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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백연영은 네필라 쥐라시카가 건넨 선물이 마음에 든 거 같았다.

         

        내 머리 위에 올려두고 계속 만지작거렸으니 말이다.

         

        “키에엥….”

         

        굉장히 슬픈 표정을 하는 네필라.

         

        “키오옹….”

         

        투스와 푸스도 마찬가지였다.

         

        너희가 참 대견하다.

         

        평소에는 서로 티격태격하더니, 위험한 순간이 오니까 그렇게 아끼던 물건도 바로 내주는구나.

         

        어떤 인간은 당소영의 등을 걷어차고 도망가던데. 너희가 사람보다 낫다.

         

        물론 아끼던 물건이 내 허물이라는 게 조금 걸렸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마음이 중요한 거지.

         

        백연영도 내 허물 자체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거미들의 마음을 보고 감동한 것일 거다.

         

        “…그때보다 더 작았다니, 보지 못한 게 참으로 아쉽구나.”

         

        마음 보고 감동한 거 맞지?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

         

        당소영은 아직도 무서워하는 티를 내긴 했지만, 백연영이 당장 그녀를 처벌할 생각은 없다는 걸 보여줬다.

         

        이제 대화라는 것이 시작된 거다.

         

        병아리와 악어가 서로 말하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백연영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지레 겁을 먹는 당소영의 모습이 조금 불쌍해 보였다.

         

        힘내렴, 당소영.

         

        넌 할 수 있어.

         

        응원의 의미로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겍겍.”

         

        당소영이 말을 할 때마다 추임새를 넣어줬다.

         

        이제 말에 신빙성이 생겼겠지.

         

        효과가 크진 않겠지만, 안 하는 거보단 나을 거다.

         

        “게게게겍.”

        “대, 대협. 조오오옴….”

         

        저 눈빛을 봐라.

         

        내 도움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눈물을 흘리려고 한다.

         

        “게게게겍!”

         

        별거 아닌데, 뭘.

         

        당소영은 자신이 십만대산에 들어온 이유부터, 잘생긴 악어왕도마뱀과 만난 이야기까지 했다.

         

        요는 이렇다.

         

        십만대산에 영물이 잔뜩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당가에서 달로포라는 영물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곳으로 보냈다는 거다. 겸사겸사 마교에서 훔쳐 간 독충들을 되찾아올 수도 있을 거고.

         

        “고작 독룡 하나로 무얼 해보겠다고. 버리는 패도 아니고.”

         

        쯧.

         

        백연영이 혀를 찼다.

         

        그녀의 말은 옳았다.

         

        내가 마주친 그 딜로포사우루스가 내공을 다룰 줄 아는, 규격 외의 괴물이긴 했지만 이곳에 널린 공룡들을 전부 상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안킬로의 열화판이라도 만난다면 그대로 머리가 터지겠지.

         

        “…달로포가 저를 찾아내고 보, 보금자리를 습격했어요.”

         

        이제 이야기는 나와 딜로포사우루스의 격전으로 넘어갔다.

         

        딜로포가 수면독을 써가면서 몰래 습격한 일.

         

        독에 저항이 있는 내가 버텨낸 후, 단신으로 놈을 막아선 일.

         

        당소영이 보진 못했지만, 네필라 쥐라시카가 몸을 던져 날 보호해 준 일.

         

        결국 내가 구음백골조로 놈의 대가리를 부순 일까지.

         

        모든 이야기를 해냈다.

         

        “그래. 이 거미가 그랬단 말이지.”

        “키에엥….”

         

        백연영의 시선은 네필라 쥐라시카를 향했다.

         

        흥미로워할 수밖에 없을 거다.

         

        네필라는 무려 아라크네로 진화했던 거미라고.

         

        슈퍼 럭키 인면지주지.

         

        지금은 다시 돌아왔지만.

         

        “그래서, 이 녀석의 몸 상태가 악화하여 사천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참이었던 게냐?”

        “네, 네!”

         

        당소영은 그간 설명한 걸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화색을 보였다.

         

        당소영의 말은 그랬다.

         

        이 거미가 저 도마뱀의 목숨을 구했다.

         

        그 대가로 거미의 상태가 나빠졌다.

         

        그러므로 거미를 살리기 위해 설비와 재료가 있는 사천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여기까지는 백연영도 인정하는 거 같았다.

         

        “사천으로 돌아가는 건 상관없다. 나의 것을 탐한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굳이 죽일 이유는 없는 거 같구나.”

