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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0

        

         

       남자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불평을 내뱉으며, 정말로 기분이 나쁘다는 듯 얼굴을 팍 찡그렸다.

       그리곤 마치 똥이라도 밟은 것처럼 툴툴거리며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남자의 시체에 과민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시체의 앞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어떤 사람은 혹시 자기 양복에도 체액이 튀지 않았나 살펴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바빠 죽겠는데 그딴 거 신경 쓸 틈도 없다는 듯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사람 하나가 시체가 되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먹고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은 꽤 기묘한 면이 있었다.

       마치 향수마저 자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성이 그 생각에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 젊은이.”

         

       진성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남성이 있었다.

       구겨진 양복에 꼬질꼬질한 얼굴, 지저분하게 나 있는 수염, 몸에서 풍기는 알싸한 알코올 냄새와 땀의 냄새까지.

         

       노숙자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은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웃자 치아가 드러났는데, 언제 닦았는지 모를 치아에는 음식물 찌꺼기와 플라그가 잔뜩 끼어 있었고, 구강청결제를 사용한 것인지 파란색이 치아 곳곳에 보였다.

         

       “월 스트리트에 처음 왔지?”

         

       그는 쿡쿡 웃으면서 진성에게 물었다.

       그리고 진성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이 처음입니다.”

         

       “흐흐, 그렇다면 저 장면을 보고 매우 놀랐겠어….”

         

       그는 묘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베테랑 직원이 막 회사에 들어온 신입 직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어쩌다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이런 곳에 들어오게 되었냐는 동정심이 담긴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그는 이리로 오라는 듯 작게 손짓하더니, 화단 근처로 그를 데려갔다.

       그리곤 돗자리가 깔린 곳에 털썩 주저앉더니, 자신의 옆에 앉으라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성은 그의 손짓에 따라 그 옆에 앉았고, 진성이 앉은 것을 확인한 남자는 양복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강청결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그것의 뚜껑을 열고는….

         

       꿀꺽꿀꺽.

         

       그것을 미친 듯이 위장에 털어 넣었다.

       마치 손에 들려있는 것이 구강청결제가 아니라 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크흐.”

         

       그리곤 술을 원샷이라도 한 것처럼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네도 한잔하겠나?”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됐고.”

         

       남자는 의례적으로 진성에게 구강청결제를 내밀었다가 진성이 거절하자 다시 그것을 마셨다. 그렇게 꽉 차 있던 구강청결제가 반절까지 줄어들자 그는 아껴먹어야겠다는 듯 그것을 다시 품 안에 집어넣고는 진성을 바라보았다.

         

       “이봐, 무슨 학교 나왔나?”

         

       “학교라니요?”

         

       “펜실베니아? 하버드? 버지니아? 예일? 시카고?”

         

       스윽.

         

       남자는 그렇게 물으며 수염을 소매로 슥슥 문질렀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구강청결제를 대충이라도 닦으려는 듯이 말이다.

         

       “미국 대학이 아닌가? 그럼 동양 쪽?”

         

       흐흐흐.

         

       남자는 음침하게 웃었다.

         

       “솔직히 내가 아시안들 얼굴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 어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군. 아, 인종차별적 발언이 아니야. 진짜로 구별을 잘 못 하겠더군. 뭐, 동양인도 우리 서양인들 얼굴 잘 구별 못하는 것 같으니 비슷하겠지?”

         

       “….”

         

       “그래도 대충은 알겠어. 중국, 일본, 한국. 셋 중 하나지?”

         

       “한국입니다.”

         

       “그래. 한국…. 거긴 무슨 대학이 있더라…? 잘은 모르겠군. 솔직히 동아시아의 대학이라고 해봐야 베이징대학? 그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손을 품 안으로 가져가려는 듯 움직였다.

       하지만 그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런 거라고 말하려는 듯, 그는 손을 딱 멈추고는 다시 내렸다.

         

       그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그것처럼.

         

       “어쨌든 좋은 대학도 나오고, 좋은 교육도 받고. 그래서 왔겠지. 백 년 전이라면 시티 오브 런던이지만, 지금은 월 스트리트가 금융의 중심이니까.”

         

       “….”

         

       진성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남자의 그 말은 진성에게 대답을 구하는 의도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남자가 하는 말은 진성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의 독백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넋두리.

         

       그래.

       지금 남자는 진성에게 넋두리를 내뱉고 있었다.

         

       “늑대가 되고 싶어서 왔겠지. 알아. 나는 알지…. 이곳에 돌아다니는 족속들이 다 그런 놈들인데. 다 돈을 원해. 나도, 자네도, 저기 뛰어다니는 개새끼들도. 전부. 전부…!”

         

       “….”

         

       “근데 말이야. 이 동네는 정신병자 소굴이야.”

         

       남자는 퀭한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이 동네는 미쳤다고.”

         

       남자의 모습은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보였다.

       기나긴 악몽에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깨어났지만, 깨어났음에도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봤지? 사람이 떨어져 뒈졌는데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 거.”

