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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

         

         출입구 부근에 도열한 징수 부대원들이 동시에 헛숨을 들이켰다.

         스르릉… 하는 오싹한 금속음에, 이게 어찌 된 사정인가 파악하기 위해 취조를 진행하려던 부대원 한 명이 다급하게 소총을 고쳐 잡았다.

         

         썩어도 메가 코프 소속 군대라고. 반응이나 대처 수준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여건이 너무 나빴다.

         

         도합 네 명의 징수 부대가 있었음에도 그 중 둘은 탈옥 사건이 발생한 이후 추가로 배치되어 이쪽 구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인원.

         그리고 나머지 둘은 아까 전의 미흡한 대응으로 눈앞에서 인질극을 직관해야 했던 징계 예정자들.

         

         …물론 VIP의 안전과 생존을 최우선시하라는 상부의 판단을 따랐다지만, 일부 전가된 책임소재와 당사자의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소극적인 태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촤아악—!!

         

         아래에서부터 위로.

         무참히 베인 게 명백한 최전방 부대원의 고개가 뒤로 확 꺾어지고 비산한 피가 초승달을 그리며 날아가 천장에 들러붙었다.

         

         “이… 이게 무슨…?!”

         

         정면에는 여전히 보호 대상인 박사. 그 바로 옆은 시야를 완벽하게 가린 동료였던 사체.

         

         이번엔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할 시간적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유별나게 근접 무기를 사용하는 적이라 해도 이 간격과 구도에서는 치명적인 위협. 더군다나 흩뿌려지는 피의 양을 보면 헬멧과 방탄복이 얼마나 깊숙하게 갈라졌는지, 신체 능력을 짐작할 만했다.

         

         “컨택—!”

         “HA 플로어에서 침입자와 교전 개…!!”

         

         “으헉?!”

         

         그나마 VIP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부대원이 재빨리 박사의 멱살을 잡고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인다. 갑자기 전장 한복판에 떨어진 데다 몸의 중심까지 잃어버린 박사가 비명을 내질렀으나 그에 대한 관심을 그걸로 끝.

         

         쩌억!

         

         “씹…?!”

         

         드가가각!!

         

         전투 개시 보고를 올리려던 부대원이 날아드는 참격을 보고 목숨부터 보존하고자 급한대로 들고있던 소총을 엄폐물로 삼았으나… 단번에 쪼개지고 어마어마한 충격에 휘말린 몸이 뒤로 넘어진다.

         

         그 잠깐 사이, 평소 경비중에 장비하던 통상 소총탄으로는 불리하다 여긴 남은 한 명이 군복에 꽂혀 있던 고관통탄 탄창으로 바꿔 끼고 탄도를 막은 시체와 그 너머의 배신한 경찰을 향해 응사했다.

         

         비정함과 냉철함.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빠르게 판단하고 수행하는 건 그야말로 전문가의 표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지만… 그게 이미 피를 볼 각오를 마친 검귀를 막을 수 있었냐 묻는다면 대답은 글쎄올시다.

         

         쾅!!

         

         매끈한 통로 바닥을 그림자가 긴다.

         무게도 없는 허상이 뛰쳐나갔다기엔 견고한 타일이 굉음과 함께 박살났지만 적어도 징수 부대원들의 눈에 그건 죽음의 그림자로 보였다.

         

         방탄복과 살과 뼈. 세 종류의 벽을 가르고도 속도를 잃지 않은 탄환이 귀 옆을 스쳐 지나가는 걸 본 헬레나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넘어진 놈에게 질주했다.

         

         이내 순식간에 도달한 목표물, 넘어진 채로도 부무장을 쥐려던 부대원을 노리고 한줄기 빛이 발사되었다.

         

         “그륵…?!”

         

         겨우 꺼낸 권총이 보람없게 땅을 나뒹군다.

         뻗어진 손이 더듬더듬 날아온 빛줄기를 만져보다가 그 형태를 확인하고 미련을 담아 붙잡는다.

         

         흡사 단두대가 떨어지듯, 일직선으로 목을 꿰뚫고 지면까지 파고든 카타나. 거기에 불귀의 객이 되기 직전인 병사의 완력이 더해졌으니 쉽사리 빼내긴 힘들게 분명했다.

         

         “잡았다! 이 악독한 새끼…!”

         

         드가각!!

         

         장착한 고관통탄 때문에 함부로 발포하지도 못하고, 개조된 안구로 간신히 움직이는 헬레나와 자신의 사선만 쫓던 놈의 총구가 미친듯이 흔들리며 탄막을 형성했다.

