거적데기를 걸친 여자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 된다든지.

        모 교수의 강의가 있는 날에는 정수기의 얼음 나오는 부분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든지.

       

        사감인 나는 이런 소문의 출처를 대부분 알고 있기에 그리 동요하지 않는 편이었다.

        신고가 들어오면 가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했다.

       

        누구의 장난인지 계단 중간까지 내려와 있는 동상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시끄럽다는 한 마디와 함께 마리엘의 방 문을 두들기며.

        배를 움켜쥔 채 돌아다니는 아녜스에게 빵을 사준 뒤.

        극마법 수업이 끝난 후 복도에 전원 코드가 뽑혀있는 정수기들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20층의 시련을 통과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묵묵히 하층에서 잡일들을 하던 중.

        드디어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클락아!”

        “어쩐 일이십니까 스승님. 저녁으로 드신 빵이 부족했나요?”

        “그게 아니다! 어째서 고행의 층에 올랐단 사실을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냐!”

        “필요 없어요? 마침 생활부장님께 받은 폭신폭신카스테라가 남아 있는데.”

        “주는 것이냐?”

       

        순간 달콤한 빵 쪼가리에 홀려버린 아녜스는 포장지에 손이 닿기 직전 가까스로 거리를 벌렸다.

        아이테르의 장문 답게 일반인들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가공할 정신력.

        허나 신비를 쥐어본 적 있는 칠현자조차 달달한 카스테라의 윗부분만 홀랑 빼먹으려는 나의 움직임 앞에서는 인내하지 못했다.

       

        “그, 그건 빵을 모독하는 행위다!”

        “괜찮습니다, 남은 건 기숙사에 사는 몰락귀족영애에게 적선할 테니까요.”

        “아아, 무슨 끔찍한 짓을!”

        “지금 스승님께서 드신다고 한다면 이대로 드리겠지만요.”

       

        결국 빵을 받아든 그녀는 사감실 한쪽 소파에 앉았다.

        따뜻한 우유와 선선한 밤바람을 동시에 즐기며 먹는 야식.

        입가에 묻은 가루를 닦아주자 아직 10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고개가 꾸벅꾸벅 떨어진다.

       

        이걸로 무사히 넘어갔다고 믿으며 외출 준비를 하던 나였지만 아녜스의 손이 로브 자락을 붙잡았다.

        그녀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눈을 비비었다.

       

        “클락아, 흐암, 지금 나는 매우 실망…….”

        “스승님?”

       

        짝!

       

        “아흐하으, 했느니라! 새로운 마법을 만들었다면 응당 스승에게 내보여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제 뺨을 치며 몸을 일으키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어코 올 게 왔군.

       

        나는 해주학파의 다른 마법사들이 아닌 이자젤을 통해 독자적인 마법을 개발해냈다.

        버튼 마법.

        간섭기와 마찬가지로 해주의 일종이나 이걸 자랑스레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다간 내가 주딱이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녜스는 갤러리나 위치노트에 대해선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은 노릇.

        그렇기에 정령의 회랑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숨겨왔던 것이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것이었다.

       

        “저, 스승님. 그건 사정이…….”

        “에잇! 사정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서, 설마 저주를 만들어낸 건 아니겠지?”

        “절대 아닙니다! 저처럼 순수하고 고결한 마음을 가진 이를 어찌 의심하십니까! 저는 결백합니다.”

        “크흥, 정말이냐?”

       

        구내식당의 망령이 비적대며 다가와 내 소매 안쪽과 목덜미에 코를 파묻었다.

        창문을 열어서 비염이 도졌는지 가끔 코를 훌찌럭대는 게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대비책 중 하나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저주 따위 하나도 쓸 줄 모르니까.

       

        “확실히 사악한 냄새가 나지는 않는 듯 한데…….”

        “제 미숙한 실력으로 스승님을 실망시켜 드릴까 염려되어 숨겨 왔습니다. 조만간 완성되면 가장 먼저 보여드릴게요.”

        “훌쩍, 진짜아?”

        “그럼요 다음 시련도 도전하게 되면 꼭 스승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믿는다아? 그럼 손가락 걸고 약속.”

