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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0

       

       우드득.

       

       무언가 과격히 뜯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일까.

       일장로가 일순 의문을 품은 찰나.

       

       갸우뚱!

       

       일장로의 시야가 비틀린다. 

       그때까지도 일장로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장로가 지금의 광경이 자신의 몸이 쓰러지며 보이는 상태라는 걸 알게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털썩!

       

       몸이 나약하게 쓰러진다. 

       

       “이게 무…!”

       

       곧이어 하체 쪽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왔다.

       

       “끄르으으윽!?”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에 일장로가 비명을 내지른다. 

       즉시 고통의 중심인 다리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은 얄팍하게도 허공을 지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어…무어야…?”

       

       고통에 침을 질질 흘리며 일장로가 아래를 쳐다본다.

       

       없었다.

       있어야 할 왼쪽 다리가 존재하질 않았다.

       

       어디로 간 거지? 내 다리가 어디로 간 거냔 말이야.

       일장로가 버둥거리며 눈을 돌리려던 순간.

       

       툭.

       

       그의 옆으로 무언가 떨어졌다.

       다리였다. 

       

       일장로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 왼쪽 다리, 검으로 잘라낸 것 같은 깔끔한 형태가 아니라.

       정말 잡아 뜯어낸 것 같이 거칠게 망가진 형태다.

       

       “흐어….”

       

       일장로가 그걸 보며 눈을 키우자.

       

       스윽.

       

       무언가가 일장로의 허벅지를 붙잡는 감촉이 느껴졌다. 

       다리가 뜯겨 덜렁 남아있는 위치였다.

       

       그리고.

       

       화르르륵-!

       

       “끄아아아아아!”

       

       뜨거운 열기가 퍼지며 일장로의 상처를 지져버린다. 

       살갗과 피가 타는 냄새가 났다.

       

       지독하고 역겨운 향기, 그 틈에서도 더욱 공포스러운 건.

       

       “흐으가…그으이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고 있거늘, 이 정도 고통에도 정신이 멀쩡하다는 점이다.

       

       따지자면 몇 초 되지 않았을 시간일 터인데.

       일장로는 그 시간이 마치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른다. 

       탄내가 자욱하게 퍼지고, 비명 지를 힘조차 없어졌을 즈음.

       

       그때가 되어서야 허벅지를 잡고 있던 손이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흐그극…끄으….”

       

       눈동자가 굴러 간다.

       어둑한 천장이 보였다. 

       그 아래를 보니, 검게 가려진 그림자 틈에서 붉은 안광이 보인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묻겠다.”

       

       붉은 안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리하였지?”

       

       묵직한 저음이 귀에 꽂혀 들어온다.

       일장로는 덜덜 떨리는 몸을 뒤로하고 머리를 굴려야 했다.

       

       누구지.

       대체 누구기에 이러는 것인가.

       

       왜 그리하였냐고?

       

       “무엇…무엇을…무엇으을….”

       

       일장로가 힘겹게 대답하니.

       

       우두둑-!

       

       “…끄그급…!!”

       

       일장로의 하나 남은 발목이 짓눌려 부셔졌다.

       

       “다시 묻겠다.”

       “허억…흐어억….”

       

       똑같은 음율의 말투였으나, 일장로는 어째서인지 저 소리에 공명이 깃든 것만 같았다.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비친다.

       

       저것은 죽음인가.

       

       순간, 일장로는 그런 생각이 스쳤다.

       

       “왜 그리하였나.”

       

       공포에 눌려 지쳐가는 정신 속에서도 저 목소리만큼은 선명하다.

       그렇구나.

       

       저자는 신인가?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진작 죽어 사라졌다고 생각하던 일장로에게조차 그리 느껴졌다.

       

       압도적인 공포감.

       

       그것에 짓눌린 일장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딱딱거리며 연신 부딪히는 이빨만이 그에게 들려오는 유일한 소리였다.

       

       “…”

       

       구철운은 그런 일장로는 확인하고선 손을 뻗어냈다.

       천천히, 일장로의 얼굴을 잡고자 손이 닿으려는데.

       

       “거기까지 하시게나.”

       

       우뚝.

       

       일장로의 앞에서 들려온 소리에 구철운이 잠시 동작을 멈췄다.

       구철운이 고개를 올려 정면을 바라봤다. 거기엔 천존이 인상을 찌푸린 채 구철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 가주….”

       

       천존의 부름에 구철운이 옷을 가다듬고선 예를 갖추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설마, 자네를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공간 자체를 짓누르는 열기.

