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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4

       *** ***

         

       유경은 호천안을 대신하여 나빈의 보호자가 되었다.

         

       “오늘을 다를 거야!”

         

       “훗. 아직 멀었다!”

         

       “이야압!”

         

       비무 경험이 누적되기 시작한 나빈의 공격은 제법 매서워졌으나 여전히 점창파 제자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던 초전에 비해 점창파 제자들과 제법 수를 주고 받는 나빈이었으니 몇 차례 이어진 비무에서 전패했음에도 나빈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은 달리기다!”

         

       “좋아!”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의기투합하는 나빈과 점창파 제자들. 우르르 몰려 사라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유경은 천천히 선영 선사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영 선사의 입을 통해 혁기린의 추억담을 듣기 위해서였다.

         

       선영 선사와 담소를 나누던 유경은 결국 서신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혁기린의 추억담을 듣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혁기린의 오라버니라는 사실만을 털어놓았다.

         

       선영 선사는 유경의 고백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납득했다.

         

       “대사형께서는…비밀이 많은 분이셨으니까요.”

       

       선영 선사는 자신만이 아는 혁기린의 면모와 추억을 유경에게 이야기 해 주었고 유경은 자신이 모르는 혁기린의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으니 혁기린의 추억담을 듣기 위해 매일 선영 선사의 처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선영 선사의 처소에 찾아간 유경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니.

         

       “어서 오시지요.”

         

       선영 선사의 처소에는 총 세 명의 선사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저 혼자만의 기억으로는 부족할 듯 싶어서 동기들을 조금 불렀습니다.”

         

       “허허, 대사형의 가족 분이시라고요? 참으로 반갑습니다.”

         

       자신이 황제임을 숨기고 싶었던 유경에게 갑작스럽게 늘어난 선사들의 존재는 꽤 부담이었으나 그런 생각은 이내 유경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후후, 대사형께서 밤 산책을 즐기시던 일이 있었지요.”

         

       “예. 어쩐지 밤 산책을 즐기시며 어째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시는 바람에 그 뒤를 따라 밤 산책에 나선 이들이 많았습니다. 자네도 그 중 한 사람 아니었나?”

         

       “그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밤 산책을 하다가 실족한 게 나라네. 그 덕에 남쪽 쪽문에 못이 박혔지.”

         

       추억담을 논하는 이가 한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늘어났으니 추억담의 입체감도 세 배로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사제들의 허물을 감싸준 일. 상처입은 채 점창파에 맡겨진 여일예를 감싸안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일. 마루 밑의 쥐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걸린 일.

         

       수많은 추억담들이 선사들의 입에서 쏟아졌고 유경은 정신없이 그들의 추억담을 주워담았다.

         

       그들의 추억담을 들으며 유경은 생각했다.

         

       유야는 이곳에서 혁기린이라는 이름을 쓰고 남자 행세를 했지만.

         

       그럼에도 유야는 유야였다고.

         

       선사들이 추억하는 혁기린은 선량하고. 씩씩하며.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엉뚱함을 선보이며 사람 마음 한 구석을 불안케 했던…유야 그 자체라고.

         

       그렇기에 유경의 머릿속에는 선사들이 말하는 혁기린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그들의 추억담에 유경 역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유경은 그들의 추억담에 빠져들어 계속해 선영 선사의 처소를 드나들었다.

         

       허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었으니.

         

       “이제, 해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해 드린 것 같군요.”

         

       선사들의 추억담도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습니까.”

         

       유경은 짙은 아쉬움에 탄식을 흘렸고. 선사들은 그러한 유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더 이상 혁기린의 이야기를 접할 수 없다는 말에 허탈감을 느끼고 있는 유경을 바라보던 선영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장문에게 본문의 사당을 열어달라 하였습니다.”

         

       “사당을…말입니까.”

         

       “예. 대사형에 대한 이야기를 이리 늘어놓았으니…사형의 위패에 향이라도 하나 놓아드릴까 싶어서요.”

         

       선영은 유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함께 올라가시겠습니까?”

         

       유경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세 선사와 함께 혁기린이라는 이름이 적힌 위패를 맞이한 유경은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선사들은 그런 유경을 배려한 것인지 조용히 혁기린의 위패 앞에 놓인 향로에 향을 붙이고 떠났다. 유경은 그러한 향로에 자신의 향을 놓으며 향의 숫자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섯.

         

       세 명의 선사들이 각기 하나의 향을 놓았고 유경이 하나를 놓았으니 그들 외의 두 사람이 이 자리에 향을 놓았다는 뜻이었다.