         

         하지만 시원하리만치 쉽게도 그녀는 무기를 손놓은 채 훌쩍 도약했다.

         …말그대로 칼자루를 쥔 건 헬레나였으니까 가능한 선택에 애꿎은 멸균 시설만 갈려 나갔다.

         

         심지어 몸을 날린 방향조차 뒤가 아닌 앞. 이제 막 박사를 피신시키고 전투에 참여하려는 남은 부대원을 노리는 과감함은 이 자리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 씨발롬이 같잖게 맨손으로?”

         

         “…….”

         

         으득!!

         

         말을 나눌 가치도 없다는 듯이 휘둘러지는 주먹질을 본 그는 이를 갈았다.

         피차 다른 도구를 활용할 틈도 없이 완전히 밀착해 적수공권으로 싸우게 됐다.

         

         사격에 굉장히 신중한 동료를 경계해 내린 결정인가 본데…. 자신은 파라다이스 사에서 제공한 개조시술을 제외하고도 꽤 많은 양의 사비마저 털어가며 근력을 키운 별종.

         

         “시건방진 새끼가…!”

         

         어리석고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걸 똑똑히 각인시켜주기 위해, 그 또한 피하지 않고 전력으로 맞서 팔을 내질렀고.

         

         쿠궁!!

         

         “………이런.”

         

         조준경 너머로 그 무식한 격돌의 끝을 본 최후의 부대원은 소총 견착을 풀고 탄식했다.

         

         헬레나가 총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어찌 보면 방금 한숨 쉰 징수 부대의 사수와도 닮았다.

         …뭐 개인 취향으로 칼날의 유려함을 좋아하기는 하나, 탄환을 흩뿌리는 총과 달리 직접 휘두르는 무기는 실수할 가능성이 훨씬 적었으니까.

         

         엉뚱한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한 무구.

         단… 결심했다면 망설이지 않기 위한 구분의 검집까지.

         

         카타나는 그녀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수단에 불과했으니, 잠시 방치해서 리치는 약간 줄어들었을지언정 그 기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부딪힌 남자의 손가락이 완력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쫙 펴진 후 으스러졌고, 그 다음은 펀치력을 받쳐줘야 할 손목이, 이어서 인접한 팔이 스펀지처럼 짜부라졌다.

         

         아니면… 터져 나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차마 승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대치가 결판나고. 우드득! 하는 소음과 함께 붙잡힌 멍청이의 머리가 축 늘어지자… 그는 프로답게 지휘부에 통신을 마저 넣었다.

         

         “……여기는 수확 구역 3번 승강기 경비조 생존자. 침입자 DS3-1 전투경찰의 신분정지 및 수배를 요청한다.”

         

         징수 부대의 전투용 가젯과 압도적인 화력을 이용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신속무비한 대적자.

         

         비밀유지의무로 도배된 일에 종사할 때부터 최후가 예쁘리란 기대는 없었지만, 다른 기업의 사병도 아니고 한참 아래로 여기던 경찰에게 맞아 죽을 줄은 몰랐다고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틱. 틱틱….

         

         “……염병.”

         

         …고관통탄은 탄창 용량이 엄청 작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그래도 징수 부대라 하면 근방에서는 최고로 쳐주는 무력 단체인데 1분도 지나기 전에 탈탈 털리다니?

         

         빠각!!

         

         그야말로 22세기의 괴력난신, 불합리한 폭력의 권화나 다름없는 상대에게 단신으로 노출된 지정사수도 금세 쓰러졌다.

         

         이제 자리에 멀쩡하게 남은 건 어안이 벙벙한 박사뿐.

         

         “뭐…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자네는?! 타 메가 코프의 첩자인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묻거나 말거나, 바이저가 제공하던 모든 기능이 사라지고 식별장치가 꺼진 걸 확인한 헬레나는 담담하게, 다시는 쓸 일이 없을 바이저를 벗어 던지며 대답했다.

         

         “…방금 막 잘린 직장인. …더 할 말이 없으면 슬슬 움직이시죠? 할 일도 많은데.”

         

         한껏 비굴해진 자세로 납작 엎드려 있다가 조심조심 몸을 일으키는 중년 남성. 그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단조로운 경비 업무가 서던 징수 부대원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박사.

         그들 중 누가 더 악인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당연히 박사를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탈옥한 남자의 말에 따르면 여기 어딘가에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곧 처분될 그에게 투여되는 마취제도 바꿔치기 해주고, 방패로 삼아야할 인물도 알려준 의인이.

