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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9

       *** ***

         

       이른 새벽 연무장.

         

       “그래서 당무지라는 자와 또 도박을 겨루었지 순간적인 속도의 가감이 상당한 자더구나. 특히 연전으로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진 상태인지라….”

         

       연무장에 쳐들어온 위서련은 나와 일행들을 붙잡고 어제 도박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어제, 당도경이 위서련과 도박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결과는 꽤 의외였다.

         

       위서련이 당도경에게 제법 비볐다던가 하는 도박의 내용적인 부분이 아니라, 당씨들이 위서련이 계속 도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부분이 말이다.

         

       당씨들은 그냥 위서련에게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다니는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위서련과의 도박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나 보다.

         

       “하여 나는 손목을 꺾어으며 단번에 잔을 휘돌리며 당무지를 현혹시켰고 그 판을 따냄으로서 흐름을…”

         

       이야기 자체는 온통 도박기술과 심리전으로 점칠되어 있었지만 위서련이 이렇게 신바람이 난 이유는 뻔했다.

         

       도박장에 드나드는 당씨들과 마음이 통해 친구 먹은 것이 어지간히 기쁜 모양.

         

       “헤에, 그래서요?”

         

       “그래서 나는 그 흐름을 유지하고자 안력이 힘을 집중했지. 당무지의 공세를 한번만 받아내면 흐름을 완전히 굳힐 수 있으니까. 당무지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특정 기술을 사용할 때 나오는 버릇이 있더군. 그래서…”

         

       흑묘가 그런 위서련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추임새를 넣어 주고 있었지만 위서련은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그저 신나게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뭐 친구를 사귄다는 건 기쁜 일이지.

         

       그렇게 위서련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객당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당도연과 당소열 그리고 당도경일 것이다.

         

       “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본인이 나타났네요.”

         

       “도연 소저! 소열 소저도 오래간만입니다!”

         

       일행들이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당도연과 당소열의 등장에 반가워하며 다가갔다. 도경 역시 위서련과 나를 향해 인사를 해 보였다.

         

       반갑게 인사하던 일행들의 얼굴에는 이내 의문이 서렸다. 당도연과 당소열의 분위기가 영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를 살피는 일행들을 보며 당도연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작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예? 그게 무슨….?”

         

       일행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당도경이었다.

         

       “당가에 무림맹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영물을 진정시키는 부적을 천하 각지에 전달해 달라고요. 시일이 지체될 시 자칫 잘못하면 피가 흐를 수 있는 일이니 당가에서는 가장 빠른 마차를 동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당가에서 가장 빠른 마차가 비천마차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러니 비천마차의 마부와 정비공인 당도연과 당소열은 일행과 헤어져 천하 각지를 쏘다녀야 한다는 소리였다.

         

       즉.

         

       이별이다.

         

       “아…”

         

       “그런.”

         

       일행들의 얼굴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언제 떠나십니까?”

         

       당소열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곧.”

         

       “그렇게 빨리요?”

         

       당소열의 무심한 대답에 혁기린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제대로 된 이별을 맞이할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운 것일까.

         

       당소열은 그런 혁기린을 물그러미 바라보다가 양쪽 뺨을 손으로 잡고 조물딱거렸다.

         

       당소열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지만 그런 당소열을 보는 혁기린의 시선은 여전히 안타깝기만 했다.

         

       “언젠가, 다시 볼일이 있겠지.”

         

       찍찍!

         

       혁기린의 발치에 있던 서공이 당소열을 향해 다가갔다. 당소열 곁에서는 늘 얌전히 있던 서공은 드물게도 당소열의 발치에 얼굴을 마구 비볐다.

         

       서공도 당소열과 이별해야 함을 직감한 것일까.

         

       위서련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담뱃재를 털어낸 뒤 곰방대로 서공의 머리를 긁어 줄 뿐이었다.

         

       “제자도 잘 있거라.”

         

       “예. 뭐, 스승도 몸 조심하십시오.”

         

       이는 늘상 전하는 안부 같은 것이 아니었다.

         

       현재의 당도연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태였으니까.

         

       수리가 덜 된 비천마차를 한참동안 몰아서 안 그래도 속도를 내고 싶은 욕구가 쌓여 있는 상태. 그러한 상황에서 완전히 수리된 새 비천마차를 받았고 그에 더해 무림의 평화를 위해 부적을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명분까지 갖췄다?

         

       상상하기도 싫군.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 질 지경이다. 당소열도 내가 조심하라는 뜻을 이해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왜 그딴 걸 만들어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

         

       아 인생 쓰다.

