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2

       따듯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도 원 없이 따듯한 물로 샤워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여긴 내 집이 아니었다.

       절대로 낭비 따위를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레비나스.”

       

       나는 평소와는 다른 단호한 목소리로 레비나스를 불렀다.

       레비나스도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축축해진 몸으로 눈치를 살폈다.

       

       “왜 부르냐?”

       

       “따듯한 물이 콸콸 나와도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야.”

       

       “그러냐?”

       

       “응. 차가운 물로 씻다가 얼어 죽을 거 같으면 한 번씩 따듯한 물을 뿌리는 거야.”

       

       따듯한 물은 차가운 물에 비해 굉장히 귀했으니까.

       이게 맞는 거겠지.

       

       확인을 받기 위해 한여름을 올려다보는데, 그녀는 헤헤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겨울아, 길드에서는 따듯한 물 콸콸 써도 괜찮아.”

       

       “그, 그래요?”

       

       “응. 길드 건물은 마석으로 난방을 해서 효율이 좋거든.”

       

       마석으로 난방을 하면 얼마나 효율이 좋길래 그런 거지?

       해 본 적이 없기에 알 수가 없다.

       그저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그럼 나 따듯한 물로 백 시간 씻을래!”

       

       레비나스가 다시금 샤워실로 달려갔다.

       전신이 젖어있는 탓에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에 물을 잔뜩 흘렸다.

       

       “헉.”

       

       이 비싼 대리석 바닥을 더럽히다니.

       다급히 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바닥으로 바닥을 문질렀다.

       허나 물기를 흡수하지 못한 손은 바닥에 넓게 물을 퍼트릴 뿐이었다.

       

       “겨울아, 그런 건 언니가 대신해 줄테니까.”

       

       “괜찮아요. 제가 손님이잖아요.”

       

       물기를 꼬리로 닦으면 되지 않을까?

       나는 닦기 쉽게 몸을 살짝 비틀고, 붙잡은 꼬리로 바닥을 문질렀다.

       

       “겨, 겨울아! 오늘 체험하는 날이잖아! 오늘은 언니가 겨울이 부하 해줄게!”

       

       “부하요···?”

       

       “응! 몸쓰는 일은 언니가 대신할 테니까···!”

       

       한여름이 어디선가 꺼낸 마른걸레로 바닥을 문질렀다.

       내 꼬리 만큼이나 물기를 잘 흡수하는 걸레였다.

       

       “어··· 그럼 둘이 같이 할까요?”

       

       “아, 아냐, 언니가 마음이 아파서 그래.”

       

       “······?”

       

       집 바닥을 닦는 게 마음이 아프다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인데.

       부자들이나 할 법한 발상에 반발심이 생기다가, 그녀의 시선이 내 꼬리를 향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몸으로 바닥 안 닦아도 되니까···”

       

       “아.”

       

       그러고 보니 꼬리도 내 신체 일부이긴 했지.

       몸으로 바닥을 닦는다니, 뭔가 이상하긴 했다.

       

       “오늘은 집의 편리함에 대해서만 배워가 보자. 어때?”

       

       “음··· 그럴까요?”

       

       “응. 혹시 겨울이는 집 생기면 뭐부터 하고 싶었어?”

       

       해 보고 싶은 거.

       딱히 없었다.

       혹시 몰라 조금 더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건 없었다.

       

       “없어요.”

       

       “없어···?”

       

       “네. 전 하고 싶은 거 없어요.”

       

       하고 싶은 건 지금의 컨테이너 집에서도 전부 다 가능했다.

       작물도 심고, 빈 병도 줍고, 버려진 가구도 주워올 수 있으니까.

       더 좋은 집이 생겼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이 갑자기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 큰 집에서 뭘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탓도 있었다.

       

       “그, 그렇구나···”

       

       뭔가 맹한 표정을 지은 한여름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물기를 닦는 모습이 어쩐지 초라해 보였다.

       

       “음···”

       

       하지 말라고 했지만 역시 도와주는 게 좋겠지.

       나는 주머니에서 옷 한 벌을 꺼내 들었다.

       갈아입을 용도로 가져온 옷이었으나, 그냥 걸레 대용으로 쓰기로 했다.

       

       

       **

       

       

       한여름은 멍한 눈으로 바닥을 문질렀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손이 이미 깨끗해진 바닥을 계속해서 문지르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아 밤잠을 설쳐야 할 나이의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없단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꽤나 충격적인 상황이었음에도 한여름은 나름 냉정해질 수 있었다.

       겨울이 왜 삶을 갈망하지 않는지 깨달은 탓이었다.

       

       ‘바라는 게 없어서 굳이 살 이유도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도록 많은 일을 하게 해 주면 될 뿐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즐길 거리 들이 있었으니까.

       

       여름이 다짐하며 주먹을 꼭 말아쥐는 순간.

       겨울이 여름의 손등을 콕콕 눌렀다.

       

       “물기는 여기서 짜면 안 돼요.”

       

       “아··· 응.”

       

       나도 모르게 걸레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여름은 머쓱함에 뺨을 긁적였다.

       

       겨울은 그런 여름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부자라 그런지 집안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구나 하고.