         

         보여주는 태도를 살피면 그게 박사 본인일 가능성은 정말 한없이 낮았지만… 헬레나는 아직 위층으로 돌아가는데 쓸 티켓을 찢을 생각이 없었다.

         

         

         

         

         “……?”

         

         복장규정도 지키지 않고 식은 땀을 뻘뻘 흘리는 박사와 그 옆에 붙은… 처음 보는 은발여성.

         한차례 고개를 갸웃한 작업자는 자기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 여기고 무심하게 그들을 지나쳤다.

         

         실상 그럴 여유도 없긴 했으나, 서두른 나머지 구체적인 상황까지 보고하지 못한 징수 부대 덕분에 박사를 앞세운 헬레나는 이 비밀 구역을 얼추 살필 수 있었다.

         

         온갖 약물과 임플란트 반응성을 테스트하는 검사실.

         무려 적출된 장기의 선도 유지를 위하여 언제나 스산한 냉기가 감도는 수술실과 보관실.

         

         그 외에도 실험대상의 경과를 지켜보려고 만들어진 격리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종착역이 되었을지 짐작도 안 가는 소각로 등이 있다고 하나 규모가 너무 커서 전부 돌아보기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살아있는 사람들이 갇힌 감옥.

         

         상황을 알아챈 지휘부에서 후속 병력을 파견하기 전에, 한명이라도 더 빠져나갈 길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

         

         “……흥. 설령 내가 그 떨거지들을 풀어주라고 명령한들, 현장 책임자의 동의도 없이 나간 놈들이 무사히 탈출할 리가 없지 않나? 차라리 파라다이스가 유효 활용하게 내버려두는 게…… 윽?!”  

         

         “…아가리 닥치고 협력해줘야 살아 나가실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

         

         어깨를 짓누르는 우악스런 손길에 박사가 황급히 입을 걸어 잠겄다.

         삐걱거리는 어깨 통증이 신경을 거슬렀지만 아까 본 경비는 충돌한 팔이 사라졌으니 이 정도는 아주 신사적인 제재라는 자기합리화.

         

         …겁박에 더럽게 취약한 주제에 자존심만은 하늘을 찌르는 그의 발걸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방 앞에서 멈췄다. 문패에 적힌 건… 수감구획 통제실.

         안에 있던 직원은 순찰을 핑계삼아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한 박사가 입력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감옥이네. 이제 만족하나? 최신 자료를 보니… 도망간 놈을 빼고도 백여명이 남아있군.”

         

         “…좋습니다. 어서 그 현장 책임자인지 뭔지에게 연락해서 의견을 조율해 보시죠.”

         

         육안으로 마주한 것도 아니고, 통제실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그녀의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청결함만 본다면 오히려 세정과 소독을 거친 현재가 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색이 아무리 깔끔해졌어도. 몇 없던 소지품을 압류당하고 가장 중요한 자유와 희망마저 사라져 내면이 죽어버린 그 모습은 빈말로도 멀쩡하다고 하기 어려웠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주세요.’

         

         간헐적으로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쪽이 보일리가 없는데도 헬레나는 속으로 사과했다.

         

         과연 이 지옥을 만드는데 자신은 얼마나 기여한 걸까.

         적어도 이런 일이 벌어진 지 오래 된 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으나, 시설의 규모와 과거에 벌어졌던 대규모 공사를 떠올리면 최소….

         

         “…미스 그리샤! 당장 병력을 더 보내주게!! 여기 미친 경찰이 겁도 없이 반기를 들었…!”

         

         “?!”

         

         설마 이 순간에, 잠깐 상념에 잠긴 사이에 허튼 수작을 부리다니?

         

         우당탕!!

         

         “으헉?!”

         

         박사의 몸이 통제실 구석에 처박혔다.

         

         반사적으로 내질러진 팔이 박사의 뒷덜미를 잡아 화상 카메라로부터 치워버린 결과다.

         그런데 우습게도. 미스 그리샤란 명칭도 또렷이 들어 놓고도 헬레나는 전혀 충격 받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각오를 마쳤다든가… 최악을 예상했다던가… 그런 게 아니다.

         정말 미지의 현장 책임자 미스 그리샤와 앤을. 어떤 방식으로도 결부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벽에 머리를 박은 박사가 골골대는 걸 보고, 고개를 돌려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통화 화면을 봤을 때 그녀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안녕, 레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침내, 진정한 의미로 마주한 둘.

    ….

    그냥 묘사 욕심 좀 덜내고 진행했으면 원래 쓰려던 곳까지 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항상 죄송하고,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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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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