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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9

    루크 숲 인근, 거주구역의 숲 속.

    한편에선 루체스트타워의 갑작스런 테러로 흉흉해진 상황이었지만, 경찰들이 묵고있는 임시거처의 분위기는 상당히 밝았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감시 겸 보호를 맡은 소녀와 그 손님인 소년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외부에서 기약없이 자리를 지키기만 하는 임무를 맡은 중에는 가십거리에 목마르게 되는데, 루크와 시루드의 대화를 곁에서 보게되면 마치 한편의 로맨스 드라마를 눈앞에서 보게 된 것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테러가 벌어지자 소녀가 걱정이 된다는 이유로 급하게 찾아온 재벌가의 도련님, 그리고 그런 도련님에게 어째선지 화가 난 소녀.

    됐으니까 돌아가라며 내치는 소녀의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손을 잡아세우고, 소녀가 마지못해 소년을 집에 들이는 그 장면은, 드라마중에서도 상당히 클리셰적인 장면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그 혼돈스러운 현장에 지원나간 동료들이 걱정되는 와중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하하, 요즘 애들 참 빨라. 벌써 저런 로맨스를 알다니.”

    “그러게나 말이야. 나도 한때 우리 마누라하고 저런 때가 있었지.”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 자신의 동료의 모습을 대입해본 그는,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푸핫! 자네가? 거 참 말이 되는 소리군. 개뿔이, 멀뚱히 가는 여자 뒷모습만 쳐다보겠지.”

    “무슨 뜻이야? 나도 로맨스를 아는 남자라고.”

    “하, 로맨스는 다 얼어죽었나? 자네는 절대 저 애처럼 저렇게 못해.”

    “뭐라고? 지금 말 다했나?”

    다 큰 어른들이 유치하게 투닥거리는 장면은 원래라면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평소에도 저런 식으로 장난을 치는 것에 익숙해진 동료들은 오히려 그들을 향해 맞장구를 쳐주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맞는 말 했는데 뭘.”

    “나도 동감이야. 찰스는 저런게 어울리는 녀석은 절대 아니지.”

    “이 자식들이?”

    그렇게 다들 한바탕 웃고 떠드는 사이, 숲으로 다가오는 또 한명의 기척이 있었다.

    -사박.

    낙엽이 밟는 소리가 다가오자 순간 일제히 조용해진 숲 속.

    “또 다른 손님인가?”

    “글쎄…. 오늘은 손님이 좀 있네.”

    “뭐, 이런 상황이니까 말이야. 저 아가씨는 모두에게 걱정받는 모양이지.”

    한창 어린 나이임을 감안하더라도 비교할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의 빼어난 미모에, 모두에게 호감을 살 만한 조심스런 행동과 말투를 지닌 여자아이.

    그런 소녀가 평소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호의와 배려를 받아왔을 지는 척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 이번에 다가오는 자도 방금 전의 그 소년처럼 그녀가 걱정되어 찾아온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숲의 나무 사이를 걸어나온 그림자의 정체는 뜻밖에도, 굉장히 수상한 모습의 남성이었다.

    드러난 그의 모습에 경찰들은 일제히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이곳부터는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는 곳입니다. 다가오시기 전에 먼저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경찰이 물었으나, 그는 여전히 대답없이 급하지도 격양되지도 않은 차분한 발걸음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

    마치,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

    “저택을 보수하느라 손님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미안하군. ‘굉장히 유감스럽게도’ 온다는 연락을 너무 급하게 받는 바람에 말이다.”

    “으, 응. 미안….”

    시루드는 ‘굉장히 유감스럽게도’라는 문장이 어딘지모르게 크게 강조된다는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걱정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찾아온 것은 백번 생각해도 역시 자신의 잘못이 맞았으니까.

    심지어 루크가 사실은 ‘테러리스트’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적중한 상황도 아니니, 그 무안함은 더욱 컸다.

    시루드는 자리에 앉고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무슨 정신으로 이런 행동력을 발휘한 건지 스스로도 굉장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어디 외출할 때는 반드시 적어도 하루 전에 미리 나갈 계획을 짜고, 그마저도 외출사유의 중요성이 떨어진다 판단되면 나가지 않는 것을 택하는 인도어파에 가까운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오늘 아침의 그 뉴스 하나만보고 곧바로 외출복을 차려입고, 불확실한 가설과 억측에 의존해 많은 시간적, 물질적 손해를 입어가며 이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는 중에도 루크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이유모를 확신에 휩싸여서 도저히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도 않았지.

    대체 그 이유가 뭘까?

    자신은 왜 이런 민폐를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멋대로 저질러버린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으니, 설명할 수도 없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면목도 없다.

    그런 시루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크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뭐. 이미 와버린 것을 어쩌겠느냐. 급한대로 마실 것이라도 내올테니 테이블에 와서 앉아있거라.”

    “응, 고,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부엌을 향해가는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루드는, 이내 아까 전까지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안을 정리하고 있었다는 루크의 말은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집이 온통 이런저런 잡동사니들로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제보니, 루크가 안내해준 테이블 외에는 제대로 발을 붙일만한 곳도 없었다.

    물론 그 어질러진 상황 속에서도 묘한 규칙성을 띄는 것이 무작위로 그저 어질러놓았을 뿐인 상태는 아닌 것 같았지만, 항상 단정했던 루크와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풍경임은 틀림이 없었다.

