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16

        

        * * *

         

         

         

         

       뉴욕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한 주택에 불이 켜졌다.

         

       “후우. 짐을 좀 덜 수가 있었군.”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썰렁한 공기.

       하지만 분명히 곳곳에 묻어있는 거주의 흔적들.

         

       자주 들르지는 못하지만, 이곳은 분명히 사람이 머무는 곳이었으며, 한 남자의 동굴이었으며, 날카로워진 신경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을 약한 모습을 마음껏 드러내며, 루카스는 3만 달러짜리 소파에 몸을 뉘었다.

         

       오더 메이드 소파는 훌륭하게 그의 몸을 받아주었고, 너무 푹신하지도 딱딱하지도 않게 그의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며 그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누운 채로 루카스는 넥타이를 대충 풀어 헤치고 뒤로 집어 던지고, 종일 그를 옥죄었던 셔츠와 바지 역시 벗어 던지고는 쿠션을 베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파의 바로 위.

       정확히 루카스의 시선이 닿는 그곳에는, 색색의 보석이 천장에 박혀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별이며, 자신들이 만든 것이 별자리라도 된다는 것처럼 아주 영롱한 빛을 내면서 말이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과는 다르게, 사실 저 보석들은 흉흉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저 아름다운 보석들은 전부 루카스의 신체와 연동이 되어 있는 아티팩트였으니까.

         

       만약 루카스의 심장 박동이 멈추거나 체온이 일정 이하로 내려가게 된다면, 저 보석들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폭주에 폭주를 거듭하며 안의 마력을 폭발시킬 것이고, 서로의 폭발이 중첩되며 어지간한 미사일 이상의 강력한 위력으로 이 일대를 통째로 날려버릴 것이다.

         

       말하자면 저 보석은 호신용이라기보다는 자폭용이었다.

       자신을 해한 놈들까지 같이 스틱스강으로 보내버리는 폭탄.

         

       게다가 아티팩트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그가 들어온 입구만 하더라도 사람을 마비시키거나 기절시키는 아티팩트가 잔뜩 깔려 있었다.

         

       그뿐이랴?

       그것을 뚫고 들어온다면 단순히 경고용에 지나지 않았던 입구의 아티팩트와는 차원이 다른 녀석들이 줄줄이 있기까지 했다.

       러시아에서 어렵게 구한 폴로늄(Polonium)이 담겨있는 특수 탄환, 불법 개조되어 상대방의 신체 내부를 아예 구워버릴 정도의 강력한 전류를 뿜어내는 테이저건, 강력한 에너지 파동을 쏘아서 내상을 입히게 만드는 능력자 전용 함정 등….

         

       루카스의 집은 형태만 주택이지, 요새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도 끔찍한 함정들이 잔뜩 깔린 요새 말이다.

         

       어지간한 정부 시설 수준의 강력한 보안 체계.

         

       이는 루카스가 얼마나 안전에 집착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루카스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안전하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런 생각하기는커녕, 아직도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강박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자신을 지키는 무언가를 겹겹이 쌓아야만 하는 집착에 잡아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직 나는 위험해….”

         

       그는 생각했다.

         

       나는 위험하다.

       내 목숨이 위험하다.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다.

       나는 언제나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

       나는 악의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것에 취약한 상태다.

       더더욱 강력한 보안이.

       더더욱 완벽하게 안전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그를 쿡쿡 찌르는 것이며, 신경을 다른 데 쏟으려 치면 아픔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그를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이라.

       그는 도저히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조차도 제대로 보낼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래.

       어쩌면 이것은 정신병의 일종일지도 몰랐다.

         

       미쳐 돌아가는 금융 쪽 상황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돈을 벌기 위해서 가정조차 이루지 않았기에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느새 마음 일부를 잠식하고, 그것을 이상한 형태로 뒤틀어 정신을 쿡쿡 쑤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카운슬링을 받는다면 카운슬러가 말하겠지.

         

       [ 오, 루카스. 사람은 그렇게 강인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생물이에요. 당신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하고 마음의 평온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결혼에 생각이 없다면 양자를 입양하는 것도 좋고, 아니면…. 흠. 애완동물을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분명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질 겁니다. ]

         

       Fuck you.

         

       가정이 뭐라고.

         

       그에게 있어선 돈이 전부였다.

         

       돈은 그의 신앙이며, 그의 아내이며, 그의 자식이며, 그의 부모였다.

         

       돈이야말로 모든 것.

         

       그러한 돈을 버는데 정신에 무리가 갈 리가 없지 않은가.