         

       그런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는 당소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당소열이 지금 어떤 심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일행들과 인사하고 있는 당도연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도연 소저, 그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후후, 저야말로 고맙지요. 호 무사님과 여러분들을 태우고 천하를 주유하였기에 이 당도연과 비천마차는 천하제일의 마부와 마차라는 명예를 얻었으니까요.”

         

       “언젠가 다시 볼일이 있겠지요?”

         

       “예. 저는 멈추지 않고 천하를 돌아다닐 생각이니까요.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재회할 수 있겠지요.”

         

       대화는 정상….적? 이라 할 수 있지만, 당도연의 얼굴에는 헤어짐의 아쉬움만큼이나 질주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드러나 있었으니까.

         

       대체 얼마나 달려댈 생각인거야.

         

       지난 수 년간 나와 일행이 천하를 주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 준 비천마차. 그런 비천마차와 쌓은 추억이 적지 않았음에도 그런 아쉬움이 싹 날아가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쉽군, 그대와는 다시 한 번 승부를 겨루어 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다시 기회가 찾아오겠지요.”

         

       “후, 그래. 당장 그대를 꺾는 것은 어려우니. 기약 없는 약속이 딱이로군.”

         

       위서련은 웃으며 그리 말했다. 당도경 역시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당도경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천하를 주유할 비천마차에 타야 한다니 진짜 불쌍해 죽겠네. 그리 생각하니 위서련과 인사를 주고 받고 있는 당도경의 얼굴에 서려 있는 엷은 미소가 어째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의 미소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 형, 무사하시게나.”

         

       “호 형.”

         

       도경이 담담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돌연 물었다.

         

       “호 형은 오랫동안 비천마차를 타지 않았소? 혹시 그리 견딜 수 있는 비결이 있소? 아니면 요령이라도?”

         

       아무래도 당도경은 해탈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런 건 없네. 그저 익숙해지시게나.”

         

       “아.”

         

       당도경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그저 굳세어라, 도경아.

         

       도경이 절망하는 모습에 쓰게 웃고 있자니 위서련과 당소열이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맙군. 덕분에 즐거웠다.”

         

       “별 거 아닌 일이니 인사까지 할 필욘 없어.”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

         

       위서련의 얼굴에는 드물게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 뭐 당소열이 넘겨 준 암기함 때문에 좀 소란스러웠어야지. 위서련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받은 선물이 당소열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소열은 그런 위서련의 걱정에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제야 좀 사람 다운 표정을 짓게 되었군.”

         

       “….음?”

         

       사람다운 표정이라.

         

       확실히 그럴지도 몰랐다. 위서련의 행동이야 풍부했지만 얼굴은 항상 무표정이나 불길한 미소밖에 지을 줄 몰랐던 위서련의 표정은 부쩍 자연스러워졌다.

         

       사람과 어울리는 만큼 역시 사람다운 표정 역시 익어가는 것일까.

         

       “지금처럼만 해라. 지금처럼만.”

         

       당소열은 그러한 말을 남기고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아쉬워하는 일행들, 훌쩍이는 혁기린과 함께 떠나가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깨만 봐도 신나있는 당도연과 달관한 당소열 그리고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터덜터덜 걷는 당도경의 뒷모습은 이내 사라졌고 머지않아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

         

       객당은 당가 내부에 있는 만큼 비천마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련히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와 세차게 피어오르는 먼지가 비천마차가 떠나갔음을 알려왔다.

         

       이윽고 그 아련한 소리마저도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모두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천안.”

         

       그 때 위서련이 나를 불렀다.

         

       “본녀와 한 판 붙어줄 수 있겠는가.”

         

       이별의 쓸쓸함을 취미생활로 달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려 했으나 위서련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전력을 다해서 말이다.”

         

       아무래도.

         

       위서련은 나에게 도전할 생각인 듯 싶었다.

         

       *** ***

         

       위서련은 당소열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처럼만 해라.

         

       그런 칭찬을 들을 정도로 무언가를 한 기억은 없었다.

         

       위서련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으니 그녀는 골몰히 생각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무공의 목적은 무엇인가.

         

       적을 쓰러트리고 나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박의 목적은 무엇인가.

         

       돈을 따는 것이다.

         

       하지만 정녕 도박은 돈을 얻는 것만이 목적인가? 그렇다면 위서련은 굳이 도박을 익히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에게 돈을 강탈하고자 하자면 무공만큼 좋은 수단은 또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자신은 도박을 익혔는가.

