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2

    직원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회색 사신 긴급 대책 회의는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도착한 곳은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의 격리실이었다.

    격리실 안의 인형은 구슬프게 울면서 자신의 잘려나간 팔을 발로 스스로 꿰매서 치료하고 있었다.

    격리실 밖은 사방에서 몰려든 연구원들로 웅성거리며 부산스러웠다.

    나는 우리를 데리고 온 직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럼, 어찌된 일인지 설명 좀 해봐.”

    “네, 소장님.”

    설명을 들어보니, 그리 큰 문제라고 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회색 사신에게 시비를 걸다가 양팔을 뜯긴 인형은 자업자득이었다.

    사신이는 오브젝트에게는 가차 없으니 오브젝트들이 알아서 조심했어야지.

    오히려 의아한 쪽은 사신이가 사라져버린 쪽이다.

    “정말로 사라졌단 말이지?”

    “네, 회색 사신은 강탈한 초대장을 쳐다보더니 사라져버렸습니다.”

    CCTV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초대장 내용이 찍혔을 가능성이 있어, 모두 폐기했다. 

    CCTV로 초대장을 살짝 보는 것만으로 실종될 가능성이 있었다.

    “확실히 흉포해. 안 그래?”

    나는 그 말을 하며 서아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향후 대책은 어떻게 할까요? 소장님.”

    김중뢰가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선 연구원들에게 경고문을 돌려. ‘초대장은 읽지 않고 보기만 해도 납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격리실 출입을 완전히 막고, CCTV도 촬영도 멈추도록 지시 해둬.”

    오브젝트도 납치하는 걸 보면 좀 더 광범위한 대처가 필요했다.

    “그리고 회색 사신은 별 문제가 없을 거야. 오히려 초대장을 봤다고 빨려 들어간 쪽이 신기해. 보통은 납치한 오브젝트 쪽에서 다시 뱉는 경우가 많으니까, 조금 기다려 보자고.”

    이제까지 사신이는 저런 납치형 오브젝트에는 면역에 가까웠다. 

    심심함에 몸부림치던 사신이 일부러 당해줬다는 쪽이 더 납득이 될 정도였다.

    아니면 저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이 아귀급 오브젝트라는 건데….

    팔을 뜯기고 울고 있는 꼴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사실 회색 사신이 저런 초대장에 빨려 들어갔다고 문제가 생길 리는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하기로 했던 실험을 좀 앞당기는 걸로 하자.”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 입장 테스트를 앞당기기 위해서 직원들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

    사신이 실종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은 뒤부터 틈틈이 자리를 비우고, 사신이를 찾기 위해 배회했다.

    “예린아 또 나가는 거야?”

    “네, 잠깐 나갔다가 바람 좀 쐬고 금방 올게요~.”

    사신이 사라질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불안해져서 그랬다.

    하지만 연구소를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사신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신이가 갈 법한 곳을 가봐도, 사신이는 없었다.

    사신의 격리실 침대 앞에 쭈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일과 내내 틈틈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졌다.

    꾸벅꾸벅 졸면서 생각했다.

    사신아, 빨리 돌아와 줘.

    ***

    매우 길고 긴 꿈속 한복판에 있었다.

    무려 30년짜리 꿈.

    나는 그것을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멀리서 바라보았다.

    꿈속의 나는 몽롱한 가운데, 눈을 떴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사신이의 방.

    꿈속에서 언제나 보던 대로의 격리실이었다.

    꿈속의 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서 먼지를 털고 청소를 시작했다.

    사신이가 언제 돌아오더라도, 괜찮도록 말이다.

    TV를 닦고, 오래된 게임기와 탁자, 침대의 먼지를 제거했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계속 해온 습관이었다.

    사신이가 사라진지 30년이 지났다.

    꿈속의 나는 가끔씩, 탁자 위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마치, 황금 사신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럴 때면 마치 내 눈앞에도 그 광경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콜록콜록.

    꿈속의 나는 부쩍 몸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사신이랑 같이 뛰어놀겠다고 피크닉 준비도 자주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질 않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사신이랑 뛰어놀 신체 상태가 아닌 것을 직감한 것이다.

    꿈속의 나는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사신아, 빨리 와.”

    “사신이는 무적이니까.”

    “언젠가, 꼭 돌아올 테니까.”

    꿈속의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조용히 잠든 꿈속의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눈앞에 사신이 있는 것처럼.

    나도 눈을 감자 작은 발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찰박찰박.

    사신이의 작은 발소리.

    “드디어 왔구나.”

    꿈속의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꿈속의 나는 임종을 맞았다.

