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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3

        

       본래 합공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쟁터에서도 눈먼 화살이 위험한 이유와 같이, 함께 싸우는 동료의 칼날도 이해할 수 없는 방향에서 예측하지 못한 때에 날아들기 때문이었다.

       다수가 소수를 상대하는 기술을 합격진이라고 하여 굳이 단체로 구르며 익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쉽지 않음.

         

       그러니 세 복수자의 합공은 엄밀히 말하자면 합공이라기보다는 순차적 공격이다.

       단화철이 선공을 가해 검을 붙들고, 그 뒤를 검객이 따르고 이어서 창수가 세 사람이 얽힌 좁은 틈을 노리는 식으로.

       미리 손발을 맞췄는지, 아니면 경지 순으로 작당 없이도 마음이 맞았는지는 모른다.

         

       어김없이 단화철의 검이 집요하게 청의 궤적을 옭아맨다.

       대상의 검이 움직이는 방향을 강제하여 저지하며, 능숙한 이는 그 흐름이 끊이지 않고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무학에서 흡(吸) 자 결이라 하는 수법이었다.

         

       그리고 나면 검객이 오른쪽에서부터 넓은 궤적으로 청을 노려온다.

       병기를 제외하고도 청은 손이 하나 남고, 소수마공의 투명한 살결은 맨손으로도 검을 막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손이 없네?

       그리고 아직 창수가 남았다.

         

       하지만 창이라는 병기는 일 점, 한 부분을 뚫어내기 위해 직선을 그리는 것.

       유연한 신체로 피해낼 수 있다.

         

       여기까지는 같은 전개였지만, 같은 수법에 똑같은 방법으로 당하겠는가.

       이래서는 안 된다.

       창날을 피하는 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유리한 상세로 자세를 함께 전환해야 한다.

         

       청의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창수가 공격해오는 그 순간, 얽힌 검에 아예 힘을 빼어 휘둘려 버리자.

       왼손은 손목 방향으로 비스듬이 검을 빗겨내면 될 것 같다.

       그러며 빠져나오면 적의 병기 세 자루가 모두 허공을 가를 테고, 당연히 빈틈이 그 뒤를 따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각성신공으로 읽는 사방에서 창수가 세 발, 두 발, 한 발짝, 그리고 쐐액!

       어디, 어디를 노리냐!

       그래! 허벅지!

       청의 눈빛이 번뜩이는 순간!

         

       청이 한 발짝 뒤로, 앞으로 내민 상체는 있는 힘을 다해 젖히며 검의 힘을 풀고 좌수를 비스듬히 세운다.

       맥없이 하늘로 치솟는 검끝, 위로 흘러 이마 위로 스치는 검수의 칼날.

       이제 뒤로 제비를 돌아 빠져나가면-

         

       그때였다.

       돌연 창수의 창날이 채찍처럼 휜다.

       창대의 가운데를 잡아챈 손이 변화를 그리니, 직선으로 그리던 창날은 굽어져 물러나고, 대신 창대의 끝부분이 휘익! 대기를 찢으며 부채와 같은 궤적을 그린다.

         

       아씨. 창대로 후려칠 수도 있구나.

       청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깨달음의 댓가로, 따악!

         

       정강이가 뚝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

       초절정 무인이 온 힘을 다해 휘두른 힘에 무릎이 꺾여 발이 강제로 접혀 뒷꿈치가 허벅지 뒤편을 툭 치고 튕겨나온다.

       발이 허공에 떠올랐으니, 당연한 수순으로 휘청, 급격히 가까워지는 땅바닥.

         

       순간, 대기의 흐름으로 전해지는 질량.

       딱 발 모양이다.

       청이 이를 콱 악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젖힌다.

         

       거친 발차기가 청의 뺨을 걷어찬다.

       청이 걷어차인 공처럼 나가떨어진다.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돌며 한 장을 날아 뒷통수로부터 격렬한 착륙.

         

       그 뒤를 바짝 쫓는 복수자 삼 인방.

       세 자루 병기가 벼락처럼 내리찍힌다.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떠 입을 떡 벌리는 순간, 청이 신형이 또다시 여덟으로.

       복수자들의 병기가 애꿎은 땅을 후빈다.

         

       뒤편에 나타난 청이 소매로 제 뺨을 스윽 훔친다.

         

       이 새끼들이, 여인의 얼굴을 걷어차?

       아무리 생사결이라도 선이 있는 거지.

         

       참고로 청은 기회만 나면 사람의 머리로 축구 연습을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중이라고도 하겠다.

         

       볼따구가 시큰하니 아리다.

       이건 퉁퉁 붓게 생겼는걸.

       연약한 볼 점막이 이빨에 부대끼며 찢어져 녹이라도 슨 듯이 진한 비린내를 뿜고 혀에는 눅진한 짠맛이 맴돈다.

         

       청이 딱딱 이빨을 부딪쳐 본다.

