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15

    폴리스라인과 웅성거리는 인파, 그리고 테러현장.

    경찰차 한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구경꾼과 경찰의 시선을 끌었다.

    출동이라면 상당히 늦은 꼴이지만, 그에 토를 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상황을 현장에서 협상하고 지시하기위해 경찰청장이 직접 행차하신 것이니까.

    차에서 내리는 그의 모습을 본 경찰들이 일제히 경례를 했지만,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어보이는 현장의 상황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는 처음엔 그들의 경례를 받을 정신도 없이 연기로 둘러쌓인 루체스트타워를 허망히 바라보았다.

    “상황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경례를 받으며 묻자, 가장 앞에서 확성기를 쥐고 있던 경찰이 대답했다.

    “서클유저 한명이 루체스트 타워를 점거, 무력사태를 일으킨 상황입니다. 내부 경비병력은 이미 전부 무력화된 상황이고, 현재 추가적인 병력투입을 고려 중입니다.”

    “테러범 측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고?”

    “예, 어떤 제안도 해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의 보고에 청장은 이마를 문질렀다.

    “정말 미치겠구만. 전시장 테러에 이어서 이런 사건이 연달아 터지니….”

    게다가 작은 건도 아니고, 하나같이 엄청난 사건들 뿐이다.

    그나마 드러나지 않는 사건이면 덮기라도 하지, 이런 테러는 덮을 수도 없다.

    그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다행인건, 루체스트타워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점인가.”

    테러범에게 건축물 폭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루체스트의 내폭설계가 뛰어난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워는 붕괴의 조짐없이 건재하게 버티고 있었다.

    사실 도심 속의 랜드마크로 불리우던 루체스트타워가 불타오르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자세한 보고는 임시 상황대책본부에서 하시죠. 이쪽입니다.”

    “아, 그래.”

    신원미상의 인물로인한 테러 사건이 발생한지 몇십분도 채 되지 않은 상황.

    루체스트타워의 근처의 적당한 공간에 간이천막과 테이블을 갖다놓는 것으로 이뤄진 상황대책본부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속도는 이례적일 정도다.

    그만큼 이 테러가 높으신 분들의 이목을 크게 끌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인구 밀집도가 엄청난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만큼 다른 재난에 비해 심각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셨군요, 청장님.”

    타워의 청사진과 내부지도를 바라보며 상황을 지시하던 다크엘프는, 천막을 걷고 들어온 인물의 얼굴을 확인하자 경례를 올렸다.

    청장은 그녀의 경례를 받으며 다급하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상황은 대충 들었다. 테러범은 아직도 협상의 의사가 없다고?” 

    “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일단은 협상가로서 이곳에 나온 그였지만, 테러를 일으키고 있는 당사자가 이쪽과 소통을 하고자하는 의사가 전혀 없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테러현장에는 언제나 필수적으로 협상가가 따라붙는다.

    그들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는 안심감을 주어 과격한 행동을 누그러트리는 것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사태를 진압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당연하게도, 범인의 목적을 모른다면 협상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협상을 할 수 없으면, 그가 제압되기 전까지 이런 상황 속에서 불안에 떠는 시민들과 매스컴을 진정시킬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범인의 동기를 알아차리고 대응하지 않으면 통제불능의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것이다.

    “저쪽에서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면, 이쪽이 알아서 추측해보는 수밖에 없겠지. 짐작가는 바는 없나?”

    “글쎄요….”

    범인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지금으로서는, 추측말고는 별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었으니까.

    과연, 그의 범행동기는 대체 뭘까?

    애초에 그런 게 존재하기는 한 걸까?

    그에 그녀는 다시금 골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테러는 언제나 확실한 목적을 갖고 일어난다.