    ***

    “사신아!”

    눈을 뜨니, 사신이의 격리실이었다.

    시간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잠깐 졸았던 걸까? 

    꿈이라기엔 너무 길고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마치, 진짜로 사신이가 없는 30년을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신이가 없는 서울은 진짜 끔찍했다.

    꿈속에서는 가장 먼저, 김중뢰 선배가 죽었다.

    싱크홀에서 몰려나온 오브젝트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박서아 언니도 죽었다. 

    서울에 나타난 오브젝트들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어서, 정부의 서울 포기선언이 있던 시기였다.

    박서아 언니가 죽던 그날, 이세희 언니도 뭔가 바뀌었었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뭔가에 매몰된 언니는 연구소를 안전한 신서울 방면으로 옮겼다.

    서울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지만, 나는 계속 세희 연구소였던 건물에 남았다.

    사신이가 돌아올 것을 믿었으니까.

    한반도 어떤 곳도 안심하고 살 수 없었다.

    사신이도 없는 세상에서, 사신이만을 기다리며 살았다.

    사신이도 없는데, 세상이 망해버리다니.

    아니 사신이가 없어서 세상이 망해버린 건가?

    꿈이라서 다행이야.

    ***

    화려하게 꾸며진 객실에서 눈을 떴다.

    푹신한 침대는 내 등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었고, 은은한 조명은 따뜻한 불빛으로 주변을 밝혀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객실 종업원처럼 차려입은 마네킹이 와서 나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손님. 스마일 테마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눈과 입이 꿰매진 둥근 얼굴. 

    잘 갖춰 입은 정장.

    거기에 높게 치솟은 원통형 모자까지 쓰고 있는 마네킹이었다.

    “자자, 우선 테마파크를 즐기기 전에 이것부터 받아 주세요.”

    마네킹이 넘겨준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둥근 얼굴이 9개 찍혀있는 종이.

    “스마일 테마파크에서는 스탬프 이벤트를 개최 중 입니다. 테마파크에 배치된 9종의 놀이기구를 모두 즐기신 뒤 도장을 받아오면 완료되는 간단한 이벤트에요!”

    9개?

    10개가 아니라? 

    내가 본 파괴 조건은, [테마파크 스탬프 10개를 모은다.] 이거였는데 말이야.

    뭐, 돌아다니다 보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알 수 있겠지.

    “당연히 이벤트에는 보상이 필요하겠죠. 스탬프 9개를 모두 모으면, 무려! 공짜로!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스탬프를 모아주세요.”

    짝짝짝, 과장된 동작으로 마네킹이 박수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무려! 스마일 테마파크는 365일 24시간 운영 중이니, 느긋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객실 곳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마네킹은 말을 이어갔다.

    “객실에서도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을 취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건 객실에 비치된 설명서를 참고해주세요. 그럼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이 종을 울려주세요!”

    마네킹은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고는 뒷걸음질로 객실을 나가버렸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 봐도, 꽤 재미있어 보이는 오브젝트였다.

    인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보통의 테마파크처럼 인간이 잔뜩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회색 사신이 테마파크로 떠난 지, 하루가 지났다.

    세희 연구소의 긴급 요청으로 출발한 버스가 세희 연구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방을 철창으로 두르고 있는 흉흉할 정도로 밀봉된 특수 버스였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사형 판결이 내려진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이동 수단이었다.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 실험에 사용될 사형수가 도착한 것이다.

    단순히 희생양으로 소비되는 사형수들도 많았지만, 이들은 조금 특별한 사형수들이었다.

    트랩형 오브젝트에 돌입하기 위해서 훈련된 사형수들.

    퀴즈를 풀거나, 함정을 돌파해야 하는 실험에는 저런 사형수들을 사용했다.

    오브젝트에서 탈출하면 무죄 방면을 해준다는 것을 미끼로 오브젝트 관련 훈련을 시키고, 탈출에 의욕을 불어넣은 사형수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거쳐도 이들 사형수들의 무죄 방면률은 1% 남짓.

    그래도 식인 오브젝트의 먹이 따위로 소비되는 100% 사망률의 일반 사형수보다는 나은 형편이었다.

    사형수들이 세희 연구소 부지에 내려섰다.

    사형수들은 팔을 뒤로 한 채 몇 겹의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발목에도 수갑이 채워져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사형수 대부분이 어두운 표정을 한 것에 반해, 선두에 선 여성만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장신의 여성.

    190cm는 될 것 같은 여자는 경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가면 되지?” 

    여자는 그렇게 물어보며 사나운 표정으로 웃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