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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8

    “루이스?”

    갑작스럽게 등장한 다크엘프 경찰의 모습에, 세이어는 살짝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쪽에서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놓고 왔는데도 굳이 또 새로운 인원을 보냈을 줄이야, 아무래도 자신의 팀이 그녀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으음, 이런.”

    그녀가 보게 된 상황은 꽤나 공교로웠다.

    하필이면 쓰러진 경찰관을 향해 검을 겨누는 모습이라니. 

    그러니 그녀가 테러리스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까지 지팡이를 겨누고 있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리라.

    그리고 지금은 테러리스트의 역할인 그녀도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지팡이에 담긴 마법이 그녀에게 위협적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만일 그녀가 자신을 향해 마법이 발사되면 빈틈이 생기게되고 그 사이에 세이어가 어떤 돌발행동을 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도 그녀도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니, 시에나는 그렇게 지팡이를 손에 쥔 채로 천천히 세이어를 향해 다가가며 실망스러움이 담긴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죠? 저는 저희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세이어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지팡이와 그에 담긴 마법을 곁눈질로 분석하고는 검을 놓고 양손을 들었다.

    “경관님, 상황에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진정하세요.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사정이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를 향해 그녀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영창하겠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그녀의 제지에 조금씩 그녀를 향해 다가가려던 그가 순순히 멈췄다.

    환기시스템이 작동해 주변에 ‘마계의 숨’이 깔리지 않은 지금은 그녀의 자그마한 경찰용 마법 지팡이라도 빈틈을 만들기엔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고, 그렇게되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황을 살피는 그녀에게 어떤 대응을 당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굳이 의식이 있는 경찰을 잘못 건드렸다가 귀찮아지는 것도 사양이었고.

    세이어는 말을 이었다.

    “저희는 아직 같은 편이 맞습니다. 경관님이 현재 상황에대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군요.”

    “오해요? 대체 어떤게 오해죠?  당신이 그 검을 쓰러진 저희 대원에게 겨누고있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이 불법무기들…. 저는 어떻게봐도 상황을 좋게 보기 어렵습니다만. 당신, 정말로 경호업체의 직원이 맞긴 한겁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배신감이 섞여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어떤 사소한 오해의 여지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황은 명백했다.

    그는 경찰의 몸에 검을 겨누고 있었고,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를 찔렀을 것이 분명한 상태였으니까.

    그 장면에선 어떤 자의적인 해석도 들어갈수 없었다.

    이는 경관살해의 현행범으로 체포해도 부족하지 않을 사안이었지만, 그녀가 그를 당장 체포하지 않는 것은 단지 그의 변명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하면 그런 상황을 오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입을 열 수가 있는지.

    그러자 그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생긋 웃으며 가만히 손을 든 채 말을 이었다.

    “경관님. 사실은, 그녀가 저를 조종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녀의 마법에 당했을 뿐이고요.”

    그의 당당하다못해 뻔뻔한 대답에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예? 조종이요?”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네,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저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방법이었겠죠. 그녀정도 되는 마녀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거든요.”

    그의 말은 아주 이상한 소리는 아니었다.

    인간의 육신을 조종하는 마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녀와같은 고서클의 서클러라면, 정말 서클만으로 사람의 육신을 조종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생각해보십시오, 저도 그녀를 막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경찰을 죽이려 했겠습니까? 저와 같은 목적을 지닌 사람을? 논리적이지 못한 전개잖습니까. 그녀가 저를 조종해서 죽이라고 한 게 아니라면 말이죠.”

    살인이란것이 제정신으론 아무런 이유없이 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 제정신으로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몸을 강제로 조종당했을 뿐이라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항간을 떠들썩하게 하고있는 ‘테러리스트’라면?

    그리고 ‘테러리스트가 경찰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딱히 이상할 부분이 없는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닌가?

    그는 잠시 테러리스트를 향해 시선을 보내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힌 두차례의 테러행위, 그러나 두차례 모두 놀랍게도 사망자는 없었다.

