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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0

        

       사실 왕망을 들이미는 청의 혓바닥은 아주 요사스럽기 그지없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청은 한림원, 중원 땅 최고의 학사들과 술을 퍼먹으면서(그런데 공부를 곁들인) 온갖 고전을 섭렵했으니까.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라서 아주 악질이었다.

         

       왕망은 빨갛다기보다는 그냥 폭군이다.

       의도야 어쨌든 간에 내 나라 내 마음대로 하려다가 말아먹고 반란터져서 뒈졌으니까.

         

       그러자 종정필이 대답했다.

         

       “흠, 묵가를 모르는가? 천하가 모두 같은 배분의 사형제로 모두가 모두의 스승이자 제자이니. 음, 그래, 이제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겸애, 무공에 있어서의 겸애라고 할 수 있겠군.”

         

       “아. 겸애 아시는구나…….”

         

       청이 살짝 놀랐다.

       묵가를 알 줄은 몰랐는데.

       굳이 왕망을 들었더니 왜 묵가에요.

         

       묵가는 고대 원시 무정부주의자들이다.

       무정부주의는 원래 반쯤 빨간색이니 원시 고대 빨갱이들이라 해도 반쯤은 맞는다.

         

       겸애는 모두에게 무한히 평등한 사람.

       세상 사람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여야 하니 혼약과 혈육을 부정한다. 결혼 금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어린 이는 내 자식이다. 공동 육아.

       재산을 가지면 시기하게 되며 또한 많이 베푸는 이를 편애할 것이다.

       사유재산 금지.

       다만 빨갱이와는 달리, 국유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 그냥 필요하면 네 것 내 것 없이 슥슥 집어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음, 조금 다른데.”

         

       사실 모든 사상은 서로가 사이비다.

       사이비란 비슷할 사, 어조사 이, 아닐 비, 비슷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러니 하나로 하나를 설명하자면 말문이 턱 막힐 수밖에는.

         

       이 자리에서 그게 되겠냐.

       남들보다 더 강해지려고 무공을 익히는 건데 자기 깨달음을 공유하고 영차영차 서로 끌어올려 주는 게 말이나 되냐.

       내가 저 먼 미래에서 보고 왔는데 그거 안 되더라, 되기는커녕 폭삭 망해서 우스갯소리 취급이나 받고 있더라.

       되지도 않는 꿈을 꾸지 말고 눈을 떠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왜냐하면 그래봐야 기분만 상할 테고.

       말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다.

         

       스스로 해 보고 안 돼서 이거 안 되는구나 하고 이해해야 알지 않을까?

         

       그러면 어떻게?

       노선을 튼다!

         

       “대협의 뜻은 존중하지만, 방법이 틀렸어요.”

         

       “틀렸다? 다른 것이 아니라?”

         

       “네. 틀렸어요.”

         

       슬그머니 삐딱해지던 청의 허리가 똑바로 곧추서며 자세는 절개 있는 대나무처럼 꼿꼿하며, 눈빛에는 현기가 돈다.

       서문수린류 여인대로행. 제 이 초식.

       어디서나 당당하게 앉기다.

         

       참고로 일 초는 당당하게 걷기, 이 초가 당당하게 앉기.

       그럼 삼 초는?

       청이 맞춰보려다가 계집애가 어찌 남들 앞에서 드러누울 생각을 하느냐며 꿀밤을 한 대 얻어맞았더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그 정도로 꿀밤을 내리시나 싶은데, 신녀문에 막 들었을 때라 아직 정이 좀 없으신 때였더란다.

       생각해보니 처음엔 되게 엄하셨지.

       사내처럼 걷는다고 꿀밤, 사내처럼 앉는다고 꿀밤, 사내처럼 말한다고 꿀밤 등등.

       뭐지? 그런데 지금은 포기하셨나?

       음, 사부님 보고 싶다.

         

       삼 초는 눕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어디서나 당당하게 말하기다.

       바른 자세에서 나오는 바른 목소리야말로 진정 힘을 가진 것이라 하시면서.

         

       “일단, 천하가 함께 수련하고 공부하며 발전시키려거든, 그 수법이 사악한 것이어서는 안 된답니다. 먼 내일에, 무림이 하나의 문파가 되는 날이 되더라도 사악한 마공으로 하나된 이는 또한 세상의 화근이, 아니 커다란 재앙이 되고 말 것이에요.”

       

       “어째서지?”

         

       “무림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사악한 도적떼가 되고 말 테니까요. 관부나 혹은 양민들. 섭심공만 해도 그렇답니다. 우리 모두가 사형제이니 우리의 심장은 말고 양민이나 관리의 심장을 뽑자고 하실 건가요?”

