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2


    ​
    피아는 노아 일행과 함께하고 있지만, 어딘가 붕 뜬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한 사람 몫을 잘 수행하고 있는 데다가 말을 걸면 별문제 없이 대화도 나누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몰랐다.
    ​
    ​
    알았다고 해도, 아이들의 정신 상태 또한 말이 아니었기에 챙겨주지 못했을 것이다. 
    ​
    ​
    갈증이 날 때마다 시원한 물을 떠올리듯, 그녀가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항상 리안을 떠올렸다. 그건 마치 살이 베이면 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당연한 현상처럼 이루어졌다.
    ​
    ​
    [ 피아, 괜찮아? 아까 밥도 적게 먹던데. ]
    ‘응, 괜찮아.’
    [ 그래? 정말 다행이다. 혹시 어디 불편한 데 있으면 말해줘. ]
    ‘..고마워.’
    [ 하하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 그야, 피아가 부탁한 일이잖아. ]
    ​
    ​
    피아는 더 이상 동생의 환각을 보지 않았다. 대신 다정한 리안의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들었다. 
    ​
    ​
    그녀는 미쳐가고 있었다. 
    ​
    ​
    리안의 환각과 환청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완전히 무너져 내리려는 피아의 정신을 겨우 이어 붙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
    ​
    그 덕분에 그녀는 지금까지 삶에 의지를 다지고 살아있을 수 있었다. 환각과 환청을 듣고 있지만, 그녀는 과거보다 더 행복했다. 
    ​
    ​
    그런 그녀의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가 끝없이 외면하고,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소리치던 기억이 서늘한 밤에 찾아와 그녀의 목을 조여왔다.
    ​
    ​
    “피아…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야?”
   
    ​
    리안이 혐오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
    “난 항상 널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어째서?”
    ​
    ​
    미안해,미안해. 정말 미안해.
    ​
    ​
    아무리 애원해도 그녀는 박제가 된 동물이 된 것처럼 아무런 말도 뱉을 수 없었다.
    ​
    ​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구원해준다고 했잖아.”
    ​
    ​
    맞아, 넌 날 구원해준다고 했어.
    ​
    ​
    그녀의 기억은 확실하게 비틀려있었다. 리안이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말을 정말로 했던 것처럼 기억하고 괴로워했다. 
    ​
    ​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
    ​
    “그런데 왜 그랬어? 왜? 왜 날 죽음으로 몰고 갔어? 피아 어째서?”
    ​
    ​
    원망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뇌까지 파먹는 것 같았다. 피아는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
    ​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
    ​
    “미안,미안해..미안..해.미안해…”
    ​
    ​
    그녀의 여린 정신은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은 죄악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살기 위해 아득한 죄책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
    ​
    “아냐,아니야…나는 잘못 없어. 그건 그래….네가 잘못한 거잖아.”
    ​
    ​
    피아는 지옥에 던져진 사람처럼 몇 번이고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몇 번이고 좌절하며, 몇 번이고 같은 죄를 저질렀다. 마치 연옥에 갇힌 사람처럼.
    ​
    ​
    그녀의 행동은 신관들이 자진해서 고통을 감수하는 고행과 비슷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피아는 차츰차츰 이상한 믿음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
   