       괜찮아, 별문제 없네.

       고개를 젖힌 덕분에 눈이 터지거나 귀가 멀지는 않았으니, 볼 안쪽이 찢어진 외에는 딱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야 발차기는 극소수 각법가들 이외에는 무인의 수법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무식하게 힘으로 걷어찬 정도.

       이미 근골의 튼튼함도 인류 정점에 오른 괴물 같은 신체를 해할 수는 없는 법.

         

       고개를 젖히지 않아 관자놀이에 박혔으면 안압에 눈이 상하고 기압에 고막이 상했겠지만, 복수자들에게는 안타까타운 일이지만 청이 피해버린 것을 어쩌하겠는가.

       눈가를 걷어차이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예전에 경험으로 배운 청이라서.

         

       “힘내라!” “와아아!” “우우우!”

         

       응원과 함성, 야유가 동시에 쏟아진다.

       그러나 복수자 삼 인방의 목적은 이제는 마공 따위는 염두에 없는 것이다.

       깔아놓은 군사들을 보고도 나섰으니 그저 원수를 죽여 원한을 풀겠다는 독심이다.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낼 새도 없어서, 청이 그냥 꿀꺽 삼키고 검을 맞댄다.

         

       그래도 또 하나 배웠으니까.

       상대의 경로를 멋대로 예단하지 말 것!

       청이 크게 반성했다.

         

       언제부터인가 힘에 취하고 승리에 취해서 적들을 죄다 저능아들로 여겼던 모양.

         

       초절정 하나쯤이야 손쉽게 해치운다고 해서 아주 만만하게 보고 있었나 봐.

         

       무인이라면 누구나 제 목숨을 건지는 비장의 수단인 구명절초 하나쯤 품고 있기 마련이고, 또 반드시 죽이겠다는 동귀어진의 수법 역시 하나는 가지고 있는 법인데.

         

       청이 재차 적들과 부딪친다.

         

       어쨌거나 병기는 세 개, 나머지는 어차피 주먹질이니 그냥 몸으로 버티면 된다.

       맞지 말아야 할 급소만 피하면 죽을만큼 아프기는 해도 현철 같은 육신과 호신강기로 어찌어찌 버텨낼 수 있었으니까.

         

       청이 구른다. 얻어맞아 날았다.

       연신 능파미보를 밟으니 생명에 경각이 달렸던 횟수가 바로 그러했다.

       그러니 생사결은 얻어맞아 구르고 깨지며 날아다니는 청이 연신 수세에 몰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진짜로 그러한가?

       원수들은 갈수록 속이 시큰하니 시리다.

         

       대결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설펐던 합공도 점차 합이 맞아 정교해지는 와중임에도, 오히려 천화검 역시 버텨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얻어맞지 않은 곳이 더 적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어디 불편한 기색조차 없고.

         

       그러니 위기감이 치솟는다.

         

       이년이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구나!

       얼굴 가슴 국부 엄격하게 금지하며 투닥거리는 대련이 아니라, 서로의 목숨을 노려 살수를 뿌리는 생사결이 아닌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양분이 될 것이니, 혹여나 패배하게 되면 차기 여중제일인의 무용담에서 멍청한 삼 인방 정도로 남게 되리라고.

         

       그러니 죽여야 한다.

       패배하면 원수를 갚지 못한 비통함뿐만 아니라 죽음마저 웃음거리로 길이길이 남게 되리라고.

         

       그러니 원수들은 이제 무인들이 가지는 최소한의 품위조차 져버리기로 했다.

         

       다가오는 주먹을 상박 근육, 청의 고향에서 이두박근이라 하는 부위에 힘을 꽉 주어 내밀던 청이었다.

       돌연 내뻗던 주먹이 활짝 펼쳐지니 뭐지? 여기서 왜 손을?

       그리고는 부욱, 천 뜯기는 소리.

       문득 어깻죽지 아래로 시원하니 바람이 훅 치민다.

         

       청이 놈의 수작질을 깨달았다.

       아, 옷을 벗겨 버리시겠다?

         

       그러나 통하는 상대가 있고, 아닌 상대가 있는 법이 아니겠나.

       목숨이 달렸는데 살색 좀 내보이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데, 음 괘씸하기는 해.

         

       뺨은 이미 푸르게 부어오르고, 바닥을 아주 제 침상처럼 굴러다녔으니 무복은 이미 넝마나 다름없는 꼴이다.

       이제는 한쪽 어깨를 시원하게 깐 상태니, 소수마공의 공능이 도는 팔꿈치 아래와는 달리 그 위로는 얼룩덜룩 멍울이 졌다.

         

       음. 슬슬 끝내고 다음 놈들 받아야겠다.

       하지만 청은 오히려 자신감이 넘친다.

         

       그 막대한 괴력도 자제했고, 여래신장도 안 쓰고 순수한 검술로만 상대하고 있지 않았던가.