         

       유경은 사당을 돌며 위패 앞에 향을 놓고 있는 점창파의 장문, 창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여일예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위패 앞에 향을 올리고 있는 호천안이 서 있었다.

         

       유경은 여일예를 기리는 호천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를 따라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 정말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네. 낙양에서 나를 끌고 나온 자네에게 감사하게 될 정도야.”

         

       유경은 선사들의 추억담을 통해 유야가 유야로서의 삶만을 살아갔다는 게 아니라 혁기린이라는 이름으로도 삶을 살아갔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혁기린이라는 유야의 삶이 그저 유경을 위한 희생으로만 점칠된 것이 아닌, 진정 희노애락과 굴곡이 담긴 훌륭한 한 생의 궤적이었음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유경은, 유야가 공주가 아닌 무림인 혁기린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무지 이 마음속의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는구만.”

         

       혁기린으로서 세상을 떠난 유야의 죽음을 받아들였음에도 마음의 빈 자리는 그대로였으니 유경은 그 점이 못내 혼란스러웠다.

         

       유야의 끝을 받아들였음에도 이 상처를 메우지 못했다면 대체 이 상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유경은 호천안에게 그 답을 묻고 싶었다.

         

       어떻게 유야를, 혁기린을 잃었음에도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는가.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호천안의 대답은 유경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저 묻고 삼키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지요.”

         

       그 상처는 치료할 수 없는 것이라는 대답.

         

       “…그런가.”

         

       그 대답을 듣고 유경은 그제야 호천안과 자신의 차이를 이해했다.

         

       상실은 영원하다.

         

       사라진 사람은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으니 그 사람을 품었던 자리가 메워지는 일은 없다.

         

       그러니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실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품고 어찌 행동할 것이냐였다.

         

       “그대는 일어섰고, 나는 그러지 못했군.”

         

       유경은 생각했다.

         

       호천안을 상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그렇기에 주변에 영물이 생겼고, 제자를 거두었고, 맹단이 있었으며 천하를 구할 수 있었노라고.

         

       “한심하군. 나 자신이 한심해.”

         

       자신을 자책하는 유경의 말에 호천안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자력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끌어주었기에 일어날 수 있었지요.”

         

       호천안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다른 세계의 호천안이 아니었다면, 그 호천안을 통해 일행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역시 유경처럼 주저앉아 있었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이 못난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가?”

         

       “예.”

         

       “그런가.”

         

       유경은 호천안의 단답에 지난 여정을 되돌아 보았다. 천하의 풍광. 맛있는 음식. 사람 사는 내음. 영물들의 따스함. 무림인들간의 다툼. 도적들의 흉포함. 그리고….유야의 또 다른 삶, 무림인 혁기린에 대한 이해까지.

         

       유야를 잃은 상처를 딛고 일어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지금까지 잘못해왔던 것을 바로잡아야겠지.

         

       “돌아가세. 낙양으로.”

         

       유경은 비로소 상처를 딛고 몸을 일으켰다. 

       

       *** ***   

       “끄응.”

         

       유경 대신 국정을 돌보고 있는 유찬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유경이 자취를 감춘 지 수 개월.

         

       낙양의 공기는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전우회와 동창이 합작하여 대응해 보았으나 수 개월간 비워진 황제의 자리를 메우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유경이 암행을 나간 것이 아니라 암살을 당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황궁에서 생활하는 유찬은 내관들의 따갑기 그지없는 시선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황궁 외부의 사람들이야 황제가 암행을 떠났다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디 궁내의 인원들, 특히 황제를 보필하는 내관들이 어찌 쉬이 넘길 수 있겠는가.

         

       유찬이 아버지인 유경을 암살할 정도로 독한 성품이 아니라는 점을 믿고 유경이 암행을 나갔다는 말에 수긍했지만, 유경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관들의 시선에도 점차 의심이 깃들었으니 유찬은 요새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체 언제 돌아오시나.

         

       유찬이 사방에서 번뜩이는 내관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집무대행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탁탁탁!!

         

       “저하! 저하!”

         

       다급하게 달려오는 내관의 발소리에 유찬의 눈빛에 기대감이 서렸다. 그 누구보다 예의와 침착함을 중시하는 내관이 이렇게 요란법석을 떨 일은 아무래도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폐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내 당장 나가겠다!”

         

       유찬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기뻐했다. 숨 한번 쉬는 것도 눈치 보이던 나날도 이제 끝이구나!

         

       이내 궁전에는 여행복 그대로의 유경이 나타났다. 유찬은 유경을 보고는 주먹을 꾹 쥐었다.

         

       유경의 눈은 여전히 공허했으나.

         

       유경의 몸을 감싼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으니까.

         

       “태자는 수고가 많았다.”