       

        아무래도 이자젤을 볶아서 적당한 마법 하나를 만들어 놔야겠군.

        최근 그녀는 다락 생활이 익숙해졌는지 토비를 놀래키거나 루퍼트의 분재를 몰래 불태우곤 했다.

        은익 기사단 습격을 의뢰한 배후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 있었으니 이참에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급히 가느냐?”

        “잠시 산책이요.”

       

        절대 대륙 최고의 해주술사와 새끼 손가락 걸고 맺은 약속에 뒤가 캥겨서가 아니었다.

       

        각 학파의 라운지에 환한 불빛이 들어와 있는 수련의 층.

        마력 승강기를 이용해 11층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계단이 있는 비상구로 향했다.

        어두운 센서등만이 깜빡이는 을씨년스러운 라운지 끝에 이자젤이 머무는 창고가 있었다.

       

        “응?”

       

        그런데, 그녀가 안 도망가고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치노트를 꺼낸 나는 발걸음 소리를 죽였다.

        창고 안에서는 두 개의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자 문 틈을 뚫고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너 뭐야? 불법 침입자?’

        ‘난 그냥 여기서 지내도 된다고 해서…… 신고는 하지 마!’

        ‘신고? 그, 그딴 걸 왜 해?’

        ‘악! 아파! 저주잖아? 이 미친 년이!?’

       

        이곳은 도둑도 관심을 안 가질 해주학파의 라운지.

        루퍼트와 토비, 그리고 아녜스는 위치노트를 사용하지 않기에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프리나였다.

       

       

       

        *

       

        “둘 다 진정하세요.”

        “앗, 클락 님!”

        “너, 너! 왜 여기에?”

       

        나는 급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프리나도 해주학파의 대선배이며 나름 위계가 높은 마법사지만 이자젤은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실력의 흑마법사였다.

        여기서 극마법이라도 썼다간 해주학파의 건물이 또 다시 전소하고 말 것이다.

       

        조심스레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며 이자젤의 손에 새겨진 검은별의 문양을 가렸다.

        그녀의 정체만 탄로나지 않는다면 다른 학파의 라운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제 등반에 도움을 준 대가로 잠시 이곳을 쓰게 해줬어요. 선배도 알잖아요, 수련의 층에서 종종 있는 학파 간의 거래…….”

        “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맞다, 얘 친구 없지.

        순간 욱하고 튀어나온 말과 달리 프리나의 경계심은 다소 옅어져 있었다.

       

        저주인형을 집어넣은 손이 조금 전 가린 이자젤의 문양을 가리켰다.

        혹시 들켰나? 싶던 찰나, 조금 쭈그러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둘이 사귀어? 어, 언제까지 남 앞에서 손 잡고 있을 건데. 이러니까 인싸 놈들은……!”

        “…….”

       

        다행히 창고 안이 어두워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분재를 태워버린 이자젤을 밖에서 손 들고 있도록 벌 세워둔 뒤, 나는 그녀에게 이곳에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마법제 이후로 만나지 못했는데 그간의 근황이 궁금했다.

       

        “라운지엔 어쩐 일이세요? 마법 연습하러 오셨나요?”

        “따, 딱히 여기가 아니어도 충분하거든. 벌써 30층 넘겼고.”

        “오, 대단하시네요. 저도 막 정령의 회랑을 통과했는데.”

        “…….”

       

        축하의 말 대신 돌아오는 건 침묵.

        프리나의 성격에 익숙하기에 괜찮았다.

        칭찬을 낯간지러워 하는 것도, 침묵을 견디지 못해 먼저 말을 꺼내는 것도 여전했다.

        테이블 위로 꼬깃한 종이 한 장이 내밀어졌다.

       

        “이건?”

        “지난 조사위원회에서 발족한 마, 마족 전담기구 ‘극채색’의 입단 공고야. 간부 자리를 제외하면 일반 마법사의 지원도 받고 있어.”

       

        알고 있다.