    시루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 닿는 곳에 위치한 정체모를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금은 단순히 매끈한 상자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보였지만, 다양한 형태가 경첩과 이음쇠로 연결되어서 의도에따라 다양한 기하학적 형상으로 변형이 가능한 일종의 장난감 비슷한 물건으로 보였다.

    살짝 그 물건에 흥미가 동한 시루드가 이내 그것에 홀린 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나가던 찰나….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거라. 보수중이라 자칫 잘못 건드리면 큰 일이 날 수도 있으니.”

    “아! 으, 응! 미안……!”

    차를 내리러 간 줄 알았던 루크의 당부에 놀란 시루드가 예의 그 장난감에 가져가던 손을 치웠다.

    남의 집에서 주인의 허락도 없이 아무거나 손을 대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마법사들의 슬픈 숙명일지도 모른다.

    다행인건 루크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딱히 더 화를 내거나 꾸짖지는 않았다는 점이랄까.

    시루드는 그렇게 자세를 다소곳이 고쳐앉으며 자신의 호기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루크는 왜 하필 루체스트타워가 테러로 불안하고 시끄러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저택을 보수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집안을 보수하는 타이밍이 나빴던 걸까, 아니면 말 할수 없는 어떤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이유라는 건, 아까 전에 루크에게서 느껴진 위화감과도 상관이 있는걸까?

    시루드는 그렇게 또 나름대로 추측을 이어나가며 집에 들어오기 전, 루크의 손을 잡았을 때 느낀 위화감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서클의 마력흔은 루크였어…. 그런데, 뭔가 느낌이 달라.’

    그 위화감은 마치……. 그래, 뭔가가 결여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분명 괜찮게만 느껴졌었는데…….

    시루드가 평소와는 다른 루크의 집 안을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미셸이 시루드에게만 들리도록 살짝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잠깐사이에 루크아가씨도 참 예쁘게 자랐네요. 수인들은 빨리 자란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제 고작 1년정도 지났는데 말이죠.”

    미셸은 꽤 옛날에 보았던 루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루드가 등교를 하면서 만나는 걸 몇번 본 적도 있었고, 가끔은 그녀를 차에 태워주기도 했었으니까.

    나중에 루크가 자율출석을 시작하게 된 이후엔 딱히 만날 일이 없어지는 바람에 최근엔 잘 못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자랐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시루드 또래의 귀엽기만 했던 소녀가, 어느새 지금은 정말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있을 줄이야.

    보통의 수인들이 성장기가 빨리 오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루크의 경우는 뭐랄까….

    일단 아주 불가능한 사례는 아니라지만, 루크의 성장세는 같은 수인족 아이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지게 빠른 편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네, 뭐.”

    시루드는 미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함께 아카데미 생활을 하며 나름 자주 만나던 자신조차 루크를 볼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는데, 미셸은 어떻겠는가.

    당연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겠지.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게 잠시 의문점과 걱정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미셸이 살짝 웃으며 시루드를 향해 또 조용히 말을 건네왔다.

    “흐음, 도련님은 역시 성숙한 여자아이가 취향이신건가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죠?”

    “아까 기습적으로 아가씨의 손을 잡아끌고 난 뒤부터 계속 수줍은 듯 조용히 계시잖아요.”

    “…윽!”

    애초에 걱정된다고 급하게 모아둔 용돈까지 뿌려대면서 자신을 과속하게 만들어놓고선,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게다가 당사자가 괜찮다며 떠나라는데도 굳이 남아서 도와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억지로 초대받은 상황도 매우 재미있다.

    정리를 도와주긴 무슨, 자기 방도 가정부가 대신 치워주는 도련님이 남의 집청소는 어떻게 도와준다고 고집을 부리는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나. 

    ‘정말 순진하시긴.’

    뭐, 굳이 연인이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나이때 그런 감정을 느껴보는 것 자체는 매우 값진 경험일 것이다.

    그에 시루드는 그제서야 제 3자에겐 자신의 행동들이 어떻게 보이고 있었는지 자각했다.

    과연, 자신은 그렇게 보이고 있었던 건가.

    “…그런거 아니니까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그냥 단순한 학습친구에요.”

    “오오, 그렇군요.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죠?”

    “…….”

    전혀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셸의 말에 시루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더이상 못했다고 해야하나.

    그녀의 추궁아닌 추궁을 부정하기 사실, 속마음은 루크가 ‘취향’인 것만큼은 맞으니까.

    애초에 루크처럼 예쁘고 교양있고 기품이 있으면서 착한데다 지혜까지 갖춘 여자가 취향이 아니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게 아닐까?

    물론 오해해서는 안되는 게, 이것은 ‘루크가 좋다’라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다.

    게다가, 설사 자신이 루크를 정말 특별히 이성적으로 좋아하는게 맞다고 치더라도, 정작 루크가 자신을 전혀 이성으로 보지 않으니 자신의 감정엔 큰 의미도 없다.

    손바닥도 맞대어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한쪽이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야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미셸에게 해봤자, 속내를 들킨 부끄러움에 늘어놓는 변명으로만 들릴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시루드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것을 알면서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 미셸은 거 보라는 듯 묘한 미소를 띄었지만, 시루드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을 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존 불청객 회차의 수정본입니다.
    당분간 이렇게 수정본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지를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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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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