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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1

    -딸랑.

    청명한 차임벨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세명의 인영을 향해 나이든 여인은 인자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어서오너라.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인영중에 가장 키가 크고 여유로운 표정을 한 소녀, 루크를 향해 인사와 함께 시선을 보내었다.

    이미 그녀로부터 가족들과 함께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참이었다.

    “미안하네, 메를린. 잠깐 신세지게되었군.”

    처음에는 루크도 메를린의 인형점에 아이들을 맡길 생각까지는 없었다.

    아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왜냐하면 뒷골목의 살수를 키워내던 메를린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줄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딱히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장소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봐줄 수 있느냐 연락을 보낸 친구들이 하나같이 일정과 핑계가 있어서 봐줄 수 없으니 어쩔 수가 있나?

    -아, 미안. 루크, 지금 내가 여행중이라 집에 없어서 애들을 맡아주지는 못할 것 같아!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도 개학이잖아? 이런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시간이 되겠어?

    ‘으응, 어쩔 수 없지. 갑자기 연락해서 이런 부탁을 하게 되어 미안하구나, 메리. 즐거운 여행 되거라.’

    -뭐어? 나한테 너네 애들을 좀 맡아달라고? 미안, 그건 좀 그런데. 아니, 나는 집에 있을 거지만 우리집은 가정부도 많이 안쓰고…. 또 네 동생들은 둘 다 여자애들이고. 내가 돌봐주기엔 좀 안 맞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시루드. 역시 좀 거북하려나.’

    -어, 루크. 무슨 일이야? 뭐? 나한테 너희 집 애들을 봐달라구? …흥, 내가 무슨 네 식모니? 나도 스케쥴이 있고 바쁜 몸이야. 나한테 그런 시덥잖은 부탁이나 하려고 연락한거야? 차라리 괜찮은 시설에 맡겨두는 게 어때? 뭐, 네가 정 그렇게 부탁한다면 아주 안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은….,

    ‘아냐 됐어. 급한 일이 있으면 폐를 끼칠 수 없지. 고맙네.’

    그렇게 잠시 자신이 아는 ‘친구’들에게 보냈던 연락의 내용을 떠올리던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어째서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이란 말인가?

    그래서 결국 루크가 떠올린다는 게 ‘메를린의 인형점’이었다.

    연락도 되고, 별다른 스케쥴도 없으면서, 자신의 입김과 시선도 충분히 닿는 곳.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것이었으니, 메를린의 인형점은 차선책 중에서는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생각하면 가장 위험하긴 하지만, 또 동시에 ‘사건에 대처할 수 있는 확률’면에서는 그나마 안전한 장소이기도 하니까.

    그 모습을 본 메를린이 묻는다.

    “못 미덥다는 표정이로군. 내 실력이 걱정되는가?”

    “뭐,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네.”

    “후후, 그대도 아군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군. 이런 세계에서 이 정도로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 만으론 증명할 수 없는 건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메를린이 스스로 잘 응변하겠다고 하니 맡기는 거지만, 그래도 썩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그녀도 ‘그’를 피해 도망치다가 자신의 모든 인형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을 뿐더러, 그녀 자신의 능력과 경험 또한 타인을 지키는 것에 그리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루크는 이 인형점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 또한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잠깐이나마 아이들을 맡길 장소로 이런 곳을 고른 자신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일이 잘못된다면 자신이 다이튼과 예르나를 볼 낯이 없어지니 말이다.

    메를린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걱정말게. 늙은 쥐 나름대로 살아남기위한 방법이 다 있으니.”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야…, 일단은 믿어보지.”

    메를린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방법이 다 있을 것이다.

    또, 여차하면….

    “오빠, 오빠. 오빠는 언니랑 무슨 사이에요? 혹시 남자친구에요?”

    “그, 그런! 당치도 않다. 그분은 나의 스승…!”

    “언니가 뭘 가르쳐주는데요?”

    “너도 마법 할 줄 알지? 보여줘!”

    “이, 이런-!”

    인형점의 한켠에서는 벌써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이런저런 질문과 관심을 받고 있는 서드가 있었다.

    처음에는 험상궂은 서드의 인상과 분위기 때문에 조금 낯설어하던 디아나도, 파이가 먼저 아는척을 하니 금방 심리적인 방벽이 무너져내린 모양이었다.

    루크는 그렇게 서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스승님, 보고만 계시지 말고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듯한 눈동자를 ‘수고하거라’하는 의미가 담긴 가벼운 미소로 받아넘겼다.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이미 저 상태가 되어버린 이상, 자신에게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므로.

    자신이 돕기 위해 다가간다해도 함께 휘말리는 결과가 고작일테니.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관망하던 또다른 인물, 메를린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용건은 끝났나?” 

    “뭐, 그렇지.”

    “자, 그렇다면-. 

    “응?”

    드르륵-, 의자에서 일어나는 메를린의 모습에 루크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서드,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들어가 주겠느냐?”

