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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8

    <518 – 황제와의 대면1>

     

    “어때~? 제도는 굉장하지~?”

     

    시종장의 분위기에 짓눌려 입도 뻥끗 않고 경계하는 어중칠검과 리프 대신, 매스각키가 천연덕스럽게 화제를 꺼냈다.

     

    “응? 으응, 굉장하네!”

    “하아~? 전혀 굉장해하는 말투가 아니잖아.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민처럼 입을 헤 벌리고 침도 흘리고 눈은 건물을 따라다니고 그래야지!”

    “티토소가를 제도에 데려와도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을 거야!”

    “흥. 카넬레 시의 시장집 막내딸이면 충분히 잘 사는 집이거든? 그런 애가 촌뜨기처럼 놀랄 리가 없지. 그래도 의외로 번화한 도시는 익숙한가 봐~?”

    “조금?”

    “재단의 아가씨들은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수련받느라 이런 경험은 없을 줄 알았는데…”

     

    슬그머니 눈을 돌려 오크노디의 옆얼굴을 쳐다보니 온 신경이 시종장 오카시이네에게 꽂혀있었다.

    비밀거점에서 특훈이나 해왔을 아이가 언제 제도처럼 휘황찬란한 도시를 보았는지 도시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는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났다.

     

    “시종장은 나쁜아이를 잡아먹는 식인귀래♡”

    “히에엑! 정말로?!”

    “풉풉. 왜 그렇게 놀라~? 설마 본인이 나쁜아이라고 생각하는 허접이라서 그런 건 아니지~?”

    “무, 물론 아니지…!”

    “자, 손수건♡ 삐질삐질 식은땀이나 흘리는 허접노디한테 딱 필요한 거야♡”

    “고마워!”

     

    손수건을 받아든 오크노디가 이마를 닦는 시늉만 하고는 배낭에 손수건을 집어넣었다.

     

    “…머해?”

    “수집!”

    “안 돌려줘?”

    “교환손수건은 어때?”

    “교환손수건?”

    “따, 딱히 매스각키의 손수건에 수집가치가 있어서 제안하는 건 아니야!”

    “흐응~ 그렇게나 내 손수건이 가지고 싶었구나? 풉풉. 허접노디, 솔직하게 말하면 손수건을 열 장은 더 구해줄 수도 있었는데.”

    “그건 필요없어!”

    “필요 없어?!”

    “수집품은 뭐든 한 장이면 충분하거든!”

     

    흐응.

    헤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이라서 더 좋다니.

    그렇게나 내 손수건을 특별하게 여기고 싶은 거구나.

    왜인지 모르게 오크노디 곁을 껌딱지처럼 맴도는 암살자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즈앙한테도 손수건을 받았어?”

    “응! 사용하면 상대를 고확률로 기절시킬 수 있는 손수건이야!”

    “그런 실용적인 손수건이!”

     

    뒷골이 땅겼다.

    조금 스타일이 좋고 단아하게 생겼다고 도도하게 굴 줄이나 아는 목석같은 여자인 줄 알았더니 남들 모르게 벌써 비밀손수건을 넘겨줬을 줄이야.

    황녀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내 손수건 돌려줘♡”

    “줬다 뺏는 건 나빠! …근데 진짜 돌려줘?”

    “걱정 마♡ 나도 손수건에 특수효과를 넣고 싶어서 그래♡”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매스각키의 손수건은 특수효과 같은 게 없어도 이미 충분히 특별한걸?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는 최고야!”

    “허접노디… 성인이 되면 틀림없이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남자의 전재산을 털어먹는 요물이 될 거야♡”

    “갑자기 악담?!”

     

    그런 느낌의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어느덧 제도내성에 진입했다.

    유동인구 1억의 대륙 최고로 손꼽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도시답게 내성조차도 천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구역이었다.

    심지어 안으로 향할수록 건축에 사용되는 자재가 강제되며 도시경관에 통일성이 갖추어진다.

     

    ‘이런 대도시는 정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건데 어째서 놀라지 않는 걸까♡’

     

    실은 이미 수도에 남몰래 찾아온 적이 있었나.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초연함이었다.

