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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6

    <516 – 천직>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취미가 맞지 않아서, 비싼 취향이 생겨서, 놀다가 청탁 듣기 싫어서.

    고위직에 오를수록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는 멀어지고 새로운 인맥을 관리하게 된다.

     

    조화의 신, <인내의 벨제붑Belzebub>을 모시는 전식포만신교의 교황 <아마데우스Amadeus>.

    교황직에 올라선 지 8년 차 되는 그 또한 주교직에 머무르던 시절의 인맥의 대다수를 멀리하며 다른 신을 모시는 교황들과 새로이 안면을 트게 되었다.

     

    “신앙을 얻는 비결을 알려달라니, 이거 순 미친놈들 아니냐고. 그거 알려주면 신앙 모아다가 교황자리는 지가 먹고 난 은퇴하라고?”

    “끌끌. 맞는 말이지. 요즘 아랫 것들은 죄다 순 신앙도둑 뿐이야. 대륙십대도적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들. 믿고 써먹을 놈이 하나도 없어.”

     

    번개의 신, <성광의 마데우스Matheus>를 모시는 교황 <사그한 이레움saaghan ileum>은 말이 통하는 친구였다.

    아래로는 호시탐탐 교황의 자리를 넘보는 주교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자리를 지키고 위로는 신의 명령을 받드는 교황자리의 고충!

    친구를 얻기엔 너무 높은 자리임에도 이미 다른 교단의 교황 직위를 얻은 신세라 그런지 동병상련처럼 마음이 아주 잘 통했다.

     

    “그래서 말이네만, 우리 벨제붑께서는 제국삼대역적가문의 민트초코가문을 복귀시켜 만인에게 민트초코를 먹는 인내를 기르도록 하라 하시니 얼마나 골때리는 일인가? 뒤에서 은근히 지원을 해주고는 있지만 이러다 들킬까 겁이 날 지경이야.”

    “끌끌. 성광의 마데우스께서 바라시는 바에 비하면 그 정돈 아무것도 아닐세. 그분께서는 신도들에게 동정처녀 가산제를 도입하라 하시는군. 동정과 처녀를 떼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신앙의 증거로 삼아서 힘을 하사하라니, 교단에 못난이들만 가득해지겠어.”

     

    피차 어려운 처지임에도 최대한 신의 비위를 맞추며 현세에서 교단의 힘을 조금이라도 널리 이롭게 퍼뜨리고자 애쓰기도 했다.

     

    “양치식물의 이상증식을 먹어서 해치우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우리 전식포만신교의 신도 백 명이 숲의 이상증식을 막아낸 건은 들어보았나?”

    “들어봤지. 양치식물이 사라지니까 대신 요정들이 떼거지로 늘어나서 숲에 들어오는 사람의 진을 다 빼놓는다던데.”

    “어떤 새끼가 양치식물에 찍어먹을 소스랍시고 가져온 로얄젤리초 때문에 숲에 요정들이 떼거리로 늘어났지 뭔가. 요정명소가 되어서 관광객이 늘었다고 영주에게 사례비를 받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사람 잡는 요정이 나올까 봐 아주 진땀을 흘렸어.”

     

    남들 같으면 큰일 하셨다고 비위 맞추려 애쓸 대화에도 사그한 이레움은 끌끌 웃으며 자신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끌끌. 우리 신도들도 이번에 사고 하나 거하게 쳤지. 제국의 도서정가제로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으니 교단의 성서와 교리서가 팔리지 않는다고 정가제를 발표한 제국문화부장관을 납치해다가 몸값을 불렀지 뭔가. 젊은것들답게 스트레스 발산법이 참 대단해.”

    “아니 그건 진짜 미친놈들이잖아? 그런데 왜 세간은 이리도 조용한가.”

    “몸값도 정가로 받겠다고 뻐튕기다가 황제가 보낸 어중칠검 칼 맞고 다 죽었네. 끌끌끌. 멍청한 것들이 황제 심기는 정도껏 긁었어야지. 이단선포로 빠르게 선을 그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교단이 아주 좆될 뻔했어.”

    “허허허. 피차 부족한 아랫놈들 때문에 참 고생이 많아.”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의 패악질 이후로 공석이 된 교황직에 오르며 즉위시기도 비슷하고 교단의 생존을 위해 개혁과 보수 사이를 오가며 고생한 몸.

    같은 고생을 한 동지로서 종교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우정도 적잖이 느꼈다.

     

    “마데우스시여! 어찌 제게 이럴 수 있나이까. 이 사그한 이레움이 마음만 먹으면 교단의 이름으로 민중들을 벌레처럼 짓밟을 수 있어도 참고 인내해온 위선의 스트레스가 저깟 야광공룡 하나만도 못한단 말이십니까!”

     

    그랬던 동료가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다.