         

       “천하를 직접 굽어보신 폐하의 수고로움에 비할 바는 아니옵니다.”

         

       유찬의 대꾸에 유경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간만에 보는 유경의 웃음에 유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유찬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내관들은 신하들에게 금일 어전회의를 개최할 것을 알리거라!”

         

       돌아오자마자 국정을 돌볼 것임을 선언하는 유경의 말에 내관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 폐하!”

         

       내관들은 바삐 움직이며 황제의 복귀와 뜻을 신하들에게 알렸다.

         

       “하여 즉시 어전회의를 개최하신다는 어명이 내려졌습니다.”

         

       “그래. 채비한 뒤 바로 출발하겠네.”

         

       재상해는 황궁에서 파견된 전령을 돌려보낸 뒤 창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거대한 매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재상해의 머릿속에는 나빈의 재잘거림이 떠올랐다. 거대한 매 영물. 이름이 천응이라 했던가.

         

       재상해는 그 천응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고는 투덜거렸다.

         

       “거 진짜, 무심하시기는…”

         

       점차 멀어지는 천응의 모습은 호천안이 이 낙양을 떠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폐하와 함께 낙양에 돌아왔다면 응당 낙양재가에 들려 전우회 인원들의 얼굴도 보고, 수고했다는 덕담도 좀 해 주고, 술도 한 잔 마셔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냥 이렇게 내빼버리시다니.

         

       한참 원망을 담아 멀어지는 천응을 바라 보던 재상해는 실소를 흘렸다.

         

       하기사.

         

       이렇게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교관님 답기는 하지.

         

       재상해는 팔을 뻗어 창문을 닫았다.

         

       투덜거리다가 어전회의에 늦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날.

         

       어전회의에서 유경은 무림탄압정책을 철회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고.

         

       황국의 평안을 알리는 이 소식은 순식간에 천하로 퍼져나갔다.

         

       *** ***

         

       사복설은 주먹을 꾹 쥐었다.

         

       살짝 힘을 쥐었을 뿐인데도 손뼈가 뒤틀릴 것 같은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금제가 가해져 있어서 혹시나 무공 수위가 쇠퇴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완전하게 힘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도 가요?”

         

       나빈이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사복설을 올려다보았다. 이래저래 사복설과는 오래 여행을 했으니 정이 든 탓이었다.

         

       “그래야겠구나. 나도 기다리는 놈들이 있어서 말이다.”

         

       꾸어어엉.

         

       뀌익!

         

       이별을 직감한 것인지 사복설과 비교적 오랜 시간을 보낸 덩치 큰 영물들이 울음을 토했다.

         

       “받으시오.”

         

       사복설은 그런 영물들의 얼굴을 토닥여 주다가 호천안이 던진 도를 허공섭물로 빨아들였다. 도를 뽑아본 사복설은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흘렸다.

         

       도신이 날을 드러내자마자 마치 숨을 멈추고 있던 생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숨을 쉬듯이 기를 뿜어내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다 싶었다.

         

       “이것은?”

         

       “내가 만든 도요.”

         

       …만들었다고? 사복설이 황당한 눈으로 호천안을 쳐다보았다. 이놈은 대체 못 하는게 뭐지?

         

       “부족한 점이 있을 수는 있으나 한때 천하제일장인에게 배운 몸이니 그럭저럭 쓸만은 할거요.”

         

       “고맙군.”

         

       사복설은 진심을 담아 그리 중얼거렸다. 도를 선물해 준 감사함이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으려 했던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준 감사 인사이기도 했다.

         

       “알면 잘 하시오.”

         

       “그래. 나도 염치가 있는 놈일세. 원수라 할 수 있는 나를 용서해 주었으니 자네의 의사를 따르겠네.”

         

       “알고 있었소?”

         

       “딱히 숨기지도 않았는데 왜 모르겠나.”

         

       사복설은 호천안의 머리 위에 올려진 흑립을 바라보았다. 저 흑립을 처음 보았을 때 뇌명존자가 과거의 뇌검낭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저 기우라 여겼다.

         

       흑립에 뇌공을 익혔다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뇌명존자가 뇌검낭인이라면 자신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터인데 왜 친절하게 중원으로 돌려 보내주겠는가.

         

       하지만 점창파와 인연이 있는 모습에 그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뇌검낭인이 점창파와 각별한 사이라는 굳이 숨겨진 사실도 아니었으니까.

         

       “참호당도 명맥을 잇고 중원에도 돌아왔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나? 자네가 원하는 대로 사고치는 사파 놈들이나 쥐어박으면서 조용히 살아가야지.”

