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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현상거절>의 메커니즘은 나름대로 간단하다.

       

        현상을 거절한다. 말 그대로 진언을 내뱉어 현실을 조작하는 ‘언령’의 힘을 가진 것이다.

       

        독특한 것은 진언을 시행하는 한계.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자면 능력의 끝이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상>을 <거절>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보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따라서. <히사있>의 세계에 떨어진 직후…… 초능력을 각성한 이후의 나는 능력의 개발과 테스트에 몰두했다.

       

        당장 자금사정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수준은 아니었거든.

       

        아무튼.

       

        나는 가장 먼저 능력 한계를 확인했다.

       

        답은 꽤나 간단했다.

       

        <현상거절>의 능력 작용은 상대가 가진 힘에 따라서 결과가 나뉜다. 과정에서 내 힘을 벗어난 현상을 거절하려 들 경우, 생명을 위태하게 만드는 패널티는 덤이었다.

       

        붙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원소술사>나 <성녀>급의 천재들이나 현역 히어로 중에서 이름을 날리는 자들은 내 능력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당장 가진 힘도 그렇고, 가진 능력 덕분에 지닌 초능력에 대한 저항이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을 테니까.

       

        가장 좋은 예는 <뇌전검> 양하나다. S급 능력자인 그녀는 내 <현상거절>을 뚫고 내 와이셔츠 앞섶을 베어내지 않았나.

       

        그리고. 

       

        능력의 한계를 확인하는 -예를 들면 태양계의 자전과 공전을 멈추던가, 다른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과정에서 능력을 응용해 새로이 창안한 몇몇 기술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공허.

       

        현실세계를 거절하는 황당한 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 ‘제약’의 세계.

       

        그 다음은 지금 내가 사용하는 ‘개악’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본디보다 도리어 나쁘게 고치는 것. ‘개선’의 반대 의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개악’은 생각보다 고약한 힘을 가진 녀석이다.

       

        간단히 표현하면 내 능력을 증폭시키는 것…… 이제는 사람의 형태를 벗어난 <괴력>이 삼킨 알약과 흡사한 느낌. 

       

        단, 인간성을 상실하는 놈과 달리 내가 ‘개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진 ‘추억’을 소모해야한다. 

       

        우스운 점은 소모하는 추억의 값어치에 따라서 더욱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도통 추억의 가치를 어찌 판단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지금.

       

        “크르륵!”

       

        삽시간에 벌어진… 사람이 ‘괴수’로 변화하는 현상에 사람들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다.

       

        개중에는 자리를 이탈해 스타디움 바깥으로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꿋꿋히 버티고 있었다.

       

        [ 개악 – <괴력> 김은호를 잠식한 약물, ‘수어사이드’의 약효를 거절한다. ]

       

        진언을 읊는다.

       

        “크아아악!”

       

        쉬이이익!

       

        허나 그와 반대로 김은호는 멀쩡히 움직이고 있다. 나를 노리는 것처럼, 거칠게 팔을 뻗은 것이다. 놈이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개악의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어릴적, 친구들과 급식실로 달려가던 추억을 대가로 삼는다. ]

       

        스으으!

       

        무형의 기운이 내 주변을 타고 일렁인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그것은, 이내 폭발적인 기세로 공간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번쩍!

       

        환한 빛이 결투장 전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히사있>의 세계에 떨어진 후, 두번째로 사용하는 ‘개악’의 힘은 강력했다.

       

        평시에 사용할 수 없어 최대한 자제하던 능력인 만큼, 눈 앞의 김은호의 몸이 감전된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것이다.

       

        [ <괴력> 김은호의 각성을 거절한다. ]

       

        스르륵!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약물, ‘수어사이드’를 다량 복용한 이후 도저히 같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던 <괴력>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갑작스레 의식을 잃은 것이다.

       

        터벅.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거대한 덩치로 울부짖는 김은호에게 다가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녀석의 흉측한 얼굴을 마주보았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A급 능력자란 정보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 헌데도 그 평범한 녀석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약에 손을 댄 것일까.

       

        어쩌면 뒤틀린 향상심이나 인정욕구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 경기 초반, 녀석은 내게 짙은 열등감 가득한 폭언을 퍼부었으니까.

       

        ‘수어사이드. 약물복용의 끝은 죽음이야.’

       

        뻔한 사실이었다. 약물, 일성의 제약회사에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그것을 복용한 자의 최후는 대개 이런 법이니까.

       

        “편히 잠드소서.”

       

        나지막히 중얼거린 후. 

       

        나는 느린 걸음으로 결투장 밑으로 내려왔다. 악감정?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게 도전적인 사람을 너그럽게 보듬어 줄 만큼이나 착한 놈이 아니거든.

       

        하지만.

       

        “끝난, 건가?”

        “죽은 거야……?”

        “이대로 <현상거절>의 승리인가.”