       

       

       **

       

       

       오랜만에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개운해진 몸을 이끌고 욕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어디있나 둘러보고 있으니, 통유리로 된 벽에 붙어있는 레비나스와 소피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건물 밖을 내다보는 둘의 발뒤꿈치가 들려 있었다.

       굳이 들지 않아도 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피아, 뭐해요?”

       

       “밖을 내다보고 있었단다.”

       

       “아하.”

       

       딱히 할 게 없었기에 나도 유리벽에 달라붙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발뒤꿈치가 올라가고 말았다.

       꼬리가 소피아처럼 위로 쭉 뻗기도 했다.

       

       ‘아.’

       

       이거 자동으로 되는 거구나.

       어쩌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수인족 특유의 균형감각이 자동으로 움직인 걸지도 몰랐다.

       

       “높네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사람을 콕 누르고 말았다.

       깔끔한 창문에 내 지문이 묻고 말았다.

       

       “레비나스는 이렇게 높은 곳은 처음이다!”

       

       “본녀도 이만한 높이는 처음이구나···”

       

       레비나스는 그렇다 쳐도, 소피아도 처음이라니.

       의외의 상황에 소피아를 돌아보려는 순간.

       

       찰칵-

       뒤에서 들려온 카메라 셔터음에 셋이서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사진을 찍었더냐.”

       

       “네. 뭔가 흐뭇해지는 장면이라서···”

       

       “흐뭇?”

       

       나는 사진을 보기 위해 한여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정말로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꼬리가 올라가면 상의도 올라가서 등이 다 보였구나!’

       

       어쩐지 가끔 쌀쌀한 느낌이 들더니만.

       옷이 올라가서 그랬던 거구나.

       나도 모르게 뒤로 손을 뻗어 등과 꼬리를 만지작거리고있으니, 소피아가 사진을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렇게 보니 나도 애처럼 보이긴 하구나.”

       

       “어려 보이는 건 좋은 거죠. 세상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일인 걸요.”

       

       “흠···”

       

       한여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걸까.

       소피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진 잘 찍네요.”

       

       겉보기에는 어린 세 수인족이 유리벽에 달라붙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더라면 나름 흐뭇해 보이는 장면처럼 보일 것 같기는 했다.

       한 명은 적대 세력의 아이고, 둘은 어른이라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응. 여기서 제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소피아가 있어서인지 존댓말을 했지만, 한여름의 시선은 우리 셋을 향해 있었다.

       

       “부탁?”

       

       “네. 이거 제 개인 SNS에 올려도 될까요?”

       

       카메라 시대에서 사진 한 장 인터넷에 올라가는 거야 뭐.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얼굴이 제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전 괜찮아요.”

       

       “본녀도 상관은 없다만 이유가 있어 보이는구나.”

       

       소피아의 질문에 한여름이 헤헤 웃었다.

       그녀는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어왔다.

       

       “최근 길드가 욕을 많이 먹고 있거든요. 수인 아이들을 공원에 방치해두고 있는 게 아니냐면서요···”

       

       “함께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게로구나.”

       

       “네. 헤헤.”

       

       우리를 이용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걸렸던 걸까?

       한여름이 내 시선을 피했다.

       

       “괜찮으니 얼마든지 올리거라. 도움을 주고 있는 길드가 욕을 먹으면 안 될 일이지.”

       

       “정말 괜찮겠어요? 그 과격파 라든가···”

       

       “이 녀석이 찾아온 이상 이미 위치는 알고 있을 게다. 여명 길드의 눈치가 보여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아, 길드의···”

       

       소피아의 적대 세력이 여명 길드를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한여름도 이는 처음 안 사실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고층 빌딩에 처음 올라와 본 수인 아이들.

       ───

       

       가벼운 글과 함께 방금 찍었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갔다.

       그녀의 팔로워가 많았던 건지 금세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명 길드 공원에서 사는 애들이네요? 밖에서 키우는 줄 알았는데.]

       [애기들 떨어질까 봐 중심 잡는 것좀 봐 ㅋㅋ]

       [기여웡… 나도 저런 딸 낳고 싶다…]

       

       댓글을 확인한 한여름이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고는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무언가 걱정거리를 한 아름 털어낸 모습이었다.

       

       “하아, 다행이다.”

       

       “그 정도였느냐.”

       

       “네. 최근 말이 많아졌거든요.”

       

       “···그러면, 아이라고 한 건 봐주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 인사한 한여름이 나를 돌아보았다.

       

       “겨울아, 언니가 겨울이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부탁이요···?”

       

       “응. 이건 길드에서 겨울이한테 직접 의뢰하는 거야.”

       

       여명 길드가 나한테 직접 의뢰를 한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런 거지?

       나는 놀란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여름을 올려다보았다.

       

       “겨울이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언니 SNS에 올리고 싶거든.”

       

       “제가 찍은 사진을요?”

       

       “응. 겨울이나 다른 사람들 얼굴이 나올 필요는 없어. 연못 사진이라든지, 토마토 사진 같은 걸 겨울이가 직접 찍어서 올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하.

       저번에 경찰이 아이들을 왜 밖에서 지내게 하냐며 의심했으니까.

       일반 시민들도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진을 잘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뭔가 오해가 있었네요…!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썼을 뿐! 이건 절대로 수필이 안입니다 ㅜㅜ

    ───
    딩딩딩님 2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굴뚝새님 156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