       당장 구철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압을 느끼며 천존이 눈을 한 번 찡그렸다.

       

       “…뭐 하는 건가 지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일까. 

       천존은 갑작스럽게 터진 일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구철운이 대뜸 천장에서 나타난 걸 떠나.

       일장로를 습격해 이 지경을 만들어내기까지.

       

       ‘막았어야 했나.’

       

       시도하고자 하면 막을 수 있었으나, 천존은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당장 구철운에게서 터져 나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저리도 선명한 분노라니.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고. 거기에.

       

       ‘…반응이 늦었다.’

       

       구철운이 다리를 잡아 뜯을 때까지, 천존의 대처가 늦어버린 것도 문제였다.

       그걸 떠올리며 천존이 속으로 이를 깨물었다.

       

       “구 가주. 산서에 있어야 할 그대가 왜 이곳에 있는 건가?”

       

       올라오는 감정을 죽인 채 물었다. 사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 천존의 물음에 구철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을 내놓는다.

       

       “제 자식이 독살을 당할 뻔했다 하여, 확인하기 위해 왔습니다.”

       “…독살?”

       

       그 말을 들으며 직전에 일장로가 했던 말에 대해 떠올렸다.

       

       ‘일 처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었나.’

       

       거기에, 분명 구가의 얘기가 조금 섞여 있었다고 했는데.

       천존의 시선이 일장로에게 향한다.

        

       ‘설마?’

       

       그 얘기가 이런 얘기였을까.

       그리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쯧….”

       

       천존이 다시금 구철운에게 시선을 옮겼다.

       

       거대한 체격, 무표정한 눈빛을 띠고 있다. 예의는 잊지 않고 취한다.

       어딜 봐도 거슬림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도.’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구철운은 저 모습과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직전까지 그토록 커다란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참으로 비릿한 감각이다.

       

       그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천존은 애써 말을 뱉어냈다.

       

       “…구가의 가주는 산서를 떠나지 않는다.”

       “…”

       “분명 그런 맹약이라 들었는데.”

       

       천존의 입에서 맹약이란 단어가 나와서일까.

       구철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지금 이 일은 맹에 보고된 사항인가?”

       “…”

       “그렇지 않다면, 우선은 돌아가시게, 이 자의 일은 내 마땅한 처리를….”

       “하아….”

       

       나직한 한숨 소리.

       

       그 작은 소음이 천존의 입을 막아냈다. 

       작디작은 소리임에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명확히 느껴진 탓이다.

       

       같잖음.

       

       귀찮음.

       

       그리고 분노.

       

       다른 듯 비슷한 감정이 뒤섞여있음에도, 존재감이 너무나 선명하다.

       

       “…자네.”

       “어르신.”

       

       구철운은 말을 뱉으면서도 시선은 천존이 아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쌓이고 쌓인 마물의 사체와.

       바닥을 메꾸고 있는 놈들의 피.

       

       무언가를 올려둔 단상을 비롯해, 허공을 가득 채운 독기만으로. 이곳이 정상적인 공간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그걸 여기저기 둘러보는 구철운의 눈빛은, 차게 식어있었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시간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아니, 시간 뿐은 아닐 것이다.

       

       “십여 년 전.”

       

       그러기엔 그 과정 속에서 겪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저희에게 일이 있었을 무렵. 그 많은 일을 뒤덮고 묻었음에도 맹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습니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목소리엔 끈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철걱.

       

       그 감각에 천존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부여잡았다.

       

       “그보다 오래전, 팽가의 가주가 선을 넘었을 무렵에도 팽가는 무너지지 않았고. 어르신의 손주가 일을 벌였을 때도 남궁가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어떠한 사건이 터진들, 정파의 중심축인 무림맹은 무너지지 않는다.

       

       맹주가 뒤바뀌며 윗선의 위치가 달라질 뿐이다.

       

       무너진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더불어, 구철운이 언급한 팽가와 천존의 남궁은 사대세가라 불리는 명가였다.

       기껏 해봐야 세가의 핏줄이 일을 저지른들, 명가가 그리 무너질 리 없다.

       

       그걸 구철운도 알고 있을 터인데, 어째서 저런 알 수 없는 얘기를 하는 걸까.

       

       천존이 그리 생각한 순간.

       

       뚝.

       

       “…!”

       

       구철운은 어느새 천존의 앞에 서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길로 천존이 검을 뽑지 못하게 밀어 넣은 채로 말이다.

       움직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에, 천존이 당황을 머금을 무렵.

       

       구철운이 천존에게 말했다.

       

       “제가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뭣….”

