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512

       유경이 눈을 떴을 유경은 석웅의 등에 태워져 있었다.

         

       한창 이동 중이었던만큼 그 속도감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옆에 있는 거대한 멧돼지를 탄 호천안. 그리고 여우를 타고 이동하는 작은 아이. 마지막으로 경공을 펼치며 나아가는 무인 한 사람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유경의 얼굴에 쓰디쓴 미소가 서렸다.

         

       ‘아직도 이 질긴 목숨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군.’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니 황궁은커녕 낙양성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인적 또한 드문 곳이었으니 당장 이곳 어딘가에서 파묻히더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겠지.

         

       지는 해를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린 유경은 고개를 들어 그 풍광을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보는 풍광이라서일까. 드넓은 대지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퍽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영물들의 속도가 점차 늦어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진즉에 알고 있었을 터인데 모른 척하는 것도 우습구나.”

         

       “뭐, 그렇지요. 받아들이셨다면 됐습니다.”

         

       호천안은 풍광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유경을 떠올린 호천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궁과 낙양. 도시의 경치만을 즐겨 봐왔던 유경에게는 색다르게 와 닿는 대자연만의 풍경이었겠지.

         

       괜히 사람들이 휴식의 일환으로 여행을 계획하겠는가.

         

       환경이 달라지면 정신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이고 나면 황제도 여행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호천안은 식재를 담은 상자를 완전히 개방해 여러 자루들을 들었다 놓으며 고민에 빠졌다.

         

       요리 실력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일평생 천하에서 손꼽히는 숙수와 천하에서 귀하기로 소문난 식재만을 사용한 산해진미를 먹어온 황제의 입맛을 어찌 사로잡을 수 있을까.

         

       유경과 자루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호천안.

         

       그런 호천안을 보며 유경은 이를 악물었다. 자루를 들었다 놓으며 연신 자신을 바라보는 호천안의 행동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유경에게 ‘어느 자루를 얼굴에 씌운 뒤 죽일까’를 고민하는 행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못난 황제였으나 적어도 죽음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유경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호천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를 통째로 내리고 냄비를 집어들었다.

         

       “…”

         

       그제야 유경은 호천안의 자신의 머리에 씌울 주머니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식재료를 고르는 행위였음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불!”

         

       나빈의 지시에 불을 내뿜는 미호. 화구에 쌓인 장작에 순식간에 불이 붙고 호천안은 그러한 불에 물이 담긴 냄비를 올리며 오늘 만들어 낼 요리를 떠올렸다.

         

       노상에서는 여러 요리를 할 수 없다. 조리도구에 명백한 한계가 있고 시간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 수십 종의 산해진미를 골라 먹던 유경의 혀를 사로잡아야 하는 상황.

         

       맛의 질을 떠나 유경이 한 끼에 느끼던 맛의 풍요로움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수많은 재료들을 써야만 했고 그 수많은 재료들이 단 하나의 요리에 조화롭게 녹아드는 요리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호천안이 아는 요리 중 그 많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잡채였다.

         

       호천안은 모든 주머니를 열어 재료를 총동원했다.

         

       찬물에 당면을 집어넣은 호천안은 고기를 가늘고 길게 썰어 후추와 소금으로 밑간을 한 뒤 곧바로 고기를 볶아냈다.

         

       치이이익!

         

       적당히 고기에 기름이 입혀지고 익어가는 것을 확인한 호천안이 주머니에서 버섯을 꺼내들어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송이 능이 느타리 할 것 없이 적절한 크기로 썰어낸 뒤 식재의 두꺼움에 비례하여 차근차근 투하한다.

         

       “와!”

         

       각종 버섯와 소고기의 기름이 만나며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는 향긋함에 취한 나빈이 활짝 웃었고 사복설 역시 군침을 삼켰다.

         

       그 뒤를 잇는 것은 바로 당근. 양파. 시금치. 고추. 그리고 청경채와 같은 야채들이었다.