    마데우스의 힘으로 일으킨 신성영역이, 그의 믿음과 신앙으로 이루어낸 영역이 통째로 공룡착취범의 뜻에 휘둘려 역행했다.

    사그한 이레움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으니, 그의 신은 외침에 답하였다.

     

    [나의 가장 크고 늙은 사악한 종자야. 어찌 네 정성과 헌신, 사악한 계획을 모르겠느냐.]

    [너의 스트레스가 발산되면 지상의 몬스터대군과 함께 인간군단도 함께 쓸려나가겠지. 물경 십만에 달하는 미물과 같은 수의 인간을 해치는 스트레스 발산은 막힌 혈이 뚫리는 것처럼 시원한 일이다.]

     

    “하면 이유만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어찌하여 제가 아닌 저 빌어먹을 꼬맹이에게 힘을 내어주시는지!”

     

    [너는 큰 힘을 위해 오래도록 스트레스를 참아왔다. 그리하여 누구보다 맛있는 간식을 오래도록 간직한 잘 익은 고구마와도 같다.]

    [반면에 저 작은 아이는 오래도록 숙성된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터뜨리며 본인은 조금의 인내도 없이 성급하게 일을 저질렀지. 급진적이고 시원한 태도가 마치 혈이 뚫리는 사이다와도 같다.]

    [고구마와 사이다가 서로 비교된다면 텁텁한 맛에 메인 목을 사이다로 뚫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신이라고 어찌 다르겠느냐.]

     

    근처의 다른 비공정에 설치된 신앙증폭진에서 대화를 엿듣던 아마데우스는 괜히 자신까지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느꼈다.

    평생을 바쳐 신앙을 얻고자 악행을 참고 인내하며 헌신했던 사그한 이레움의 노력이 재단의 후계자,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의 한 순간만도 못하다는 가혹한 선언을 다른 이도 아닌 신앙을 바친 당사자에게 들은 것이 아닌가.

    오래도록 쌓아온 신앙 그 자체가 헛되이 무너지는 경험에 사그한 이레움의 눈에 핏발이 섰다.

     

    무인이라면 <주화입마>라 부르고 마법사라면 <마력폭주>라 부르며 종교인들은 <신앙붕괴>라 부르는 현상이 사그한 이레움의 신체에서 일어났다.

     

    “이 친구야, 어찌 적이 원하는 대로 놀아나는가! 신들이 자네의 신앙을 시험하는 일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틀렸다… 나는 더 이상 무엇 하나 인내할 자신이 없으니, 어찌 교황직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신언조차 잃어버려 말에 힘이 실리지 않게 된 사그한 이레움.

    그가 모든 통제를 포기하는 순간, 성광영역이 아마데우스의 조화영역과 충돌했다.

     

    쿠구구구궁━━

     

    하늘이 쪼개지며 신력과 신력의 충돌에 비공정들이 격랑에 휩쓸린 배처럼 마구 흔들렸다.

     

    펑! 퍼벙!

     

    교황의 신력전개를 돕고자 주변을 멤돌던 보조함들이 연달아 지상으로 추락했다.

    지상에 추락한 비공정의 핵이 파괴되면서 일어나는 폭발이 하늘 높이 솟구치며 십자형상의 폭발을 일으키니, 마치 공동묘지처럼 십자가가 빗발쳤다.

     

    “가혹하구나.”

     

    아마데우스는 깨달았다.

    어느 순간 사그한 이레움의 비공정 또한 보이지 않게 되었음을.

    다른 비공정보다도 유독 커다란 십자가가 새로이 하늘을 수놓았음에도 자신의 오랜 추종자를 잃은 슬픔보다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신의 기쁨을.

     

    이 순간, 주류12선신은 한 명의 선신을 잃게 되었음을 말이다.

     

    대륙의 신학이 격변할 충격적인 사실에 아마데우스는 피부를 타고 오르는 끈적한 악의와 공포심에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선신조차 악신으로 타락시킨 잔혹한 다크프린세스, 그녀를 이제 남은 이들이 막아내야만 한다.

    신력의 충돌을 저지하는 데 모든 힘을 다 사용한 자신과 일이 수틀리자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방관하는 임마누엘의 비공정이.

     

    “정의란 지킬 힘이 있는 자를 위한 것. 자신의 용맹만을 추구하며 악을 저지할 힘을 헛되이 잃는다면 그것은 선인가, 위선인가. 노구는 제국을 위해 위선자가 되지 않겠노라.”

     

    임마누엘을 모시는 교황은 그리 말하며 비공정의 선수를 돌렸다.

    아마데우스는 그와 힘을 합쳤다면 마찬가지로 신력을 사용하고 힘이 소실된 성광의 마데우스에게 그의 새로운 장난감을 빼앗을 기회가 있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저 입만 번지르르한 겁쟁이에 의해 사라졌음을 가슴에 새겼다.

