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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야금학부 교관 한스 슈미트.

       미술학부 강사 도로시.

       통계학부의 캄.

       건축학부의 덴.

       역사학부 교수 알렝 드 바그너.

         

       아카데미 내에서도 이름 높은 교원이자, 우수한 인재들.

       또는 대가의 반열에 든 이들도 있다.

         

       한데 그런 이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치외법권인 [기생 나락]에 있다.

       정예 병사조차 감히 들어오기 꺼려하는 곳이거늘, 그런 거리를 당당히 들어왔다?

         

       그것도 저만한 거물들이?

         

       이건 대놓고 수상하다는 걸 증명하는 바였다.

         

       허나.

         

       “자, 잠깐 기다리게! 오, 오해일세!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얘기를 좀 하도록 하지…!”

       “그, 그래요 터틀 경! 우, 우리 대화로 해결해요! 서, 서로 큰 오해가 있는 거예요!”

       “크흠, 이 사람 성격도 급하구먼, 우리도 다 이유가 있어서-.”

         

       푸욱!

         

       “어….”

         

       털썩.

         

       건축의 거장 덴.

       그의 가슴에 대침이 박혔다.

       암살자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암기.

         

       그리고 그러한 암기가 정확히 덴의 가슴을 찔렀고, 그는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해냈다.

         

       “고블린 놈들의 잡독(雜毒)을 묻혀 놨거든. 그놈들 독은 워낙 잡다하게 섞인 게 많아서 해독하기 까다로운 거 알지? 아마 많이 아플걸?”

       “대, 대체 무슨 짓을…!”

         

       문답무용으로 암기를 날리다니, 어디 이런 무도한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그들은 진심으로 분노하며….

         

       “-하, 대체 어떻게 알았지?”

         

       우우웅.

         

       조소 섞인 웃음과 함께 ‘마력’을 발현했다.

         

       아이린 윈들러의 아름다운 물결 빛과 다른 탁하기 그지없는 구정물 같은 색감.

       허나 저 또한 마력임을 안다.

         

       …인륜(人倫)을 져버린 ‘위법(違法) 마법사’가 보이는 색이기도 했고.

         

       화르륵!

         

       암기가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덴은 어느새 마력으로 독을 태워버린 것이다.

         

       “크흑, 지독하군!”

         

       그러나 고블린의 잡독은 지독했다.

       해독한다고 해독했지만, 무수한 오물(汚物)의 독 따위도 섞여 있어 몸을 가누는 것조차 버겁다.

       마력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이 하등한 기사 놈이, 감히…!”

         

       사람 좋은 미소는 어디 가고, 이제는 경멸 어린 시선만을 던지는 다섯 사람.

       그들의 분노 가득한 시선에도 이한은 무덤덤했다.

       아니, 도리어 너무 냉혹하여 살벌했다.

         

       움찔!

         

       한스는 불온함을 느끼며 몸을 움찔거렸으나, 애써 이를 티내지 않고 이를 악 물었다.

         

       “네놈, 대체 어떻게 안 것이냐?”

       “뭐가.”

       “우리의 정체를 어찌 알았느냔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궁금해?”

       “마법사의 학구열이란 것이다.”

       “학구열은 무슨, 역병이나 퍼트리는 해충 새끼들 주제에.”

       “…….”

         

       여전히 웃음기 없는, 그러나 어딘지 열화가 감도는 눈으로 이한은 어처구니없다며 도리어 쏘아댔다.

         

       “대가리 없는 해충들아, 너희는 대놓고 사람을 이용하려는 티를 내는데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냐?”

         

       “…….”

         

       “오드왈, 그 바보가 너희 뜻대로 움직이니까 재밌었어? 머저리들, 지들이 똑똑한 줄 아는 저능아 새끼들아. 아, 이것도 실례이려나? 저능아 분들이 너희보단 똑똑하고 착할 텐데. 구더기보다 도움도 안 되며, 강간범보다 더러운 너희에겐 그 무엇을 예시로 들어도 안 될 테지, 아무렴.”

