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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아가씨. 더 천천히 부드럽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허접 시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잖아.”

   

   “아뇨. 그게 아니라 이렇게.”

   

   ‘모르겠어요.’

   “설명을 이렇게 멍청이처럼 밖에 못해? 좀 제대로 해 봐.”

   

   “잠깐만요. 으음. 그러니까.”

   

   전속 시녀가 같이 거울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정돈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내 손은 여전히 서툴렀다.

   

   항상 시녀에게 맡기던 일을 직접 하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아카데미 안에선 계급과 관계없이 모두 평등해야 하기에 시종을 들일 수 없다. 같은 규칙이 있는 거야?

   

   조금만 생각해도 그게 지켜질 리 없단 건 다 알지 않나?

   

   어차피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면 다시 신분제의 아래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느 미친놈이 평등을 주장하겠냐!

   

   그 규칙만 없었어도 내가 스스로 빗질을 할 일은 없었을 텐데.

   

   빌어먹을.

   

   속으로 한탄을 하긴 했지만 그런다 해서 현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투덜투덜거리며 시녀가 알려주는 대로 손을 움직이니 결국에 그럴 듯한 머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다 싶었지만 전문가가 보기엔 달랐던 듯 시녀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여기서 뭔가를 더 할 게 있나? 이 정도면 평소 내 모습이랑 똑같잖아.

   

   가만 시녀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자니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네요.”

   

   ‘그쵸?’

   “어때. 허접 시녀가 한 것보다 훨씬 낫지?”

   

   “물론입니다. 아가씨.”

   

   지난 몇 달간 시녀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나와 만났을 적에는 내가 손을 움직이기만 해도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걸론 겁먹은 체도 안하니까.

   

   루시가 어떻게 갈궜길래 이런 사람이 그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었던 건지.

   

   “끝나셨습니까. 아가씨?”

   

   매무새를 끝마치고서 숙소 바깥으로 나오자 입구에서 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게 징그러우니까 그만하라 그랬더니 숙소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니.

   

   이 놈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사는 자신의 주인을 스토킹하는 인간인걸까?

   

   한소리를 해주려다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웃어넘길 걸 깨달은 나는 짜증을 한숨과 함께 날려버렸다.

   

   “가시죠. 다들 움직이고 있습니다.”

   

   ‘네. 그러죠.’

   “알아. 허접 기사. 재촉하지 마.”

   

   나와 칼이 발을 움직이는 와중에 시녀는 가만 제자리에 서 있었다.

   

   무얼 하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시녀가 자신의 양 치마 끝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십시오. 루시 아가씨. 저는 저택에서 아가씨가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기서 작별인사를 하는 거야?

   

   어차피 몇 달 지나면 다시 보게 될 텐데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 건지.

   

   난 몸을 완전히 돌려 시녀의 앞에 섰다.

   

   ‘다녀올게요. 에린.’

   

   “갔다 올게. 허접 에린. 기다리고 있어.”

   “…예. 아가씨.”

   

   *

   

   아카데미의 입구는 사람들로 버글거리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학생과 시종 정도라 그나마 괜찮았다면 이번에는 학부형들까지 있어서 인파를 뚫을 수가 있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허나 이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

   

   내가 아카데미 입구 쪽으로 걸어가자 사람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줬으니까.

   

   무슨 거대한 바퀴벌레라도 나타난 것마냥 나를 피해 사람들이 갈라지는 것을 본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맞다. 요 몇 달간 저택에 틀어박혀 있어서 까먹고 있었지만 원래 내 취급은 이랬었지?

   

   두려움과 껄끄러움이 섞인 시선을 받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루시가 너무 넓은 범위에서 많은 일을 저질러 놨어.

   

   루시가 저택에서만 지랄을 했다면 이 정도까지 기피 당하진 않았을 거 아냐.

   

   이 평판을 뒤집는 게 가능할까?

   

   이 정도면 그냥 얌전히 받아들이는 게 속편할 것 같은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라. 편하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 아니더냐.>

   ‘할아버지 같으면 이 상황에 긍정적일 수가 있어요?’

   <사람이 몰리는 것보다야 낫지. 나 하나 때문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끔찍한 줄 아느냐?>

   

   할배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이 영웅으로 활동하던 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와 동료들이 모여서 움직이면 그를 구경하러 몰린 사람들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고.

