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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황실 파티 1일 차의 목적은 이루었다.

         

       계획이 다소 틀어져 많은 귀족에게 알리진 못했지만, 제2 황자와 제3 황녀가 관심을 보였으니 해결된 문제. 이 소식을 믿건, 안 믿건 널리 퍼지는 건 확정이다.

         

       남은 건 내일 안드레아의 드레스만 선보이면 되겠지.

         

       “그럼 나는 다른 귀족들 좀 만나고 올게. 너는 호위기사들이 모인 곳에 가서 쉬고 있으렴.”

         

       나는 예, 라고 대답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는 귀족들이 모인 곳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할 건 다 했고.’

         

       소미레의 뒤나 좀 밟아볼까. 걔의 정체를 파헤쳐야 하니까.

         

         

       * * *

         

         

       프란체는 파티장을 거닐며 아는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데카르트 공녀님, 오랜만입니다.”

       “그렇네요. 얼마 만에 보는 거죠?”

       “꽤 지났습니다. 저는 엘다스 후작령에서 열린 파티에 참여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귀족은 테리아 테넬로페. 평소에 프란체에게 여러 드레스와 보석을 추천해주고 소개해줬던 자작이다.

         

       ‘프리다에 꽤 많은 투자를 했다고 들었는데.’

         

       아마 이번에 프리다가 무너지면 이 사람도 막대한 손해를 보겠지. 그러나 프란체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자도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접근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프리다에 방문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드레스는커녕 보석이나 장신구도 구매하지 않으신다고…….”

         

       이것 때문에 대화를 걸어온 건가. 하긴, 이게 아니라면 찾아올 이유가 없지. 프란체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딱히 그러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서요.”

       “…예?”

       “못 들으셨나?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요.”

         

       촤락. 프란체는 부채를 펼치며 입가를 가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자작을 굽어봤다.

         

       “더 할 말이 없으시다면 이만 물러가 주셨으면 좋겠군요. 저는 딱히 할 말이 없기에.”

       “…죄송하지만, 혹시 제가 공녀님께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니 당황스럽군요.”

       “글쎄요. 그건 자작님께서 직접 생각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짚이는 게 있으실 텐데.”

         

       자작은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프란체와 교류를 가졌던 이유는 프리다의 매출을 올리기 위함. 데카르트 공녀가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이름값을 올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목적을 들킨 이상, 관계가 끝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떠나가는 자작. 프란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쯧, 혀를 찼다.

         

       ‘돈만 바라보는 꼴이 참 단순해.’

         

       전과는 달리, 프란체에게는 원대한 목적이 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바라진 않았지만, 진의 말대로라면 엄청난 성취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프란체는 마음을 굳건하게 먹고, 다시 여러 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이루는 내용은 대부분 최근 근황과 황실 파티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도중. 영향력이 강한 영부인에게서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제3 황녀님께 들었어요. 공녀님께서 의복 사업을 하신다고.”

       “맞습니다. 품질이나 외형에서 자신이 있거든요. 투자를 많이 하기도 했고요.”

       “제가 듣기론 황자님과 황녀님도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기대해봐도 될까요?”

       “그런 기대는 저야 환영이지요. 실망하실 일은 없으실 거예요.”

         

       영부인을 중심으로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내용은 프란체가 하는 사업에 관한 이야기.

         

       프란체는 최대한 기대감을 키워주기 위해 의류점에 대한 정보를 풀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외형이라, 궁금하네요.”

       “의복을 만드는 장인이 엄청난 천재라고요?”

         

       이쪽 세력의 중심인 영부인이 크게 관심을 가져서 그런지 그녀를 따르는 자들도 관심을 보인다. 프란체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궁금하시면 데카르트 공작령 13번 구역으로 오시길. 절대 실망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제 의류점의 장인은 천재라고 불려도 무방하니까요.”

         

       마지막으로 궁금증만 남겨두고 간다. 이것으로 호기심 자극은 극대화되겠지. 이쯤 되면 한 번은 찾아올 거다.