   “구원,그래…구원해줄거야. 응,리안이…리안이 날… -”
    ​
    ​
    희망이 필요한 인간들이 그러하듯, 피아는 구원을 찾았다. 그녀의 구원은 리안이었다.
    ​
    ​
    ***
    ​
    ​
    제스는 다른 수인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축복받은 수인이었다. 동시에 노예이기도 했다. 그녀의 엄마는 무거운 족쇄를 찬 채 항상 제스에게 말했다.
    ​
    ​
    “멍청한 수인인 척을 해야 해. 그래야 오래 살 수 있어.”
    ​
    ​
    그 어떤 주인도 똑똑한 짐승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히 재롱부리면서 멍청한 애완 수인을 원했다. 그녀의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 제스를 세뇌하듯 교육했다.
    ​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스의 엄마는 잔혹한 시합에 끌려 나가 죽고 말았다.
    ​
    ​
    “제스,무서…”
    ​
    ​
    제스의 어눌한 말투도, 조금은 과한 행동도 전부 엄마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제스는 이런 행동들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는 걸 알았다. 
    ​
    ​
    그렇기에 굳이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리안을 만나게 되었다.
    ​
    ​
    제스는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
    ​
    ‘아,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
    ​
    제스는 리안에게 매달려서 말했다.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주인님이라고.
    ​
    ​
    지금까지 수많은 노예 상인이 그녀에게 맛있는 먹이나 쓰레기 같은 먹이를 주었지만 단 한 번도 그녀는 그들을 주인이라 여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입으로는 주인님이라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먹이를 먹을 수 있고, 나은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으니까.
    ​
    ​
    리안에게 ‘주인님’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
    ​
    제스는 리안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경계했다. 그녀의 예민한 수인의 본능이 말해주었다.
    ​
    ​
    저 사람의 근처는 안전해, 저 옆에 있으면 다칠 일도 힘든 일도 없어.
    ​
    ​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살아왔던 제스에겐 ‘무조건적인 안전’은 사이비 종교의 인사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에 리안을 경계했다.
    ​
    ​
    그러던 어느 날 ‘그 사건’이 발생했다.
    ​
    ​
    수인은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식사량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소모되는 열량이 많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
    ​
    식사를 제대로 한 수인과 제대로 하지 못한 수인은 힘의 차이가 크게 차이가 났다. 그렇기에 제스는 먹을 수 있는 건 입에 다 넣고 봤다. 입에 들어가는 게 쥐새끼일 때도 있었고 벌레일 때도 있었지만 가리지 않고 먹었다.
    ​
    ​
    그래야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
    ​
    ‘아무것도 없어..’
    ​
    ​
    제스와 노아,네로가 머무는 감옥에는 벌레가 몇 마리 기어 다니긴 했지만 전부 제스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벌레뿐이었다. 이걸로는 제대로 버틸 수 없었다.
    ​
    ​
    ‘먹을 걸 찾아야 해…!’
    ​
    ​
    제스는 모두가 잠든 틈에 감옥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
    ​
    ‘앗,구멍이다!’
    ​
    ​
    감옥 철창 끝자락을 잡아당기자 제스가 겨우 지나갈 법한 작은 구멍이 생겼다. 누군가가 탈출을 위해 뚫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빼낸 철창 조각을 다시 맞추면 감쪽같이 딱 맞춰져 구멍을 들킬 일도 없었다.
    ​
    ​
    ‘몰래 나가서 조금만 먹고 오자.’
    ​
    ​
    굳이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어도 된다. 쥐나 벌레 따위를 먹어도 상관없었다. 제스는 감옥을 빠져나와 코를 찡긋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
    ​
    ‘맛있는 냄새.’
    ​
    ​
    주방 안을 채운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다가 이곳저곳을 뒤적거렸다. 
    ​
    ​
    ‘별로 없어…’
    ​
    ​
    기대했던것보다 먹을 만한 게 없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부서진 빵 반 조각과 치즈 조금을 챙겨 싱크대 수납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야금야금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는데.
    ​
    ​
    쾅!
    ​
    ​
    “…!”
    ​
    ​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다. 제스는 귀와 꼬리를 내보이며 몸을 바짝 긴장했다. 
    ​
    ​
    ‘나온 걸 들켰나…?’
    ​
    ​
    제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싱크대 수납장 모서리에 몸을 밀어 넣었다. 만약 탈출한 게 들킨 거라면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
    ​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
    “더워…”
    ​
    ​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릴 정도로 주방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한 제스가 굳게 닫혀있던 수납장 문을 열었다. 
    ​
    ​
    “어..?”
    ​
    ​
    화르륵 -.
    ​
    ​
    새빨간 불이 날름거리며 제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주방은 불로 뒤덮여있었다.
    ​
    ​
    “케흑,콜록콜록…!”
    ​
    ​
    매캐한 연기에 눈이 맵고 숨이 막혔다. 제스는 기민하게 눈치챘다. 이미 불은 번질대로 번진 상태다. 지금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
    아무리 제스가 보통 수인보다 똑똑한 수인이더라도, 어린 나이에 직면하게 된 ‘죽음’앞에선 패닉에 빠지는 게 당연했다. 제스는 무서울 때마다 도망칠 엄마의 품이 없었기에 수납장 문을 닫고 구석에 몸을 밀어 넣은 채 웅크렸다.
    ​
    ​
    타닥,탁.
    ​
    ​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탄내가 코를 찔렀다. 아직 제스가 숨어 있는 수납장까지 불이 옮겨붙지 않아,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
    ​
    제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불길이 수납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나가는 상상.
    ​
    ​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제스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숨이 막혀 훌쩍거리고 있을 때.
    ​
    ​
    “제스!”
    ​
    ​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일까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
    ​
    “흐이잉..”
    ​
    ​
    항상 숨죽여 울어야 한다고 교육받았음에도 소리 내 울고 말았다. 제 손으로 닫았던 수납장 문이 열리고 걱정이 가득 담긴 다정한 시선이 쏟아졌다.
    ​
    ​
    축축하게 젖은 천으로 제 몸을 꽁꽁 감싸 필사적으로 달려 나가는 제 주인의 숨결과 맥박, 그리고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
    ​
    ​
    제스는 이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
    ​
    그날 이후 제스는 리안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시작했다. 말뿐인 주인이 아니라 진짜 제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
    ​
    제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주인을 지키고 행복하게 해주자. 어리고 서툴지만, 제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
    ​
    그러던 어느 날 리안이, 제 주인님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혈소연님! 익명님! 감사합니다 😀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귀여운 제스..