       

       말을 뱉어내는 구철운의 안광이 빛을 머금는다.

       

       서늘하면서 뜨거운 말이다. 

       목소리의 담긴 감정은, 날카롭게 모습을 바꿔 천존의 가슴을 뚫어낸다.

       

       비수가 된 어투가 깊숙이 침투했다.

       

       “이 썩고 무너진 땅에서 의와 협을 따지기엔 너무나 늦었습니다. 그 증거로 맹은 본디 가지고 있었을 신념을 잃었지요.”

       “구 가주 자네, 지금….”

       “그런 맹과 옛적에 맺은 맹약이 과연.”

       

       그그그극.

       

       지면에 금이 간다. 구철운의 발끝에서 뿜어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단단히 엮고 있을 수 있다. 그리 생각하시는지요.”

       “…!”

       “어르신께선, 이곳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으십니까?”

       

       정파의 사대세가.

       이제는 과거의 오명을 벗고 정파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당문.

       

       세간이 말하길 그리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이토록 곪아있었다. 그걸 직접 보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느냐.

       

       구철운의 가시가 섞인 말에, 천존은 침묵을 표했다.

       

       무언가 대답을 뱉기엔, 너무나 위험한 문답이었던 탓이다.

       

       다만, 그 침묵이 곧 대답이 됐음 또한 천존은 모르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스친다.

       

       구철운의 시선 또한 천존에게 향했다.

       

       이 일에 대답하지 않는 천존. 썩어버린 당문과 이 공간까지.

       정파라 하여금 모질고 못난 모습이 가득한 부분이지만.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구철운은 상관없었다.

       

       “맹에서 무얼 하고자 하였는지, 뭘 바라는지. 관심 없습니다. 하니, 비키시지요.”

       “자네.”

       “어르신, 지금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우웅.

       

       열기가 변화한다.

       

       기운이 비틀리며 점차 불꽃으로 변하고 있었다.

       

       “당문을 이 땅에서 지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참고 있습니다.”

       “…!”

       

       천존의 눈이 커졌다.

       변화한 불꽃은 구철운의 등 뒤에 모여들었고.

       

       그건 하나의 형태로 뭉쳐지고 있었다. 

       

       ‘저게….’

       

       저걸 내기라고 불러야 할까.

       인간의 기운으로 저런 걸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인가.

       

       덜덜덜.

       

       천존은 자신의 검이 떨고 있음을 느꼈다. 

       뒤바뀐 공기에 검이 진동을 퍼트리는 것이다. 

       

       “하니, 비키시지요.”

       

       이대로 비켜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었다. 이는 위상이 걸린 일이다.

       

       팽가와 당문. 거기에 무림맹까지 언급하며 제 오만함을 표출한 구철운.

       이를 무시한 채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걸 물러선다는 의미는.

       

       구철운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음과 다르지 않다.

       

       홀로 맹과 사대세가를 멸족시킬 수 있다.

       

       그리 판단했다는 의미다.

       그걸 과연 자신이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절대 그럴 수 없으리라.

       

       한데, 그걸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검을 뽑지 않는 게냐.’

       

       자신은 어째 검을 뽑지 않는 걸까.

       

       구철운이 이를 막고 있어서? 아니다. 

       

       구철운은 힘으로 검을 밀어 넣고 있으나, 미세한 틈을 만들어 놓았다.

       

       언제든 천존이 뽑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자신에게 검을 겨눌 수 있도록.

       그런 틈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하….’

       

       그걸 보며 천존이 헛웃음을 머금었다.

       

       치욕스럽다.

       이게 얼마만의 감정인가. 

       

       검존과 마지막으로 손을 섞었던 날, 그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철걱.

       

       이에 천존은 당장 손잡이를 잡아 검을 뽑아 들고자 했….

       

       “지금 네놈이 검을 뽑는다면.”

       

       천존의 귓가에 들려온 소리가 천존의 목을 감쌌다.

       

       “남궁가는 멸문한다.”

       “…”

       

       차가운 음성, 잠깐의 망설임. 

       

       하지만.

       

       스릉-

       천존은 이내 검을 뽑아 들었고.

       

       콰아아아아아-!

       

       곧이어 공간에 내기로 이루어진 폭풍이 몰아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구철운을 모티브로 잡을 때.

    저희 아버지와 반대되는 인물을 상상했습니다.

    항상 친구처럼 대해주시고 보듬어 주시며 믿어주셨던 저희 아버지와 반대되는 인물.

    그렇게 해서 만든 캐릭터가 구철운이었는데.
    지금까지 쓰다보니, 마냥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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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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