    같은 일이 두번이나 일어났다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을 체포하기위해 투입된 경찰들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수면마법으로 재워두었을 뿐이었고, 자신을 죽일 작정으로 마비성분이 섞인 생화학무기, 그리고 불을 뿜는 창과 아스릴로 제조된 장검등의 불법 장비를 무장하고 온 이들조차 죽이지않고 마비시켜 무력화시킨 인물이다.

    정말 그녀가 그의 몸을 조종하며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고자 했다면, 진작에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았겠지.

    “그녀가 테러리스트일지는 몰라도, 살인자는 아닙니다.”

    그녀는 건물을 폭파시킬지언정, 사람의 목숨을 이유없이 앗아갈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자 루이스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테러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오호, 이거 정말 재미있군요. 경찰에게 이토록 신뢰받는 테러리스트라니! 당신의 이 모습을 언론에서 봐야하는건데 말입니다.”

    “…….”

    그런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긍정이나 부정등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조용한 모습이 그녀에게는 묘한 신뢰감을 주는 듯 했다.

    광대처럼 수다스럽게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놓는 인간보다는, 과묵하고 진중한 인간이 더 신뢰가 쌓이기 마련이니까.

    그에 시에나는 조금 더 단호해진 목소리로 바닥에 널부러진 불의 창과 사용된 연막탄, 이스릴 장검등을 발끝으로 차며 물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이 불법 무기들은 또 어떻게 해명하실거죠? 백번 양보해 당신이 조종당한 거라고 쳐도, 이런 장비는 하인리히협약을 위반하는 물건들 아닌가요? 이건 명백히 그쪽의 잘못인것 같은데요.”

    그녀는 오히려, 자신들을 아이기스라고 소개한 경호업체 직원이 지니고있는 수준 이상의 불법무기들이 더욱 수상쩍었다.

    그에 루이스는 다시금 해명아닌 해명을 늘어놓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은 죄송합니다. 불법 무기에 관한 부분은 개인의 잘못이니, 이후에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서 적법한 처벌을 받도록 하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잡다한 논쟁을 하기보다는 눈앞의 적을 상대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말은 길었지만, 결국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는 인정이었다.

    그의 대답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지팡이를 겨눈 채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었다.

    “조용히 하십시오. 자세한 사정은 서에서 듣겠습니다.”

    -찰칵, 짤랑.

    “부디 두분 모두 얌전히 협조하시길.”

    은색으로 반짝이는 그 한쌍의 고리를 보자, 이 상황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이런 이런……. 이런 전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그리고 잠시 후,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제게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혹시, 혼자 오셨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시에나는 탐탁찮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거죠?”

    그러자 그는 어깨를 한차례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냥 확인입니다.”

    아까부터 추가적인 인원은 보이지 않았다.

    뭐, 겨우 한명뿐이라면야.

    그 순간이었다.

    -푸쉬익–!

    돌연, 세이어에게서 흰색 연막이 피어올랐다.

    ‘역시 도주하려는 건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피어오른 하얀 연막으로인해 그의 모습이 감춰지자, 그녀는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지팡이를 내밀며 미리 영창해둔 제압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무슨…..!”

    마법이 사용되지 않았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피워낸 연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닌, 마지막까지 숨겨두었던 ‘마계의 숨’이었으니까.

    환기시스템이 맹렬히 작동하고 있었던 방금은 사용해봤자 낭비였기에 아껴두었지만, 환기를 어느정도 마친 지금은 새로운 기체를 인식한 환기시스템이 다시 작동하기 전까지 적어도 몇초정는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몇초는, 마법사의 방해를 받지않고 경찰 한명을 죽이는 데엔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었다.

    -찰칵.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접이식 칼을 꺼내었다.

    소드마스터의 육신을 지닌 지금은 이정도 무기만으로도 충분하니까.

    “…!”

    그렇게 오러가 실린 검이 그녀를 향해 쇄도하는 순간…

     

    마침내 ‘그녀’가 움직였다.

    -파앗, 퍽, 철컥.

    바닥을 박차는 소리와 묵직한 타격음, 그리고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와 미세한 장치들이 부딫혀 발생하는 쇳소리가 거의 한순간에 압축되어 쏟아졌다.

    “……?”

