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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플레어의 빛무리가 전면장갑을 꿰뚫었다. 관통이었다. 참가자석은 순식간에 야구 관람석처럼 변했다.

         

       프레젠테이션을 보러 온 마도사들이 발언권을 얻기 위해 하나둘씩 손을 들었다. 미화원이 플레어로 어질러진 바닥을 쓰는 동안 세 사람은 수많은 질문을 상대해야 했다.

         

       플레어를 개발하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논문에서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데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3차원 스크롤이란 개념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냐. 금안족이 어떻게 화계마도를 연구할 생각을 했는가. 등등.

         

       어떤 질문은 입사면접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로테와 프레이는 그런 질문에는 잘 정돈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입술을 우물거렸다.

         

       저것이 평범한 반응이었다. 교수의 질문에 학부생이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해서 질책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말하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이었다.

         

       하지만, 금안족 소녀만큼은 달랐다.

         

       에테르는 물밀 듯이 들어오는 질문의 파도를 여유롭게 방어했다. 박사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에게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의 디펜스였다.

         

       능란한 언변에 동료 마도사들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야만 했다. 그중에는 클라이스나 메리가도 포함됐다.

         

       온갖 질문을 받다 보니 한 시간 반이 흘렀다. 슬슬 발표회를 끝내도 좋을 시각이었다.

         

       그때.

         

       “그런데 플레어 스크롤의 특허는 누가 가져가나요?”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꺼냈다. 관중석의 이목이 연단 뒤쪽으로 쏠렸다.

         

       발화자는 클라이스였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특허 얘기를 꺼내는 걸 아껴두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깔 점이 없었다. 금안족 소녀에겐 어떤 학술적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그만큼 에테르가 만든 플레어는 이론과 실험 양면에서 완전무결했다. 그래, 그 점만큼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자.

         

       플레어를 말 그대로 구매한다.

         

       특허를 구매해서 하스펠트 가문의 것으로 다시 등록하자.

         

       실로 물질만능주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클라이스에겐 여유가 없었다. 쓰러질지도 모르는 가문의 위신을 바로세우려면 이 방법밖엔 보이지 않았다.

         

       “플레어의 특허요? 특허 지분은 일단 저희 셋이 나눠 가지고 있긴 한데요.”

         

       모든 마도는 그 창시자가 저작권을 가진다.

         

       클라이스 또한 그랬다. 그가 만들어낸 최상급 화계마도는 두 개에 달했다. ‘코로나’와 ‘체이서 플로우’. 대륙에서 그 두 마법이 담긴 스크롤을 제작하려면 클라이스에게 수수료를 내야만 한다.

         

       물론 플레어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술특허와 마찬가지로 매매할 수 있다.

         

       “얼마, 얼마면 되죠? 얼마면 플레어의 특허를 구매할 수 있는 거죠…?”

         

       금화 1천 장? 아니면 2천 장?

         

       아니, 그 정도론 양심이 없다.

         

       못해도 금화 만 장 단위는 줘야 한다. 제2황자가 클라이스에게 제시했던 금화의 양을 생각해본다면 그건 당연한 처사였다.

         

       금화 만 장 단위의 지출은 사대공작가라 할지라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만한 것이다. 지금 같은 전쟁기에 그만한 돈을 썼다간 가문 전체가 휘청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많은 거래다. 손해 따위 금방 메꿔버리면 그만이다.

         

       클라이스의 질문에 세 소녀는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그들끼리 상의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로테와 프레이가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격 타협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에테르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플레어에 대한 모든 특허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아까는 공저자에게도 지분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방금 양도받았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술 한 잔 사 주는 대가로 말이죠.”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클라이스도 헛웃음을 흘렸다.

         

       플레어 가격이 얼마인데, 고작 술 한 잔으로 퉁칠 일이라니.

         

       발표회에 참석한 다른 마도사들도 플레어의 계산기를 두드린 지 오래였다. 플레어의 예상 특허가는 못해도 금화 5만 장 이상이었다.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에, 모든 이들이 웃음기를 거두었다.

         

       “저 또한 플레어에 대한 특허권을 포기할 겁니다.”

         

       강의실이 얼어붙었다. 정적. 팔짱을 낀 자세로 질의응답을 설렁설렁 듣고 있던 메리가조차도 의자를 끌어당긴 채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게 무슨……!”

       “학생, 다시 생각해 봐! 돈방석에 앉을 기회를 네 발로 걷어차는 거라고!”

         

       눈 감고 특허권을 팔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그만한 기회를 귀족이나 황족도 아니고, 일개 평민 태생이 제 발로 걷어차려 한다.

         

       에테르는 태연한 눈을 한 채로 고개를 돌렸다. 클라이스가 있는 방향이었다.

         

       뜬금없는 플레어 무료화 선언에 클라이스의 사고는 반쯤 정지한 상태였다. 그런 클라이스를 향해 에테르는 눈으로 이리 말하는 듯했다.

         

       ─ 니 플레어 쩔더라.

         

       “…마, 말도 안 돼요! 돈도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불로소득을 발로 차 버려요? 너 미쳤어…?!”

         

       그런 항변에 에테르는 미소로 응대했다.

         

       뱁새를 내려다보는 황새의 미소.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이 절 바보나 호구라고 생각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전 이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뭔….”

       “이 순간에도 북방 전선에선 장병과 국민들이 마수에게 물어뜯기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세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궁핍의 파도는 북방을 넘어 동쪽, 서쪽, 남쪽, 그리고 성도까지 넘쳐 들어오고 있습니다.”

       “…….”