    하긴 제도도 이렇게나 넓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작정하고 침투했으면 아무도 모를 만도 하지.

    재단은 제도의 높은 물가에 적응할 정도의 부유함을 갖춘 조직이기도 하고 말이다.

     

    “오크노디네 집은 얼마나 부자인 거야~?”

    “갑자기? 음, 잘은 모르겠지만 크루즈선 한 척을 선물로 줄 정도로 부자인 건 확실해!”

    “애매하네♡”

    “그렇지?”

     

    오크노디의 메이드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한마디 했다.

     

    “경제관념이 무너지는 소리를 하고 다니지 마십시오, 아가씨. 그 크루즈선은 대해적의 자질을 지닌 지고쿠 양이 무허가 임대를 한 것입니다.”

     

    무단 탈취였냐!

     

    “그래도 파파보다는 알차게 쓰고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 좋은 배를 안라게의 사도를 봉인한 봉인함으로만 쓰는 건 좀 그랬죠!”

    “아가씨께서는 조금 더 대국적인 시야를 기르실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를 봉인하는 행위는 해당 신의 대리인이 봉인되어 그 종교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요?”

    “이사장님은 안라게의 영향력이 지상에 새로이 닿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계셨던 겁니다.”

    “파파가 왜요?”

    “재단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아가씨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기에 혁명가가 죽은 것처럼 말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하기야 수도경관에 놀라지 않은 것쯤은 그녀의 특별함에 비하면 대수로울 일도 아니긴 하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혁명가가 그녀의 미래에 방해되어 배제당했다면 제국은 과연 어떨까.

    만일 제국이 배제 대상이라면….

    자신은 어떨까.

     

    ‘허접노디는 때때로 허접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무자비해.’

     

    조금 전까지 웃으며 대화를 나눈 상대의 가슴에 칼을 꽂아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무서운 아이가 바로 오크노디였다.

    자신만이 반드시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독선이요 오만이다.

    황녀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죽는다.

    그 목숨을 노리는 이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죽을 확률은 더욱 올라간다.

    하물며 오크노디 정도 되는 존재가 목숨을 노린다면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직결될지도 모르지.

    함께 보낸 시간이 즐거울수록 그런 섬뜩한 경고의 목소리가 마음 속 한편에서 점점 더 커진다.

     

    “여러분의 사담을 들어보니 폐하께서도 무척이나 기뻐하시겠군요.”

    “황제님이요? 왜요?”

    “제국은 유일신 소페미아를 제외한 모든 신들을 배격해온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들의 세계에 반기를 드는 재단의 과감한 행보가 어찌 어여삐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상하다… 요 앞에서 신들의 교황을 셋이나 봤는데 그건 머였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후후후.”

     

    오카시이네 시종장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말은 매스각키에게는 한층 심각하게 들렸다.

    저 남자는 늘 저런 식이다.

    언뜻 듣기에는 기분 좋은 덕담을 던지지만 내용을 파고들면 말의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저 남자는 매스각키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도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시종장 할아버지는 왜 맨날 엉뚱한 소리만 하는 거야~? 나이가 많아서 그래?

    -세상은 수많은 이야기의 연속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사랑에 빠진 남녀의 결혼이라는 이야기는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노처녀의 행복한 결혼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답니다.

    -헤에~. 부케를 받은 노처녀를 본 식장의 남자를 짝으로 만난 거야~?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결혼이란 무엇인지. 부케란 무엇인지. 노처녀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후후후.

    -……?

    -소신은 그런 이야기가 아주 좋답니다. 그래서 폐하의 곁을 좀처럼 떠날 수가 없지요.

     

    절대로 평범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상정한 이야기가 아님이 암시되는 이야기.

    그렇기에 실체가 무엇인지 파헤치겠다며 감히 장막을 들춰보기 두려운 마음이 드는 이야기.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시종장은 황제폐하, 아버님이 제국의 정점에 자리한 이래로 늘 그의 곁을 지켜왔다.

    분명 시종장의 취향에 딱 어울리는 이상한 이야기를 아버님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지.

    여태까지는 그 장막 또한 들추어내고 싶지 않았지만, 오크노디와 함께하는 지금은 용기가 생겼다.