   

   인파 때문에 사고가 벌어진 후로는 되도록 정체를 숨기고 다녔다고.

   

   평판이 좋은 것도 나름의 고충이 있구나.

   

   역시 뭐든 간에 적당한 게 좋다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탁 트인 길의 중앙을 걸었다.

   

   그래. 사람이 치이는 것보다야 이게 낫지.

   

   칼과 함께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문지기가 우리를 막았다.

   

   “죄송합니다만 알른 영애님. 종자는 데리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칼은…’

   “이 허접은 내 종자로 들어가는 게 아냐.”

   

   “예? 그럼.”

   

   ‘아카데미에 일하러 가는 거에요.’

   “여기서 일하러 가는 거야. 허접 문지기라 그런가. 이런 것도 모르는 거야?”

   

   어디까지나 명목상이긴 하지만.

   

   알른 가문의 기사인 그가 소울 아카데미에 취업을 하게 된 것엔 지난번의 사고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서 사고가 벌어졌던 그 때. 베네딕은 아카데미에 진지한 항의를 보냈다.

   

   아카데미 측에서는 사과의 말과 함께 어떤 식으로는 보상을 하겠다고 했지만 베네딕은 그들의 제안을 모두 다 거절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보상은 필요 없으니 대신 우리 기사 중 하나를 아카데미에 들여보내 주시오.’

   

   너네 못 믿겠으니까 내 딸을 지킬 기사를 보내겠다 라는 노골적인 불신이었다.

   

   아카데미 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학시험에서 사고가 벌어진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과실인데다가 베네딕이란 사람이 지닌 지위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싸게 치이는 셈이었으니까.

   

   다만 종자를 들일 수 없다는 아카데미의 규칙은 규칙이었기에 무작정 칼을 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카데미 측에서 제시한 방식이 취업이었다.

   

   이는 아카데미 측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기에 베네딕도 별 말하지 않고 이 제안을 수락했다.

   

   이렇게 칼은 낙하산으로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것이다.

   

   이 상황은 내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었다.

   

   아카데미 내에 절대적인 내 편이 한명 생겨나는 셈이었으니까.

   

   여기서도 숙소 문 앞을 지키고 있을까봐 무섭긴 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칼이 품 안에서 편지를 꺼내 문지기에게 보여주자 문지기가 당황해선 칼에게 경례를 건넸다.

   

   “교수직으로 오신 거였군요! 들어오시죠!”

   

   그렇게 소울 아카데미 안에 입성한 나는 칼과 헤어져 입학식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명목상으로는 이 곳에 처음으로 부임한 교수인 칼은 학생인 나와는 다르게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입학식이 열리는 장소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쾌적했다.

   

   학부형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절로 길이 열렸는데 학생들만 있을 때는 어떻겠는가.

   

   “알른 영애.”

   

   이래서야 친구 사귀긴 글렀구만!

   

   아카데미에서 외톨이 생활을 하게 될 걸 확신하며 속으로 눈물을 흘리던 중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조이.’

   “얼빵 영애님. 오랜만에 뵙네요.”

   

   조이였다.

   

   소울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평소 입고 다니는 검은 색 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위압감이 덜해 보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전과 비교해서 그런 거지 여전히 악역영애처럼 보인단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얼빵 영애 소리듣고 미간 찌푸리니까 장난 아니네.

   

   눈빛에 찍혀서 죽을 것 같아.

   

   

   “얼빵 영애라고 부를 바에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되나요?”

   

   얼빵 영애라는 호칭이 지겨운 지 조이가 그렇게 말을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난 이미 속으로 조이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으니까.

   

   메스가키 스킬이 허락하지 않는 한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순 없었다.

   

   ‘죄송해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얼빵 영애님?”

   

   “…하.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그럴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조이는 아직 내가 신입생 대표를 맡을 뻔했다는 걸 모르나 보네?

   

   나중에 내 이름이 1등 자리에 박혀 있으면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게임 속에서 조이가 얼빵한 짓을 해서 당황할 때 표정이 가관이었는데 그걸 실제로 볼 수 있는 건가?!

   

   그건 좀 기대되는데.

   

   “그보다 알른 영애.”

   

   ‘네?’

   “왜 그러시나요?”

   

   “지난 번엔 고마웠어요.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이 빚은 꼭 언젠가 갚도록 하죠.”