    왜냐하면 반드시 큰 계획과 지출, 그리고 용서받기 어려운 불법적인 행위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인생을 통째로 걸만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그 어떤것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전의 테러와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기에 전문가들이 범인에 대해 분석을 할 수 있었지만, 범인은 강박증이 있고 지능이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며 단체행동을 싫어하고, 개인의 능력에 자신감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대체로 대부분의 서클러들이 그런 경향을 띄니까.

    이는 오죽하면 자신이 아는 한 소녀도 해당될 정도다.

    문제는, 그의 능력이 일반적인 서클러와는 달리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지.

    그러나, 두번의 테러 모두 대화를 일체 거부하며 직접적으로 이득을 전혀 취하지 않는다는 점과, 소수의 인원이 상당히 지능화된 방식으로 테러를 일으킨다는 점, 그리고 철저하게 본인의 신분을 감추고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철저히 남기지 않았다는 점은 그가 ‘서클러’임을 생각하고 보더라도 상당히 특이하다.

    서클러의 이러한 행동에 아무런 이유가 없을 리 없다.

    혼돈만을 바란다는 듯한 범행의 이면에, 남들에게 드러나서는 안되는 어떤 거대한 목적성이 감춰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 알면 그녀는 경찰이 아니라 점쟁이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녀의 행동에 따라 지시를 내리는 수밖엔….”

    면목이 없다는 듯한 그녀의 대답에 청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재해에 대항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건, 상당히 답답한 것이었다.

    “이건 마치, 대륙전쟁의 ‘노인’이 돌아온 것 같구만.”

    “…….”

    그렇게 자조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어어, 지금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물러나세요! 무시하지 마시고요!”

    바깥의 상황이 어딘가 소란스러워 보였다.

    “무슨 소란이지? 또 기자들인가?”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동안의 지휘는 내가 맡지.”

    그렇게 그녀가 청장에게 무전을 맡기고 천막을 나오자, 폴리스라인을 지키는 경찰의 제지를 아무렇지않게 무시하며 현장에 다가가는 일련의 무리가 눈에 띄었다.

    검은 옷과 로브를 걸친 그들은,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에 거대한 짐짝을 메고있어 척 봐도 굉장히 수상하고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나서야 경찰이 아니다.

    그녀는 거동이 수상한 자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는 신참 현장요원들을 바라보며 돌아가면 따끔히 교육을 해야겠다고 한탄하며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정지하십시오. 당신들은 누굽니까?”

    그녀가 묻자, 가장 앞에서 무리를 통솔하는 것으로 보이는 비교적 얄쌍한 체형의 남성이 다가와 대답했다.

    “저희는 루체스트에 고용된 민간 경호업체입니다.”

    “예? 경호업체요?”

    그녀가 예상치못한 대답에 잠시 벙쪄있자, 그는 명함을 신분증처럼 건네왔다.

    “기업의 일이니, 기업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겁니다. 저희는 이런 유형의 서클러에 대응한 경력이 많은 베테랑으로 구성된 인원이죠.”

    명함에 쓰여진 기업은 아이기스 코퍼레이션.

    그리고 남자의 직함은 인사담당관, 로빈슨이었다.

    꽤나 단련된 것으로 보이는 몸과는 다르게 신분증을 건네온 손은 상당히 깨끗해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이로써 그녀는 그들이 ‘들어가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정말 사건현장에 들여도 되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죄송지만, 아무리 그래도 민간단체를 사건현장에 들일 수는-”

    그러자 그는 또 한번 이런 말이 나올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

    “아뇨. 기업간의 계약내용에 따라, 저희는 이런 사건에 개입할 권한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번호로 연락하시면 루체스트의 담당자가 자세히 답해줄 겁니다.”

    “하,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들여보내.”

    “예?”

    익숙한 명령조의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어느새 천막에서 빠져나온 청장이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루체스트에서 온 연락이다. 알아서 해결하겠다더군. 경찰 손실도 줄일 수 있고, 좋지 않은가.”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청장이 하는 말을 일개 서장인 그녀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예.”

