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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8

       중원 무림의 발족 이래로 끊임없이 그들과 나란히 이어져 오던 이름.

         

       천마신교(天魔神敎).

         

       그 이름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을 다투던 역대 최강으로 손꼽히는 천마의 죽음과 함께.

         

       늘 되풀이되는 역사였다.

         

       마교의 준동.

         

       당대 천마의 죽음.

         

       후대 천마의 등장.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뒤를 이어 천마의 자리에 오를 이가.

         

       장로들은 그녀에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후계를 정해두어야 한다고 간언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듣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마교의 재건을 꿈꾸는 이들의 수 또한 적지 않다.

         

       또한 십만대산에는 천마신공의 구결이 담긴 비급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을 터다.

         

       천마신공이 워낙 난해한 탓에 비급만 가지고 익히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모르긴 몰라도 수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한 인재 정도는 되어야 하리라.

         

       덕분에 세상은 난리가 났다.

         

       “정사연합이 마교를 무찔렀다!”

       “천광검신이 천마의 목을 베어 무림에 평화를 가져왔다!”

         

       온갖 환호성이 온 마을, 도시에 가득했다.

         

       되찾은 활력.

         

       넘실거리는 희망.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역사의 마침표에 모두가 기쁨을 표했다.

         

       이러한 희망으로 말미암아 무림은 빠르게 평온과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제법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정사연합의 해체 또한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고생 많았소.”

       “그대들도 고생 많았소.”

       “크흠…, 다음에 만나면 내 거하게 한 잔 사리다.”

       “호오, 그때가 기다려지는구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무림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한 적의 등장에 똘똘 뭉쳐 싸운 덕분이었다.

         

       서로에게 감화되어 정사의 경계와 색이 흐릿해진 상황.

         

       그렇기에 그들은 한시바삐 이별을 택했다.

         

       모호한 경계선이 그들의 사상을 뒤흔들어 도리어 큰 혼란이 찾아올 수도 있었기에.

         

       이를 위해 정파는 연합의 해체 후 자신들을 이끌어 줄 새로운 맹주를 추대했다.

         

       새로이 맹주가 된 이는 다름 아닌 선존.

         

       그는 나이를 핑계 삼아 한사코 거절했으나, 정파 무림의 주요 인사들이 전부 그의 앞에 무릎 꿇는 바람에 무림이 안정될 때까지만 직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른바 임시 맹주가 된 셈.

         

       그의 지휘 아래 상흔은 빠르게 아물었다.

         

       마교와의 전쟁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파괴된 청해성도.

         

       그 뒤에 전장이 된 곤륜산도.

         

       그곳 외에도 검은 태양의 인력에 뿌리 뽑힌 곳들이 다시금 채워졌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던 상흔이 사라지고, 시간이 흘렀다.

         

       반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는 대신 의문을 품었다.

         

       “무신께서 자취를 감춘 지도 벌써 반년째구먼.”

       “천마와의 생사결에서 몸이 크게 상하셨다지 않나.”

       “그러니까 말일세. 대체 얼마나 큰 부상이길래….”

       “소문에 의하면 무신께서 이미 돌아가신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돈다더구먼.”

       “예끼, 이 사람아! 그런 불길한 소리는 입에 담지도 말게!”

         

       무신(武神).

         

       천마를 죽인 천광검신 백우진에게 새로이 주어진 별호였다.

         

       그의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검은 태양이 사라진 직후에는 천마와 맞서 싸운 그의 무위에 대해.

         

       반년이 흐른 지금은 당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를 걱정하며.

         

       “…그이 소식은?”

       “없어요. 어디에도.”

       “하아.”

         

       하오문도가 전해준 서찰을 읽으며 고개를 젓는 여인들.

         

       백우진이 크게 다쳐 정양 중이라는 이야기는 그들의 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변명이었다.

         

       그가 사실 천마와 전생의 연인이었고, 그런 그녀를 기리기 위해 떠났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글쎄.”

         

       푸념하는 여인들.

         

       그녀들은 묵묵히 기다렸다.

         

       슬픔을 흘려보낸 그가 스스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반년이라는 시간은 어찌 잘 버텼다.

         

       억지로 더 많은 일들을 해결해 가며 그를 떠올릴 시간을 강제로 줄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무림에 평화가 찾아들기 시작한 지금, 그녀들은 한가해졌다.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도 찾기 힘들 만큼.

         

       그 와중에 백우진은 너무나도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누구 한 사람 그와 비슷한 얼굴을 보았다는 소문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

         

       그러니 섣불리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상황.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그를 그리워하는 일뿐.

         

       하릴없이 찻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을 때였다.

         

       “저…, 갑자기 궁금해지는 게 있는데요.”

         

       말을 꺼낸 이는 용설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가가께서 돌아오시면…, 어디로 오시는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어디로…라니?”

       “그야 당연히….”

       “어…….”

       “…….”

         

       그리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홀연히 떠나간 그가 나타나는 곳은 어디인가.

         

       그 물음에 누구도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본가인 섬서백가?

         

       아닐 터다.

         

       가문과 그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허나 그곳을 제외하면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왜냐면 그는 이방인이니까.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어쩌다 흘러 들어왔을 뿐인 방랑자이기에.

         

       이를 떠올린 당선영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는 제갈연지.

         

       그러나 아직 눈치채지 못한 도경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그게 뭔데요, 언니…?”

         

       이에 그녀가 답했다.

