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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3

   주변 사람들의 날 선 시선을 받으며 등을 돌린 나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꼈다.

   

   으으으.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따가워. 저 미친 년은 뭐냐는 듯한 저 눈들이 아파.

   

   <이제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맘처럼 쉽지가 않네요.’

   <그럼 1왕비에게 시비를 걸지 말았어야지.>

   ‘…안 걸 수는 없었어요. 방금 1왕비 분위기가 꼭 사람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었단 말이에요.’

   

   단순하게 안부차 대화를 묻는 수준이었다면 나는 그냥 1왕비가 떠나갈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1왕비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위기감지를 건드려서 닭살이 돋게 만들 만큼 위압적인 그녀의 분위기는 내가 이런 미래를 맞이할 걸 알면서도 앞으로 나서게 만들 정도였다.

   

   프레이가 아서의 앞으로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뇌도 본능도 짐승 같은 게 프레이니까.

   

   하아. 진짜 1왕비 저 인간은 또 왜 아서를 잡아먹으려고 난리를 치고 있었던 거람?

   

   작중 내내 아서를 위협 취급도 안하던 인간이 무슨 변수가 생겼다고 아서한테 지랄인 건지.

   

   아서가 뭐 작품에 나오던 것에 비해서 엄청 변한…

   

   변했나?

   

   원래 작중의 아서 스펙하고 지금 아서 스펙을 비교해보면.

   

   어. 음. 변하긴 했네. 내가 아서를 겁나 빡세게 굴렸나봐.

   

   게임 속 아서가 지금 수준의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면 페이비보다 아서가 더 사기라 그러지 않았으려나.

   

   아니. 아니지. 그렇게 따지자면 페이비도 지금 스펙으로 따져야 하잖아.

   

   프레이나 조이도 마찬가지야. 게임하고 비교하는 게 실례스러울 만큼 성장한 친구들은 게임 기준으로 하면 모두 다 사기캐라고.

   

   어라? 그러면 게임하고 비교했을 때 게임한테 지는 건 나 뿐?

   

   다른 애들이랑 비교해서 제일 허접한 게 나인 거야?

   

   “루시 알른. 이쯤 왔으면 사정을 설명해줘도 괜찮지 않나?”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서 미간을 찌푸리던 나는 그 상태 그대로 아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음. 미안하군. 닥치고 있을 걸 그랬나?”

   “왕가의 피를 이은 분이 그런 천박한 어휘를 사용하시다니. 정말 품위가 없으시네요. 그런 식으로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지 않으셔도 왕자님이 허접하단 건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품위니 뭐니 지껄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성질 더럽게 생긴 무능 왕자님과는 달리 제 귀여움은 그 자체로 품위거든요. 그런 것도 모르세요?”

   

   아서가 뒷골을 잡게 만든 나는 여러 대학원생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연구실 건물에 발을 들였다.

   

   “여기라면. 또 지하로 들어갈 생각인건가.”

   “네에. 어느 무능한 개허접 한 분께서 자기 일을 제대로 못 하는 바람에 귀찮은 일이 생겨서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정말 민폐네.”

   “바보 검사답지 않게 옳은 말을 하네?”

   “나 말 잘했어?”

   

   프레이가 폴짝폴짝 뛰는 동안 당사자인 개허접은 양 볼을 벌겋게 물들인 채 손을 부들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터트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적당히 하자.

   

   아서한테 분풀이를 한다고 내가 허접하단 게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다시금 지하에 발을 들인 나는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묻어나는 악신의 악취를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그라 이 추잡한 새끼. 처발렸으면 얌전히 대가리 처박고 힘이나 끌어 모을 것이지 여기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니.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그냥 나한테 한 번 더 질 뿐이잖아.

   

   점점 더 아그라가 마조 변태 새끼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 것 같아.

   

   참교육을 희망하면서 하악거리는 변태가 아니고서야 이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 잘 왔어! 꼬맹아! 네 얼굴이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인 것 같다야!

   

   주신이고 악신이고 멀쩡한 새끼가 없단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벽을 뚫고서 아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데. 할망구. 너무 외로워서 힝힝 우는 중이었어?”

   – 모르는 체 하지 마! 너라면 지금 지하의 공기를 느끼고 있을 거 아냐!

   

   지하에 자리한 악신의 기운 때문에 사령에 대한 제어권을 빼앗기고 있다며 아드리가 투덜투덜거린다.

   

   “찌질이가 바닥을 기면서 발악하는 데 그것도 상대 못 해? 할망구 치매 왔어?”

   – 나보고 어쩌라고! 악신의 권능은 내 입장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거란 말야!

   

   아드리의 짜증을 뒤로한 채 지하 여기저기에 자리한 사령의 기운을 감지한다.

   

   하아아. 또 던전이야?

   

   얼마 안 되는 힘으로 발악할 거면 좀 그럴 듯한 걸 하던가.

   

   이런 허접한 걸 만들어봐야 시간 끌기 밖에 안 되잖아.

   

   “할망구. 잠시 너랑 어울리는 낡아빠진 저택에 처박혀 있어.”

   – 응? 왜? 뭐 하려고?

   “다른 사령들이랑 같이 정화되고 싶으면 남아있던가.”

   – 빨리 사라질게!

   

   재빠르게 도망치는 아드리의 등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한숨과 함께 아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서는 그것만으로 내 의도를 눈치 채고는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어냈다.

