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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3

    루체스트의 사원증을 멘 양복차림의 남성이 한탄처럼 중얼거렸다.

    “주말인데 휴일은 커녕, 또 야근이라니.”

    요 몇주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일감에 루체스트는 이례적으로 출퇴근이 오래 걸리는 팀장급 사원들의 편의를 위해 루체스트 타워의 숙박 이용권까지 지급해주었을 지경이다.

    처음에는 추가수당에다 꽤 비싼 루체스트의 호텔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환호했지만, 그것도 익숙해진 지금은 이런 것 보다는 그냥 휴식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제 타워의 숙박시설 이용권도 필요 없으니까 집에 보내줬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해도 끝이 없이 잔뜩 쌓여있는 일감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슬슬 한계가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주머니에서 마력초 한갑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오늘 하루 피로를 잊기 위해 피워댄 마력초만 해도 진작에 한갑은 넘었을 것이다.

    그때, 그 중얼거림을 들은 동료가 그의 의자 등받이에 팔을 기대며 말을 걸어왔다.

    “어쩔 수 없지. 그만큼 이번 프로젝트가 큰걸.”

    “그래도 말이지, 이건 혹사야.”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오는 게 아닌가 싶은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비교적 멀쩡해보이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일이 이렇게 잔뜩 들이닥치기 전, 그는 연차를 써서 휴가를 다녀왔기 때문에 저런 여유가 가능한 것이겠지.

    그 덕에 자신은 연차를 쓸 타이밍을 놓쳤고, 그가 휴가에서 복귀할 동안 배는 많은 일감을 처리해야 했으며, 그가 돌아온 뒤에도 이렇게 매일매일 야근이나 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그게 자신의 정당한 권리인 연차를 계획에 맞춰 사용한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사람이 사람인지라 그런 그의 모습에 나쁜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는 하기 힘들었다.

    “일을 방해하러 온 거라면 돌아가. 나는 지금 할 일이 많다고.”

    “…음.”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동료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그 또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 자신도 그의 상황이었다면 똑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던 그는 나름대로의 성의를 보이기로 했다.

    “그래, 피곤하면 잠깐 내려가서 차 한잔 어떤가? 최근 4층 카페에 신메뉴가 나왔던데, 듣기로는 피로회복에 효과가 상당한 모양이야. 내가 한잔 사지.”

    또 그는 그런 성의를 고맙게 받기로 했다.

    그런게 평범한 이들의 사회생활이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루체스트 타워가 자랑하는 초고속 워프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공간을 왜곡시키는 워프의 법칙을 응용해 불과 몇초만에 수십층 단위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이 대단한 첨단 기술은, 130층이 넘어가는 루체스트 타워에서는 기본적인 기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건물에서 이동하는 데에도 막대한 시간손실이 발생할 테니까.

    당연히 비싼 유지비가 들기는 하지만, 그것을 설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시간적 손실을 고스란히 감내하게 되는 건 사원들이 아니라 기업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시점에서, 루체스트는 꽤 괜찮은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오늘같은 살인적인 야근만 없다면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통행증을 겸하는 사원증을 엘리베이터 앞의 사각형 인식장치에 가져갔다.

    -띡.

    엘리베이터에는 이미 몇명이 타고 있었다.

    담당은 분명 다를 테지만 다들 피곤에 절어있는 모습을 보니, 동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다들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겠지.

    살아남기 위한 사소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들을 향해 가볍게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그들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구석에 자리잡은 그는, 층을 나타내는 숫자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지금 회사가 폭발해버렸으면 좋겠어. 누구 하나 다치는 사람은 없이 회사만.”

    “하하, 그러게나 말이야.”

    그의 자조적인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미소지었다.

    참으로 실없는 농담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콰광–!!

    정신을 뒤흔들 정도의 폭음과 진동.

    그리고, 부유감.

    워프마법을 통한 공간압축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있음을 뜻하는 그 이질적인 감각은, 엘리베이터의 탑승자들로 하여금 본능적인 비명을 지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꺄아아아–!”

    “우와아아아악–!”

    -쿵!!

    그렇게 미친듯 줄어들던 층수는, 1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엘리베이터의 불빛은 마치 정전이 일어난 듯 깜빡거렸다.

    “다들 무사해요?”

    “예, 그럭저럭….”

    “일단 팔다리는 멀쩡히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만….”

    자신과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 그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나보네요.”

    잊을만하면 한번씩 엘리베이터 사용을 막아 불편을 끼치던 안전점검원들이, 오늘만큼은 그들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건 대체 뭐지, 지진?”

    “그 전에, 뭔가 폭발 같은게 들리지 않았어?”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신들이 과로로 누적된 피로로 헛것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

    “정말…. 폭발했어.”

    그야말로 방금 전에 떠들던 농담같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엘리베이터에 탄 그 누구도 웃는 이가 없었다.

    농담은 실제로 일어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비명, 그리고 폐허.

    이건 현실이었다.

    -긴급상황입니다. 시민, 직원 분들은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경찰의 대응에 따라 움직여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같은 꿈을 꿨다.

    그건, 전시장의 잔해 속에서 용으로부터 루크를 두고 도망치는 꿈.

    뭐, 엄밀히 말하자면 그냥 꿈은 아닌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

    후회하고 있어서일까?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분명 루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는?

