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14

        

         

       “어렵지 않다고?”

         

       루카스는 진성의 말에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표정이 굳어버렸다.

         

       “세 가지 모두?”

         

       “예.”

         

       “오, 이런.”

         

       그는 정말로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진성의 말에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떠올린 듯 아, 하는 탄성을 냈다.

         

       “이런. 내가 실수를 했나 보군.”

         

       그는 자신의 크리스털 팔에 설치되어 있는 패널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곤 지문을 인식한 뒤 도형 하나를 그려 크리스털 팔에 내장된 어떠한 장치를 발동시켰다.

         

       지이잉-

         

       그러자 크리스털 팔에서는 작은 기계음 소리와 함께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핏줄에 빛이라도 나듯 크리스털 팔은 1초쯤 빛이 들어왔다가 사라져버렸고, 곧 그의 손바닥 부근에 그 빛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응집되기 시작한 빛은 의수의 손가락 끝부분에서 빛나며 한 점에 모이기 시작했고, 허공에 빛으로 된 그림을 수놓기 시작했다.

         

       홀로그램(Hologram)이었다.

         

       홀로그램으로 빚어진 그것은 양피지로 만들어진 계약서와 같은 형태였고, 그는 그것을 진성에게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조건을 말을 하지 않았어. 이건 내 실수야.”

         

       루카스는 검지를 들어 올린 뒤, 의수의 팔뚝 부분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손가락이 펜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가락 끝에 잉크라도 묻힌 것처럼 빠르게 휘갈기듯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을 인식한 크리스털 의수는 홀로그램으로 만든 계약서에 그가 그리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였고, 그에 따라 계약서의 윗부분부터 아랫부분까지 빼곡하게 글씨가 차올랐다.

         

       “읽어보게.”

         

       계약서에 글을 다 쓴 루카스는 손의 모양을 바꿨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계약서는 테이블 위에 진짜 종이처럼 사뿐히 앉았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진성이 보기 편하도록 뒤집히기까지 했다.

         

       진성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계약서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 계약서는 정말, 구체적으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흐음.”

         

       가장 먼저, 빌딩과 가게에 손상이 가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게다가 정말로 구체적으로 ‘손상’의 범위에 대해 정의하기까지 했다.

       무슨 보험 계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하나가 깐깐하기 그지없었고, 진성이 입혀도 되는 ‘손상’의 범위는 아주 좁았다.

       그 세세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순히 외벽이나 창문, 전등, 문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빌딩과 가게에 있는 인테리어, 수도관, 하수도, 타일까지 범위가 전부 지정되어 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일정 이상 손상이 되면 진성이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그 보상의 기준은 현재 설치되어 있는 인테리어와 똑같은, 혹은 같은 등급의 물품들이었다. 그 물품들은 재료에서부터 메이커까지 전부 지정되어 계약서에 쓰여 있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즉석에서 작성한 계약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거기에다가 이미지에 문제가 생기는 것, 생물학적 오염과 화학적 오염에 관한 조항들, 주술로 인해 생기는 오염과 그로 인한 피해와 관련된 조항, 영적 존재를 사용하였을 때 영향이 남아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켰을 때 관한 조항, 빌딩에 설치되어 있는 영적 존재를 탐지하기 위한 센서와 아티팩트를 기준으로 자기장을 측정하여 의뢰 중과 의뢰 후에 큰 변동이 있을 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 의뢰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청 시 설치는 하되 계약서를 어긴 것이 확인되면 그 기기의 값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 빌딩과 가게에 설치되어 있는 특수 목적 물품을 사용할 수는 있으되 계약이 진성의 귀책으로 파기되면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까지….

         

       온갖 족쇄들이 계약서에 가득 메워져 있었다.

         

       이 족쇄들은 진성이 계약을 어기는 순간 폭탄이 되어 그를 터뜨리려 하리라.

       고소의 나라라는 미국의 위명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수준의 달러에 짓눌리게 만들어버리겠지.

         

       물론 계약서를 준수하지 않을 때 그런 것일 뿐인 이야기이기는 했다.

       ‘손상’에 대한 것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기는 하나 찬찬히 살펴본다면 그 범위는 충분히 감수할만한 수준이었으며, 심지어 예기치 못한 상황…. 예를 들어 자기 몸을 보호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거나,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 전투를 벌였을 때의 손실과 피해에 대해서는 모두 루카스가 부담함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진성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조항까지 있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자신과 오랫동안 일해온 미국 대형 로펌과 연결을 해주는 것은 물론, 의뢰를 받아들이면 특수 고용의 형태로 온갖 특혜를 안겨줄 수 있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월 스트리트에 한해서 적극적인 자기 방어권을 인정하는 정당방위 법인 ‘Stand Your Ground’를 적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내용이 적혀 있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거의 용병인데…?’