         

       아버지인 위지천의 고독함을 달래주기 위함이었다. 무공이라는 수단으로는 아버지의 옆에 나란히 설 수 없었기에 도박이라는 수단을 택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위서련은 이내 답을 깨달았다.

         

       도박이란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했다. 상대와 마주 앉아 승패와 관계없이 그 승부를 오롯이 공유한다.

         

       이는 즉 어울림이었다.

         

       사실, 도박으로 사람과 친분을 다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금전이 걸린 일이기에 앙금이 쌓이기도 쉽고 떳떳하게 드러내기도 힘든 취미이니까.

         

       ‘그러나, 내게는 어울리는 옷이겠지.’

         

       위서련은 무림에 나온 이래 참석했던 연회를 떠올려 보았다. 사람들을 사귀기에 최고라는 음주가무가 다 갖추어진 연회였으나 위서련에게 다가올 엄두를 낸 이가 얼마나 있었던가?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이들 중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자가 있었던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당가의 도박판은 어떠했는가. 그간 열흘간 치고 받았던 이들과 그들 뒤에 서있던 당씨들과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한 차이는 어디서 난 것일까.

         

       위서련이 음주가무에는 익숙치 않고 도박에는 익숙했기 때문에?

         

       아니면 당씨들과 어울린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위서련은 고개를 저었다.

         

       그 차이는 바로 몰입이었다.

         

       위서련은 음주가무에 몰입하지 못했다. 술이 주는 알싸함과 달근함을 즐기지 않았고 무희들과 악공들의 운율에 들뜨지 않았으며 모르는 이들과 대화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반면 당씨들과의 도박은 어떠했던가.

         

       위서련은 당씨들을 이기기 위해, 당씨들은 위서련을 이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판에 집중하지 않았던가.

         

       그 집중이 곧 서로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당소열은 지금처럼만 하라는 말을 남겼겠지.

         

       당소열이 남긴 말에 의미를 모두 파악한 위서련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 더욱더 도박에 매진하고, 그리고 더욱더 열성적으로 위를 추구하겠노라고.

         

       그 결과가 호천안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것이었다.

         

       위를 추구한다면 응당 천하제일을 노려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누군가는 그 말을 듣는다면 황당해하며 어째서 그렇게 되는 것이냐고 반문할 일일지도 모르나 위서련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위서련은 천마.

         

       마음을 굳게 먹었다면 천하의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자였으니까.

         

       그러니 눈앞에 있는 호천안을 쓰러트린다.

         

       그렇게 의지를 다지며 위서련은 눈을 부릅뜨고 호천안을 노려보았다.

         

       호천안은 그런 위서련의 태도에 난처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다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진짜 진심으로 갑니다?”

         

       “바라던 바다.”

         

       “뭐….그래요.”

         

       호천안이 건성으로 끄덕이며 도박 도구를 판에 올렸다. 잔 하나와 주사위 둘을 올리는 것이 종목은 주사위 굴리기인 모양이었다.

         

       “그대의 주종목은 야바위가 아니었나? 나는 그대의 전력을 맛보고 싶은데.”

         

       “무슨 종목이건, 제 실력은 같습니다.”

         

       참으로 광오한 말이었다.

         

       “그래도 주사위 굴리기가 저에게 가장 유리한 종목이거든요.”

         

       “그렇군.”

         

       선후를 정하는 주사위가 던져졌다. 사실 주사위 도박은 선후공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도박계에서는 정설처럼 통한다. 왜냐하면 본인이 잔을 흔들었다 한들 잔 속의 주사위의 눈을 마음대로 뽑아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사위의 눈을 원하는 대로 뽑아낼 수 있다면 선공의 이점은 명확하다.

         

       호천안이 던진 두 개의 주사위는 6과 6, 단번에 12를 뽑아냈다.

         

       위서련 역시 주사위를 굴려 12를 뽑아내며 따라붙는다. 하지만 호천안은 다시 주사위를 주워 뿌리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또 12를 뽑아냈다.

         

       위서련은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선공을 정하기까지 일곱 순배가 흐르고 선공은 호천안이 거머쥐었다.

         

       호천안이 잔을 쥐는 모습을 보며 위서련은 쓰게 웃었다.

         

       선공을 취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했기에 싸움을 걸었건만, 돌아온 것은 없었다.

         

       도리어 심력은 심력대로 소모했거늘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계속해서 12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 호천안의 굳건함만 느꼈으니 손해도 이런 손해가 또 있을까.

         

       그러나 위서련은 한탄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지요.”