         

       “과연. 내 이해하였소이다. 허나, 정순한 공부는 이미 저 탐욕스러운, 이미 가진 자들, 그래, 기득자들의 손에 꽉 쥐어져 나오지 않으니,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설득해야 한단 말이오?”

         

       “어떤 방법으로도 설득할 수는 없답니다. 대저 어떠한 신공이라고 해도 약점이 있는 것이니,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오히려 배운 이가 위태롭게 되는 것이랍니다. 문파들이 간직한 비전을 떠나, 그 본인을, 또한 한 배에서 나지 않았으나 같은 스승을 모셔서 형제와 자매로 맺어진 가족을 위태롭게 할 것이에요. 짐승조차 제 피붙이를 챙기는 법, 어찌 사람의 비정함을 말로 얻어내려 하십니까?”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오? 저들은 이미 오랜 시간 신공을 독점하여, 그대의 말처럼 그들만을 위한 요새를 쌓았소이다. 그러니 대적하여 신공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니오?”

         

       “그건-”

         

       “아! 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소. 그것은 바로 그대가 말한 하나의 유령이오.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하나로 뭉쳐 대적하면 아무리 신공을 가졌다한들 무용, 저 배부른 돼지들의 요새를 불태우고 가로막는 모든 벽을 무너뜨리면 그때야말로 진정 천하무림, 무림세계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겠소?”

         

       갑자기 분위기 혁명이었다.

       이거 큰일 날 아저씨였네.

       따라왔으니 망정이지 그냥 갔으면 나중에 임무창에 이름 올릴 뻔한 거 아닌가?

         

       몇 번째 위기, 적화천지.

       혹은 홍위무인의 난 같은 제목 달고서.

       그도 아니면 공동 수련이니까 공수주의, 공수부대의 난, 무슨 특공무술이라도 쓰나?

         

       “아니오. 칼날은 목숨을 취하고 무한한 원한의 굴레에 드는 가장 편리한 도구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결코 하나 된 무림 세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니, 피와 원한이 되돌아와 영원토록 이합집산하는 아귀다툼이 펼쳐질 뿐이겠지요.”

         

       “그러면? 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신공이 처음부터 신공이었을까요? 모든 신공은 태초에 미약하였을 것이니, 오래된 문파가 대를 이어 발전시킨 일파의 정수랍니다. 그러니, 대인께서 그 미약한 시작을 창조하시면 될 것이 아니겠어요?”

         

       “내가 시작이라.”

         

       종정필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린 듯 고개를 젓는다.

         

       “이제 시작한들 이미 수백 년을 앞서나간 이들을 어느 세월에 따라잡을 것이오, 또한 그렇다고 기득자들이 기다려주지 않으니 같은 속도로 멀어져 갈 것이 아니오?”

         

       청은 어이가 없다.

       그걸 아는 놈이 그런 소리를 하나?

       수백 년을 앞서나간 사람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제 출발한 놈한테 뒷머리를 잡혀야 하는 건데?

       당연히 죄가 있으면 잡혀도 되긴 하지만.

         

       그런데 구파일방이 그런 죄를 지었던가?

       관부고 사파고 하나같이 자기 뱃속이나 채우는 때에 그나마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는 단체가 무림맹이잖아.

         

       청이 속내를 꼭 숨기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니요, 언제고 그 기득자들은 정해진 패배를 맞이하게 될 것이랍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러하오?”

         

       “대저 명문에서 신공을 가르치는 방식이라 하면,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이를 선별하여 혹여 새어나갈까 봐서 비밀리에 전수하는 것이니, 세월이 흘러서 점차 신공의 주인은 점점 줄어들기만 하고 신공은 실전되어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점점 소수의 천재를 위한 곳으로 바뀌어왔으며 앞으로 그러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보다 높은 공부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울부짖는 세계무림의 영재들은 어떠한가.

       신공의 소유자가 줄어들고, 또 공부 자체도 실전되어 자취를 감추면 감출수록, 더욱 많은 이들이 더 심한 갈증에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리라.

         

       “그러니 멀지 않은 미래에 모두가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일어날 것이랍니다. 진정 사해가 평등한 동도로서의 진정한 세계무림이 펼쳐질 것이니, 대협께서 언젠가 찾아올 그 미래를 예비하실 텐가요? 험준한 산령에 잔도를 놓는 선봉장으로서, 어쩌면 세계무림의 이룩을 눈에 담아볼 수도 있으시겠지요.”

         

       빨갱이들이 하는 논리의 표절이었다.