         

       “그럼 저는 이만.”

         

       그렇게 다시 자리를 옮기고, 귀족들을 만나며 의도적으로 대화 내용을 의복 사업으로 이끌었다. 반응은 다 제각각이었지만, 수확은 있었다.

         

       ‘슬슬 좀 쉴까.’

         

       프란체는 시종에게 샴페인 한 잔을 건네받고 자리에 앉았다. 숨을 돌리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려고 했건만, 그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마주쳤다.

         

       “…데카르트 공녀.”

         

       아실 프라이덴. 혼담을 깨트린다는 목적을 위해 이용한 것도 모자라 처참하게 모욕까지 하고 돌려보낸 남자.

         

       딱히 미안한 마음은 없었지만, 일방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양심의 가책이 좀 느껴져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오랜만이네요, 프라이덴 영식.”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인사했다.

         

       “이상한 여자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혹시 데카르트 공녀는 뻔뻔하고 염치가 없는 타입인가? 그 사단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인사를 하는군.”

         

       존대도 하지 않는 날카로운 말투. 아실의 반응은 따가웠다. 당연하다.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그랬으니.

         

       “먼저 아는 척을 하신 건 프라이덴 영식이 아닌지요? 저는 그에 맞춰줬을 뿐인데 좀 억울하네요.”

         

       둘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 분위기가 싸늘해 주변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괜히 얼굴을 봐서 재수가 없다는 뜻이었네만.”

       “그런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군요.”

       “당신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어서 말이지.”

       “저는 데카르트 공녀라고요?”

       “그게 어쨌다는 거지?”

         

       아실은 공녀라는 직함을 내세워도 끄떡없었다. 어차피 혼담도 깨진 마당인지라 데카르트 공작가에 잘 보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라이덴 영식은 좀 더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게 중요하겠군. 아, 이것 또한 교육을 잘못 받아서인가? 아니면 프라이덴 가문의 특징인 건가?”

         

       프란체는 이런 아실의 태도를 날카롭게 받아쳤다.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예의도 차리지 않는 자에게 좋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야 본 모습을 보이네.”

       “본 모습이라니? 그대의 수준에 맞춰서 말했을 뿐이네만?”

         

       아실은 고개를 휘저었다.

         

       “쯧. 오늘은 참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는 날이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실은 성큼성큼 걸으며 자리를 옮겼다.

         

       ‘재수는 내가 없지.’

         

       전 약혼자인 카서스를 만난 것도 모자라 그 망할 성녀와 철없는 황태자도 만났다. 이런 와중에 혼담이 깨진 아실까지.

         

       ‘오늘은 정말 무슨 날인가.’

         

       프란체는 이내 고개를 휘저으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쯧.”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는 날이다. 그래도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게 다행인가. 프란체는 그리 생각하며 쓰디쓴 마음을 위로했다.

         

       ‘그런데 지금 진은 뭐 하고 있으려나.’

         

       프란체는 넓디넓은 파티장을 둘러보며 진을 찾았다. 호위기사들이 모인 곳에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돌아다니면서 찾아봐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을 발견했다.

         

       ‘왜 저기에 숨어있지?’

         

       파티장을 지탱하는 기둥 뒤에서 기척을 숨기고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다. 프란체는 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성녀, 소미레가 있었다.

         

         

       * * *

         

         

       ‘아직까진 수상한 움직임은 없는데.’

         

       소미레는 황태자와 같이 돌아다니며 다른 황족을 만나거나, 귀족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다. 좀 다른 행동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청각에 모든 감각을 집중해 저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성녀님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제가 천한 신분인지라 실례가 아닐지 걱정되는 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국의 성녀님이신데!

       ―하하! 그렇지. 소미레는 제국의 미래라네.

         

       소미레에게 잘 보이려는 귀족들과 무지성으로 칭찬만 하는 황태자의 대화였다.

         

       ―저번 전쟁으로 큰 활약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기사분들과 병사분들 덕분이죠.