         

       ‘돈. 나의 신앙, 나의 생명, 나의 삶. 찬란한 숫자.’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간다.

       벌어서 어디에 쓰냐는 질문은 그리 의미가 없다.

         

       버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이 돈이고, 숫자가 클수록 좋은 것이 돈이 아닌가?

       돈.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살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목숨을 지켜야만 한다.

       죽으면 돈을 벌 수가 없으니까.

       돈을,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 때문일까?

       그는 목숨에 관련된 것에는 매우 민감했다.

         

       벌어놓은 돈은 아낌없이 목숨과 관련된 것에 투자가 되었고, 그의 몸과 재산을 지키는 성벽을 쌓을 벽돌이 되었다. 거대한 벽돌은 아티팩트라는 이름으로, 경호원이라는 이름으로, 정보라는 이름으로 쉼 없이 쌓아 올려졌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뉴욕을 자기 영지라고 불러도 될 정도가 되었다.

         

       권력을 행할 수는 없다.

       뉴욕의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뉴욕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적어도 그의 관심 분야에 한해서는…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박진성을 알 수 있었다.

         

       미국과 동맹인 나라에서 나타난 젊은 주술사.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다른 주술사와는 다르게, 그래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주술사.

       갑부 집안에서 양자로 지내며 부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를 공유하며 자라났을 소년. 그렇기에 신뢰하며 친분을 이어갈 수도 있고, 다른 주술사와는 다르게 자신의 근처에 붙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은…아주 귀중한 존재.

         

       ‘그뿐만이 아니지.’

         

       게다가 외국인, 그것도 한국 출신이라는 것 역시 플러스 점수였다.

       개인도, 그를 키워주었던 그룹 역시 미국과 큰 연관이 없다는 것에서도 추가 점수가 들어갔고.

         

       ‘그는 어떤 단체와도 연관이 되어 있지 않아.’

         

       루카스가 진성을 탐내는 이유.

       그것은 바로…수없이 떠도는 음모론과 진성이 관련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놀랍게도 루카스는…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었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고, 황금과도 같은 인맥을 가졌으며,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떠도는 음모론을 믿고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더더욱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위와 돈을 이용해서 헛소문같이 들렸던 일부 음모론이 진짜임을 확인했었으니까.

         

       『 세상은 너무나 위험하다. 』

         

       세상은 미지로 가득 차 있고, 찬란한 빛만큼이나 짙은 어둠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51구역에서 외계인을 고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지구가 평평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세상에는 끝이 존재하고 그 밖으로 떨어지면 죽는다는 이야기는?

       달의 뒷면에 나치가 만든 기지가 있으며, 그곳에 지금까지 히틀러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는?

       지구의 안이 비어있으며 그곳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허무맹랑한 음모론들.

       그냥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자 우스갯소리로, 멍청한 이들에게는 ‘다른 이들이 모르는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이 모든 것들.

         

       이러한 음모론들은 대다수는 허무맹랑한…누군가가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도 분명히, 진짜가 존재했다.

         

       이미 실존했던 것으로 밝혀진 것도 있고,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것도 있다.

         

       그렇기에.

         

       그러므로.

         

       그는 박진성이라는 사람에게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음모론과도 연관이 없는 땅에서 온 사람이다.

       미국이나 유럽과 연관이 되어있어 꽤 많은 음모론이 존재하는 일본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알음알음 흉흉한 이야기가 들리는 중국에서 온 사람도 아니다. 부패와 폭력이 존재하는 러시아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전설과 흉포함이 있는 몽골에서 온 사람도 아니다.

         

       한국.

       빠르게 부를 쌓아서 최근에서야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그 조그마한 땅에는, 음모론이 별로 없었다.

       적어도 그의 목숨을 위협할만한 흉흉한 음모론은 말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진성은 믿을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는 낯섦은 믿음이 되었고, 경계해야 할 이문화(異文化)는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뒷조사로 알아낸 사생활 역시 깨끗한 편이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박진성이 월 스트리트로 왔다는 정보를 얻자마자 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의뢰라는 구실로 그를 붙잡아두었다.

         

       그것은 그에 관한 호의였으며, 테스트이기도 했다.

       그가 과연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인가, 그리고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테스트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의뢰를 처리하면서 유능함을 증명해주기를.

       의뢰를 수행하면서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내기를.

       그리하여 자신과 친해져서 자신을 지켜줄 또 하나의 방패가 되기를.

       이미 어느 정도 쌓아 올린 유형적인 것에 대한 방어만큼, 무형적인 것에 대한 방어 역시 쌓아 올릴 수 있도록 그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원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