       저기서 명문과 영재를 자본가와 노동자로만 바꾸면 딱 그네들이 말하는 세계혁명이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마지막 설득이기도 했다.

         

       어차피 미래에 벌어질 일이고, 네가 평생 노력해도 될까말까한 일이다.

       그러니 괜히 헛힘 쓰지 말고 포기해라.

         

       우공이 될 것인가? 현로가 될 것인가?

         

       전설 속의 우공이 산을 옮기고자 했으니 제 대에 이루지 못할 거대한 대업을 대대로 물려주어 이루고자 하였으니 어리석으나 뜻만은 크게 품었다.

         

       그러한 우공을 비웃은 현로는, 굳이 좋은 말 놔두고 병신이라고 욕부터 내뱉은 것이 사람은 못돼먹었지만.

       그래도 안 될 일은 진작 포기하고 삶을 즐기는 현명함을 갖췄더란다.

         

       그에 종정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손바닥과 주먹을 모아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포권이라 하는 중원의 인사법이다.

         

       “내 잠시 그대를 의심하였으나, 역시나 속에 든 큰 뜻을 둔 거인이셨구려. 그러니 이 종정 모, 진심으로 고견을 청하겠소.”

         

       아씨, 돌겠네.

       도대체 대충 되는대로 막 나왔던 소리의 어디가 이 아저씨를 이렇게 빨갛게 만들었는지.

       아. 이래서 유령이라 하는구나.

       멀쩡하던 사람을 홀려서 아주 새빨갛게 피투성이로 만드는데, 당연히 온 세상이 다 두려워하지. 암.

         

       “하나. 일단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을 모으세요. 대협이 가진 무공을 먼저 베풀면, 뜻을 모은 동지들 역시 그러할 것이랍니다.”

         

       둘, 그리고 서로의 무학을 공유하고 심득을 나누면 서로의 불완전했던 무공도 조금씩 완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알리면 감화된 이들이 점점 모여들게 될 것이다.

         

       셋. 그렇게 세상에 흩어진 무공들이 모이고 또한 보완되고 합쳐서 결국에는 신공이라 할만한 공부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이때부터는 마른 산에 화마가 내달리듯 세계로 번져나갈 것이니, 그제야 우리는 저 기득자들과 같은 높이, 우리가 모두 함께 세운 성벽 위에 평등할 것이랍니다.”

         

       “오오! 과연! 그대는 과연 신인이신가!? 이제야 이 종정 모, 남은 생애를 남김없이 투자할 큰 사업을 깨달았습니다! 이제야 이 공허한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알게 된 것입니다. 목표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달성을 위해 예비된 삶!”

         

       공대가 존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감동했는지 침까지 마구 튀어가며 감탄을 남발하는 종정필이다.

         

       그런데?

       사실, 청은 알려준 게 없다.

       왜냐하면, 청의 하나 둘 셋 그리고 결론까지 다 모으면 이런 뜻이었으니까.

         

       그럼, 문파나 하나 차리면 되겠네요.

         

         

       뜻을 함께하는 동지를 모아?

       천하오랑의 일인인 독고검이 자기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하는데 뜻이고 나발이고 당연히 사람이 몰려들 테고.

       아마 소식 듣는 낭인들은 죄다 몰려가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함께 무공을 완성해나가?

       그야 비전, 청의 고향 말로는 궁극기가 없는 문파들은 원래 지금까지도 다 그렇게 해 왔다.

         

       사실 중원에 무수하게 존재하는 문파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냥 가입 제한이 느슨하고, 가입비로 자신의 무공을 내면 문파의 무공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정도?

       오래된 명문들도 신공을 완성하고서는 그때부터는 사람 가려서 제대로 된 인재를 받아 절세고수를 육성하지만, 그걸 안 숨기고 다 풀어버리겠다는 목적 정도가 다른 점일 테고.

         

       그러나 신공이 어느 세월에 나오나.

       종정필의 대에서만 놓고 보면, 그냥 문파 하나 세우는 게 전부다.

         

       혼자 다녀서 별호가 독고검이라던가?

       그럼, 이제부터는 뭐 동지검이나 인민검, 우리검 적화검 안독고검 문파세운검 정도로 바꾸면 되는 거고.

         

       그렇게 함께 만드는 무공이 악용되는 꼴을 눈 뜨고 보진 못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나.

       그럼 그냥 정파 문파 하나 탄생이다.

         

       그것도 모르는 독고검은 갑자기 깨달은 시대정신에 활활 불타고 있을 뿐이었다.

         

       청이 절로 사악해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부들부들 고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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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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