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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끄윽, 캬하악ㅡ!!!”

         

       “화,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죽기 직전의 비명을 내지르며 샬롯 에버그린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바이탈을 체크하고 있던 간호사가 기겁하며 달려와 버둥거리던 그녀를 붙잡는다.

         

       “커흐, 살려줘, 살려줘…! 미안해, 루터…!”

         

       “환자분! 진정하세요! 여긴 현실이에요!!”

         

       “으, 에…?”

         

       자신을 감싸는 온기에 샬롯이 제정신을 차렸다.

         

       황급하게 목덜미를 더듬거리고, 주변을 살핀다.

         

       수많은 이들의 시체가 널브러져있던 그레이브야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체를 넘으며 걸어오던 루터스 에단 역시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뭐, 뭐야… 꿈…?”

         

       “큰일 날 뻔하셨어요. 뇌신경에 과부하가 걸려 하마터면 뇌사상태에 빠지실 뻔했다고요. 미약한 뇌출혈 증상도 확인됐으니까, 절대 안정이에요!”

         

       듣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지는 말.

         

       샬롯 에버그린은 그제서야 자신이 보았던 그 모든 것이 오라클이 출력한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아….”

         

       무서웠다.

         

       아는 지인에게 목이 졸리는 그 감각, 자신을 죽일 듯이 바라보던 눈동자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기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터스 에단이 왜 나온단 말인가.

         

       ‘분명… 아르헨 준장이 고발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도 제 발로 은퇴한 사람이잖아….’

         

       오라클은 미래를 관측하는 양자컴퓨터였다.

         

       반드시 일어날 미래라고 확정짓지는 못하겠지만, 불과 오차율이 12%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미리 세팅해두었던 시간 가속률은 10배.

         

       10배라면, 출력되는 값은 오차범위 5% 이내의 결과들만 나오게 된다.

         

       프로젝트 오라클의 책임자인 샬롯 에버그린이기에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녀가 경험한 큼직큼직한 사건들은 웬만해선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었다.

         

       레아 길리아드가 총에 맞고, 공원에서 총통이 폭탄 테러에 휘말리는가 하면, 보스타니아 공화국에 루터스 에단이 이끄는 성십자 여단의 파병되기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이해할 수 없다.

         

       티탄과의 종전을 맞이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다시는 그런 위험한 시험에는 참여하지 마세요. 자칫하면 중추신경에 심각한 손상으로 시력이나 청력을 잃게 될 수도ㅡ.”

         

       옆의 간호사가 계속해서 뭐라 조잘거렸지만, 샬롯에게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반드시 다시 확인해야해.’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오라클을 통해 본 환상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

         

         

         

       그로부터 한 달 후, 샬롯 에버그린은 간신히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본래라면 더 입원하는 편이 옳았으나, 그녀가 강력하게 퇴원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샬롯 에버그린은 다른 이들보다도 강력한 면역력과 회복력을 타고나기도 했다.

         

       그녀가 여성의 몸으로 온갖 병기들을 다룰 수 있었던 이유였다.

         

       어지간한 강골(强骨)이 아니고서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신병기에 겁 없이 몸을 들이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샬롯, 몸은 좀 괜찮나?”

         

       그렇게 오랜만에 돌아온 샬롯 에버그린을 향해 아이작 오펜 소장이 진심으로 환영했다.

         

       내심 그녀의 신변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라클을 가동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며 실려갔으니 걱정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덕분에요. 멀쩡합니다, 소장님.”

         

       “정말 다행이군….”

         

       아이작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보고서는 읽어 보았나?”

         

       “예, 오라클의 시스템이 불안정했던 이유가 연동시킨 아카샤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래,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연산 처리를 위해 아카샤와 연동시킨 것이 문제였네. 시스템이 완전히 동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네가 서버로 들어가버렸으니….”

         

       따지자면 오라클은 아카샤의 2세대 기종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각 전선에서 기록되고 있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및 갱신하여 하나로 통일된 정보를 도출해내는 것이 전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카샤는 미래를 ‘예견’한다기보다는 ‘추측’해내는 결과물이었다.

         

       물론 2세대, 그것도 프로토타입이니만큼, 불안정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아카샤와 연동해두었던 것인데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이야.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샬롯이었다.

         

       “하여튼 자네가 그런 꼴이 되버리고 나서, 오라클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 상태였네. 맘 같아서는 아예 백지로 돌리고 싶네만….”