오후 10시 30분쯤에 한편 더 올릴 예정입니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피아는 노아 일행과 함께하고 있지만, 어딘가 붕 뜬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한 사람 몫을 잘 수행하고 있는 데다가 말을 걸면 별문제 없이 대화도 나누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아이들의 정신 상태 또한 말이 아니었기에 챙겨주지 못했을 것이다.

갈증이 날 때마다 시원한 물을 떠올리듯, 그녀가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항상 리안을 떠올렸다. 그건 마치 살이 베이면 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당연한 현상처럼 이루어졌다.

[ 피아, 괜찮아? 아까 밥도 적게 먹던데. ]

‘응, 괜찮아.’

[ 그래? 정말 다행이다. 혹시 어디 불편한 데 있으면 말해줘. ]

‘..고마워.’

[ 하하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 그야, 피아가 부탁한 일이잖아. ]

피아는 더 이상 동생의 환각을 보지 않았다. 대신 다정한 리안의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들었다.

그녀는 미쳐가고 있었다.

리안의 환각과 환청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완전히 무너져 내리려는 피아의 정신을 겨우 이어 붙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녀는 지금까지 삶에 의지를 다지고 살아있을 수 있었다. 환각과 환청을 듣고 있지만, 그녀는 과거보다 더 행복했다.

그런 그녀의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가 끝없이 외면하고,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소리치던 기억이 서늘한 밤에 찾아와 그녀의 목을 조여왔다.

“피아…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야?”

리안이 혐오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항상 널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어째서?”

미안해,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무리 애원해도 그녀는 박제가 된 동물이 된 것처럼 아무런 말도 뱉을 수 없었다.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구원해준다고 했잖아.”

맞아, 넌 날 구원해준다고 했어.

그녀의 기억은 확실하게 비틀려있었다. 리안이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말을 정말로 했던 것처럼 기억하고 괴로워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왜 그랬어? 왜? 왜 날 죽음으로 몰고 갔어? 피아 어째서?”

원망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뇌까지 파먹는 것 같았다. 피아는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미안,미안해..미안..해.미안해…”

그녀의 여린 정신은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은 죄악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살기 위해 아득한 죄책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냐,아니야…나는 잘못 없어. 그건 그래….네가 잘못한 거잖아.”

피아는 지옥에 던져진 사람처럼 몇 번이고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몇 번이고 좌절하며, 몇 번이고 같은 죄를 저질렀다. 마치 연옥에 갇힌 사람처럼.

그녀의 행동은 신관들이 자진해서 고통을 감수하는 고행과 비슷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피아는 차츰차츰 이상한 믿음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구원,그래…구원해줄거야. 응,리안이…리안이 날… -”

희망이 필요한 인간들이 그러하듯, 피아는 구원을 찾았다. 그녀의 구원은 리안이었다.

***

제스는 다른 수인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축복받은 수인이었다. 동시에 노예이기도 했다. 그녀의 엄마는 무거운 족쇄를 찬 채 항상 제스에게 말했다.

“멍청한 수인인 척을 해야 해. 그래야 오래 살 수 있어.”

그 어떤 주인도 똑똑한 짐승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히 재롱부리면서 멍청한 애완 수인을 원했다. 그녀의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 제스를 세뇌하듯 교육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스의 엄마는 잔혹한 시합에 끌려 나가 죽고 말았다.

