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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EP.52

     

   대게 사람들은 숲이 깊을수록 그곳에 살아 있는 풀 또한 길고 억세게 자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대부분의 풀은 나무가 울창하고 거대한 장소일수록 짧고 약하다.

   왜 그렇겠는가? 풀이 받아야 할 햇빛을 키가 큰 나무가 가리고 대부분의 지력地力을 힘 좋은 나무가 다 뽑아먹는 탓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 내 경쟁전의 시작점인 숲 또한 그런 이유로 풀이 짧은 편이었다.

     

   사박사박.

     

   햇빛을 받지 못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던 마른 풀과 낙엽들이 간지러운 소리를 내며 바스러진다.

     

   그리고 그 위에 반듯하게 서 있는 한 아이, 포탈을 통해 숲의 풀을 밟고 나타난 꼬마 어인이 꼭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서세영 씨가 포탈 통과할 때, 가끔 저렇게 눈을 감고 있던데.’

     

   공간이 이동될 때, 은근한 울렁거림이 동반되는데 그것 때문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게 썩 좋은 습관은 아니었다. 물론 동료가 함께 이동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먼저 자리를 잡은 누군가에게 뒤를 쉽게 잡힐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스릉.

     

   서늘한 기운.

   사람들에게는 육감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 따라오는 경우에 그런 감각은 배가 된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었더라도 대놓고 목에 칼을 들이밀면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

   “반갑다. 꼬맹아.”

     

   나를 바라본 꼬마의 동공이 큼지막하게 확장된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당혹감. 하지만 잠시 후, 아이의 눈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각오 비슷한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시죠?”

   “오?”

     

   아이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너무 담담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현재 자신의 상황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인지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죽지 않는다는 설명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뭐 설명해 준다고 알지는 모르겠다. 일단 단순하게 힘을 빼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하자.”

     

   사실 이대로 녀석의 목을 그어 버리고 내 갈 길을 가도 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인류애가 살아 있는 존엄성을 가진 한 명의 인간. 가만히 둬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혹시 이 칼 좀 치워주실 수 있을까요?”

   “네가 나한테 무슨 해코지를 할 줄 알고?”

     

   나의 말에 아이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어두워진다.

   하지만 이렇게는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것인지 들고 있던 최대한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들고 있던 단검을 바닥에 던졌다.

     

   “저 싸움 못해요.”

   “어, 그래 보여.”

     

   무림에서 한 달을 살며 사람들을 가늠해 본 결과 나름대로 강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겼다.

   손에 있는 굳은살로 어떤 무기를 주로 다뤘는지, 움직임이 얼마나 깔끔하고 행동에서 자신감이 있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뭐… 이를테면 길에서 시비가 붙으면 만두 귀를 가진 사람하고는 절대 싸우지 마라 같은 느낌인데.

   내 머릿속의 정보를 기준으로 이 아이를 판단했을 때, 이 어린 어인은 확실한 약자가 맞았다.

     

   ‘물론 방심은 안 하겠지만.’

     

   나는 천천히 검을 거두며 아이에게서 멀어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일 정도의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그리고 상대가 저런 아이라면 더더욱.

     

   “저, 저기…!”

     

   하지만 아이 뒤로한 채, 곧장 임무에 뛰어들겠다는 내 계획은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잠시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달싹거리는 입술. 그리고 내가 아이의 말에 귀를 열었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잠시만 같이 다니실래요?”

   “내가 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아이에게 되물었다.

   이전에 하던 행동으로 봤을 때, 그저 이 상황이 겁이 나서 나를 붙잡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는 그렇게 단순 멍청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똑똑한 편이었다. 해가 몸을 돌려 완전히 떠나려 하자마자 솔깃한 제안을 던졌으니까.

     

   “우, 우리 거래해요!”

   “거래?”

     

   아이의 말에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 아이가 다른 비겁한 수를 노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 음… 인간님? 뭐라고 불러야…”

   “시인이라고 불러.”

   “아, 알겠습니다. 시인님.”

     

   얼굴은 인간인데 물고기 아가미와 물갈퀴가 있는 종족.

   그리고 그들의 왕이라 불리는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걸 싫어한다고 하셨죠?”

   “맞아.”

   “저희 어인족은 사람을 미워해요. 아니, 정확히는 믿지 못한다는 게 맞겠죠.”

   “근데?”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아이가 재빨리 말을 잇는다.

     

   “그래서 아마 시인님께서 다른 어인족을 만나게 된다면 그 어인 중 열에 아홉은 시인님을 먼저 공격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어인들의 최고 통치자의 위치에 있죠.”

     

   아이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거래라고 말했지만 듣기에 따라 협박에 가까울 수도 있는 발언. 어차피 여기에서는 죽지도 않는데 내가 녀석을 해치게 된다면 언젠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협박이냐?”

   “네…? 아,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아이가 자신이 단어 선택을 잘못한 것은 아닌가 하며 나에게 손사래를 쳤다.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는지, 당황하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이를테면, 시인님이 저와 함께 움직인다면 어인들의 공격은 받지 않게 될 거예요. 제가 그렇게 할 테니까요. 대신 제가 한 어인을 만나게 될 때까지만 지켜 주시면 돼요.”

     

   녀석의 말을 들으니 이 꼬맹이가 말하는 한 어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청린’인가하는 어인?”

   “어? 그걸 어떻게……”

   “낮에 너희가 다른 사람들이랑 대치하고 있던 걸 봤거든.”

     

   나에게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했다.

   청린을 만날 때까지 내가 녀석을 지킨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로 어인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 거래에는 치명적인 결함 두 가지가 있었다.

