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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9

        

         

       루카스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맡겨놓은 일의 진행도를, 성과를 확인하러 왔다는 것처럼.

         

       그는 간단하게 확인만 하고 그대로 어딘가로 향했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진성이 요구한 물건을 배달해주었다. 거기에 진성이 있는 층의 엘리베이터 앞에 물건을 놓고 가주는 친절한 서비스는 덤이었다.

         

       ‘미국인답지 않군.’

         

       폭풍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태도.

       거기에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빨리빨리’에 미쳐버린 한국인을 보는 것만 같은 이 속도감까지.

         

       미국이라기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흐음.’

         

       진성은 이러한 루카스의 태도에 잠시 고민했다.

         

       진성에게 맡긴 것이 진짜 급해서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인지, 어떤 정신적인 문제나 집착이 있어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월 스트리트의 투자자들 특유의 빠릿빠릿함 때문인지….

         

       과연 루카스가 저런 모습을 보인 것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이유를 거슬러 가다 보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진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그것을 털어버렸다.

         

       아직은 정보가 매우 부족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터.

         

       중요한 것은 믿음과 신뢰다.

         

       ‘흐,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진성이 받은 의뢰는 세 개.

         

       그리고 그 의뢰의 공통점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는 액막이.

       또 하나는 금전운을 좋아지게 하는 우상을 만들어달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이 빌딩에서 사람이 죽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빌딩에 재수가 없다, 저주를 받은 것 같다고 했으니 그것과 관련된 의식을 행하였고 그 의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믿음을 주었으니 첫 번째 의식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재수가 없다, 액이 끼었다, 저주받은 것 같다는 감상은 모두가 주관적인 것.

         

       단순히 플라세보 효과만으로도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실제 효과가 있는 의식을 행하고, 안심시켜주기까지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두 개.

         

       우상을 만드는 것과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것.

         

       ‘우상이라.’

         

       우상.

       루카스가 요구한 것은 ‘Idol’이 아닌 ‘Icon’이었다.

         

       둘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는 것인데….

       루카스는 과연 그 뜻을 알고 사용한 것일까?

         

       ‘어느 쪽이건 큰 상관은 없도다.’

         

       뭐, 진성에게는 그리 나쁜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이콘(Icon)은 상징과 연상이 중요한 것이니.

       명확한 것보다는 모호한 것을 세우는 것이 더 편리한 법이다.

         

       모호하다고 한들 이해시키면 명확한 것이 되며.

       추상적인 것 역시 이해하는 순간 확고한 것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법이 아니겠는가.

         

       금전운과 관련된 아이콘은 많고도 많다.

       심볼을 사용해도 되고, 토템을 사용해도 된다.

       동물이나 식물의 형태를 조각해도 되고, 조형물을 만들어도 된다.

       그림을 걸어도 되고, 천사와 관련된 것을 놓아도 된다.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 * *

         

         

         

         

       진성은 느긋하게 두 번째 의뢰를 수행했다.

       거의 오자마자 행했던 첫 번째 의뢰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행보였다.

         

       느긋하게.

       느릿하게.

       천천히.

       꼼꼼히.

         

       진성은 루카스에게 부탁했던 재료를 사용해 무언가를 천천히 만들었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음에도 일부러 말이다.

         

       이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며, 루카스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조바심이 들어 자신을 찾아온다면 거기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요, 그렇게 찾아온 루카스와 대화를 하다 보면 또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찾아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 역시 정보가 되는 것이라.

       거기에 느릿하게 움직임으로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니 이 역시 참으로 좋은 일이라.

         

       그렇기에 진성은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주물을 만들었다.

       루카스를 관찰하려는 의도를 숨긴 채 말이다.

         

       가장 먼저 행한 것은 널찍한 공간에 낙타의 가죽을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천을 깔고, 그 위에 순수한 백랍으로 태블릿을 만드는 것이었다. 불을 사용해야 할 때는 삼매진화를 사용하였으며, 표면이 평평하게 되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가 태양과 별에 노출되지 않도록 창문을 꼼꼼하게 가렸고, 백랍으로 만든 태블릿이 완벽한 정사각형이 되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태블릿에 문자와 기호를 새기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순도가 높은 은을 이용해서 새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새기고 난 뒤에는 그 은을 녹인 뒤 다시 굳혀서 사용하기를 반복하며 순수함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 과정이 끝날 때까지 시간은 꽤 흘렀으며, 루카스는 세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낙타의 가죽을 깔기 시작했을 때.

       두 번째는 창문을 가렸을 때.

       세 번째는 은을 녹였다가 굳히는 작업을 세 번 반복했을 때였다.

         

       이러한 루카스의 태도는 진성에게 실마리가 되었다.