   

   숏컷이 있다는 게 이럴 땐 정말 편하다니까.

   

   그렇게 마법진이 있는 방에 도착한 난 검은 빛이 여기저기에 묻어나오는 마법진을 보고서 팔짱을 꼈다.

   

   흐음. 이 정도면 굳이 기적을 펼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개허접 마조 아그라를 상대하는 데 굳이 신성을 낭비할 이유가 없잖아.

   

   그냥 적당한 신성마법으로 정화를.

   

   “흐음. 안 쪽은 더 심각한 상태인가.”

   

   아서가 갑자기 혼잣말을 하기에 뭔 일인가 싶어서 고갤 돌렸더니 아서가 지레 놀라서는 변명을 시작했다.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이 마법진에 담긴 녀석이 내게 말을 걸어 상황을 설명해줬을 뿐!”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그렇게 매도당하는 게 무서웠어요. 쫄보 왕자님?”

   “…크흠. 큼. 아무튼.”

   “엄마한테 혼날까봐 움츠러든 꼬맹이도 아니고. 푸후흫. 정말 한심하시네요.”

   “아무튼!”

   

   마법진 안에 담긴 존재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서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마법진 아래의 많은 부분이 아그라에게 침식당하는 중이라는 모양이다.

   

   방금 전 공허의 악신이 벌인 일 탓에 봉인에 흠이 생겼다는 건가.

   

   후으으. 어쩔 수 없네. 정화의 기적이라는 걸 써보자. 낭비가 될 수는 있겠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리 생각을 한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정화의 기도를 쓰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태양보다도 높은 곳에 계시는 위대한 주신이시여.”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입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당황한 나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몸은 제멋대로 기도를 위한 자세를 취했다.

   

   “당신의 따스한 온기로 세상에 활기를 전하는 누구보다도 선한 분이시여.”

   

   뭐야? 뭐야?!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왜 멀쩡한 거야?!

   

   허접 주신이 날 강제로 움직이는 거라면 내 어투가 멀쩡할 리 없는데?!

   

   매도 당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변태가 이런 걸 허락할 리가 없는데에에!?

   

   

   “지금 이 곳에 당신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나이다. 따스함을 거부하고 세상을 검정으로 물들이려는 자들이 있나이다. 이들에게 당신의 빛을 비추소서. 당신의 따스함으로 품으소서. 저들에게 밝음을 알려주소서.”

   

   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내 몸은 제멋대로 나불나불거리며 기도를 이어나갔고, 그에 따라 내 몸 안에 있던 신성이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어두운 지하의 정경이 주신의 신성으로 밝게 물든다.

   

   *

   

   “아침부터 무척이나 소란스럽구나.”

   

   준비를 끝마치고 소울 아카데미 거리에 도착한 대장장이 이누키는 거리 전체에 자리한 어수선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악신의 추종자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한 듯 하네요. 그리고 그 상황을 성녀님과 검성님께서 함께 해결하신 것 같고요.”

   “흐음.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있다 올 걸 그랬구나.”

   

   이토록 거리가 소란스러워서야 알른 가문의 자식을 만나는 일도 어려울 터 아닌가.

   

   상황이 수습되기 전에는 외부인이 아카데미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할 텐데 곤란하게 됐군.

   

   일단은 근처에 숙소를 잡고 느긋이 기다려 볼까.

   

   그게 아니면 수선집 할망구를 찾아가선 옛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지껄여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이누키는 문득 소울 아카데미 방향에서 느껴지는 신성의 잔향에 고갤 돌렸다.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

   “제자야.”

   “예.”

   “지금부터 소울 아카데미에서 눈을 떼지 마라.”

   “…예?”

   “지금부터 네 앞에서 펼쳐질 광경은 네 평생에 남을 풍경일 테니.”

   

   제자는 이누키의 말뜻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소울 아카데미 쪽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울 아카데미의 중심에서 거대한 빛이 피어 올랐다.

   

   하늘의 한 가운데에 떠 있는 태양의 온기처럼 따스하고. 어머니의 품 안처럼 포근하며. 마음에 새겨진 근심마저도 지워버리는 경외로운 빛이.

   

   저것이 현실의 정경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멍하니 서 있던 제자는 자신의 뺨을 스치는 눈물을 느끼고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스. 스승님. 저것은.”

   “기적이다. 아카데미에 자리한 누군가가 기적을 일으켰다.”

   “기적…이요?”

   

   저 따스한 빛은 분명 주신께서 지니신 것이리라. 그렇다는 것은 저 곳에서 성녀님이 기적이라 불릴 법한 무언가를 펼치신 것인가.

   

   “과연. 역시 주신 교회의 성녀라 불릴 법한 분이란 거군요.”

   “아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저 기적을 펼친 것은 주신 교회의 성녀가 아니야.”

   

   단호한 스승의 말에 제자가 눈을 끔뻑인다.

   

   저 따스한 빛을 만들어 낸 것이 성녀님이 아니라고? 그럼 누가 저런 빛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제자의 당혹스러움을 분명 알아챘을 터이거늘 이누키는 웃음을 지을 뿐 그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여유를 부리기엔 시간이 아깝군. 자. 가자. 제자야. 빛의 주인을 만나러.”

   “예? 스승님.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없다고… 스승님? 스승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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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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