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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3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천마는 모든 걸 빨아들이는 구멍을 올려다보며 자책했다.

         

       “…방심했군.”

         

       제아무리 백우진이라도 이번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이 일러준 멸망 아닌가.

         

       도중에 가로막힌다면 모를까.

         

       이미 한창 진행 중인 멸망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 따위는 없으리라고.

         

       그리 확신했건만.

         

       “간과했구나, 내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미래에 취해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예상 따위로 가둬둘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지, 너는.”

       

         

       그는 늘 그랬다.

         

       용사로 선택받았으면서 반골의 기질이 돋보였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실패할 거라고 예상하는 일에 더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하여 제 실패를 예상한 이들의 안목을 시궁창에 처박는 걸 즐겼더랬지.

         

       “…이 상황에서도 너는 길을 찾는구나.”

         

       이 세계를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한 구멍은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이고 있다.

         

       당장은 곤륜산과 그 일대에 국한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는 더욱 넓어져 끝내 세상 전체를 집어삼킬 테지.

         

       착실하게 진행되어 가는 멸망의 과정에서 그는 또 다시 길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용사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어떤 순간에도 길을 찾았다.

         

       그리고 용사를 잊지 못한 성녀는 여신에게 빌어 그의 품에 닿았다.

         

       그 반면 자신은 무얼 했는가.

         

       절망 속에서 누군가를 탓하고, 욕하며 동시에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만을 바라지 않았나.

         

       ‘내게도 다른 길이….’

         

       그들을 보고 있으니 한 번도 든 적 없던 의구심이 솟아난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또 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어 생각을 말끔히 지운다.

         

       “부질없는 생각이야.”

         

       설령 있었다고 해도 어쩌란 말인가.

         

       이미 자신은 길을 정했고, 그 끝에 이르렀는데.

         

       ‘내겐 이뿐이었고, 이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뿐이어야만 한다.

         

       마음을 굳힌 그녀의 몸이 서서히 떠오른다.

         

       여기까지 온 이상 계획이 실패할 일은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불안하다.

         

       그 앞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승리를 장담하던 적들이 처참히 무너지는 걸 몇 번이나 보아 왔기에.

         

       하여 그녀는 자만하지 않기로 하였다.

         

       “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리해야지.”

         

       자신 또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를 밀어붙인 다음.

         

       그토록 바라는 완벽한 이상을 거머쥐리라.

         

       그리 다짐한 천마의 신형이 검은 구멍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두 사람의 전장이 미지의 장소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 *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그를 감쌌다.

         

       어둠 너머의 세계는 백우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칠었다.

         

       세상 전부를 집어삼킬 듯한 인력에 의해 빨려 들어온 온갖 것들이 소용돌이치며 부딪치고 깨지기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

         

       “이거 장난 아닌데….”

         

       콰콰콰콰-!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의 소음 속에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는 몸뚱어리.

         

       체감상으로 한 시진쯤 흐르자 불안감이 일기 시작했다.

         

       ‘…잘못 생각했나?’

         

       어쩌면 섣부른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상황을 타개할 방법 따위는 없고, 제게 남은 것이 허망한 죽음뿐이라면.

         

       “아니, 아니지.”

         

       머릿속을 스미는 암울한 생각을 애써 밀어낸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곳을 제 묫자리로 삼은 건 오직 제 선택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들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나.

         

       ‘그래,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지.’

         

       칠흑 같은 어둠에 잡아 먹힐 뻔한 정신을 가까스로 수습하며 시선을 돌린다.

         

       어딜 돌아봐도 같은 광경.

         

       그러나 어느 한 곳 특이점이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휴지통이라고 했지.’

         

       천마가 말하길, 삼류 작가인 신은 이곳을 휴지통이라고 표현했단다.

         

       제게 불필요한 것들을 밀어 넣고 지워버리는 역할을 하는 장소.

         

       그렇다면 필시 이곳에도 종착역이란 존재할 터다.

         

       불필요한 것들이 잔뜩 모여 있다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곳이.

         

       아니나 다를까.

         

       슈우우우…!

         

       안쪽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종착지가 멀지 않았다는 뜻.

         

       일정 시간에 걸쳐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인력이 어느 순간엔가 사라졌다.

         

       마침내 멈춘 백우진의 눈에 보인 건 무수히 쌓인 잔해들이었다.

         

       자신이 만든 세상으로부터 빨아들인 세계의 구성품들.

         

       한때는 저마다 더없이 찬란했던 조각들이 이제는 불필요한 것 취급받아 이곳에 모여 있다.

         

       “…진짜 악질이네, 이 새끼는.”

         

       그 참혹한 광경을 보니 없던 분노마저 생길 지경.

         

       신이라는 족속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가 만든 세계를 이토록 처참하게 부수면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후우…, 진정하자, 진정해.”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르는 백우진.