         

       정당방위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그것을 ‘Duty to Retreat’이라고 했는데, 이 의무의 내용은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충돌을 회피하려고 시도했으며, 적절하게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했다는 증거를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의무가 면제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집이나 자동차, 개인 사업장 등의 공간이었다.

         

       이것과 관련된 것이 바로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라 불리는 원칙이었다.

       영국의 보통법이 형성되던 시기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다(An Englhishman’s home is his castle).’라고 주장하며 자기 집에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부여하던 전통에서부터 시작된 이 원칙은 현재 미국에서 일반적인 정당방위로 인한 면책의 근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Stand Your Ground’법은 바로 이 캐슬 독트린의 범위를 확대하고, ‘Duty to Retreat’ 의무를 제거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느 장소에서든 ‘적극적인 자기방어’를 행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는 말과 같았다.

         

       물론 살인 면허 같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이 캐슬 독트린이라는 것도 인정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단순히 ‘Duty to Retreat’ 의무가 사라졌다고 해서 막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하지만…이 ‘적극적인 자기방어’라는 것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진성에게도, 루카스에게도 말이다.

         

       ‘보자…. 역시 있군.’

         

       진성은 계약서의 아랫부분에 적혀있는 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그의 예상과 다르지 않은 글귀가 있었다.

         

       이 계약서의 효력은 루카스가 살아있을 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대형 로펌과의 연결 역시 루카스가 주가 되느니만큼, 루카스가 사망할 때 그 지원이 자연스럽게 끊겨버리게 되는 것이었고.

       그 외에도 보상과 관련된 내용이나, 계약함으로써 얻게 되는 각종 특혜 역시 루카스가 사망할 때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도록 만들어져 있기까지 했다.

         

       즉, 계약하게 된다면 진성은 루카스의 목숨을 보호할 의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원하는 게 3개가 아니라 4개였군.’

         

       속셈이 훤히 보인다.

         

       눈앞의 크리스털 팔을 가진 저 남자는, 진성을 경호원으로 사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앞서 말했던 3개의 의뢰가 거짓은 아닐 것이다.

       루카스의 몸에서 미미하게 보이는 신호도 그렇고,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힘도 그렇고.

       적어도 그의 입에서 거짓이 나오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현재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끌끌. 역시 돈을 다루는 작자 중에는 양복을 입은 뱀이 넘쳐나는구나. 예나 지금이나….’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득을 보려는 것은 저들의 본능과 같은 것이라.

         

       “흐음. 나쁘진 않기는 한데, 일단 수정해야 할 것이 많이 보이는군요.”

         

       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원래 세상살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던가.

         

       진성이 용병으로 일할 때도 많이 겪었던 것이고, 권력자와 얽힐 때도 많이 겪었던 일이었다.

       이 정도는 그냥 일상 수준이었다.

         

       계약이고 뭐고 무력으로 짓눌러서 돈 한 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았고, 아예 의뢰 도중에 배신해서 진성을 죽이려 하는 시도도 있었으며, 나노 머신이나 독을 주입해서 협박하려 하는 일도 있었다.

       아티팩트나 주물을 겹쳐서 만든 이중계약서로 영혼까지 옭아매어 노예로 삼으려는 시도도 있었고, 인질을 미끼로 공짜로 부려 먹으려 하는 일도 있었으며, 의뢰하는 도중에 해당 지역에 폭격해버리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계약서에 슬쩍 장난질을 치는 정도야 뭐….

       그냥 애교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어려 보이기까지 하니…. 이 정도야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이지.’

         

       게다가 진성의 현재 몸이 어떠한가.

       갓 성인이 된 몸이 아닌가.

       거기에 대체로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어려 보인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루카스의 시선으로 보는 진성은 정말 핏덩이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니 현재 루카스가 한 것은 그냥 사회초년생에게 조금 불공정한 계약서를 준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가 내민 것은 실제 계약서도 아니고, 서명하는 순간 영혼이 저당 잡히는 주물도 아니고, 초월종의 힘이 서린 물품도 아니고, 나노 머신을 몸에 주입한 뒤 계약을 불이행 시 사망케 하는 엄청난 강제력을 가진 계약도 아니다.

         

       그냥 예시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냥 협상하면 그만이었다.

         

       “일단 이 목숨을 구할 의무부터 삭제하고 시작합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이번주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와중…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방심했을 때 훅 들어오는 감기의 맛이란…

    조만간 3연참을 해서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 님,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하루 보내시기를…!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