         

       “예. 봤습니다.”

         

       “자네는 그게 정상처럼 보이나?”

         

       “….”

         

       “눈깔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알겠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

         

       “마귀 새끼들만 득실득실한 곳도 아니고, 사람이 죽었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남자는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품속으로 다시 손을 집어넣어 품속에 집어넣었던 구강청결제를 다시 꺼내서 마셨다.

         

       꿀꺽꿀꺽.

         

       목까지 뒤로 젖혀가며 위장에 미친 듯이 구강청결제를 털어놓는 그 모습은, 빈말로라도 보기 좋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터엉-!

         

       그는 비어버린 구강청결제를 뒤로 집어던져 버렸다.

         

       “흐, 신기하지? 위장에 충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마시고.”

         

       “….”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지. 이 구강청결제는 말이야, 알코올이 들어가 있어. 그게 무슨 뜻이냐? 마시면 취한다는 이야기지!”

         

       하하하하하-!

         

       남자는 취기가 올라오는 모양인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다가 갑자기 웃음을 싹 지웠다.

         

       “이 엿 같은 걸 마시면 말이야. 식도와 위장에 구멍이 나는 게 느껴져. 속이 쓰리고, 아프고,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고. 그리고 마시면 마실수록 구멍이 넓어지는 게 체감이 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변하고, 그게 칼로 찌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아마 내 위장에는 큰 구멍이 나 있을 거야.”

         

       저기서 뛰어다니는 새끼들이 박아도 될 정도일지도 모르지.

         

       “저 빌어먹을 개새끼 중에 사람 새끼가 얼마나 될까?”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진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움푹 들어간 눈은 잔뜩 그늘이 져 있었다.

       그가 겪은 고난을 말해주듯이 말이다.

         

       “예전에도 늑대가 가득하던 곳이 이곳이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느 순간부터…. 늑대가 아니라 괴물 새끼들이 가득한 것처럼 느껴져. 나는, 나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네….”

         

       그는 근처에 대충 등을 기댔다.

       취기가 올라와 몸을 가눌 수 없다는 듯 말이다.

         

       어쩌면, 그냥 버티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가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지.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미친 듯이 출렁였어…. 애널리스트(Analyst)인지 애널 서커(Anal Sucker)인지 잡놈들은 제대로 분석조차 하지도 못했고, 남의 똥구멍이나 핥다가 그대로 뒈져버렸지.”

         

       “….”

         

       “비유가 아니야. 진짜 뒈졌어. 문으로 들어간 놈들이 창문으로 나온 게 얼마인지 아나? 덜컹 소리 하나에 한 놈, 쨍그랑 소리에 한 놈. 하하하하하하.”

         

       “….”

         

       “하도 많이 뒈지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뒈질 거면 창문은 깨지 말고 뒈지라고 하더군. 옥상에 뛰어내릴 수 있는 곳을 마련해줄 테니까 거기서 뛰라고 했어. 거기서 뛰어내리면 주차장도 피하고, 인도도 피할 수 있다고. 심지어는 그 아래에다가 동그란 과녁까지 그렸다니까? 거기로 다이빙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하하하하, 씨발. 미친놈들….”

         

       “….”

         

       “그래, 그게 시작이었어….”

         

       남자의 발음은 점점 부정확해졌다.

       취기에 혀가 꼬이는 듯이 말이다.

         

       “주가가 출렁이기 시작하니까 늑대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지. 그런데 늑대들이 날뛰려면 분석이 따라가야 하는데, 이 분석이 죄다 틀려.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어? 죄다 자기 감을 믿고 미친놈들처럼 날뛰기 시작한 거야….”

         

       “흐음.”

         

       “장기 투자? 가치 투자? 그딴 게 어딨어? 내실이 탄탄한 회사도 손쉽게 뒈지는 판국에 말이야. 뭘 믿고 묻어두겠냐고? 그냥 광기를 따라서 가는 거야. 광기를 분석할 수 없으니, 광기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고….”

         

       “….”

         

       “손실? 안전? 엿이나 먹어. 투자자들도, 은행도 죄다 미쳐버렸는데 그딴 게 되겠어? 죄다 미쳐버린 거야. 죄다 미쳐버렸던 거라고….”

         

       남자의 말은 이제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손실은 계속되고, 손실은 메워야 하고. 투자자, 기업, 은행, 정부…. 하하하. 씨발. 이 엿 같은 등쌀 속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고….”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취기와 함께 몰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 돈, 내 재산….”

         

       그리곤 그대로 도피해버렸다.

       악몽과도 같은 현실보다도 달콤할, 꿈의 세상으로.

         

       그렇게 다시 침묵이 찾아오려는 그 순간….

         

       “지루했겠어.”

         

       누군가가 진성에게 말을 걸었다.

         

       “흔한 패배자의 헛소리를 듣고도 잘도 졸지 않았어. 참 인내심이 대단해.”

         

       진성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크리스털(Crystal)로 된 팔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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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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