         

       지금은 그저 분노하기보다 활로를 찾아야 할 때다.

         

       마침내 몸을 움직이려던 그는 깨달았다.

         

       이곳에는 발을 디딜 땅도, 제 어깨를 누르는 중력도 존재하지 않음을.

         

       “…우주나 다름없는 곳인가.”

         

       십중팔구 원래는 산소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지금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세계를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산소가 공급되고 있을 뿐.

         

       “여기서 움직이려면….”

         

       이동하려는 방향과 반대 방향에 대고 기운을 방출한다.

         

       포옹-

         

       이와 동시에 생겨난 반발력이 그의 몸을 조금 밀어낸다.

         

       “으음, 이런 식인가.”

         

       간단하게 실험한 결과, 이동 자체는 어렵지 않을 듯했다.

         

       다음부터는 몸의 균형을 맞춘 뒤 용천혈에서 기운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이동하면 될 테지.

         

       신체 곳곳에서 기운을 방출하여 몸을 바로 세운 뒤 서서히 나아가는 백우진.

         

       처참하게 부서진 세계의 잔해들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을 즈음.

         

       “아…!”

         

       한 생각이 머릿속을 번뜩인다.

         

       “그래. 분명 오행신주가 가장 먼저 이곳에 빨려 들어갔어.”

         

       식심 단계에 이르러 완전히 어둠에 집어삼켜진 태양이 휴지통으로 향하는 통로가 된 뒤.

         

       천마가 가장 먼저 밀어 넣은 건 다름 아닌 오행신주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이 세상의 근원.

         

       그것이 빨려 들어간 순간 세계를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한 휴지통이 모든 걸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 가지 그럴싸한 방법이 떠올랐다.

         

       “만약 오행신주를 다시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찾은 오행신주를 가지고 이곳을 빠져 나갈 수만 있다면.

         

       세계를 향한 인력 또한 사라지지 않을까.

         

       확실치는 않다.

         

       이미 한 차례 불필요한 것으로 낙인찍힌 세계의 인식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러나 아무런 단서조차 없는 상황에서 충분히 시도해볼 법한 방법인 것 또한 사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차라리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게 빠르겠네.”

         

       하나의 세계를 모조리 빨아들여 없애는 곳이다.

         

       그 크기가 얼마나 될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정도.

         

       이 망망대해와도 같은 곳에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을, 그것도 다섯 개씩이나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정녕 가능할까.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불가능해도 해야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가늠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저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가, 그녀들이 이곳에 모인 잔해들과 마찬가지로 처참하게 소멸할 테니.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적은 찾아오기 마련.

         

       이번에는 신조차 등을 돌린 상황이라 과연 기적이란 게 찾아올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천천히 어두운 세상 속을 유영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처참하게 부서진 잔해뿐.

         

       대충 이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 가늠해 보기 위해 오로지 한 방향으로 쭉 나아간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체감상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도 끝은 도무지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쯤 되니 다시 한번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설마 끝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 건가?’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서는 백우진.

         

       ‘이대로는 안 돼.’

         

       단순히 이 공간 전체를 떠돌며 오행신주를 찾는 건 기적이 일어나도 절대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들을 찾아야만 하는가.

         

       ‘오행신주에는 각자의 고유한 기운이 흐르고 있지.’

         

       화(火), 수(水), 토(土), 금(金), 목(木).

         

       각각의 구슬에는 세계의 밑바탕이 되는 기운들을 가득 품고 있다.

         

       만약 그 기운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망망대해와도 같은 세계라고 해도 찾을 수 있으리라.

         

       문제는 역시나 그 공간.

         

       이 드넓은 공간 전체에 제 기운을 전부 흩뿌리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백우진은 제 것이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

         

       바로 이 세계.

         

       자연지기도, 마기도, 하물며 영기도 아닌 오직 이 세상에만 팽배한 기운.

         

       이를 제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전체를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으음…,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이 기운이 인간에게 종속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이만한 기운을 잘못 받아들였을 때 육신이 입을 상처는 가히 죽음에 한없이 가까울 것이기에.

         

       아찔하지만, 백우진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검은 공간에 몸을 눕힌 채 눈을 감는다.

         

       그와 동시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기운.

         

       

       온갖 것들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그의 기운이 그것마저 삼키기 위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눈작입니다.

    어,,, 공지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연재 시작에 앞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여러 일들이 생겨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라고 말은 합니다만,

    어제 집에서 뻗어 잠들고 일어난 뒤에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핑계였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좋은 컨디션, 좋은 상태에서 글을 쓸 수는 없는 건데 너무 고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최악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이어갈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 데에 더 힘을 쏟아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다짐을 하는 게 참 송구스럽습니다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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