         

        당소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희를 데려가는 건 허할 수 없다.”

         

        내 목덜미를 꽉 잡은 백연영.

         

        고양잇과 짐승이 새끼의 목을 무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곤해진다.

         

        “…겍!”

         

        한 박자 늦게 놀란 겍겍소리를 내었다.

         

        아니, 저게 뭔 소리람.

         

        “희는 십만대산에서 나갈 수 없다.”

         

        나 납치당한 거야?

         

        “하, 하지만….”

         

        당소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대협이 없다면….”

        “희가 없다면, 네가 위험해질 거 같아서 그러느냐.”

        “저, 저뿐만 아니라 거미 소저도….”

         

        당소영의 말이 맞다.

         

        지금까지 봐온 당소영이라면, 내가 없어지면 엉엉거릴 게 뻔했다. 네필라 쥐라시카가 거미줄로 꽁꽁 묶은 채 억지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 아니더냐. 지금의 희가 중원으로 가게 됐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말로 모른다는 말이냐.”

         

        백연영은 당소영의 말에 일갈했다.

         

        “삼류의 무인조차 본교의 십만대산에 발을 들이밀었다. 소림의 땡중들도 눈에 불을 켜고 영물을 찾고 있다지. 지금의 중원은 미쳐있다. 어떻게든 영물을 확보하려고 말이다.”

         

        그녀의 푸른 눈이 당소영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희가 밖으로 나간다? 다른 지역도 아니고 사천까지? 그 결과는 너무 뻔한 거 아니더냐?”

         

        다른 사람들이 날 봤을 때 뭐라고 생각할까.

         

        커다란 도마뱀.

         

        그런데 무공을 쓰고 다니고 영약도 꽤 많이 섭취한.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기연이었다.

         

        도마뱀 꼬치구이가 되는 것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소영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나를 이용해 먹기 위해 밖으로 같이 나가고자 한 것은 아닐 거다.

         

        그냥 막연히, 어떻게든.

         

        함께 한다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인 당소영은, 손을 뻗어 내 뺨을 살짝 만졌다.

         

        백연영은 심기가 불편한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제지하진 않았다.

         

        “…대협. 죄송해요. 거미 소저는 제가 어떻게든 치료해 볼게요.”

         

        그 말은, 둘이서 십만대산 바깥으로 나간다는 소리인가?

         

        “게엑!”

         

        그건 안된다.

         

        내가 십만대산 바깥으로 나가면 다른 무인들에게 사냥당할 위험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 없는 당소영은 십만대산 바깥으로 나가기도 전에 다른 공룡에게 잡아먹히고 말 거다.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건 아니다.

         

        물론 난 도마뱀이긴 한데, 그래도 버릴 수 없다.

         

        날 신수로 섬기는 신도를 어떻게 버릴 수 있겠나.

         

        “게게게겍!”

         

        백연영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현 상황을 반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당가의 여식아. 지주를 치료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저, 적어도 한 달.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몰라요….”

        “치료법은?”

        “몸에 남아 있는 독을 마저 제거한 후, 다른 독을 주입해 내단을 치료해야 해요. 가만히 두면 다시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니, 환골탈태를 유도해 봐야죠. 그래서 기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거예요….”

         

        당소영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백연영의 말은, 자기가 지주를 치료해 줄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으니까.

         

        “환골탈태라. 하긴, 영물을 끌고 이곳에 왔으니 네 특기가 영물을 다루는 것이겠지.

         

        백연영은 내 등 위에서 내려왔다.

         

        “천마신교로 오거라.”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저 말에는 크나큰 오류가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당소영이 사천당가 출신이라는 것.

         

        “네, 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마신교가 아닌 개객신앙을 믿고 있다는 것.

         

        “게, 게겍?”

         

        당소영도 놀라고 나도 놀란 이야기였다.

         

        “무얼 놀라느냐. 설마 본교에 입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게냐.”

        “그, 그럼….”

        “저 지주를 치료할 설비와 재료. 본교에서도 가지고 있을 거다. 게다가 영물을 다룰 줄 아는 자들도 있지. 물론 독물에 한해서는 당가인 네가 능통할 테니 치료는 너에게 맡기겠다.”

         

        좋은 이야기였다.

         

        물론 당가의 사람인 당소영은 눈칫밥을 꽤 많이 먹겠지만, 적어도 당장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게겍!”

         

        역시 내 스승이야.

         

        성격이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이렇게 좋은 해결책을 주다니.

         

        “싫은 게냐?”

        “아, 아뇨! 좋아요!”

