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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7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일 오전.

    일반적으로 거리가 붐빌 시간대는 아니긴 했지만, 이곳 장난감 거리는 더욱더 한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평일 오전부터 장난감가게를 기웃거리는 아이들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거리에도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보호자도 없이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달리고 있는 여자아이 둘.

    디아나와 파이리스였다.

    거리에서 한참을 달리던 아이들은 가게 골목 사이로 들어가 숨을 돌리며 말했다.

    “휴-, 여기 있으면 못 찾겠지?”

    “응! 아마도 그럴거야!”

    “으으, 이번엔 잡히지 말아야 할텐데….”

    “응, 또 잡히면 이번엔 정말 무사하지 못할거야.”

    누가 듣는다면 마치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나, 범죄등에서 생명의 위협이라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착각할만한 대화였지만, 아이들이 그토록 도망친 이유는 사정을 알고나면 사실 별것 아닌 일이었다.

    메를린의 인형점에 맡겨진 사이, 심심했던 아이들이 놀아달라며 졸라오는 탓에 메를린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잠시 ‘놀이’를 해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본래 뒷세계의 살수를 키워내던 여인이던 메를린인지라, 아이들과 놀아주는 법 역시 보통의 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예로부터 그녀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으로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놀이보다는 훈련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히 메를린에게도 상식은 있었다.

    보통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훈련이 알맞은지, 또 얼마나 지속해야 적당히 체력을 빼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정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살수’로서의 재능이 너무 뛰어난 바람에 메를린이 자신의 욕심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게, 한명은 숲지기인 오빠와 지내며 놀아온 탓에 체력도 어느정도 있었던 데다가 희귀한 재능인 ‘마력 은폐’를 스스로 깨우친 아이였고, 또 한명은 인간이 아닌 정령이라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당연히 일반적인 9살짜리 아이들에 비하면 그 잠재력은 대단히 높은 수준일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을 두고, 메를린은 차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재능을 지닌 아이들은 뒷세계에서 꽤 오랫동안 지내온 메를린도 전에 본 적이 없었으니까.

    때문에 처음에는 훈련도 놀이의 일환으로 치부하고 즐기던 아이들도, 어느샌가 부쩍 높아진 훈련의 강도에 학을 떼는 지경에 이르렀다.

    “좌우 반복달리기는 재미없어. 숨바꼭질도 맨날 자기만 술래하고…”

    “응, 인형친구 때리는 것두 싫어.”

    아이들은 메를린의 훈련방식을 험담했다.

    인형을 때리고, 몸을 힘들게 하는 것이 대체 뭐가 즐겁다는 것인지.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메를린은 벌써 ‘무섭고 나쁜사람’이 되어버렸다.

    물론 메를린이 나쁘게 마음먹고 행한 일은 아니었지만, 훈련은 아이들에겐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게 주위를 살피던 아이들은, 자신들을 따라오는 이가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도망친 것 같으니까, 바깥 구경좀 할까? 파이, 언니가 준 용돈 가져왔지?”

    “응!”

    파이리스는 주머니를 뒤적여 루크가 준 돈이 들어있는 동전지갑을 꺼내들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꽤나 묵직했다.

    파이의 손에 들린 용돈을 확인한 디아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좋아, 그럼 이제 어디로 가지?”

    “으음, 아까 보니까 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났어.”

    “그래! 그쪽으로 가자!”

    그동안 인형은 꽤 많이 가지고 놀아서 질렸으니, 새로운 놀 거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군것질같은.

    아침부터 문을 연 가게는 얼마 없었지만, 다행히 먹을 것을 파는 곳은 있었나보다.

    그렇게 아이들이 맛있는 것들을 상상하며 침을 삼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이, 디아나. 너희 이쪽에 있느냐?”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발걸음이었다.

    “힉!”

    “메를린이다!”

    설마, 방금 전의 짤랑이는 소리를 들었던 걸까?

    어쨌든 그녀의 등장에 아이들은 기겁을 하며 몸을 숨겼다.

    “어쩌지?”

    “으음, 일단 숨자!”

    “어디로?”

    “글쎄, 어디로 가지?”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초조해하는 사이, 파이리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가리켰다.

    “으음…. 저기!”

    “아!”

    파이리스가 가리킨 방향을 확인한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려진 이삿짐상자.

    확실히, 숨으면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이 두명이 들어가기에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이고.

    그렇게 아이들은 발소리와 기척을 죽인 채, 빠르게 그 안으로 몸을 옮겼다.

    앞으로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이제 출발하지?”

    “잠깐. 이봐, 여기 이건 안 싣는거야? 포장되어있잖아.”

    “으음, 뭐지? 짐은 아까 전에 다 실은 줄 알았는데….”

    “조심해. 이런게 다 우리 별점을 낮추는게 되는 거니까. 얼른 싣자고.”

    “알겠어, 조심할게.”

    경찰들을 지나쳐 곧장 자신에게 다가오는 루크의 모습에 시루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크가 ‘집에 있을 거다’라고 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정말로 그녀가 집에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있을 수가 없으니까.