     

    “전식포만신교의 교황 아마데우스가 인내의 벨제붑께 청하건대 부디 이 늙은 추종자의 오랜 헌신에 응하여 복수의 힘을 내려주소서.”

     

    모두가 등지고 달아날 적에 믿을 건 오직 신앙의 길밖에 없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인내의 벨제붑이 화답하였다.

     

    [불허한다.]

     

    “어째서입니까!”

     

    [전식포만신교의 가르침이란 조화롭지 못한 것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자에게 상응하는 축복을 내리는 것. 오늘 선신에게 악의 가르침을 조화시킨 신앙의 간증자가 나타났으니, 너는 삿되고 낡은 인연에 구애받지 아니하며 진정한 신앙에 눈을 뜨거라.]

     

    설마 했던 벨제붑의 배신!

    그에게는 신앙의 색다른 표현일지 몰라도 아마데우스에게는 벨제붑의 선언이 배신과 다를 바 없었으니.

    벨제붑의 뜻을 선도하는 충직한 믿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내 오늘 오랜 벗과 동지들을 향한 믿음을 모두 잃게 되었구나. 선수를 돌려라.”

     

    아마데우스는 퇴각을 명령했다.

    12선신.

    아니, 11선신.

    어쩌면 10선신으로 줄어든 신격의 연합.

    같은 선의 길을 걷는 자들을 향한 신뢰와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향한 존경.

    그 모든 믿음이 한 번의 교전으로 사라졌다.

    오랜 믿음으로 일군 자신만의 세계가 끝난 순간, 이제 그에게 세상이란 어찌 되어도 상관없을 타자들의 세계였다.

     

     

    * * *

     

     

    매스각키는 오크노디가 알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굉장해…♡ 주류12선신의 교황급 졸개 셋을 전부 물리쳤어♡”

    “힝.”

    “뭐가 그리 아쉬워~? 8년 전의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이 이룬 교황참살의 행보 이후로는 누구도 따라하지 못했던 굉장한 일을 저질렀는데.”

    “나머지 둘도 덤비면 경험치를 세배로 먹을 수 있었는데 하나밖에 못 먹었어! 너무 빨리 도망가서 야광이도 아직 살아 있잖아.”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될 사이즈로 줄어든 미니멈 야광공룡이 정말로 오크노디의 손바닥 위에서 꼬리와 목을 말고 덜덜 떨었다.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덜덜덜덜 떠는 허접스러운 모양새가 참 우스웠다.

     

    “하나 잡는데도 야광이가 이렇게 됐는데 나머지 둘은 어떻게 잡으려고~?”

    “자이언트 머드골렘이랑 몬스터군단이 남아있잖아? 당연히 다 산제물로 쓰려고 했지. 안 그럼 굳이 탈 것을 이렇게까지 많이 모을 필요는 없었는걸?”

    “풉풉. 처음부터 산제물로 쓰려고 모은 거야~? 악취미♡ 사악해♡ 다크프린세스가 천직이야♡”

     

    십자가의 무덤을 지나가며 제도로 향하는 길을 유유자적 지나치는 몬스터군단, 아니 제물군단.

    교황조차 당해내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소식은 신앙영역의 전개보다 빨리 제도로 향하는 길을 휩쓸었고 멀리서도 신앙의 소실을 알리는 신력의 십자가를 본 주민들이 마을과 도시를 비우며 달아났다.

    텅 빈 주거지와 시설을 지나치며 무혈입성으로 황실직할령을 지나치니 어느덧 제도가 코앞이 되었다.

     

    <무투십대고수>

    <오색마탑주>

    <삼대검왕>

    <수석 궁중마도사>

     

    제국의 마지막 고수들이 십만대군보다 더한 존재감을 내세우며 자리한 대로.

    19인의 결사대가 발산하는 숨 막히는 압박감에도 오크노디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이제 어떡할 거야~? 저걸 뚫고 궁전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걸?”

        

    이번에는 어떤 기가 막힌 방법으로 적들을 골려주며 제도에 입성할까.

    기대감을 담은 매스각키의 물음에 오크노디가 시원스레 답했다.

     

    “노크!”

    “…그러네. 남의 집에 왔으면 초인종을 누르고 노크를 해야지. 착한아이♡ 예의가 발라♡ 다크프린세스 실격이야♡”

    “헉. 그럼 노크 안 할래!”

     

    다크프린세스가 천직인 아이답게 바로 울상을 짓는 오크노디였다.

     

    “킥킥. 그래서 머로 노크하려고 했는데~?”

    “나포한 비공정으로!”

     

    지상에 떨어지고도 폭발하지 않은 유일한 비공정.

    몬스터군단을 동원하여 회수한 비공정을 가리키며 오크노디가 해맑게 외쳤다.

    매스각키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저걸 수리해서 제도에 꼬라박겠다는 말인가.

    그게 노크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격조차 모독하는 사상최악의 사악한아이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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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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