         

        목적지가 수정됐다.

         

        사천에서 천마신교의 본거지로.

         

        천마신교라. 가슴 떨리는 명칭이었다.

         

        백연영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낮은 편은 아닌 거 같다.

         

        난 그 백연영의 직전제자고.

         

        “겍겍.”

         

        텃세나 한번 부려볼까.

         

        그런 망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희야.”

         

        백연영의 푸른 눈이 날 쳐다봤다.

         

        “너는 천마신교로 들어올 수 없다.”

         

        키운다면서!

         

        방금도 내 등에 앉았잖아!

         

        “너무 이르다.”

         

        겍겍거리면서 반항하려 했지만, 그녀의 눈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라.”

         

        조른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지.

         

        거기서도 나 같은 영물을 잡으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까짓거 기다리지 뭐.

         

        한 달이라고 했나?

         

        게다가 환골탈태를 언급한 걸 보면 네필라가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거다.

         

        기다릴 가치는 충분하지.

         

        그동안 투스 푸스랑 같이 놀아야지.

         

        “키에엥….”

         

        투스와 푸스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내게 쪼르르 기어 왔다.

         

        그래.

         

        너희도 말은 다 알아듣는구나.

         

        네필라랑 당소영은 당분간 못 봐.

         

        우리끼리 잘 지내보자고.

         

        “겍겍.”

         

        투스는 내 꼬리를 살짝 깨물었다.

         

        푸스는 내 손톱에 자신의 엉덩이를 살며시 갖다 댔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걸까.

         

        “키오옹….”

         

        한참이나 그러고 있던 거미들은, 내 꼬리와 손톱을 꽉 안았다.

         

        그러곤 당소영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기어갔다.

         

        뒤를 계속해서 쳐다보지만, 결연한 표정을 한 채로.

         

        “케엥!”

        “…네?”

        “키에엥!”

         

        당소영과 거미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걸까.

         

        아니, 대화가 맞긴 할까.

         

        “호오.”

         

        백연영도 흥미롭다는 듯이 거미들을 지켜보았다.

         

        “…그런가요. 알겠어요.”

         

        당소영은 내 쪽을 바라봤다.

         

        “작은 거미 소저들은 더 이상 대협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해요.”

         

        뭐?

         

        이 거미들이.

         

        내가 잘해준 게 얼만데.

         

        아무리 백연영이 이쁘다고 해도 그렇지.

         

        날 버리고 후다닥 저기에 붙어?

         

        “…이번에 큰 거미 소저를 본 이후에 깨달았대요. 자신들이 얼마나 나약한지. 얼마나 무능한지.”

         

        그런 게 아니었다.

         

        “큰 거미 소저처럼 대협을 지키고 싶다고 해요.”

         

        당소영은 예전부터 투스와 푸스에게 은근히 말을 걸었다.

         

        자신과 함께 사천으로 간다면 인면지주가 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즉,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었다.

         

        투스와 푸스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강해지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너희가 강해져봤자 얼마나 강해지겠어.

         

        하지만 난 투스와 푸스를 막을 수 없었다.

         

        저 감정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꼈으니까.

         

        “겍….”

         

        뒤를 돌아봤다.

         

        정말 한 순간에 많은 이들이 떠나가게 됐다.

         

        하지만 이건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곧 다시 만날,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일 뿐이다.

         

        오히려 축하를 해줘야 할 상황이었다.

         

        “키에엥….”

        “키오오옹….”

         

        내 쓸쓸함을 전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당소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나도 아쉽지 않은 척 연기했다.

         

        “겸사겸사 크기를 맞춰야 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저건 뭔 소리일까.

         

        일단 무시하자.

         

        내 감정을 깨트릴 순 없다.

         

        “키오오옹…!”

         

        투스와 푸스.

         

        그리고 네필라 쥐라시카가 울음소리를 내었다.

         

        “게게게겍!”

         

        끝까지 돌아보지 않고,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할 뿐이었다.

         

        다음에는 건강해진 모습으로 보자.

         

        셋 다 아라크네로 변해 있으면 좋을 거 같고.

         

        “키오옹!”

         

        그래.

         

        이젠 정말 안녕이다.

         

        “분위기 잡는 중에 조금 미안한데, 바로 떠날 것은 아니다. 못난 제자에게 알려줄 게 몇 가지 있기도 하고.”

         

        ……질주를 활성화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쥐구멍. 아니, 도마뱀 구멍이 없나 확인했다.

         

        내 감동 돌려내!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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