    잠시 후 그들을 감쌌던 연기가 옅어지면서 시에나가 보게 된 것은, 그녀가 루이스를 구둣발로 밟은 채 예의 그 ‘창’을 한손으로 겨누고 있는 장면이었다.

    -팍-.

    갑자기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그녀를 일깨운 것은, 공중에서 떨어져 바닥에 박힌 주머니칼이었다.

    오러의 영향으로 살짝 푸른색을 띄던 칼날은 점차 빛을 잃고 흐려져갔다.

    그것으로 그녀가 한가지 확실히 깨달은 것은, 연막 속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 테러범이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시에나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담긴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이, 이런다고 당신의 혐의가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 이거 아무래도 또 제가 악역을 맡게된 모양이군요? 당신은 테러범인데도 이런다니, 이거 참 불공평한데.”

    “…….”

    대답할 가치가 없는 소리였다.

    그녀의 침묵에 재미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는 세이어.

    잠시 후,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시에나가 어색한 대치상황을 이어가는 그녀에게 물었다.

    “으음, 이제 그를 체포해야하니 놓아주시겠습니까?”

    그는 그녀의 부탁에도 끝까지 자신의 이마에서 불 뿜는 지팡이의 끝을 거두지 않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그럴리가요, 그녀는 절 죽일 생각인걸요. 그렇지 않나요?”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애초에 그를 살릴 생각이 없었으니까.

    시체에서도 정보는 얻을 수 있는데다, 산 자와는 달리 죽은자는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망설임은 형태가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결심만이 있을 뿐.

    헌데 그런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망설이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서’일 뿐이다.

    아직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에.

    그러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시에나가 놀라 외쳤다.

    “안돼요! 그는 체포해야합니다! 당신은 살인자가 아니잖습니까?”

    그녀의 외침에 세이어는 오히려 비죽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어떤가요? 테러리스트.”

    “…….”

    하지만 그녀는 타인의 도발이나 비는 말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다른 것을 듣고 있었으니까.

    -끝났어요. 철수하죠.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

    해킹을 마친 레니에였다.

    -레니에, 정보는 다 얻었나?

    -네, 확실히요.

    -다행이군. 그럼, 이 녀석은 어떡하지?

    -그가 아는 건 이제 필요 없어요. 죽이든 살리든 당신 맘대로 하시면 돼요. 

    -…..음, 알겠네. 뭐, 이참에 숫자 하나를 줄여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많이 피로한 작업이었는지, 레니에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딱히 그런 잡담을 나누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다.

    자세한 이야기들이야 돌아가서 하면 되리라.

    -이제 당신도 한계죠? 빨리 게이트를 열게요.

    그녀의 말에 여인은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 창은 주머니에 넣고다니던 2연장 중절식 지팡이보다는 조금 커지긴 했지만, 전체적인 사용법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여인은 자신을 여전히 바라보는 시에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에나, 그의 말대로다.”

    “예?”

    “타인을 너무 믿지 마.”

    “뭐라고요? 그게 대체 무슨-, 잠시만요! 당신!!”

    그녀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 것일까?

    시에나가 불안한 듯 외쳤다.

    “잠깐만, 당신 지금 뭘 하시려는-!”

    하지만, 이미 방아쇠는 당겨졌다.

    —!

    그러자 불의 창이 불을 뿜음과 동시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공간의 파열음이 겹쳐지며 허공을 베어가르듯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게이트였다.

    잘 통제된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고위급 마법현상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이는 시에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

    “당신, 지금 대체 무슨 짓을…!”

    시에나가 씹어삼키듯 말을 뱉었지만,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열린 공간으로 발을 올렸다.

    “…….”

    공간 너머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먼지와 파편들을 애써 막아내던 그녀는 이후 정신을 차리곤 곧장 범인을 잡으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그녀는 그렇게 시체 한구와 허망함을 남겨둔 채 현장에서 사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가 스스로 걸었던 제약과 서약은 불과 이틀만에 대화문과 삽화가 나오지 않아서 망했습니다.
    이럴수가…ㅜㅜ

    제가 서약과 동시에 제약으로 걸었던 건 여러분들의 신뢰였습니다만..
    부디 많이 잃은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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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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