        얼마 전부터 비나가 의장으로 부임해 나도 바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늘어난 스케쥴을 케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갤러리에 싸는 도배글의 바리에이션이 늘었기 때문.

        차단한 계정만 수십 개에 달해 가는데 이놈의 마법사들은 강의를 들을 때마다 노트를 빼앗겨서 괜히 일만 복잡해졌다.

       

        ====

        아이스메테오

        [마탑에서 마족 퇴치를 전담하는 신생 조직의 단원을 모집해요]

       

        쉽고 보수도 많고 편한 환경에서 안전한 업무만을 전담해요

        성공할 시 영광과 명예는 딱히 없어요

       

        이름은 극채색이에요

       

        — 그게 뭔데 씹덕아

         ㄴ 얼마 전에 명계의 문 때문에 생긴 조직 아님?

         ㄴ 정보부랑 맞먹는 지원을 하겠다고 조직위에서 발표했던데

         ㄴ 근데 왜 이런데서 홍보를……?

        — 그래서 뭔 일 하는건데?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쓰던가

         ㄴ 아이스메테오 : 이렇게 공고를 올리면 지원자가 몰린다던데 아닌가요?

         ㄴ 그…… 아니다

         ㄴ 반대로 쓰신 것 같은데요

        ====

       

        비나에게 노트를 강탈 당하면 기숙사로 달려와 다시 내게 달라고 하고 그걸 또 뺏기고…….

        프리나가 가져온 포스터는 그 과정에서 질리도록 봐 온 게시글 내용과 발제자 이름만 제외하고 완전 똑같았다.

       

        “여기 들어가시게요? 저흰 해주학파인데.”

        “정보부와 다르게 학파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니까 크게 상관은 없어.”

        “학파의 다양성이라…….”

       

        마족과의 전투에선 어떤 변수가 생길 지 모르기에 채택한 정책인 듯 한데, 영 미덥지 못했다.

        정보부가 연금과 점성학파를 선호하는 이유는 업무의 효용과 더불어 학파가 통일될수록 구성원끼리의 마찰이 적기 때문이다.

        나도 모험가 생활을 하던 무렵에는 셋이서 한 몸처럼 움직였고.

        재수 없으면 서로 메테오가 무슨 마법인지 싸우다 자멸할지도 모르겠군.

       

        “너, 너 졸업하고도 할 거 없지? 이런 거 다 스펙이다?”

        “그걸 제안하러 찾아오신 거군요.”

       

        극채색의 존재는 가장 먼저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딱히 지원할 생각까지는 갖지 않았다.

        나는 용 말고 다른 마족은 상대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정보부와 맞먹는 조직이라는데 덜컥 합격해도 다른 이들의 발목만 붙잡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나가 건넨 종이를 집어든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시, 싫으면 강요는 안 해! 나, 나도 딱히 너 말고 같이갈 사람 없는 것도 아니고…….”

        “아뇨 저도 지원하죠.”

        “정말?”

        “근데 선배는 왜 들어가고 싶어하시는 건데요?”

       

        기감을 끌어올리자 종이 끝을 적신 땀에서 독특한 향기가 느껴진다.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선 프리나의 모습이 어둠을 뚫고 또렷하게 보였다.

        대화하는 상대방의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것은 예전과 같았지만 달라진 점이 눈에 띄었다.

       

        “나, 나? 그냥 흥미가 있어서.”

       

        로브 아래로 드러나는 몸의 굴곡이 묘한 색기를 자아낸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주근깨가 옅어져 있고 특별히 관리하지 않는 손톱과 머리카락에도 윤기가 돈다.

        숫기 없는 태도나 부끄러워하는 버벅임조차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품기 시작했다.

       

        본인은 내색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지만, 모험가 시절부터 어지간한 마족과는 전부 드잡이질 해본 내 눈은 결코 속일 수 없다.

       

        “나중에 정식으로 활동하면 마탑 밖에도 나간다잖아. 조, 좋은 경험이 되지 않겠어?”

       

        이건 마녀의 특징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너무 아파서 후딱 자고 아침에 올렸습니다.
    축구 결과를 보니 좋은 선택이었네요.
    오늘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