     

    ‘때가 찾아오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아이와의 우정도 나눌 수 있는데 그깟 비밀을 파헤치는 일쯤이야 별것도 아니지♡’

     

    가슴을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른 채, 궁중생활을 하던 당시에 전투복처럼 장착하던 웃는 얼굴을 점검하고 고쳐썼다.

    그러고 나서야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오크노디는 계속 웃고 있었어.’

     

    제도에서도.

    제도로 오는 길에도.

    그보다 훨씬 전부터도.

    강의실, 식당, 기숙사.

    아카데미에서도.

     

    ‘흐응~ 이런 건가~?’

     

    왠지 모르게 시종장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향한 사랑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국 2황녀 매스각키 전하께서 입궁하십니다.”

    “황궁백문을 개방하라!”

     

    백 겹에 달하는 문이 한 겹씩 차례대로 열리며 어전을 향해 가까워진다.

    서른 번째 문을 넘어설 무렵, 늘어선 기둥의 그림자와 차이를 구분할 수 없는 기둥처럼 우뚝 선 그림자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매스각키. 나의 철없는 여동생이여. 권력에 눈이 멀어 잘도 대형사고를 저질렀구나.”

    “풉풉. 여동생죽이기에 진심인 오라버니가 무얼 그리 기세등등한 걸까~?”

     

    물경 수십에 이르는 가신들을 황궁삼십문皇宮三十門 안까지 대동할 수 있는 실권자.

    제국의 정명한 후계자로 공인되는 황태자가 오크노디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재단의 불길한 어린 재액이여. 그대가 이 황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제 발로 사지에 찾아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미안해, 허접노디. 허접 오라버니한테 기분 나쁜 소리나 듣게 만들고.”

    “괜찮아. 하나도 신경 안 써! 막말하는 건 매스각키도 똑같은걸!”

    “…한 대 때리고 싶어졌어♡”

    “사양할게!”

     

    몬스터군단을 빌미로 황제의 앞에서 오크노디와 자신을 어떻게든 물어뜯어 죽일 작정인 오라버니와 사태의 심각성은 안중에도 없이 싱글벙글인 허접노디.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황궁칠십문, 어전회의가 열리는 고위관료들의 문이 열렸다.

     

    “이제야 왔는가, 나의 딸 매스각키여.”

     

    물리적인 문을 넘어서 마법적인 문, 차원의 관문 등으로 이루어진 삼십 겹의 문을 사이에 둔 채로 황제가 옥좌에서 모두를 맞이했다.

     

    “폐하! 신, 파케 히우그마그fake heugmag가 아뢰옵니다. 국경지대부터 제도에 이르기까지 몬스터를 규합하여 군단을 이루고 제국의 정세를 뒤흔드는 반정행위를 저지른 매스각키 히우그마그를 반역죄로 엄히 벌하소서!”

     

    철없는 오라버니는 아버지의 인사를 받기도 전에 멋대로 끼어들었다.

    제도까지 오면서 이래도 괜찮나 싶은 부분을 가차 없이 파고드는 지적!

    이에 면류관의 아래로 얼굴을 덮도록 내려온 면류가 들썩이도록 황제가 실소했다.

     

    “너의 제국은 그런 애들 장난에도 무너질 정도로 나약한 것이더냐.”

    “폐하…? 8개 군단과 교황 셋, 19인의 결사대가 나서고도 제도에의 접근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이를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다니,”

    “하찮구나. 이 자리에 함께 하기에는.”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태자의 뒤를 지키던 가신 한 명의 신체가 펑 터졌다.

     

    “너의 무례함의 대가는 널 따르는 가신이 치렀다. 서른 명을 데려왔으니 앞으로 스물아홉 번의 무례를 더 저지를 작정이라면, 모두의 목숨이 너 하나와 같다고 생각지 말거라. 그보다 못한 것들도 즐비하니 말이다.”

    “큭. 폐하…!!”

     

    황제가 제도침략의 위기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던 이유. 이는 그를 지키는 군단이나 어중칠검 따위보다 황제 본인이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서운 아이만큼 무서운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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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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