    그럴지도 모르지.

    실은, 요즘은 늘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장면을 뇌리에서 지우기 위해 마법책을 늦게까지 붙들고 있었으니까.

    며칠 전에 루크의 동생들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것도 깊이 파고들면 그런 이유가 없었다고는 못하리라.

    ‘조용히 따르거라, 나보다 약한 주제에 주제넘은 참견 하지 말고!’

    사실 그 말에는 이견이 없었다.

    확실히, 루크는 지식으로나 힘으로나 자신보다 훨씬 강했으니.

    그래도, 자기도 애면서.

    루크라고 항상 완벽하지는 않고, 분명 미숙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항상 자기가 어른인 척만 한단 말이야.

    바로 그게 시루드의 불만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암….”

    시루드는 한차례 길게 하품을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으레 따라오는 식곤증 때문이다.

    ‘당장 할 것도 없는데. 낮잠이나 잘까.’

    평소라면 낮잠잘 시간도 없이 공부를 하지만, 요즘엔 개학이 가까워져서인지 공부도 머리에 잘 박히지 않고.

    딱히 예정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오늘도 평소처럼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침대의 따스함과 포근함이 그리워지도록 만드는 감각도 이제는 슬슬 떨쳐내야 할 때다.

    습관이 들어버리면 아카데미에서 꽤나 힘들 테니까.

    ‘그리고, 뭔가 얼마 남지 않는 방학이 아깝기도 하고 말이야.’

    침대에 눕지 않는다고해서 딱히 더 값진 생활을 하게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침대에 누워있는 것 보다는 가끔 거실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시루드가 그렇게 한탄하며 오랜만에 심심풀이 겸 TV를 켰을 때였다.

    -…현재 루체스트 타워를 공격한 테러리스트의 목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며, 전문가들은 그녀의 행동패턴이 과거 전시장 테러를 일으킨 인물과 동일인으로 추측되고 있다며….

    “어?”

    TV를 켜자마자 환상에서 흘러나오는 속보에 시루드는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테러?

    루체스트 빌딩에 테러?

    게다가, 전시장 테러사건과 같은 패턴이라고?

    시루드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루체스트? 그러고보니, 저번에 헬레나가 전시회에서 아빠의 루체스트 사업 설명회를 따라왔다고 말해주지 않았던가? 설마 루체스트와 루크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그런데, 그동안 왜 내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거지?’

    짧은 순간, 빠르게 추리를 이어나가던 시루드는 순간 턱 하고 막히는 감각을 받았다.

    “아.”

    뻔하지.

    웬만한 어른들보다 더 똑똑하고 강한 루크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태어나서 단 한번도. 

    그래서 일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밖에 모르는 게 아닐까.

    시루드는 곧바로 전화를 꺼내들었다.

    -뚜르르르….

    착신음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불안감도 커져만 간다.

    설마, 설마.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루드, 너로구나. 갑자기 무슨 일이냐?

    시루드는 곧장 물었다.

    “루크? 너 지금 어디야? 동생들이랑 같이 있어?”

    다급한 시루드의 질문에, 루크는 조금 당황한 티를 내면서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나 말인가? 난 그냥 ‘집’에 있다만….

    거짓말을 하지않는 루크의 그 대답에 시루드는 자기도 모르게 안심해버릴 뻔 했지만, 문득 머리를 강타하는 직감에 곧바로 되물었다.

    루크의 말은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듣고 판단해선 안되는 거니까.

    “잠깐만, 지금 네가 말하는 그 ‘집’이라는 거! 실질적, 행정적으로 실제 너의 주거지로 등록되어있는, 저택이나 아파트 등의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주형태를 뜻하는 단어가 맞는 거겠지?”

    -…그래, 그 말대로다만…? 무슨 일이지?

    시루드의 ‘집’이라는 단어의 장황한 정의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허를 찔려 당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반응에 시루드는 거의 확신했다.

    ‘또 어떤 억지를 써서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해.’

    TV 너머로는 여전히 테러리스트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루크의 대답은 늘 그렇듯 의미심장하고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결국 시루드는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어! 그럼 조금만 기다려! 지금 바로 집으로 찾아갈 테니까!”

    -잠깐, 지금? 너무 갑작스럽…!

    갑작스런 선언과도 같은 말에 루크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시루드는 루크가 또 어떤 억지스러운 비약으로 자신에게 혼란을 줄 지 몰라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끊어버렸다.

    그렇게 루크의 전화를 끊어버린 시루드는, 곧장 외출복을 챙겨입고 가문의 유일한 운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의 착신음이 흐른 후.

    -무슨 일이십니까, 시루드 도련님.

    “미셸, 혹시 지금 운전 가능하세요?”

    -예? 저 오늘은 휴일인데….

    수화기 너머로 정말 일하기 싫다는 듯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쉬는 날에 일을 해달라고 연락이 오면 당연히 싫겠지만.

    “죄송해요. 제가 추가수당은 두둑하게 드릴테니까….”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하지만, 수당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녀의 목소리는 극도로 밝아졌다.

    어른들은 다 이런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키보드를 바꾸니 확실히 어느정도는 탄력이 붙는 느낌이 드네요.
    그런데도 이정도로 늦기는 했지만요… 반성을 해야겠습니다.

    그럼 다음편도 최대한 빠르게 가져와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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