    —-

    다가온 경찰을 ‘슬립’으로 기절시킨 여성이 물었다.

    “상황은 어떤가, 레니에?”

    -아직까지는 순조로워요. 이대로만 가면 서버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다행히 이런 소란을 피운 보람은 있는 모양이었다.

    루체스트의 서버는 외부와 연결되어있지 않다.

    약품의 성분이나 제조법이 유출되면 엄청난 타격을 입는 제약회사인만큼 보안에 철저한 루체스트의 서버는, 연산력이 살짝 떨어지고 주기적인 환기가 필요하지만 햇빛이나 환경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버섯류를 이용한 컴퓨팅방식을 이용하며, 바깥과 마법적,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시키는 철저한 ‘내부정원’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균류 방식의 서버용 컴퓨터는 내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어, 이곳에 저장된 정보는 통상적으로 외부에서 읽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각 연결간의 규칙성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내부에서 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킹’이라는 행위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허점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서버의 재해용 ‘백업’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타워에 지진이나 침수등의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서버의 정보가 일제히 백업정보로 변환되어 ‘열매’로 옮겨질 수 있게 변환되어 저장된다.

    그때 백업정보를 받아낼 ‘열매’를  속일수만 있다면, 별다른 긴급제동 마법식이 발생하지 않는경우 순조롭게 서버의 모든 정보를 받아낼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수암호를 계속 풀어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아린세이아의 연산력을 이용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통신’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킨 내부정원방식의 서버도, 이런 방식엔 대응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저의 통신은 끊길거예요. 균류기반의 언어방식과 식물기반 언어방식이 상당히 달라서, 연산해야 할 양이 꽤 되거든요? 그래서 당분간 서포팅이 불가능해요.

    “알았네. 그러면 그동안 나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지.”

    -부탁드려요.

    그렇게 마지막 통신을 마친 후, 여인은 바닥에 코를 골며 쓰러져있는 경찰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흐음, 그럼 이제 슬슬 다음 폭파 포인트로 이동해볼까….”

    그렇게 그녀가 문고리에 손을 대자,

    -푸쉬익–!

    “음?”

    명백히 불길한 기체가 문틈에서 바닥을 타고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여인은 그 기체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마계화 가스.

    주변의 마력을 잠식하고 서클의 운용난이도를 극도로 높이는, 루체스트에서 개발된 생화학병기였다.

    —!

    그 순간, 문을 가르며 번쩍이는 섬광. 

    하지만 이미 가스를 인지한 뒤로 반응속도를 끌어올려둔 상황이었기에 여인은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으로 그 섬광을 피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빠르게 문에서 거리를 벌리자, 깔끔하게 절단된 문 너머로 자욱한 연기와 함께 검을 든 건장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금은 검이었던 건가.

    그때, 얼굴에서 툭 하고 떨어지는 가면의 일부.

    검격을 가까스로 피해내는 데엔 성공했지만, 새 부리 모양의 가면과 모자의 챙은 그 범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아, 역시.”

    연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언가에 막힌 듯 먹먹했다.

    아마도, 연기를 직접 들이마시지 않기 위한 방독면이겠지.

    그리고 그녀는 곧 드러난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나 성공하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요행을 바래선 안되는 모양이네.”

    “…….”

    그의 방독면 너머로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은 바로 흑마법사이자 사령술사인 자.

    세이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번화를 올린 이후로 날이 추워서, 몸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우울해서, 등등등..참 핑계도 많이 대면서 늘어졌습니다.

    글과 그림을 동시에 하다보니, 둘중에 하나만 슬럼프가 와도 극복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늦어지고, 죄책감때문에 더 우울해지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고, 그렇다보니 더 안풀리고…. 그렇게 됐네요.

    하지만 이제 알았습니다.

    저에게 필요한건 약과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제약과 서약이라는 것을.

    약속입니다.
    다음화는 ‘가급적 빠른시일 내’가 아니라, 무조건 내일안에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