         

       “그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총통 각하께서도 분명.”

         

       “끄응… 그, 그렇기야 하지…. 설마 샬롯 자네, 다시 프로젝트를 맡을 생각인가?”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있나요?”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총책임자가 그렇게 실려갔는데, 도대체 누가 대신 자원할 수 있을까.

         

       애초에 하던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도 샬롯의 성격이 아니기도 했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특히 그레이브야드에 설치된 아카샤의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켰다고 되어 있던데….”

         

       “아, 그거 말인가? 원래부터 그쪽 아카샤가 뭔가 좀 이상했거든. 요새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저장되어있는 데이터가 삭제되지 않는다고 하더군. 심지어 아카샤 설계자의 정식 후계조차 이유를 모른다고.”

         

       아이작 오펜이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덧붙였다.

         

       “하필이면 요새 이름도 공동묘지라서 그런가, 다들 귀신이라도 들린 거 아니냐는 반응이야.”

         

       확실히 그레이브야드가 을씨년스럽기는 했다.

         

       특히 오라클에서 보았던 그레이브야드는 더더욱.

         

       “…제가 있었던 요새인데요.”

         

       “알고 있네. 근데 애초에 관리 권한도 없었지 않은가. 요새의 아카샤는 반드시 요새 사령관만 다룰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랬… 었죠….”

         

       어쩌면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루터스 에단이 나왔던 것도, 오류를 일으킨 아카샤가 그레이브야드의 것이어서 그런 걸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샬롯에게는 다시 한 번 오라클과 접촉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두 번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끔찍한 멸망을 맞이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될 테니까.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머저리 중에 머저리.

         

       -네놈이었어. 이 모든 미래를 주관한 년.

         

       날카롭게 벼려져, 그녀의 심장에 박혔던 목소리가 재차 들려온다.

         

       -네가 총통과 함께 세계를 망친 주범이야.

         

       설령 그때 보았던 루터스 에단이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오류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자 샬롯 에버그린의 환상이었다 할지라도.

         

       다시금 미래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그 말대로 되는 일이 아니던가.

         

       “어쨌든 지금은 문제의 아카샤를 중앙 관리 시스템에서도 완전히 배제해둔 상태야. 심각한 오류를 일으켜 서버 전체를 마비시키기라도 한다면 대참사가 벌어질 테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아, 네.”

         

       그런데 아이작 오펜의 태도가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몇 마디나 나누고 쯧쯧 혀를 차며 돌아갈 늙은이다.

         

       걱정은 해주겠지만, 딱 그 정도.

         

       하지만 오늘따라 사족이 많았다.

         

       퇴원을 환영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이야기를 질질 끌 사람이 아닌데.

         

       “…소장님, 설마 저희 프로젝트 재개 일정이 잡혔습니까?”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아이작 소장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만 눈치가 빨라서야.”

         

       “언제로 잡혔길래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일.”

         

       “예에!?”

         

       “내가 이래서 자네보고 맡지 말라고 한 거 아닌가. 기어코 퇴원 좀 미루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아이작 오펜이 짜증을 내며 손을 휘휘 저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총통 각하께서 아주 닦달을 하고 계신단 말이야! 열심히 말씀드려봤는데도 꿈쩍도 안 하시더군.”

         

       “….”

         

       샬롯 에버그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오라클은 가히 제국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라고 말하더라도 무관할 정도였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여 알려주는 양자컴퓨터.

         

       어느 권력자가 탐을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샬롯 옆 집에 사는 초등학생도 탐을 낼 것이다.

         

       당장 다음주에 있을 수학시험 문제 좀 알려달라면서.

         

       그러나 이미 오라클과 접촉하여,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온 샬롯 입장에서는 걸릴래야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니 더더욱 보아야만 했다.

         

       총통의 꿍꿍이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총통 각하께 말씀드리면 분명 몇 주 정도는 늦출 수 있을….”

         

       “괜찮습니다, 소장님.”

         

       “샬롯 에버그린, 자네….”

         

       “어쨌든 맡겨진 일이지 않습니까. 끝까지 해볼게요. 그리고… 감사해요.”

         

       그녀는 소장을 향해 감사를 표하곤 자신의 집무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의 결정에 따라 오라클 프로젝트가 재개되었다.

         

       미하일 비스마르크 총통 역시 그곳에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생각보다도 빌드업이 좀 늘어지네요.

    메인디쉬까진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다음화 보기


           


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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