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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0

       백우진이 무리들을 이끌고 곤륜산으로 들어설 즈음.

         

       그들을 온전히 몰아내기 위해 성 밖으로 나온 장민은 두 무리로 나뉘어 달아나는 정사연합을 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반쯤 가려진 태양으로 인해 세상이 점차 어둡게 변해 가고 있다.

         

       나뭇잎이 우거진 산속이라면 어둠은 한층 더 깊어질 터.

         

       “추적을 잠시 멈춘다.”

         

       섣불리 들어갔다간 또 어떤 식으로 놈들의 계략에 당할지 모른다.

         

       그러니 준비가 필요했다.

         

       최소한 주변을 둘러싼 야음 때문에 허망하게 당하는 일은 없도록.

         

       “불을 피우고 횃불을 준비하라! 어둠을 몰아낸다!”

         

       하나둘씩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불꽃들.

         

       주변의 어둠이 점차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장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흥, 어리석은 놈들.”

         

       산의 높낮이와 어지러운 길을 이용해 습격을 가할 요령인 듯하나, 이는 명백한 실수였다.

         

       그들의 터전이 어디인가.

         

       산세가 험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십만대산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 험한 산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

         

       그렇기에 그는 확신했다.

         

       “네놈들의 뜻대로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목을 무참히 물어뜯을 차례라고.

         

       충분한 광원을 확보한 것을 확인한 그가 호기롭게 외쳤다.

         

       “놈들을 추살하라!”

       “와아아아-!”

         

       넘실거리는 마기가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 * *

         

         

       백우진을 비롯한 무인들이 곤륜파 인근에 도달했을 무렵은 이미 태양이 절반 넘게 달에 가려져 주변이 점차 어두워져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교도를 맞이할 준비는 끝났다.

         

       앞서 곤륜산에 대기 중이던 곤륜파의 제자들이 산 곳곳에 숨어 습격을 준비 중인 상황.

         

       거기에 더해 제갈세가와 당가가 합심하여 설계한 치명적인 함정들까지.

         

       곤륜산이라는 천혜의 요새와 함께하는 이상 마교는 쉬이 산을 오를 수 없으리라.

         

       준비한 대로 진형이 제대로 갖춰진 것을 확인한 백우진.

         

       마침내 때가 되었다.

         

       이들과 잠시 헤어질 때가.

         

       백우진은 불안함 가득한 시선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여인들을 향해 말했다.

         

       “다녀올게.”

       “백 공자….”

         

       곧 있으면 태양이 온전히 어둠에 잠긴다.

         

       그때가 되면 마침내 천마 또한 모습을 드러낼 터.

         

       몇 번이고 마교도들을 막아서며 확신했다.

         

       ‘전쟁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중원을 두고 벌어지는 작금의 전쟁 따위에 그녀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 마교도들은 단순한 버림패에 불과했다.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용도로 사용한 뒤 무참히 손에서 털어낼 버림패.

         

       그렇기에 백우진 또한 이 전쟁에 오래도록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제는 그들을 믿고 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천마에게 맞서야만 한다.

         

       “…….”

         

       떠나기 전.

         

       백우진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여인들의 눈 속을 들여다봤다.

         

       하나 같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시선들.

         

       이미 한 차례 경험한 천마의 가공할 힘 앞에 제 연인이 무릎 꿇으면 어쩌나.

         

       다들 그런 우려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자신이 무사히 돌아오지 않는 이상 저 눈에 담긴 감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

         

       그걸 알면서도 그녀들의 시선 속에 새로운 싹 하나를 틔워두고 싶었다.

         

       “이번 일이 모두 끝나면.”

         

       불안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날 희망이 담긴 여린 새싹을.

         

       “혼인하자.”

       “……!”

       “엣…!”

       “흐응…?”

         

       한 번도 직접 내뱉어본 적 없는 말에 당황하며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여인들.

         

       격한 반응을 보일 거란 백우진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제법 침착했다.

         

       아니, 지나치게 냉정했다.

         

       “으음…, 어떻게 생각해? 이런 상황에서 이런 청혼.”

         

       당선영의 물음에 여인들이 하나둘씩 대답했다.

         

       “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갈연지.

         

       “으음…, 저도 청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도경.

         

       “조금 아쉽네요. 저는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사이에서 청혼받고 싶었는데.”

         

       설수연.

         

       “그래도 나름대로 운치 있지 않나요? 죽음을 앞두고 청혼이라니…, 후훗.”

         

       용설란.

         

       “으응…, 살아서 돌아오기만 한다면 전 뭐든 괜찮아요.”

         

       금여울.

         

       “처, 청혼…, 주인님과…?”

         

       송희연.

         

       “…흥, 네놈은 아직 본녀를 이기지 못했느니라.”

         

       마지막까지 튕기면서도 그와의 혼인 자체가 싫지만은 않다고 은근슬쩍 내비치는 혈수마녀까지.

         

       “뭐…, 다들 그럭저럭 허락한다는 분위기네.”