   

   조이는 그리 이야기를 하면서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무리로 보이는 이들 쪽으로 돌아갔다.

   

   어. 이렇게 다 보는 자리에서 또 다시 감사인사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그러게요.’

   

   내가 벌인 일을 내가 수습했을 뿐인데 감사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떨떠름했다.

   

   어디까지나 혹시나지만 말야.

   

   저렇게까지 고마워하는 걸 보면 내가 앞으로 잘 행동하면 루시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 아카데미 생활은 마냥 회색빛만은 아닐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입학식 장소로 향했던 난 다시금 현실을 느끼게 되었다..

   

   내 주변에 자리가 배정된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봐선 안 될 걸 본 것 마냥 기겁을 하더라.

   

   세 번 보면 죽는 그림을 봐도 그 정도로 질겁을 하진 않을 걸.

   

   잔뜩 겁먹어서는 내 눈치를 보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내 쪽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미안합니다. 불운한 여러분.

   

   여러분들의 걱정과 달리 전 한없이 무해한 사람이라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냥 세상사 오만 일이 다 있다 생각을 하면서 좀 버텨주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입만 다물고 있으면 귀엽게 생긴 영애잖아요? 눈호강 한다 생각하십쇼.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입학식을 하는 장소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그 중엔 내가 익히 아는 캐릭터들도 많이 있었다.

   

   차세대 검성인 프레이 켄트.

   

   평민임에도 지닌 무재만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토비.

   

   역대 성녀 중 가장 높은 재능을 지녔단 페이비.

   

   그녀는 저 멀리서 나와 눈을 마주치자 목례로 인사를 해주었다.

   

   역시 성녀님이야. 그렇게 허접 소리를 듣고도 먼저 인사를 해주시다니!

   

   지난 번에 허접 주신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지만 않았어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눴을 텐데.

   

   너무 아쉽다.

   

   그리고 유저들이 흔히 불쌍왕자라 부르던 3왕자 아서 솔라딘…

   

   어? 저 사람은 왜 여기 있지?

   

   내가 대표자리를 거절했으니까 저 사람이 대표가 되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부터 아카데미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단상에 교감 몰리가 섬과 동시에 아카데미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신입생 대표를 맡은 사람은 열등 공자 자칼 버로우였다.

   

   신입생 대표가 되었단 사실이 기쁜 걸까.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써 온 연설문을 읽어 내렸다.

   

   전체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긴 했는데 머리로는 불쌍왕자한테 밀리고 무재로는 프레이나 토비한테 밀려서 결코 최고가 되지 못하는 남자.

   

   평생 동안 1등을 차지 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저 사람이 왜 저기 있는 거야?

   

   이상하네. 쟤가 불쌍왕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게임 상에서도 맨날 처발리고 찌질거리는 게 패턴이었단 말야.

   

   괜히 쟤 별명이 열등 공자였겠어?

   

   진짜 이유를 모르겠네.

   

   이 세상의 소울 아카데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만날 눈을 붉히면서 다음번엔 꼭 이길 거야! 를 외치던 놈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미묘했다.

   

   그래. 너도 한 번은 행복해야지.

   

   그 연설이 끝난 후에 주디 알버가 단상에 올랐다.

   

   저 사람이 올라왔다는 건 때가 되었단 소리네.

   

   나는 작게 만들어서 보관해 두었던 메이스를 손에 쥐었다.

   

   <왜 갑자기 무기를 쥐는 것이냐?>

   ‘슬슬 올 때가 돼서요.’

   <무어가 온단 것이냐?>

   “꺄아아아악!”

   

   할배가 물음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뒤 편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대지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땅 아래에서 구멍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마물이 보였다.

   

   왔다. 아카데미 물의 클리셰.

   

   역시 아카데미 입학식이 조용하게 끝나면 안 되지.

   

   난 웅성거리고 있는 이들을 지나치며 메이스의 크기를 키우고 신성마법으로 방패를 만들어 냈다.

   

   자. 그럼 가볼까?

   

   탱커다운 행동으로 평판을 개선시킬 시간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52화. 아카데미 입학식입니다.

—–

l마가l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제가 50화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허접작가라지만 100화를 잊어버리겠습니까!
응원의 코인 감사드립니다! 재밌는 작품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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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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