         

       흙을 뿌리고 옷을 잡아당겨 찢어낸 원수들은 오히려 필사적인 표정이다.

         

       그리하여 이어진 한 합.

       청이 단화철의 검을 왼손으로 붙든다.

       순간 단화철의 얼굴에 떠오르는 경악.

         

       왜? 지금까지 손등으로 검강 막기를 계속 보여줬는데, 더 두꺼운 손가죽으로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나?

         

       그러자 오른쪽으로 오던 검수가 당황한 기색으로 다급히 초식을 펼친다.

       양 끝을 바짝 조인 초승달처럼 날렵한 검기가 세 갈래, 월광검 역시 같은 숫자의 검영을 그리며 쩡! 세 번의 충돌이 하나의 소리로 화음을 이룬다.

         

       오른손은 오른손에, 왼손은 왼손에.

       오른발은 오른쪽에, 왼발은 왼쪽에.

       사지가 제 자리에 있을 때야말로 무인은 제대로 힘을 쓰는 법이니까.

         

       그 사이에 빈틈을 노리는 창수.

       청이 왼손에 붙잡은 칼끝을 그리 향하고, 손아귀에 잡힌 검을 빼내려 앞뒤로 안간힘을 쓰는 단가놈이 힘주어 미는 순간-

       지금!

         

       일시에 자유를 되찾은 검이 창놈에게 향하고, 둘이 얽히는 사이 청이 진각을 밟아 검수에게 들이친다.

         

       단화철과 창수가 다급히 무기를 거두나 몸만은 거두지 못해 부딪쳐 뒤엉키며 넘어지는 그 순간-

       돌연 청의 신형이 자취를 감춘다.

       아니, 감춘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의 형상을 한 검이 한 자루.

         

       검을 양손으로 그러쥔 청이 검극을 저 하늘로, 정오의 태양을 향해 치든다.

         

       서문수린의 신녀검 삼 초.

       천녀대장부.

         

       원래 신녀검의 초식은 세류영발, 비단결 같은 머리채처럼 곧게 흐르는 우아한 세로베기다.

       사부님께서 해석으로 패도를 담으셨으니 여인 역시 대장부를, 그것도 하늘에 닿는 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진정 세상이 그러한가?

       여중제일인에 오르고서도 세상이 그렇지 않았으니 그 뜻과는 달리 부조리한 현실에 그저 분노하고 또 악에 받쳐 소리쳤으리라.

       한 여류 무인의 절규가 담긴 초식이 세상을 세로로 베어 가른다.

         

       어깨로부터 파고들어 갈빗대를 세로로 죽 흩어내리며 창대를, 반대편 손목을, 옆구리와 골반을 지나 비스듬히 허벅지를 가르고 튀어나온 검이, 그러고도 힘이 남아 땅속으로 깊숙하게 틀어박힌다.

         

       자리에 있던 늙은 무인 몇 명은 천화검과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를 한 누군가의 형상을 겹쳐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떤다.

       아, 저년 저거 생각해보니 그년 제자지.

       스승이나 제자나 미인의 탈을 쓰고는 흉악하기가 아주 그대로구나, 꼭 저 같은 제자를 길러놨구나, 하고.

         

       검수가 반으로 갈라져 무너져내린다.

         

       청이 후우우, 숨을 내쉰다.

         

       음. 사부님. 제가 둘 다 살아보니까 딱히 여인이라고 억울한 일도 없던데.

       해봐야 불알에 뇌가 달린 새끼들이 맨날 벗으라느니 육보시를 하라느니 아이를 낳으라느니 뻔한 소리로 껄덕거리는 거?

       하지만 기분이 나쁘고 소름끼친다 뿐이지 대단히 유리한 점이기도 했다.

       녹림에서도 결국 여인이라 살았다.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나셨지?

         

       방금 검을 잡아챈 소수마공도 그렇고.

       소수마공은 사내는 죄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섬뜩하게 속삭이더라.

       입마에 들어서 마인이 되면 아마 그러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말게 되리라.

       

       아, 마공이 이래서 마공이구나. 홀리면 그냥 무림공적, 바로 훅 가는 거네.

       입마는 안 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네.

         

       청이 검에 묻은 피를 쫙 털며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주춤 망설이는 원수 이인조.

         

       청이 잠시 고민했다.

         

       아씨, 뭔가 깨달을 듯 말 듯 했는데.

       무공의 심상이 뭔가 투명하게 와닿는?

       그런데 결국 힘으로 윽박질러서인가?

       재채기처럼 나올 듯 말 듯, 뭔가 조금, 되게 조금 남은 것 같은데.

         

       청이 그리하여 결정을 내린다.

       우리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청이 서문수린류 미인행, 바르게 선 자세로 다소곳하게 입을 열었다.

         

       “셋을 상대해 드리겠다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두 분이시네요. 그러니 여러분, 여기서 제게 원한을 물으실 분이 계시거든 셋을 채우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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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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