         

       여인들의 의견을 종합한 당선영이 검지로 백우진의 가슴을 쿡 찌르며 말을 잇는다.

         

       “일단 무사히 돌아와. 청혼에 대한 확답은 그때 들려줄 테니.”

       “어, 음.”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하는 백우진.

         

       이런 두 사람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유화연과 신예화.

         

       두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살아 그와 함께 이 여정을 마무리했더라면.

         

       저 청혼의 주인은 자신들이 되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다.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제 상상에서조차 쉬이 그려지지 않는 망상.

         

       그 속에서 더 이상 허우적대고 싶지 않았던 신예화가 유화연을 향해 말을 걸었다.

         

       “유 소저.”

       “…네.”

       “이번 일이 다 마무리되면 우리…, 우진이 무덤이나 만들어 줄까요.”

       “무덤…이요.”

       “네. 오직 우리만 아는…, 우리만 추억할 수 있게.”

         

       백우진의 육신은 살아 있다.

         

       그렇기에 공식적으로 그의 죽음을 기릴 수 없다.

         

       그러니 신예화는 남들이 모르는 곳에 자신들만의 무덤을 세울 생각이었다.

         

       볕 잘 들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양지바른 땅에.

         

       그와의 추억이 깃든 물건과 기억을 넣어두고서 원한다면 언제든 찾아 꺼내 볼 수 있게.

         

       고개를 푹 떨군 유화연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래요.”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구구절절 그를 가슴에 끌어안고서 매일 같이 슬퍼하는 것보다 어느 한 곳에 그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 속풀이 하는 것도.

         

       동시에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 소저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떠나간 그를 기억하는 이가 자신만이 아님에.

         

       조금은 다를지언정 늘 상냥하고 친절했던 그를 떠올리며 이야기 나눌 이가 곁에 있음이.

         

       인생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그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서로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다가 이제는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존재처럼 되었으니.

         

       그 생각에 쓰게 웃던 신예화가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같은 생각이에요.”

         

       처량하게 웃던 두 사람은 무기를 강하게 틀어쥔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며 다가오는 불빛들.

         

       마음 같아선 삶 따윈 도외시한 채 싸우다 그의 곁으로 가고 싶었으나, 이미 한 차례 그와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일단은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 * *

         

         

       보이지 않는 계단을 걸어 도착한 제단.

         

       그곳에서는 기가 막힌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식.

         

       태양이 어둠에 삼켜지고, 그에 따라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장관에 감탄하기를 잠시.

         

       “참 아름답지 않아?”

         

       허공에다 대고 묻자, 들려오지 않아야 할 답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쁘지 않은 풍경이구나.”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앉는 천마.

         

       두 사람의 눈에는 어둠에 잠식되는 태양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보였다.

         

       “여명 같아.”

       “황혼 같군.”

         

       여명은 기나긴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를 무렵의 새벽.

         

       황혼은 찬란한 태양이 저물고 어둠이 찾아올 무렵의 오후.

         

       같으면서도 정반대인 감상은 서로의 속내였다.

         

       중원을 구하고 말겠노라는, 또 제 목적을 위해 이 세상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어둠에 잠겨 가는 하늘로부터 등을 돌린 백우진이 물었다.

         

       “이제 슬슬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어?”

       “…….”

         

       묵묵부답으로 하늘만을 올려다보는 그녀를 향해 재차 묻는다.

         

       “원하는 게 뭐야.”

         

       천마는 그 물음이 참으로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 말이냐.”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원하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너다.”

         

       오직 그뿐이었다.

         

       세상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가 그리도 간절히 가지고 싶었던 것은.

         

       다만, 단순히 그의 존재만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때의 너를, 그때의 나를 바란다.”

         

       다가올 운명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서로를 탐하던 시절.

         

       상대가 세상 전부나 다름없었던 그때.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두 지워져야만 한다.

         

       그를 향해 원독 어린 쏟아내던 순간도, 제게서 등을 돌려 떠나가던 그의 모습도.

         

       몇 번이나 찾아온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어긋나고야 말았던 모든 순간을.

         

       이 세상에서 도려내야만 했다.

         

       “신이 그러더구나.”

         

       신이 그리 속삭였다.

         

       그리고 그의 뜻에 동조하기 시작한 그녀에게 제안했다.

         

       “잘못 만든 세계가 있으니, 그곳을 부수어 달라고.”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세계.

         

       어디서부터 수정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복잡해진 그는 선택한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쓰기 위해선 기존의 내용이 지워져야 한다고.”

         

       수정이 아닌 삭제를.

         

       그의 붓끝에서 그려진 세계를 말끔히 지워내고, 백지 위에 새로이 쓰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그곳에서 너와 나는 다시 쓰이는 거다.”

         

       천마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바라보기만 해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게 만드는 섬뜩한 미소.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엮이고 뒤엉켜 마침내 무결한 사랑을 나누는 거야…!”

         

       가까스로 억눌러 왔던 그녀의 광기가 마침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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