       “저 또한 이곳 틸레트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런 계층이었습니다. 동화 두 닢 주고 옥수수 스프나 하나 받아서 연명하는 수준이었죠.”

         

       에테르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야 그렇다. 참석자 대부분은 귀족 출신이었으니. 단 한 명, 메리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초 입장에서 수입은 줄거나 그대로인데, 걷는 세금은 늘어만 갑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대로라면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지 않을까. 그걸 막으려면 당장 명료한 답은 한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그제야 다른 마도사들도 하나둘씩 말의 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네, 군비를 줄입니다. 플레어 또한 스크롤 형태로 만들어질 테니, 스크롤의 제작비를 제외한 대금을 제가 포기한다면 이 전쟁을 보다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만한 연구 특허를 포기한다는 건 분명 후회할 짓이에요! 그럴 바엔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특허를 파는 게…!!”

       “…하스펠트 교수님. 태양에는 특허를 매기는 게 아닙니다.”

         

       유황빛을 푹 담근 듯한 눈초리가 클라이스를 향했다.

         

       평민과 귀족, 그 신분은 여기서 무의미하다. 이곳은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다.

         

       그렇다. ‘마도’ 아카데미. 마도사들을 육성하며, 온통 마도사밖에 없는 학교.

         

       과학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플레어는 대륙 공동의 자산입니다.”

         

         

       **

         

         

       클라이스는 터덜거리며 저택으로 돌아왔다.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공작가의 사저. 비록 본가와는 떨어져 있어서 별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클라이스에게는 이곳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집사의 인사를 묵례로 받아냈다.

         

       로브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귀족가에선 다섯 살 어린애도 하지 않을 방정이었다.

         

       로브뿐만이 아니다. 스태프도, 가방도, 말린 로즈마리 잎사귀로 장식한 마녀모도. 전부 다 내팽개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셔츠에서 마력초 한 개비를 뽑아 불을 당겼다. 맛은 더러웠다. 매캐한 연기가 편도를 잘못 찌르는 바람에 숨을 고루 쉬지 못하고 켈룩거리기 일쑤였다.

         

       “하스펠트 공작님, 이게 우편함에 꽂혀있었습니다.”

         

       집사 휴스턴이 클라이스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아래쪽이 꽤 두툼한 봉투였다. 주소지를 훑어보았으나 아무것도 쓰여있질 않았다.

         

       “발신인이 누구인진 모르겠군요.”

         

       잠시 머뭇거리던 클라이스는 이내 봉투의 내용물을 꺼냈다.

         

       비디오 필름이다.

         

       공작 사저에는 마법으로 돌아가는 비디오 영사기가 있었는지라 이 필름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간 클라이스는 영사기에 필름을 넣고 기다렸다.

         

       드넓은 설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도상으로 봤을 때 촬영자는 고지대에서 영상을 찍었다.

         

       커다란 괴물이 눈가루를 흩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를 가늠하긴 어려웠지만, 형태만큼은 비디오에 생생히 담겨 있다.

         

       바닷가재와 전갈을 반씩 갈아넣은 듯하고, 설원에서 주로 서식하는 마수.

         

       “호마루스….”

         

       클라이스가 몇 번이고 상대해 본 녀석이다. 가르강튀아 만큼은 아니지만, 장갑은 단단하다.

         

       특히 머리 부분은 화탄을 제아무리 쏴도 도탄이다. 호마루스를 안전하게 제압하려면 일단 모든 다리부터 분질러야 했다.

       

       분명, 그게 정공법일 텐데.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호마루스의 머리가 날아갔다. 머리가 있던 자리는 자욱한 연기로 대체되었다.

         

       “이… 이건…….”

         

       클라이스는 이 현상을 오늘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 호마루스가….”

         

       재앙급 마수가 플레어 한 번에 무너지는 영상. 영상의 플레어는 자신의 것보다도 훨씬 경량화가 되어 있는 듯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젠 아홉 살 난 어린아이라도 사용법만 숙지한다면 재앙급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세상이 좌우로 흔들린다. 클라이스는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다간, 책상 앞으로 쓰러지듯 앉았다. 고급 원목으로 만든 의자가 삐걱거리다가 정지했다.

         

       클라이스는 책상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다시 머리를 박았다. 고개를 들었다.

         

       박았다.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고개를 내칠 때마다 세월이 흘러간다.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

         

       잃어버린 자신의 5년.

         

       신음은 나지 않는다. 낼 기운도 없었다.

         

       클라이스는 이마를 책상에 닿은 채 머리 끝을 돌돌 감아쥐었다.

         

       “…….”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에테르를 황자에게 팔아넘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플레어의 교신저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에.

         

       에테르를 조금만 더 인간답게 대접했더라면, 그쪽 세상에선 자신도 금안족 소녀와 함께 웃고 있지 않았을까?

         

       “흐….”

         

       병신이 따로없다. 한 소녀의 3년을 망친 대가로, 자신은 5년을 빼앗겼다. 이 또한 여신이 내린 징벌이리라.

         

       “저기, 공작님…? 전화 왔어요….”

         

       머리를 하염없이 처박고 있자니, 밖에서 누군가가 노크했다. 집안 메이드인 벨라였다.

         

       그녀가 유선전화를 들고 찾아왔다. 클라이스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들어 일어났다.

         

       수화기는 연결중이었다. 그 너머로 낮은 수신음이 들려왔다.

         

       [클라이스.]

         

       아, 결국 왔구나.

         

       익숙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혈육의 목소리.

         

       클라이스는 덜덜 떠는 손으로 메이드가 건넨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차마 건네고 싶지 않았던 한 마디가 클라이스의 입술을 찢고 나왔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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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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