       루카스의 성향과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는 소중한 실마리.

         

       ‘미신에 취약하고, 자신의 안전에 집착하며, 재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주술과 그 효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니 미신에 현혹되기 쉬운 것을 말하는 것이요.

       주술에 관심을 가지되 순수하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힘에 관심을 가지니 안전에 대해 민감한 것이요.

       자신이 요구하는 재료들을 쉬이 구해주고 불평하지 않았으니 구두쇠는 아니되, 빌딩의 값어치가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는 것을 보니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손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니 재산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이라.

         

       자신이 소유한 것을 제 뜻대로 해야 하니 통제에 대한 집착이 있음이요.

       창문을 가렸을 때 바로 온 것을 보니 자신의 인지에서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함이니 이 역시 통제에 대한 집착을 말하는 것이며.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쓰니 이것은 꼼꼼한 것이되 자기 생각 밖의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음이니. 이 역시 통제에 관련된 것이라.

         

       ‘통제.’

         

       그리하여 진성은 루카스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알아내었으니.

       그것은 바로 통제였다.

         

       제 뜻대로 움직여야 된다.

       불확실함보다는 확실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성을 쌓아 올리고, 거기서 평온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지배와는 다르다.’

         

       하지만 루카스의 ‘통제’는 ‘지배’와는 다른 것이었다.

         

       지배란 남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

       하지만 루카스는 자신의 주변을 자기 뜻대로 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것이다.

         

       전자는 권력과 관련된 것이고.

       루카스의 것은 자신의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안전, 자신의 영역에서의 평화. 자기방어.’

         

       하지만 그렇다고 생존주의(Survivalism)와 닮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는 안전을 바라면서도 재산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

       돈을 벌기를 원하고, 동시에 자신이 안전하기를 원한다.

         

       인간의 탐욕과 생존에 대한 집착을 증폭시키면 딱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권력자가 안전에 집착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지….’

         

       뭐,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안전, 보안에 집착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손에 쥔 것이 많으면 놓치기 싫어하는 법이고, 가진 것이 많다면 얽매이는 법.

         

       루카스 역시 그것의 연장이라도 보는 것이 옳으리라.

         

       다만, 그래….

       특이한 것이 있다면.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루카스가 보이는 태도였다.

         

       일반적인 권력자,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렴풋하고 모호한 위협과는 달리, 루카스가 느끼는 위험은 꽤 구체적인 것으로 보였다.

         

       대상을 말할 수도 없고, 그 형태를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는 수준의…구체적인 위협.

         

       목에 올가미가 드리워진 느낌.

       등 바로 뒤에서 누군가 칼을 들이대고 있는 듯한 느낌.

       저 멀리서 총으로 머리를 노리고 있는 느낌.

         

       루카스는 분명히 그러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형언할 수도, 형용할 수도 없는 죽음의 그림자라.’

         

       죽음.

       죽음의 그림자.

         

       진성의 머릿속에 그 키워드가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그는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흐음?’

         

       죽음.

       죽음이라…?

         

       ‘흐으음….’

         

       얼마 전.

       그는 죽음을 보았다.

         

       자신을 죽음이라 칭하고 다니는 주술사를 보았고, 그 주술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 주술사가 악인을 수확하는 것 역시 보았다.

         

       그가 수확했던 이는 회귀 전에는 어떠했던가?

       그때도 횔레가 수확하였던 이였던가?

       이 시기에 수확되었던 악인이었던가?

         

       ‘죽음, 죽음이라.’

         

       과거 죽음의 행보는 어떠하였는가.

       죽음은 어느 나라에 있었고, 어떤 발자취를 보였으며, 그의 행로는 어떠했는가.

       회귀 전에도 이 시기에 한국에도 있었을까?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지 않았을까?

         

       호주, 유럽, 중동….

         

       혹은.

         

       미국 같은 곳에…있지 않았을까?

         

       ‘그렇군.’

         

       만약 횔레가 미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언제나 그러했듯, 악인을 수확하며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 악인은 ‘죽어야 할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런데 횔레가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으로 갔다면?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았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이 미칠 영향력은 어떨까?

       횔레가 수확해야 할 정도의 악인이 미칠 영향력은?

       거기서 비롯되는 나비효과는?

         

       아니, 어쩌면 미국이 아닐 수도 있다.

       회귀 전 횔레는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었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미국이 고향이거나 미국에 갈 예정이었거나, 미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악인을 수확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

       이 시기, 이제순은 횔레에게 죽을 자가 아니었다는 것.

       그 말은….

         

       ‘인과란 성긴 듯하면서도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확실한 것이라.’

         

       진성은 나비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아주 흐릿하게나마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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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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