       

        중요한 사실은, 아직 자리를 채운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는 것이다. 당장 해설자 둘은 물론, 아카데미와 협회 직원 대부분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아, 아아. ]

       

        [ 이게…… 하! 무슨……. ]

       

        스타디움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화면에 사람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담긴다. 삽시간에 뒤바뀐 전개에 관중들은 물론, 두 해설자 역시 멍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 스, 승자……. ]

       

        [ <현상거절> 임혜성. 그가 이 결투의 승리자입니다. ]

       

        심판의 판정 결과가 도착한 걸까? 두 해설자가 말을 더듬거렸다. 결과는 나의 승리. 나름대로 뻔한 일이었다.

       

        [ 이게 무슨 영문인지, 협회와 아카데미 측에서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

       

        [ 그렇지요. 이성을 잃고 흥분한 모습은……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두 해설의 말을 끝으로. 수만 명이 들어찬 스타디움 내부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다.

       

        이따금씩 두런거리는 관중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누구도 평소처럼 시끄러운 고함은 내지 않고 있었다.

       

        ‘……가만.’

       

        그 기묘한 침묵 속, 결투장을 나서던 나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일전에 안젤리카가 내게 예언을 전달하지 않았나.

       

        [ 이어지는 8강전에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

       

        근거는 모르겠다만, 녀석은 그 죽는 사람이 나라고 반쯤 확정짓고 있었다.

       

        참 괘씸한 녀석이다. 본인은 탈락한 주제에, 멀쩡한 사람을 두고 죽느니마느니하는 게.

       

        그런데.

       

        ‘진짜 예언대로 흘러가긴 했네.’

       

        신성교단이 모시는 신인지 뭔지도 모르는 작자의 예언은 오늘도 빗나가지 않았다.

       

        정말로 사람이 죽었다. 

       

        물론, 아직 깊은 잠에 빠진 <괴력> 김은호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는 길어야 하루이틀 후면 숨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게 약물의 무서운 점이거든.

       

        * * *

       

        휘이잉!

       

        기숙사 아파트의 옥상.

       

        옥상 담벼락에 팔을 괸 나는 멍하니 저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오르는 태양이 퍽 이쁘다. 과거엔 밤하늘의 별도, 오후의 석양에도 관심이 없던 나 치고는 제법 감상적인 행동이었다.

       

        “편안하게 꿀 빨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그대로 귀환이라.”

       

        아무런 근거도 없던 내 목표에 씁쓸한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웃기지 않는가? 누군가 내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도 아닌데, <히사있>의 결말을 보면 내가 살던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담배 땡기네.”

       

        이 세계에 들어온 뒤로는 한번도 피워본 적 없는 담배가 오늘따라 격하게 그리웠다.

       

        끼이익!

       

        “혜성!”

        “어?”

       

        그런데, 갑작스레 옥상문이 열리며 돌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금발 염색 머리에 푸른 눈. 앙증맞은 이목구비의 고양이상 랭커, <비를 내리는> 송수아였다.

       

        “뭐야. 여긴 어쩐 일인데?”

        “헤헤. 그냥- 지나가다 생각이 나서.”

        “지나가다? 이거 설마 스토킹아냐?”

        “나, 나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

       

        빼액, 소리를 지르는 송수아의 과장된 반응에 절로 픽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야. 설마 팔자 좋게 얼굴이나 보러 온 거야?”

        “우응, 반은 맞고 맞은 틀려. 오늘따라 혜성이 표정이 안 좋아 보였거든.”

        “……오늘따라?”

       

        스타디움에 경기를 보러 온 건가? 그것도 아니면 핸드폰이나 TV로 생중계를 봤을 수도 있고.

       

        “그래서. 무슨 고민이 있는 거야? 언제든지 이 누나한테 말해!”

        “누나는 무슨.”

       

        차라리 여동생이라고 하는 게 더 신빙성있겠네.

       

        아무튼.

       

        고민 아닌 고민이 있긴 있다.

       

        오늘따라 나답지 않게 건물 옥상에서 청승 떠는 이유? 아주 쉬운 답이 있다.

       

        내 손으로, 내 기억을 지운다는 기괴한 행위 덕택이었다.

       

        물론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선 필연적인 행동이었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뭔가 나 자신이 점차 붕괴하는 느낌이 든다.

       

        “평행세계. 알아?”

        “응? 당연하지! 영화소재로 자주 나오는 이론이잖아!”

       

        생글생글 웃음꽃이 만개한 송수아의 반응. 천천히 고개를 돌린 나는 다시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 네가 다른 세계의 주민이라면 어떨 것 같아?”

        “……갑자기? 그러니까, 이곳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다른 세계로 떨어진다면?”

        “그래. 그런데 점점 기억이 사라진다면?”

        “그, 그러면 무서울 거 같은데에.”

       

       후덜덜.

       

        송수아의 과장된, 오들오들 떠는 시늉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나왔다.

       

        귀여운 녀석.

       

        “라는 영화를 봤거든. 어제.”

        “으응? 뭐야! 영화 얘기였어?”

       

        스윽.

       

        고개를 젖힌 나는 점차 어둠이 내려앉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정말로. 이 앞으로 ‘개악’을 사용하지 않고 이 빌어먹을 <히사있>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회차 김은호의 근육 -> 하체 근육 운동 거절로 수정되었습니다.

    잠시 심장도 근육이라는 사실을 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더 알게된 사실인데, 해면체도 근육의 하나라네요

    다음화 보기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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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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