    한창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있던 서드는 메를린의 요청에 잠시 항의를 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으나, 이내 체념한 듯이 고개를 내리며 자리를 옮겼다.

    “…예.”

    아이들이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메를린은 찻장을 뒤적거리더니 잠시 후, 화려한 사각형 포장지에 담겨진 어떤 물건을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턱.

    마치 보란듯이 당당히 테이블 중앙에 자리잡은 포장된 박스.

    박스 표면에는 인형이 과일과 함께 앉아있는 풍경의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밀레니엄 로마린?”

    포장지에 쓰여진 이름을 읽은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뭐지? 인형인가?”

    “축하주다.”

    “술인가?”

    “그래.”

    이게 술이라니, 루크는 인형점 서랍에서 나온데다 이런식으로 포장된 물건이 술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전혀 모른다는 듯한 루크의 반응에 메를린은 의외라는 듯이 설명했다.

    “베리튼에서 바알력 1000년에 첫번째 수확물로 담가진 명품 한정 과일주지. 보통 축하주라면 일이 끝난 후에 마시는 거지만, 이 경우엔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안 그런가?”

    ‘그’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일이다.

    변수는 넘치도록 많고, 계획은 아직 불확실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뒤풀이를 할 새도 없게 된다면, 이 아까운 술은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서랍 속에 처박혀있다가 술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축하를 조금 앞당기는 것이 죽고나서 묘에 뿌려지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뭐, 포장이 마음에 들었는데 한정판이라는 말에 덜컥 구매했을 뿐인 자신 또한 술에 조예가 깊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그 맛을 살아서 볼 수는 있을테니까.

    하지만, 루크의 대답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나는 현재 11살이네만.”

    그녀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거 재미있는 말이군. 그대의 행정상 나이는 아무짝에 쓸모 없는 정보가 아닌가?”

    실제로 행정상 그녀의 나이가 11살이라고는 하나, 그게 타인에게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지느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었다.

    성인보다 더 성숙한 지성과 무력, 또 그 머릿속에 존재하는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지혜까지 곁에서 지켜본 이라면 오히려, 그 나이는 타인을 속이기 위한 연막에 불과하다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육신은 이미 성인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까지 했으니….

    그 말은 즉, 그녀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기에 적어도 ‘행정상의 나이’는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웃음기를 지원낸 그녀가 포장에서 꺼낸 병을 흔들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정말 마시지 않을 생각인가? 이만한 명주는 언제 다시 맛볼 수 있을 지 모르는데.”

    “흐음ㅡ, 그건….”

    루크는 지성을 흐리는 작용을 일으키는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이런 명주라고 한다면 정녕 지나칠 수가 있을까?

    “물론, 마셔야겠지.”

    글쎄, 이런 기회는 좀처럼 흔치 않으니까.

    그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

    잠시 후.

    “-그런데 이 방식은 펠릭스좌표계를 확정할 수 있을 만한 논리가 반드시 필요하단 말이지. 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선 사용하기 어렵단 말이야. 그래서, 요즘 내가 생각하는 방식은 어떤 거냐면-”

    술기운에 취해 영문모를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루크.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메를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래, 그런거군.”

    평소 생각하고 있던 마법적인 논리들을 생각나는대로 쏟아놓는 것, 이게 이 소녀의 술버릇인건가.

    사실은, 지식을 지닌 이들이 뭇 그러하듯 루크 역시 자신의 지식을 남에게 전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다만, 주변에 그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이 별로 없어서 말을 아끼게 되었을 뿐.

    기회가 된다면 그도 자신과 비슷한 지성을 가진 존재와 하루종일 현대 마법이론과 미래의 가능성, 별자리에 대해 토론하고 싶은 욕구가 분명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욕구가, 술을 마심으로서 풀려나고 만 것이겠지.

    술에는 사람의 본질을 일깨우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저 혼자 헛소리를 지껄이던 소녀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대는 의외로 꽤 말이 통하는구나. 그동안 주변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인물이 없었는데.”

    “그런가?”

    “그래. 그대는 상당히 괜찮은 인물이군. 가끔은 만나서 이렇게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메를린은 이 상황이 정말 웃겼다.

    아까부터 이야기는 그녀 혼자 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그녀가 하는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을 뿐이다.

    ‘이런, 이런. 이 여인은 내 예상보다 훨씬 쉬운 여자였군 그래.’

    뭐, 이렇게 호감을 사게 된 건 좋다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쉬운 게 아닌가.

    걱정이 좀 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day2day가 아니라 week2week가 되어버린 작가입니다…

    최근 자판을 두드려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약간 어려워진듯 하여 늦고 말았습니다…
    또 전개를 오래 수정하다보니 세계관에 몰입도 크게 떨어지니, 더 고역이더군요.
    덜어내야지, 덜어내야지 하는데 그게 쉽게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이제는 공허한 공약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되도록 다음편은 이 정도로 오래 걸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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