    ‘어, 어떻게….’

    시루드가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루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이번엔 또 왜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게냐? 내가 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하라고 했던 건, 도착하기 30분 전에 전화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루크의 화가 난 듯한 목소리에 시루드는 당황해서 물었다.

    “루크, 정말 너 맞아?”

    “그야 당연하지, 보면 모르나?”

    루크는 정말로 멍청한 질문이라는 듯이 답했다.

    그런 반응에 시루드는 한층 당혹스러움이 짙어졌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질문을 지어냈다.

    “그럼, 오늘 루체스트 타워에 간 적은 없어?”

    “없다. 갑자기 찾아와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게냐?”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대답에 시루드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루크라고해도, 빠져나갈 구석이라곤 없는 직설적인 대답이었으니까.

    여태껏 그 여성 테러리스트와 루크는 동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럼 그 전시장의 테러도 루크가 아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 루체스트 타워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저 테러리스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녀는 정말 루크가 아닌 걸까?

    ‘그럼 지금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하아.”

    계속해서 멍청하게 눈을 끔뻑이고있는 시루드의 모습에 답답했는지, 루크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대가 내게 전화를 건 시간이 언제인지 아느냐? 네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그대의 집과 이곳의 거리, 그리고 도착한 시간과 자동차의 상태로 미루어보면 상당히 위험한 질주를 했겠구나. 그렇지 않나? 네가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루크는 상당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피곤하다는 듯 눈가를 문질렀다.

    그 반응에 시루드는 걱정스레 물었다.

    “화, 화났어?”

    그러자 루크는 당연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그야 당연하지.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대체 누가 그런 위험한 짓을 하라고 했느냐? 중간에 전화도 안 받고….”

    부정할수가 없었다.

    미셸이 아무리 운전을 잘한다고 해도, 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전화를 받지 못한 것도, 그런 운전에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고….

    그래도 뭐, 루크에게 걱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마냥 싫지만은 않다.

    그게 특별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일반적인 감정이라고해도 말이다.

    “…….”

    “…….”

    자신의 질책에도 딱히 동요하지 않는 듯한 시루드의 반응에 결국 루크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이미 와버린 이상 탓한다고 어떻게 될 일은 아닌가.”

    “….하하.”

    루크의 중얼거림에 시루드는 멋쩍게 웃음짓다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루크의 모습에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는거야?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데…. 혹시 나때문에 그래?”

    “딱히. 네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신경 쓸 일이 아니라니…. 그건 무슨 일이 있다는 거잖아. 무슨 일인데?”

    “그냥 집안정리다. 그러니 걱정말고 그만 돌아가보거라.”

    “집안정리?”

    그에 시루드는 방금전 경찰들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집을 손봐야 한다’는 이유로 집에 혼자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아무래도 루크는 정말 집안을 정리하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루크는 정말 이번 테러와 관련이 없는 것일까?

    ‘어쨌든 루크는 별일 없는 거구나….’

     

    처음엔 당황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처음 자신의 예상이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래. 이제 11살이 되는 여자애가 테러범이라니, 그건 아무리 루크라도 이상한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여지를 남기는 듯이 어딘가 애매했던 대답도 그냥 루크의 평소 화법이 그래서 생긴 오해라면 이상할 것도 아니다.

    ‘뭐, 루크가 테러범이 아니라면 좋은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한층 마음이 놓였다.

    시루드는 곧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온김에 나도 도와줄게. 네 말마따나, 이미 와버렸는걸. 그냥 돌아가기엔 뭐하니까.”

    “…….”

    그 당당한 모습에 루크는 잠시 시루드와 눈을 맞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됐으니까 돌아가거라. 지금은 집이 손님을 맞을 상태가 아냐.”

    “그건 신경안써도 돼. 난 괜찮으니까.”

    “…됐다, 말을 말지.”

    집주인이 어지러진 집을 보이기 싫다는데, 보는 사람이 괜찮은게 무슨 상관일까?

    지금의 시루드는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더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별다른 진전이 없겠다고 생각한 루크는 몸을 돌렸다.

    “알아서 돌아가거라, 배웅은 않으마.”

    “기다려! 잠깐만!”

    루크의 강경한 모습에, 시루드는 당황하여 저도모르게 다가가 돌아가려는 루크의 손을 붙잡았다.

    “…!”

    그 순간, 시루드는 루크에게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의 정체를 이해하고난 뒤엔, 경악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

    “…….”

    그렇게 시루드와 말없이 눈을 잠시 마주친 루크는, 시루드가 자신의 손을 잡음으로서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너, 정말 괜찮은 것 맞아?”

    “…참으로 집착스러운 아이로구나.”

    그렇게 말했는데도 결국 돌려보낼 수 없었나.

    “…밖에서 할 얘긴 아니군. 들어가서 얘기하지.”

    결국, 아이의 집착이 승리한 셈이다.

    지금 당장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ㅁㅇ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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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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