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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8

   내가 오늘까지 했던 노력들이. 공허의 악신과의 투쟁을 준비하면서도 틈틈이 해왔던 공부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보다 더 공을 들였던 게 이렇게 날아가다니이이이.

   

   우울해진 마음을 축 늘어진 어깨로 드러내던 내가 아카데미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자 종업원 중 하나가 다급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항상 하던 대로 준비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말하기도 귀찮아서 고갤 주억거렸더니 종업원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왜 그러고 있는 거냐.”

   

   그리고 그 뒤를 잇듯 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젯밤에 얼마나 잘 잔 건지 피로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아서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심술이 났지만 일단 나불나불 움직이려는 입술을 꾹 눌렀다.

   

   자! 아서! 네 뛰어난 관찰력으로 내 변화를 눈치 채 보도록!

   

   왕의 핏줄답게 보는 눈이 좋은 너라면 분명 알아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잔뜩 놀라서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어서!

   

   “혹여 몸에 이상이 있나? 그런 거라면 내 성녀님을 불러오겠다만.”

   

   …몰라?

   

   모른다고?

   

   왜?

   

   내 키가 무려 1.5센치미터나 자랐는데 이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어제 악신과 싸우다가 눈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진지하게 의문스러워서 아서의 눈에다 신성마법을 사용해보았더니 그가 눈을 찌푸렸다.

   

   “말을 해라. 말을. 평소 같았으면 이미 내 인격을 바닥에 내리 꽂았을 녀석이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거냐.”

   “저처럼 귀여운 여자애에게 매도당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무릎을 꿇어서 예의를 보여야하지 않을까요?♡ 무능한 왕자님따위에게 과분한 선물을 드리는 거잖아요♡ 자♡ 빨리 제 발이나 핥으면서 머리를 밟아달라고 빌어보세요♡ 마조 왕자님♡”

   

   눈치가 더럽게 없는 남정네 때문에 짜증이 나서 발가락을 까딱대며 무어라고 했더니 아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새끼 진짜 정신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왜 매도를 당하는 데 웃어? 설마 아서 얘 얼빠여우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 아냐?

   

   무심코 헉헉대며 밟아달라 비는 아서를 상상한 나는 몸서리를 치며 두 팔로 몸을 끌어안았다.

   

   “…음? 왜 나를 리나님 보듯 보는 것이냐. 내가 무얼 했다고.”

   “말 걸지 마세요. 변태 왕자님♡ 당신 같은 쓰레기와 말 섞고 싶지 않아요♡”

   “나는 네게 안부조차 물으면 안 되는 거냐!?”

   

   열이 오른 아서가 목소리를 높이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뒤편에서 프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오기 전에 몸을 움직이다 온 듯 흐트러진 차림새를 한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 착석을 하더니 날 바라보며 고갤 갸웃했다.

   

   “루시. 키 컸어?”

   

   와아아아! 프레이! 네가 이걸 알아주는 구나! 진짜 조금도 기대를 안 했는데!

   

   기쁨이란 감정이 잔뜩 차오른 나는 입꼬리와 함께 어깨를 들어 올리다가 프레이의 양 볼을 붙잡았다.

   

   “바보 검사. 뭔가 달라진 게 보여?”

   “응. 시선의 높이가 달라졌는 걸.”

   “히히힣. 그래? 역시 그렇지? 달라졌지? 그치?”

   

   찰흙마냥 프레이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그녀가 고갤 끄덕이는 걸 보고서 다시 아서 쪽으로 고갤 돌렸다.

   

   어이. 거기. 눈치라고는 조금도 없는 남정네. 할 말 없수?

   

   “…키가 컸다고?”

   

   이야. 진짜 몰라서 이러는 거냐. 알고도 내 신경을 긁으려고 모르는 체 하는 거냐.

   

   아. 대답은 안 해도 돼. 어차피 어느 쪽이건 구형은 똑같으니까.

   “왜요?♡ 전 키가 크면 안 되나요?♡ 페도 왕자님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평생 어린 아이로 살아야 하나요?♡”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이 뜻이 아니면 뭔데요?♡ 쬐끄마한 게 조금 컸다고 신난 게 가소로우신가요?♡ 그래봐야 당신 발치를 길 하층민이란 생각에 비웃음이 나오시나요?♡ 능력도 없는데 인성도 더러우신 쓰레기 왕자님이시군요?♡”

   “잘못했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다오! 이러다 이야기가 와전되면 베네딕 경한테 살해당할 것 같단 말이다!”

   

   주변 눈치를 살피던 아서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지만 좁아진 내 눈은 본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무능한 네가 베네딕한테 붙잡혀가서 무슨 꼴을 당하던 내 알 바야?

   

   아니 오히려 붙잡혀가면 나야 좋지.

   

   베네딕이 딸 친구를 죽일 리는 없잖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여서 제발 죽여달란 소리를 내뱉게 할 수는 있어도.

   

   그럼 너도 훨씬 강해져서 지금보다 도움 되는 캐릭터로 탈바꿈될 텐데 내가 왜 그만 해야 하지?

   

   오히려 와전되는 쪽이 나한테 이득인데?

   

   “2학기 시험 때 전 과목의 시험범위 요약과 해석을 제공하마!”

   “흐응. 뭐. 개허접 왕자님께서 이토록 정성을 보이시니 저도 넘어갈 수밖에 없네요.”

   

   꽤 구미가 당기는 내용이기도 하고 아침식사도 나오고 있는지라 고갤 끄덕였더니 아서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무능 왕자님이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분이란 이야기는 대충 넘기고. 어제 제가 잠들고 나서 왕자님께서 무슨 변태짓을 하셨는지나 이야기해 보시죠.”