         

       야채들이 알맞게 볶아진 것을 확인한 호천안은 뜨겁게 달구어진 냄비에 간장을 뿌렸다.

         

       촤아아!!

         

       뜨거운 열기와 마주한 간장이 곧바로 졸여지며 맛있는 소리를 냈다. 적절하게 간장을 끓이며 풍미를 끌어올린 호천안이 마지막으로 물에 풀어진 당면을 손으로 쭉 짜낸 뒤에 냄비에 투하했다.

         

       모든 재료들이 들어갔으니 남는 것은 볶는 일 뿐.

         

       호천안의 현란한 손놀림에 각종 재료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윤기가 흐르며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해가는 당면과 형형색색의 건더기들이 춤추는 장면은 그야말로 눈을 떼기 어려운 화려함이 있었다.

         

       탕!

         

       냄비에 국자를 쳐 건더기를 털어내는 호천안. 요리의 끝을 알리는 행동에 넋을 놓고 구경하던 사복설과 나빈이 바삐 움직여 그릇과 젓가락을 깔았다.

         

       먹음직스러운 잡채를 그릇에 담아내기 무섭게 나빈과 사복설이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 나빈과 사복설을 손으로 제지한 호천안의 시선이 멀거니 서 있는 유경에게 향했다.

         

       “시장하실텐데 한 끼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는…”

         

       “이보게! 빨리 오시게!”

         

       “아이 참! 할아버지! 뭐하시는거에요!”

         

       입을 열기도 전에 쏟아지는 두 사람의 타박! 그 기세에 눌린 유경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유경이 앉기 무섭게 젓가락을 놀리는 두 사람.

         

       한가득 잡채를 입에 쑤셔넣은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그래도 맛의 보증수표같은 잡채다. 그런데 호천안이 재료를 아낌없이 풀어내며 최선을 다 해 만든 요리었으니 말해 무엇할까.

         

       혀 위에서는 간장의 짭조름함과 각종 재료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코로는 버섯의 향긋함과 간장내음이 퍼진다. 또한 당면은 어떠한가. 모든 재료의 내음과 맛이 배어있음에도 입안 가득히 욱여 넣고 씹을 수 있는 풍성함을 제공하니 이 또한 먹는 맛이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본 유경은 조용히 잡채를 입 안에 넣었다. 황제인 유경의 입에도 훌륭하기 그지 없는 맛이었으나 유경은 어째 더 서글퍼졌다.

         

       ‘최후의 만찬인가…’

         

       평시에 만드는 요리라면 두 사람이 이리 호들갑을 떨 리가 있겠는가. 굳이 두 사람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호천안의 요리는 누가 봐도 특식이었고 그런 특식을 만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곧 죽을 자인 자신 때문이겠지.

         

       유경은 잡채를 꼭꼭 씹어 넘겼다. 이 맛이 각별한 것은 생의 마지막 요리라서일까. 아니면 이 요리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경의 느린 식사가 끝나자 사복설은 호천안의 눈치를 보았다. 호천안 일행에 합류한 뒤 설거지나 장보기, 장작 구하기 따위의 뒤치다꺼리는 모두 사복설의 몫이었다.

         

       그런데 딱히 호천안과 관계가 좋아 보이지 않는 유경이 합류했으니 어쩌면 그런 잡일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크흠. 설거지는…?”

         

       “지금 하시게.”

         

       이런 시벌.

         

       호천안의 대답에 사복설의 작은 희망이 박살났다. 한숨을 길게 내쉰 사복설이 그릇을 챙겨 일어날 때였다.

         

       “할아버지! 오늘은 제가 할게요!”

         

       “으응?”

         

       “서공이랑 미호가 꼬질꼬질한게 아까 봤던 개울가에서 씻겨야 할 것 같거든요! 씻는 김에 설거지도 하고 올게요!”

         

       “그러면 나야 좋지.”