         

       “…네놈을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놀이나 코볼트도 아닌데, 왜 계속 개 짖는 소리만 하니?”

         

       “!!”

         

       후욱!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고, 그들은 품에 있던 지팡이를 꺼내며 치켜들었다.

       자신들을 모욕한 건방진 ‘미물’을 처벌하기 위하여!

         

       그러나.

         

       싹둑!

         

       “어디서 삿대질이야, 이 시벌 놈이.”

         

       푸확!

         

       “끄아아악!”

         

       기본적인 예절도 모르는 주문쟁이, 한스의 손목이 도끼에 의해 잘려나갔다.

         

       * * *

         

       그가 그들에 대한 어색함을 언제 눈치챘냐고 묻는다면 이리 답할 것이다.

         

       ‘처음부터 알았다’-고,

         

       그 정도로 이놈들은 바보들이었다.

         

       “[불어라, 북풍의 피바람이여!].”

         

       도로시, 아니, 도로시의 ‘거죽’을 훔쳤을 뿐인 이 여자의 손끝에는 화가 고유의 물감이나 흑연 냄새가 없었다.

       유명한 화가라고 한다면 당연히 나야할 아틀리에의 냄새 대신, 썩은 ‘시취(屍臭) 냄새’ 밖에 나지 않더라.

       이런데 자기가 화가라고 믿어달라고?

       같잖지도 않다.

         

       후욱!

         

       정녕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이한을 향해 쏟아졌으나, 그는 개의치 않으며 돌진했다.

       사람의 살결 정도는 얼마든지 갈라버릴 바람 마법이었지만.

         

       퍼걱!

         

       “우웁!”

       “이빨 좀 닦아라, 냄새 난다.”

         

       콰지직!

         

       칼날 따위로 그의 몸에 상처나 낼 수 있으랴.

       상처 하나 나지 않은 그는 마법사의 턱을 움켜쥐고 곧장 부숴버렸다.

       주문은커녕 이제 죽만 먹고 살아야 할 터.

         

       생존한다는 가정하의 얘기지만.

         

       “레, 레니!”

       “이년 이름이 그거였냐? 그럼 진짜 도로시는 어디 있지?”

       “이노오옴! 그 손을 놓지 못할까!”

       “자, 놨다.”

         

       부웅, 하고 마법사의 몸이 상대들에게 던져졌다.

       염동력으로 그녀의 몸을 잡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푸욱!

         

       “!!?”

       “이, 이런 미친놈!”

         

       이한의 검이 그녀의 배를 꿰뚫었고, 꿰뚫린 그의 검은 다른 마법사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끄으윽…!?”

         

       푸화아아악!

         

       건축학부의 덴.

       소문난 거장이라고 하기엔, 놈에게선 거장의 품격이란 게 없었다.

       장인치고 손 또한 곱상하기 그지없고.

       변장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찔러라! 더욱 날카롭게, 더욱 잔인하게!].”

       “[불이야 번져라! 뜨겁게, 타올라라! 용암처럼…!].”

         

       가히 비명이나 다름없는 주문 영창.

         

       허나 이놈들은 바보다.

       기사가 이토록 근접한 상태에서 마법을 쓰는 머저리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후웅!

         

       콰직!

         

       이한의 손도끼가 캄의 가슴 정중앙을 꿰뚫었다.

       왕실마저 탐냈다던 통계학부의 인재치곤, 마약 냄새만 잔뜩 풍기고 있던 눈이 텅텅 빈 놈.

       대가리에 든 게 없다는 뜻이다.

         

       “[불-.]

         

       이후 나머지 한 놈이 어떻게든 주문 영창을 마치려고 했지만.

         

       “━닥쳐━!”

         

       사자, 아니 대호(大虎)의 포효보다 거대한 울림이 쏟아지며 주문 영창은 곧장 캔슬됐다.