   “아무것도 안 했다! 네 옆에 있는 꼬맹이가 날 범죄자 취급하는 데 뭘 하겠는가!”

   “어머. 그 소리는 바보 검사가 없었다면 뭔가를 했을 거란.”

   “제발. 좀. 그만해라.”

   

   아서를 가지고 놀면서 기분이 풀린 나는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뒤 편에서 눈치를 살피던 시종은 우리의 대화가 끊어진 걸 확인하고서 슬며시 다가와 내 앞에 음식을 늘어놓았다.

   

   기름에 튀기듯이 구워진 베이컨. 그리고 그 베이컨의 기름을 잔뜩 머금은 노릇노릇한 빵. 말끔한 반숙 계란. 여기에 더해 아카데미 식당에서 수제로 만든 소세지까지!

   

   히죽거리며 베이컨 한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에 던져 넣은 순간 기름지고 짜고 고소하고 감칠맛 넘치는 맛의 폭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캬! 진짜 이거 먹는 맛으로 아침에 식당에 온다니까.

   

   왜 이 자극적인 맛이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지 모르겠네.

   

   “저기. 나도 똑같은 걸로.”

   “나도다. 하나 가져다오.”

   

   아서와 프레이의 주문에 따라 시종이 떠나간 후. 아서는 고갤 옆으로 돌린 채 턱을 괴었다.

   

   “어제 네가 잠들고 나서 별 일은 없었다. 그 때엔 이미 모든 사태가 끝났을 무렵이었으니까. 무슨 일이라고 해봐야 교수님들을 비롯한 여러 책임자들이 난리가 났단 것 정도겠군.”

   

   어제 일어난 사건에서 그 어떤 희생자조차 생기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한들 사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공허의 추종자들은 분명 아카데미의 빈틈을 노려 이 곳을 점거했고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낼 뻔 했다.

   

   그러니 이 사건에는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에 새로이 들어온 교수들 대부분이 파면당할 거다. 1왕비님께서 직접 사직서를 낸 분들을 찾아뵙겠다 했으니 이전의 아카데미로 돌아가게 되겠지. 다만 이전의 질서를 되찾는 과정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아예 아카데미의 문을 닫고 정비를 하기로 결정했다더군.”

   

   그 결과 나온 것이 방금 전 내가 보았던 아카데미 휴학 공지였다.

   

   “덕분에 우린 2학기에 시험을 네 번 치르게 되었지.”

   

   아카데미 3학년들은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다며 가볍게 웃던 아서는 시종이 가지고 온 식사를 보고는 슬며시 몸을 뒤로 뺐다.

   

   “맛있겠다.”

   “그러게나 말이다.”

   

   접시를 가득 채운 음식의 향연에 아서와 프레이가 입맛을 다시던 그 때 음식을 다 나르고 돌아가야 할 시종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내게 연관되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평민이 결코 하지 않을만한 행동.

   

   “고용주님.”

   

   그를 눈치채고 있었던 나는 내 귓가에 카리아의 목소리가 스몄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몇 계시거든? 식사 끝나면 내가 있는 쪽으로 와줄래?”

   “멍청한 아줌마. 이럴 땐 누가 만나고 싶어하는 지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럴 시간이. 아. 젠장. 알겠으니까 입 열지마. 고용주님 옷 재단해주신 분이랑 대장장이 이누키야.”

   

   옷을 재단해준 분이라면 그 할머니 말하는 거려나. 안 그래도 찾아뵈려고 했는데 잘 됐다.

   

   내가 키가 무려 1.5센치나 컸으니까 옷을 새로 맞춰야하는 데 그 분이 날 먼저 찾을 줄은!

   

   후흫. 좋아. 옷 수선 해달라고 부탁해야지. 그리고.

   

   …

   

   어.

   

   이누키?

   

   대장장이 이누키?

   

   내가 아는 그 이누키?!

   

   히든 NPC이자 개쩌는 대장실력을 지니고 있는 걔 말하는 거야?!

   

   내가 이누키란 이름에 경악을 드러내자 카리아가 고갤 끄덕였다.

   

   “아마 고용주님이 아는 그 이누키가 맞을 거야. 이누키란 이름의 실력 있는 대장장이는 하나 뿐이니까.”

   “그 덜떨어진 퇴물 할배가 왜 나를 찾는데?”

   “고용주님한테 뭐 만들어주고 싶다던데?”

   

   이누키가 먼저 날 찾아와서 물건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랬다고?! 진짜!?

   

   게임 속에서 하나하나에 꼬장을 피우던 그 할배가. 관련 퀘스트를 다 수행하고 나서도 투정을 부리던 그 꼰대가. 먼저 망치질을 해주겠다고 찾아왔다고!?

   

   “실력 하나는 괜찮은 양반이니까 뭐든 만들어달라 그래도 될 거야.”

   

   카리아 네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 할배가 얼마나 실력 있는 대장장이인지 잘 알아.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야 히든 NPC로 지정될 수 없으니까 말야!

   

   우아아아. 뭘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하지? 갑옷? 역시 갑옷이려나?

   

   이누키한테 좋은 금속을 내어주고서 갑옷을 제작해달라 그러면 개 쩌는 게 나올 것 같긴 한데.

   

   포크를 노른자에 박아넣은 채 최선의 효율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카리아가 슬그머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고용주님. 1왕비 그 인간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해.”

   “뭐?”

   “어제 돌아가자마자 알른 가문에 전령을 보냈다는 모양이야.”

   

   손에서 벗어난 포크가 그릇에 떨어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

   

   나. 그 중세 트럼프녀한테 찍혔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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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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