         

       그리 말하며 사복설은 도집을 허리춤에 끼워넣었다. 묵직한 느낌이 허리춤에 자리잡자 사복설은 그제야 자신이 몸종, 영물 돌보미, 각종 잡일 당번인 맹단에서 벗어나 사복설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나중에 운남에 꼭 놀러오게나.”

         

       “네! 그럴게요!”

         

       나빈만 대답하고 호천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사복설은 웃으며 몸을 돌렸다. 나빈이 오겠다고 했으니 호천안이 뭐 별 수 있겠는가? 나빈이 조르면 저 자식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나 끄덕이겠지.

         

       파아앗!

         

       경공을 전개한 사복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끝났군.’

         

       독립을 원하던 영물들은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자신을 따르는 영물들은 사람들과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혈괴가 된 무인들은 역시 영면에 들었다.

         

       이름만 남았던 무림맹은 다시 무림의 기둥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해졌다.

         

       황국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던 구모설을 위시한 흑림방의 세력들을 깔끔하게 일소했다.

         

       서장에서 소란을 일으키던 무인들을 잡아 다시 중원으로 되돌려보냈다.

         

       그리고 혁기린의 유언에 따라 유경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했다.

         

       이제 무림과 황국의 갈등도 사라졌으니 무림과 황국에 남은 것은 성세를 회복하는 일 뿐이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재기였을까.

         

       호천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빈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거에요?”

         

       “음.”

         

       나빈의 물음에 호천안은 고민에 빠졌다. 글쎄.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천하의 혼란은 다 바로잡았으니 더 이상 가야 할 곳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천안이 답을 하지 못하자 나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를 위해 움직인다고 하셨잖아요? 이제 다 끝난 거에요?”

         

       끝이라.

         

       호천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단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으음…”

         

       나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를 구하기 위해…뭔가를 했나? 어딜 가서든 신나게 논 기억밖에 없는 나빈으로서는 영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요! 일단 우리 집으로 가요! 정삼 할아버지랑 여진상 할아버지한테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잖아요! 하루만 떨어져도 펑펑우시는 분들인데 지금쯤이면 지금쯤이면 하도 울어서 눈이 왕눈이처럼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허허. 그렇구나.”

         

       호천안은 나빈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동의했다. 뭐 그놈들이라면 눈물 콧물 다 짜내며 나빈에게 매달리겠지.

         

       “그리고 할아버지네 마을에 우리 집도 짓는 거에요! 왕창 크게! 포달랍궁만큼 크게 지어서 석웅이랑 화저랑 맨날 숨는 부끄럼쟁이 황단까지 함께 누울 수 있는 침대를 만들어서 같이 자는거죠!”

         

       상상만으로도 신이 나는지 나빈이 몸을 들썩였다.

         

       “그리고! 그렇게 푹 쉬고 다시 서장으로 가는 거에요! 사라 이모랑 라모 언니한테 다시 보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아 마술 공연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시간도 많이 지났을 테니까 사복설 할아버지도 보러 갈까요?”

         

       호천안은 사복설이 왜 자신의 대답을 듣고 가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초롱초롱한 나빈의 눈빛을 마주하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으니까.

         

       “와아! 신난다!”

         

       나빈이 환호성을 지르며 미호의 등에 올라탔다. 호천안은 눈빛으로 자신을 채근하는 나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천하를 바로잡는 여정은 끝났으나 그 여정 속에서 새로운 인연과 약속들이 남겨졌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다니다보면 또 다른 인연과 약속이 찾아올 터였다.

         

       호천안은 실소를 흘렸다.

         

       이래서야 원, 평생 여행만 다닐지 모를 일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삶 역시, 훌륭한 재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쁘지는 않겠군.’

         

       호천안은 훌쩍 석웅의 등에 올라탔다.

         

       찍찍!

         

       서공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출발을 외쳤고 석웅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슬렁슬렁 움직이기 시작했고.

         

       뇌명존자 호천안과 그 제자 나빈. 그리고 영물들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미래호천안 외전도 끝이 났군요.

    사실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었지만 분량 조절에 성대하게 실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본래는 무림지존 포켓몬 중원지방 챔피언 호천안이 무림과 황실의 문제를 시원하게 싹슬이하는 구성으로 준비했습니다만…놓친 떡밥들도 끼워 넣고 싶고, 요리 파트도 넣고 싶고 이렇게 살을 붙이다보니 외전1이 완전 뚠뚠이가 되어버렸지 뭡니까.

    그래도 미래호천안이 그저 문제만 해결하고 사라지던 해결사에서 제자랑 꽁냥거리며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음화부터는 진짜 본편의 외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
    일부 내용이 누락되어 있던 부분이 있어 추가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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