         

       사자후.

       이한의 거대한 기백이 담긴 고성(高聲)이 거리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낡은 건물의 균열마저 일으키는 충격이 퍼졌으니.

         

       전날 생도들에게 보였던 사자후와는 비견조차 안 되는 포효였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살기와 기백이 섞인 포효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내, 내 귀!? 귀, 귀가 들리지 않아…!”

         

       “아아아악…!”

         

       일격이 되었다.

         

       마법사들은 주문 영창 도중 주문이 엉키며 격통으로 몸이 뒤집혔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선사한 건 이한의 포효였다.

         

       귀와 눈, 코 등에서 피가 흘렀고, 어떤 놈은 그 자리에서 즉각 혼절했다.

         

       알렝.

       전설적인 역사학자보단, 여성의 분내와 피 냄새 등만 풍기던 ‘간살마’가 더 어울리는 놈.

         

       “숨길 생각이 없네, 이 좆같은 새끼들.”

         

       기생 나락.

       이 거리를 보고 왕국의 암세포이자 기생충이라 부른다지?

       틀렸다.

       진정으로 하등 쓸모도 없는 기생충은 저것들이다.

       타인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타인의 인생마저 기생하여 사는 것들이니.

         

       이한의 진심 어린 평가였다.

         

       “어, 어찌….”

         

       한스, 유일하게 무사한 마법사가 몸을 벌벌 떨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동지가 피를 토해내며 혼절하거나 죽었다.

         

       압도.

       그래, 압도적이다.

       정녕 해충을 압살하듯 그는 마법사란 인종을 해충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터, 터틀 경….”

       “참 편리하다. 아까는 이놈 저놈이더니, 이제는 또 경칭이냐? 하나만 해라, 좀.”

         

       터벅터벅.

         

       그의 걸음이 가까워지고 있다.

       한스는 공포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뭐 저런 괴물이 다 있단 말인가?

         

       좌천된 기사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저건 도저히 좌천될 실력이 아니었다.

         

       “너,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 뭐, 뭐기에 아카데미에 온 것이냔 말이다!”

       “…….”

       “너, 너도 이걸 노린 것이냐!? 대, 대연금술사가 남긴 ‘머스킷’의 설계도를 가지기 위해 잠입한 것이냔 말이다! 주, 주마! 줄 테니 제발 목숨만은-.”

       “역겨우니까 제발 입 좀 닥쳐.”

         

       콰직!

         

       “끄아아악!”

         

       발목을 짓밟았다.

       자비 없는 손속.

         

       한 발 더 나아가 그대로 놈의 턱을 우악스럽게 붙들며.

         

       콰지지직!

         

       “!!!”

         

       그대로 턱을 깨버렸다.

       완력만으로 으깨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푸욱.

         

       …심장에 대침을 박아 넣었다.

         

       “마법사란 놈들은 심장이 찔려도 쉽게 안 죽더군. 마력의 핵심기관이라 그런지 몰라도 보통 사람보단 확실히 튼튼해. 대신 이렇게 심장이 제압당하면 마력도 못 쓰더군.”

         

       “!!”

         

       턱이 부서지고, 마력마저 봉인당한 한스, 아니 한스의 이름을 쓸 뿐인 해충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아등바등 거렸지만, 무의미한 헛짓거리였다.

         

       이한의 손에서 벗어나기란 악어의 입에 손을 넣은 원숭이가 도망갈 수 있다고 자위하는 꼴과 같다.

         

       “후우.”

         

       이한은 그대로 놈을 밟은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이놈의 모기 새끼들은, 잡고 또 잡아도 왜 이리 계속 나오는 거야.”

         

       이한은 한여름이 다 끝나고도 계속 출몰하는 모기를 잡은 사람마냥 투덜거렸다.

         

         

       저가 잡은 것은 사람이 아니란 듯이.