         

       “집을 짓자.”

       “집이요?”

       “응.”

         

       돌아올 곳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이다.

         

       그는 결국 자신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를 기다리며 집을 짓자.

         

       “모두가 함께 살 집.”

         

       백우진이.

         

       그와 평생을 약속한 여인들이 함께 살아갈 집.

         

       집의 이름 또한 정해져 있다.

         

       “백가장.”

         

       꿈이 구체화 되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어디다 지을까요?”

       “섬서…는 안 되겠지.”

       “사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북해로 가서 사는 건 어떨까요?”

       “…설란이 너는 나가 있어.”

       “아아, 언니 잘못했어요!”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 * *

         

         

       정처 없이 걸었다.

         

       모습을 감춘 채 길이든, 길이 아니든, 그저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그리고 그녀와 함께했을 뻔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다 금세 사라져 간다.

         

       그렇게 다 흘려보내고 난 뒤, 오직 하나만이 남았다.

         

       “…여행을 떠나자고 했었지.”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의 9할은 여행 중이었다.

         

       아주 무겁고, 어두운 과업을 등에 짊어진 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떠난 여행.

         

       그렇기에 그녀는 여행하고 있으면서 모든 일이 끝난 뒤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어떤 짐도, 의무도, 목적지도 없이.”

         

       그저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 머물고, 떠나고, 맛보기를 반복하는 여행.

         

       또렷한 건 오직 서로를 향한 감정뿐인, 흐릿하면서도 행복으로 가득 찬 여행을 떠나자고.

         

       그것만이 남는 건 이것이 미련이라는 뜻일 터다.

         

       그렇기에 그 미련을 털어내기로 했다.

         

       이곳에서 인연을 쌓아 올린 여인들이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어설프게 미련을 가슴에 남겨둔 채 그녀들과 살아가는 게 더 큰 잘못이라고 여겼기에.

         

       “그래, 떠나자.”

         

       소중히 품에 안고 있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뒤에는 큼지막한 산이, 앞에는 얕은 강물이 흐르는 한적한 곳.

         

       그녀를 묻기 전.

         

       백우진은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조심스레 빼서 품에 넣었다.

         

       걸친 의복과 검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물건이었다.

         

       커다란 돌을 깎아 그녀의 묘비를 만들고, 글을 새겨 넣는다.

         

       이 세상에서 오직 백우진만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첫사랑」

         

       오직 이 세 글자만을 적어 넣었다.

         

       그거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사내에게 그보다 애틋하고,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없기에.

         

       그곳에서 사흘을 보냈다.

         

       그녀를 기리며 눈물을 펑펑 쏟아낸 뒤.

         

       나흘째 되는 날에는 마침내 길을 떠났다.

         

       그녀와 약속했던 것처럼 어떤 목적지도, 계획도 두지 않은 채.

         

       정처 없이 걷다가 그녀가, 자신이 좋아할 만한 풍경 앞에서 멈춰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중원 전역을 떠돌았을 때는 하나의 계절이 흐른 뒤였다.

         

       다시 그녀의 묘비 앞에서 사흘을 보낸 뒤, 다시 길을 떠났다.

         

       이미 중원 전역을 여행하고 왜 또 떠나느냐고?

         

       “계절이 달라졌으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곳이라도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눈에 담는 풍경이 달라지지 않던가.

         

       그렇게 중원 전역을 계절마다 돌며 나아가기를 네 차례.

         

       마침내 머릿속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던 상념들이 그녀를 따라 훨훨 날아갔다.

         

       이제는 되었다.

         

       이 이상 미련 떠는 것은 죽은 그녀 또한 원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확신이 섰다.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듯, 첫사랑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은 채 힘든 시간 제 곁을 지켜준 여인들과 오직 앞만 보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

         

       마지막으로 당도한 그녀의 묘비 앞에서 백우진은 속삭였다.

         

       “나중에 찾아올게. 아마도 아이 낳으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 그녀에게 보여주리라.

         

       그리 말한 뒤, 백우진은 마침내 일 년 동안 벗어나 있던 원래의 길에 올라섰다.

         

       “…가면 일단 죽고 시작하겠지.”

         

       지금까지 기다렸을 그녀들을 떠올리며 쓰게 웃는 백우진.

         

       잠시 고민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녀들이 어디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한동안 세상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던 터라 정보가 필요했다.

         

       이에 늘 그렇듯 하오문 지부를 찾아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그의 관심을 잡아끌었다.

         

       “백가장이 드디어 완공됐다지?”

       “그렇네. 열흘 뒤에 완공식을 한다더구먼.”

       “허어…, 그때는 무신께서도 모습을 보이시려나?”

       “아무렴 그렇겠지.”

         

       백가장.

         

       무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도 귀에 쏙쏙 박히는 것이 더없이 낯익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집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집 짓는 데에 머리 맞댄 가문이 좀 대단한 가문이어야지.”

       “하긴…, 제갈세가, 사천당가, 흑산도가…, 거기에 북해빙궁과 황금 상단에서 온갖 값비싼 자재들을 지원했다던가.”

       “듣기론 천 년을 살아도 될 정도라고 하더군.”

         

       익숙한 가문의 이름들이 하나둘씩 귀에 꽂힌다.

         

       “…….”

         

       저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인 듯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좀 먹먹하면서도, 덤덤한 듯한 느낌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쓰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어떻게 잘 표현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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