         

       호천안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씻지는 말거라.”

         

       “네!”

         

       “미호의 화염으로 허겁지겁 옷을 말리다 태워 먹으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게다.”

         

       “그땐 실수였다고요! 흥!”

         

       설거지거리와 함께 미호를 타고 사라지는 나빈. 그런 나빈을 바라보며 호천안은 피식 웃었다. 해가 떨어진 뒤에는 놀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서 씻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는 물놀이를 하려는 심산이겠지.

         

       “너무 귀엽다고 오냐오냐 해주면 나중에 버릇이 나빠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복설의 지적에 호천안이 대꾸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씻고 오긴 하니 혼을 내기에는 부족하지.”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사복설의 시선이 유경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유경은 올 것이 왔다 싶었다. 나빈이라는 아이도 사라졌으니 더 이상 호천안도 거리낄 이유가 없겠지.

         

       “아무래도 같이 다니게 될 것 같은데 혹시 성함이 어찌 되시오?”

         

       유경은 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호천안의 계획과 상관이 없는 자 같은데 굳이 자신이 황제이고 호천안에게 죽임당할 처지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은암일이라는 분이오.”

         

       호천안은 혁기린이 한때 사용했던 가명, 금명월을 뒤집어 말했다. 호천안의 대답에 유경이 마음이 답답해졌다. 가명까지 만들다니? 대체 언제까지 마음을 졸이게 할 셈인가? 이쯤하면 충분하지 않느냔 말이다.

         

       “이제 그만 끝내게.”

         

       유경의 분노 어린 말에 호천안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경치 구경도 잘 하고 식사도 맛있게 한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시간은 끌 만큼 끌지 않았나.”

         

       시간? 혹시 유경은 여행을 그저 나들이 정도라고 생각한 것일까?

         

       유경이 여행이라는 단어를 제멋대로 해석했음을 알 리 없는 호천안은 그리 판단했다.

         

       “여행은 제법 시간이 걸릴 겁니다. 목적지가 꽤 멀거든요.”

         

       호천안의 답에 유경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목적지? 당장 죽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장소까지 끌고 가 죽인단 말인가?

         

       “나를 어디까지 비참하게 만들 셈인가?”

         

       “비참할 것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저 은암일이 되어 여행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게 비참한 일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비참한 일인가! 내 죽음을 은폐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금도 충분하지 않은가.”

         

       뭔 소리야, 이게?

         

       호천안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여행을 간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갑자기 왜 황제시해범으로 몰아가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사복설이 피식 웃었다.

         

       “이보시오, 형장. 형장이 무슨 오해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놈이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형장을 없애고 싶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짓은 필요도 없었소.”

         

       “그것은 그대가 사정을 모르기에…!”

       

       “무인이 아니니 저놈이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 그래, 그건 넘긴다 치고 아까 큰 여우가 불을 붙이는 것을 보지 않았소? 시체 한구는 순식간에 재 한줌도 남기지 않고 태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소?”

         

       유경은 반박하지 못했다. 사복설이 말한 예시는 유경이 생각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이오. 자기 제자 앞에서 함께 밥을 나누어 먹어놓고 그 자를 밤사이 죽인다? 아무리 무림에 미친놈들이 많아도 이런 엽기적인 행각은 내 듣도보도 한 적이 없소. 혹 모르지 지금은 없어진 미친 혈교의 종자들이라면 가능할지도.”

         

       사복설의 말을 들은 유경이 눈을 도르륵 굴려 호천안을 바라보았다. 그런 유경의 시선을 받은 호천안은 입을 열어 쐐기를 박았다.

         

       “천하를 보고, 무림을 경험하시면 생각이 바뀌실 것이라 여겨 모셨을 뿐입니다. 해를 입힐 의도는 조금도 없었으니 안심하시길.”

         

       호천안의 확답에 유경은 다른 의미로 죽고 싶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각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