     

   “내가 너랑 헤어진 이후에는 어떡하라고? 그 이후에 만나는 어인들이랑은 싸워야 하는 건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걸…”

     

   녀석이 자신의 품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반짝이는 무언가…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의 황금빛 비늘이었다.

     

   “크리티아스의 상징이에요. 예로부터 이 물건을 가진 사람은 어인과 동일하게 대하는 게 원칙이에요.”

   “귀해 보이기는 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이 비늘의 의미가 사실은 ‘아, 이 자식은 우리의 원수이니. 반드시 목숨 줄을 끊어 놓아야 한다.’ 따위일지.

     

   “믿지 못하신다면 어쩔 수는 없지만…… 제가 왕의 이름으로 맹세할게요. 제가 절대 시인님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흐음… 그래?”

     

   녀석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었다 뗀다.

   무슬림의 기도와 흡사한 제스쳐. 어인들이 맹세를 할 때, 사용하는 표식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다른 문제가 하나 있어.”

   “뭐죠?”

   “그 청린이라는 어인이 그동안 살아 있을 거라는 보장이 있어?”

   “아아…”

     

   나의 말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경쟁전이라는 이름으로 서바이벌이 진행되는 장.

   이곳에서 획득할 수 있는 보물은 한정적이고 그 보물은 타인의 것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위험이 깔린 장소에서 이미 탈락했을지 모를 누군가를 찾아달라는 건 기약 없는 계약을 하자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네. 청린은 살아 있을 거예요.”

   “무슨 근거로?”

   “강하거든요.”

     

   녀석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아이가 씨익 웃으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입을 연다.

     

   “시인님은 탑의 각 층에서 올릴 수 있는 능력치의 최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

     

   당연히 안다. 내가 화영과 비무를 펼치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능력치를 끝까지 끌어올려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 밸런스가 과하게 어그러지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 지도.

     

   하지만 아이는 나의 침묵을 ‘모르고 있었다.’ 정도로 해석을 했나보다.

     

   “1층에서 올릴 수 있는 능력치의 한계는 Lv.20 2층에서 올릴 수 있는 한계는 Lv.30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여기에서는 Lv.40 정도가 된다는 말이겠죠.”

   “뭐… 그렇겠지?”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아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나에게 다가온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격양된 얼굴과 톤이라 목소리를 낮추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청린이…… 2층에서 무려 체력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린 플레이어시거든요.”

   “……”

   “아직은 체력뿐이지만… 놀랐죠!?”

     

   아아, 그러냐?

     

   나는 내 몸에 끓어오르는 네 가지의 스텟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2층의 임무를 완료하며 다시 한 번 치솟아 오른 능력치들.

     

   ‘그 어인도 그렇고 적색 기사도 그렇고……’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약자는 강자의 힘을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이 그 경지에 올라본 경험이 없으니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라면 자신이 올라야할 위치를 아는 자라면 어렴풋이 추측은 가능하겠지만…

     

   ‘나 세졌구나?’

     

   나를 바라보는 어인 꼬마의 눈이 한껏 기대감으로 반짝거린다.

   마치 받아쓰기 80점을 받아와 부모에게 자랑스럽게 노트를 내미는 아이의 순수한 눈빛.

     

   부모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 옆에서 늦둥이 동생의 받아쓰기 성적을 본 고등학생 아들 내미는 별생각이 없을 것이다.

     

   고전시가 속에서 수백 년 전 고인의 심정을 헤아리기도 바빠 죽겠는데 받아쓰기가 대수인가. 심지어 만점도 아닌데 말이야.

     

   스카이 게임즈 사옥부터 시작해 1층, 2층에서 겪은 수많은 사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나는 내 생각보다 무척이나 강해져 있었다.

     

   ***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금린이에요.”

     

   금린.

   이제 보니 청린이란 이름도 그렇고 이 금린의 이름도 그렇고 그냥 ‘청색 비늘’, ‘금색 비늘’ 하면서 마구잡이로 지은 이름이 아닌가 싶다.

     

   “사실 원래 이름이 있기는 한데 왕은 금린이라 부르거든요. 청린은 왕실 기사단장에게 주어지는 명칭이고요.”

     

   금린은 내 생각보다 훨씬 말이 많은 어인이었다.

   숲을 헤매기 시작한 지 어언 1시간째. 그동안 쉬지 않고 떠들어 대기만 했으니 슬슬 귀가 따갑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때 그 쫄보랑 같은 녀석이 맞긴 한 건가?’

     

   처음 이 녀석을 사람들 틈에서 봤을 때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보인 줄만 알았다.

   청린이라는 어인의 말에 잔뜩 쫄아서는 제대로 된 대꾸 한 마디 못 하는데 좋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1시간 동안 녀석의 말을 들어 본 결과. 녀석은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때는 안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너같이 어린 녀석이 어쩌다가 왕이 됐냐? 이런 상황에서는 청린이라는 그 어인이 더 리더에 가까운 거 같은데.”

   “아… 그게……”

     

   청린의 이름이 나오니 아이가 다시 위축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래 놓고 청린에게 데려다 달라니… 도대체 얼마나 깊은 사연이 있기에 이러는가 싶을 지경이다.

     

   멈칫.

     

   “사실은요…”

   “쉿.”

     

   나는 나에게 뭔가를 설명하려는 금린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전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자박…

     

   전방에서 누군가의 발소리로 추정되는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우리가 멈춰 서자 기다렸다는 듯, 그 소리 또한 뚝 하고 끊긴다.

     

   아무리 봐도 기습을 할 기미가 그득그득한 감각.

   이번에는 한바탕 푸닥거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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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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