       ―하하, 소미레도 겸손하군.

       ―그러고 보니 제국에는 큰 손해가 없었죠? 성녀님 덕분인가요?

       ―하하! 그렇네. 그 초월 마법사와 성녀님 덕분이지.

       ―초월 마법사의 마법을 보셨나요? 바렌베르크가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했다고 들었는데…….

         

       ‘음?’

         

       뜻밖의 정보를 들었다. 게임에서 나온 내용은 그냥 바렌베르크가 처참히 패배했다고만 나왔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다니? 전투에 들어가기도 전에 승패가 결정나버린 상황이었던 건가. 진 바렌베르크가 허무하게 잡힐 만도 하다.

         

       ‘초월 마법사.’

         

       저들이 말하는 초월 마법사는 내가 잡혀 들어왔을 때, 내게 노예 각인을 새긴 마법사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초월 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모른다는 점이다. 게임에서도 직접 등장하지 않았고, 관련된 퀘스트도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아는 정도는 약간의 언급으로 이 세계 최고의 마법사라는 것.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군.’

         

       강제로 노예 각인을 풀 때, 카자르가 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할멈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자세한 정보를 찾아봐야겠어.’

         

       그런데 아까부터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시선. 나는 순간적으로 반응해 뒤를 돌아봤다.

         

       프란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일은 다 끝난 건가? 나는 프란체에게 다가가 물었다.

         

       “일은 다 보셨습니까?”

       “그래.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도 많이 봤지.”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근데 성녀는 왜 보고 있던 건데?”

         

       눈을 얕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너무 수상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수상하다고? 어떤 점이?”

       “공녀님의 사정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프란체가 과연,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네. 정보 길드라도 이용했나?”

         

       정보 길드라, 일리 있는 가설이다.

         

       아무리 게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플레이어라고 해도 프란체의 과거는 알지 못한다. 이 게임의 마지막을 본 나조차도 몰랐는데 일개 플레이어가 어찌 알겠어.

         

       “그런데 그것도 의문입니다. 저 성녀가 어째서 공녀님의 뒷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저번 파티장에서도 그렇게 나왔던 걸 보면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던 게 아닐까?”

         

       특별한 목적이라, 그게 무엇일까.

         

       “음…….”

         

       일단 지금까지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이어보자.

         

       프란체는 엘다스 후작령에서 열린 파티장으로 가던 도중 습격을 당했다. 그것도 허술하다 못해 멍청해 보일 지경의 암살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온 문양은 페르시아 문양이었다.

         

       파티장에서는 소미레가 먼저 다가가 프란체를 모욕까지 하며 도발했다.

       

       이 모든 걸 연결하면…….

         

       ‘혹시 암살을 사주하고 이간질을 시도했던 게 소미레인가?’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소미레가 범인이라는 가정을 두면 앞과 뒤가 맞아 떨어진다.

         

       ‘수준 낮은 길드를 이용한 게 핵심이군.’

         

       소미레는 대귀족들과 다르게 평민 출신. 그렇다 할 인맥은 황태자 말고는 없다. 하지만 황태자는 프란체에 대해서 몰랐다.

         

       그렇다면 이 조사와 암살을 사주한 건 소미레의 단독 행동.

         

       ‘프란체의 뒷조사를 하는 것도 문제없었을 거야. 시종에게 돈을 좀 쥐여주고 정보를 캐내면 되니까.’

         

       공작이나 에덴, 라인에 관한 정보라면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가문에서 무시당하는 프란체의 정보는 팔고도 남았을 거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마는.’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인 건 맞다.

         

       다만 아직 이해 가지 않는 점이 많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공녀님. 일단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성녀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추측 가는 게 있긴 한데, 증거가 부족합니다.”

       “흐응. 그 추측을 내게 말해주지 않으련?”

       “얘기가 길어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좀 더 정보가 필요하다. 결과까지 이어줄 핵심이 빠져있어.

         

       ‘소미레, 넌 대체 뭐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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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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