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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2

    도심 속 어느 거리.

    모두가 각자의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는 한 여성이 커다란 사각형의 가죽제 가방을 들고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또각, 또각.

    보기보다 가방이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여려보이는 미모를 한 그녀의 힘이 의외로 강한 것일까?

    꽤 무거워보이는 가방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걸음걸이는 중심이 어긋나거나 하는 일 없이 여전히 기품있고 평온하기만 했다.

    또각, 또각.

    어느 쪽이든 뭇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법한 사유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 기묘한 상황 속에서, 긴 외투를 어깨에 걸친채 거리를 걸어가는 그녀의 보도블럭을 두드리는 구둣발소리는 여전히 화창하고 높은 하늘에 걸맞는 가벼움으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또각, 또각, 탁.

    문득, 한 건물의 앞에서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긴가.”

    간략화된 용의 형상 중심에 작은 하트 모양이 새겨진 로고.

    건물의 겉면에서 루체스트 그룹의 상징을 확인한 그녀는 살짝 감탄을 섞어 중얼거렸다.

    “이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상당히 높군.”

    각양각색의 유리기둥 사이에서도 가장 높고 눈에 띄는 거대한 건물, 루체스트 타워.

    지상 130층이 넘는 그 빌딩은 높이가 어찌나 높은지, 그 위를 올려다보기 위해서 고개를 젖히면 머리에 쓴 모자가 떨어져 벗겨질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덕분에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만, 혼자서 주변과 원근법이 다르게 적용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니 그녀는 자신의 가방의 내용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가져온 아티팩트가 충분치 않을 수도 있겠어.”

    그렇게 그녀가 모자에 손을 얹고 시선을 올리며 작게 감탄을 뱉고 있으니, 약간 퉁명스러운 어투를 한 소녀의 목소리가 가슴께에 달린 브로치에서 작게 울려퍼졌다.

    -뭐, 당연히 높을 수밖에요. 그런데 그 부분도 생각해서 함께 계획을 짜지 않았던가요?

    루체스트는 처음에는 의료기업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전 대륙에 걸쳐 수많은 사업을 벌이는 거대 그룹이었다.

    그에서 파생되는 엄청난 양의 서류작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막대한 인력을 필요로 하고, 그 수많은 인력들을 한군데에서 관리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커다란 수용시설이 필요하다.

    또한 사람이 많아지면 그에 따라 당연히 식사나 여가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니 그에 걸맞는 시설들이 추가로 들어서게 되니, 상점, 취미시설 등의 각종 편의시설까지 한번에 존재하는 루체스트의 본사 건물이 엄청난 크기를 가지게 되는 것도 특별히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또, 이런 시설의 규모를 계획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물론 변수가 굉장히 많고 상정하지 못한 예외상황에서는 임기응변으로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많은 허술한 계획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준비물을 상정하는 것 만큼은 수십번을 재고하여 꼼꼼히 준비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때 모험과 관찰을 좋아했던 그녀도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의 감상이 다를 수 있음을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러니 그녀가 단순히 ‘당연한 사실에 감탄하는 것’과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에 핀잔을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무언가 기분이 언짢을만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그에 여성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내 브로치를 향해 물었다.

    “레니에, 혹시 아직도 그 일로 화가 나 있는 건가?”

    그러자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나오는 음성.

    -그 일? 아아, 루크님께서 저에겐 말도 없이 모르는 여성과 밖에서 술 몇잔 걸치고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온 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레니에 비록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할 줄 아는 성격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저런 반응이 나타날 정도라면 작업능률에도 영향이 없을리가 없다.

    그리고 그녀의 능률저하에 대한 영향을 그대로 받으리라 예상되는 이 또한 자신이었고.

    하지만,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레니에…. 그 일은 그날 서로 충분히 이야기를 마치지 않았나.”

    그렇게 그녀가 한동안 곤란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전의 그 말들은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이 평소대로의 말투로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아뇨? 화는 그때 다 풀었는걸요. 그러니 당신은 신경쓰지 마세요.

    “으음……. 그런가.”

    그녀는 조금 앓는 소리를 내었다.

    입으로는 신경을 쓰지 말라고는 하지만, 반응이 이러는데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허나 그렇다고 자신에게 그녀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수단이 지금 당장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녀는 체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돌아가서 더 따지도록 하지.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해주게.”

    -예, 예. 그럼요. 당연히 집중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렇게 대답한 후, 브로치 속의 목소리는 더이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무적인 어투로 되물었다.