         

       호천안이 곧바로 판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위서련은 눈을 부릅뜨고 호천안의 잔놀림에 집중했다. 일정한 손놀림 일정한 박자.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잔 섞기였다.

         

       탁.

         

       그게 전부였다.

         

       잔을 다섯 번 정도 흔들어 내려놓은 호천안. 정직한 잔놀림에 위서련은 그 잔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주사위를 간파했다. 그 눈은 2와 6이다.

         

       겉으로는 정직해 보였지만 호천안은 몇 가지의 기술을 혼용해 사용했고 위서련은 이를 꿰뚫어 보았다. 간파하기 쉬운 기술은 아니었지만 또 그렇다고 엄청난 기술은 아니었으니 위서련의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정말 주사위의 숫자는 8인가? 내가 속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속았다는 위화감조차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속아 넘어갔다는 건 가능한 일인가.

         

       지난 열흘간 위서련의 실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호천안은 위서련의 실력이 성장했다는 사실만 알 뿐 위서련이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적절한 기술을 던져서 반응을 살피는 것일지도 모른다.

         

       위서련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가정도 저런 가정도 모두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대체 무엇이 정답일까. 그리고 골몰하던 위서련은 문득 호천안을 바라보았다.

         

       무엇 하나 알 수 없는 호천안의 표정을 바라보던 위서련은 자신도 모르게 가전 다섯 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둘에 다섯 개.”

         

       첫 수에 판돈을 다섯 개 씩이나 건다. 부지불식간에 파격적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수를 둔 위서련은 어쩐지 지금의 판단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위서련의 실력에 대한 시험? 혹은 다음 판을 위한 심리전?

         

       다 틀린 말이었다.

         

       ‘그저 내 마음속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환상이지.’

         

       지금 눈 앞에 있는 호천안이라는 자가 누구인가.

         

       스스로 천하제일의 도박사라 자부하는 자이자, 반년간 그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불리함을 극복하고 천마에게 단 한번의 패배도 허용치 않으며 그 실력을 증명해보인 자였다.

         

       그런 자가 진심을 내겠다 말한 판이었다. 그런 판에서 과연 호천안이 수를 낭비할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러니 호천안이 놓는 그 모든 수는 하나하나가 심리전이니 수싸움이니 실력 확인 같은 모든 요소를 가미한 치명타요 절기였다.

         

       그런 거대한 벽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흔적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속았다는 수를 배재한다. 혹여나 첫 수만큼은 호천안일지라도 포석으로 만족하지 않을까 상상하고. 실력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까 희망을 품는다. 이 모든 생각이 근거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더라도 두려움에 떠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면 외면한다.

         

       위서련은 호천안의 눈동자를 마주치는 순간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으로 망설임없이 몸을 던져넣었다.

         

       도박사 위서련이 아닌 천마 위서련이 속삭였기 때문이었다.

         

       설령 이 길과 이 선택이 패배로 이어질지라도 두려움과 맞서는 길이야말로 정상으로 오르는 가장 올바른 길이라고.

         

       그렇기에, 2다.

         

       최선을 다한 호천안의 잔놀림을 첫판만에 깔끔하게 간파했다? 그건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기술에 넘어갔다는 게 올바른 판단이다. 그렇다면 호천안은 과연 무슨 수를 냈을까. 정확히는 무슨 숫자를 뽑았을 때 ‘나’는 가장 큰 충격을 받을까.

         

       답은 12나 2.

         

       그저 보기만 해도 호천안의 수에 말끔하게 넘어갔음을 알 수밖에 없는 숫자가 펼쳐졌을 때 나 위서련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간파해 한 번 더 꼬았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괜찮은 일이다.

         

       설령 지고 돈을 잃더라도 마음마저 완전히 꺾이지는 않을 일이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2나 12를 낸다는 것은 심리전에서조차 완승을 거두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수를 낸다?

         

       위서련을 상대로 심리전까지 완승을 거둘 수는 없다.

         

       호천안이 그리 생각한다는 뜻이고 판돈은 잃더라도 심리의 일부는 먹고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왜 12가 아니라 2인가.

         

       ‘그저 작은 숫자로 패하는 편이 더 기분 나쁘니까.’

         

       위서련은 실소를 흘렸다. 참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옹졸한 부분도 위서련의 일부였고.

         

       호천안이 자신의 작은 옹졸함조차 간파했을 것이라 믿었다.

         

       위서련은 호천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는가?

         

       “죽습니다.”

         

       호천안은 그 답을 입에 담았다.

         

       55 대 45.

         

       기분 좋게 한 방 먹이며 판돈의 우위를 가져간 위서련이 잔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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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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