“제스,무서…”

제스의 어눌한 말투도, 조금은 과한 행동도 전부 엄마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제스는 이런 행동들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굳이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리안을 만나게 되었다.

제스는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아,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제스는 리안에게 매달려서 말했다.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주인님이라고.

지금까지 수많은 노예 상인이 그녀에게 맛있는 먹이나 쓰레기 같은 먹이를 주었지만 단 한 번도 그녀는 그들을 주인이라 여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입으로는 주인님이라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먹이를 먹을 수 있고, 나은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으니까.

리안에게 ‘주인님’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제스는 리안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경계했다. 그녀의 예민한 수인의 본능이 말해주었다.

저 사람의 근처는 안전해, 저 옆에 있으면 다칠 일도 힘든 일도 없어.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살아왔던 제스에겐 ‘무조건적인 안전’은 사이비 종교의 인사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에 리안을 경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건’이 발생했다.

수인은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식사량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소모되는 열량이 많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식사를 제대로 한 수인과 제대로 하지 못한 수인은 힘의 차이가 크게 차이가 났다. 그렇기에 제스는 먹을 수 있는 건 입에 다 넣고 봤다. 입에 들어가는 게 쥐새끼일 때도 있었고 벌레일 때도 있었지만 가리지 않고 먹었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

제스와 노아,네로가 머무는 감옥에는 벌레가 몇 마리 기어 다니긴 했지만 전부 제스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벌레뿐이었다. 이걸로는 제대로 버틸 수 없었다.

‘먹을 걸 찾아야 해…!’

제스는 모두가 잠든 틈에 감옥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앗,구멍이다!’

감옥 철창 끝자락을 잡아당기자 제스가 겨우 지나갈 법한 작은 구멍이 생겼다. 누군가가 탈출을 위해 뚫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빼낸 철창 조각을 다시 맞추면 감쪽같이 딱 맞춰져 구멍을 들킬 일도 없었다.

‘몰래 나가서 조금만 먹고 오자.’

굳이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어도 된다. 쥐나 벌레 따위를 먹어도 상관없었다. 제스는 감옥을 빠져나와 코를 찡긋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맛있는 냄새.’

주방 안을 채운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다가 이곳저곳을 뒤적거렸다.

‘별로 없어…’

기대했던것보다 먹을 만한 게 없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부서진 빵 반 조각과 치즈 조금을 챙겨 싱크대 수납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야금야금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는데.

쾅!

“…!”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다. 제스는 귀와 꼬리를 내보이며 몸을 바짝 긴장했다.

‘나온 걸 들켰나…?’

제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싱크대 수납장 모서리에 몸을 밀어 넣었다. 만약 탈출한 게 들킨 거라면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더워…”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릴 정도로 주방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한 제스가 굳게 닫혀있던 수납장 문을 열었다.

“어..?”

화르륵 -.

새빨간 불이 날름거리며 제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주방은 불로 뒤덮여있었다.

“케흑,콜록콜록…!”

매캐한 연기에 눈이 맵고 숨이 막혔다. 제스는 기민하게 눈치챘다. 이미 불은 번질대로 번진 상태다. 지금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무리 제스가 보통 수인보다 똑똑한 수인이더라도, 어린 나이에 직면하게 된 ‘죽음’앞에선 패닉에 빠지는 게 당연했다. 제스는 무서울 때마다 도망칠 엄마의 품이 없었기에 수납장 문을 닫고 구석에 몸을 밀어 넣은 채 웅크렸다.

타닥,탁.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탄내가 코를 찔렀다. 아직 제스가 숨어 있는 수납장까지 불이 옮겨붙지 않아,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제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불길이 수납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나가는 상상.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제스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숨이 막혀 훌쩍거리고 있을 때.

“제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일까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흐이잉..”

항상 숨죽여 울어야 한다고 교육받았음에도 소리 내 울고 말았다. 제 손으로 닫았던 수납장 문이 열리고 걱정이 가득 담긴 다정한 시선이 쏟아졌다.

축축하게 젖은 천으로 제 몸을 꽁꽁 감싸 필사적으로 달려 나가는 제 주인의 숨결과 맥박, 그리고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

제스는 이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이후 제스는 리안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시작했다. 말뿐인 주인이 아니라 진짜 제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제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주인을 지키고 행복하게 해주자. 어리고 서툴지만, 제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안이, 제 주인님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