    -그나저나, 기온이 꽤 낮습니다. 겉옷을 걸치기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입으심이 어떠신지?

    그에 그녀는 곧장 대답했다.

    “나는 추위가 문제될 것이 없는 몸이다만.”

    그녀의 몸은 기온이 낮다고해서 감기에 걸리거나,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등의 컨디션 악화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몸이었으므로, 그녀의 걱정 섞인 의견은 그녀에게 와닿지 않았다.

    전혀 추위를 타지 않는데도 굳이 겉옷을 걸쳐온 것도 그저 간편하게 몸 위에 걸쳐 장비를 은닉할 수 있는 주머니와 비슷한 역할로 걸쳐온 것이지, 현재 계절에 맞춰 춥지 않도록 챙겨입은 의상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어차피 얼굴이 드러날 일도 없는 일인데 굳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말이다.”

    어차피 지금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중이고, 일을 시작하면 얼굴은 가면으로 가릴 테니까.

    그에 브로치 속의 목소리는 무어라도 항변이라도 하려다가, 이내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어휴, 그래요. 하여튼, 그놈의 성격은 진짜 똑같다니까.

    여인은 브로치 속의 목소리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지만.

    -됐어요, 일이나 집중하죠.

    “그러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자신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소란을 일으키면 그 소란을 틈타 그녀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는 것.

    -기억하세요. 아무도 죽이면 안돼요.

    “알겠네, 알겠어.”

    소란을 피우는 데 반드시 누군가를 희생시킬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다들 이곳에 고용된 이들이라고 하지만 루체스트는 대외적으로는 합법적인 기업이었고, 이곳에서 봉급을 받아 생활과 가정을 유지하는 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중 누군가를 죽이면, 자신의 정당성과 그들의 가정이 큰 피해를 입게 되겠지.

    또 ‘죽음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가 적인 이상, 그들의 무기를 늘리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처사가 아니기도 했고.

    그래도, 역시 그 누구도 죽이지 않을 수 있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웠다.

    자신이라고 모든 것을 전부 계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군 그래.”

    마법사란 본디 자신이 짜놓은 판에서 한없이 강해지는 존재.

    이 경우에 자신은 상대의 판에 뛰어드는 꼴이니, 당연히 아주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브로치 속의 목소리가 거들었다.

    -보람없는 일이 될 수도 있고요.

    게다가, 그런 소란을 피워서 정보를 빼낸다고 해도 반드시 쓸모있는 정보가 있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사전에 정보의 존재유무를 파악할 수 있는 스파이를 심어둔 것도 아니고, 이미 그들은 ‘정리’를 시작하기도 했으니.

    또한, 이곳은 그 ‘루체스트’의 안마당.

    모든 곳에 그들의 손길과 입김이 닿을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보를 지워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굳이 이전의 ‘시설들’을 정리할 때처럼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도 없겠지.

    허나 반대로, 그렇기에 오히려 정보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중요도가 상당히 낮은 일이니까.

    또, 그만한 대형 프로젝트의 정보를 말끔하게 지워버리려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가 정보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기만 했다면 이러한 가정도 쓸모없는 일이 되기 때문에, 결국은 일종의 도박수였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마치 사냥꾼의 덫을 찾아 들어가는 야생동물같은 꼴이다.

    그러나, 어쩌다보면 덫 위에 놓인 고기를 얻기 위해서 덫에 걸릴 각오도 불사해야 할 때가 있는 법.

    덫에 놓인 고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지.

    한차례 크게 숨을 가다듬은 여인은, 이내 외투 안주머니에서 목제 가면을 꺼내 얼굴에 갖다대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지.”

    -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믿는 구석은 있었다.

    중요한 순간, 운은 대부분 그녀의 편이었기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은 업로드 정말 거듭하여 죄송합니다.
    역시 에피소드에 대한 고민도 깊었고, 자판도 손에 잘 들어오지 않아 어려웠고, 약에 적응하느라 어렵기도 했다보니 결국 끝없이 늘어지고 말았네요….

    아무래도 요 몇주간, 그동안 이어져오던 관성이 끊어져버린 느낌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연재하기 위해 키보드도 하나 새로 샀습니다.
    배송이 빨리 오면 좋겠군요..
    (사실은 벌써 그렇게 구매한 키보드만 4개째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다시 예전의 관성을 되살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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