         

       * * *

         

       한편, 오늘따라 유난히 기생나락에는 방문자가 많다는 걸 증명하듯이 남몰래 마법사와 이한의 전투를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놀랍습니다. 보통 자들이 아니었는데 저리 쉽게 이기다니요.”

       “마냥 힘이 좋을 뿐만 아니라 노련함도 있었나? 자꾸만 뭔가 나오는군.”

         

       잭의 말대로다.

       저들은 오늘 생도들이 이긴 마법사처럼 어설픈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하나 같이 살인과 범죄를 망설이지 않는 2급 위법 마법사들이었지.

       그리고 2급이면 하나 같이 상급 기사, 그것도 아니면 고위 기사가 직접 나서야 하는 사안이었다.

         

       2급부터는 그 무력과 살상력이 결코 만만치 않으니까.

         

       한데 그런 이들을 무력화하는데 걸린 시간이 1분도 안 걸렸다.

       마치 어린애를 갖고 노는 듯했으나, 전투 시야가 넓은 이라면 알 것이다.

       그의 전투 방식이 마법사를 제압하고 죽이는 데 특화되었는지, 또한 상당히 영리하고도 노련한 전술이었음을.

         

       “마법사와 싸우는, 아니 ‘죽이는 법’을 제대로 터득한 거다. 무수한 실전 속에서 갈고 닦은 거겠지.”

       “밥 먹고 마법사만 죽이셨나?”

       “그럴지도 모르지.”

       “…….”

         

       정녕 그는 마법사만 죽이고 다녔을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능숙함이다.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던 것일까?

         

       그때.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거냐.”

         

       “…….”

         

       “나와, 이 건방진 도련님아.”

         

       “…….”

         

       북부의 막내 공자는, 로엔은 쓰게 웃었다.

         

       ‘역시 들켰었던가.’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정말 허무하게 들킨 것 같았다.

         

       “주군….”

       “가자.”

       “갔다간 두들겨 맞을 것 같은데요?”

       “오늘만큼은 맞아야겠지.”

         

       로엔은 선선히 인정했으며, 설령 그가 자신을 두들겨 패더라도 오늘만큼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게.

         

       “왔냐, 이 건방진 놈아.”

       “…죄송합니다.”

       “당연히 죄송해야지. 너 때문에 일부러 살려뒀으니까.”

         

       톡.

         

       “…….”

         

       구겨진 종이가 로엔의 가슴에 부딪쳐 떨어졌다.

         

       전날, 이한이 허수아비 속에서 발견한 종이.

       누가 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한은 제 앞에 로엔이 있는 순간 알았다.

         

       “그래, 네 말대로 죽이진 않았다.”

         

       이놈이 제 속을 꿰뚫어본 놈이었음을.

         

       로엔은 덤덤히 사실을 인정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셋은 죽은 것 같습니다만.”

       “정확히 둘만 죽였어. 여자는 장기를 피해 배를 뚫었지. 그러니 숨은 쉬고 있다. 출혈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진 않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렇군요.”

         

       허나 그런 것치고 편히 죽어선 안 될 놈들만 살려뒀다.

       범죄의 경중을 읽어내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뭐, 능력이건 뭐건.

         

       “훌륭하십니다.”

         

       바라지 마지않던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찬사 어린 발언에 이한은.

         

       “훌륭하지? 그럼, ─가볍게 한 대만 맞자.”

         

       “……아.”

         

       로엔은 막상 예측이 현실이 되자 식은땀을 흘렸다.

       충분히 각오한 일이었으나, 지금 주변을 보니 느낀다.

         

       피가 낭자하게 흩뿌려진 거리.

       사람의 턱을 젤리마냥 으깨버리는 완력까지.

         

       ‘가볍게 한 대’를 맞는다면 과연 내일의 해를 볼 수 있을지 장담이 가지 않는다.

         

       ‘예의바르게 메시지를 남겼어야 했었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 회귀자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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