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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레이첼?”

       “네.”

       “오늘은 마나운용법에 대해 가르쳐줄 수 있을까?”

       

       레이첼과 함께 훈련장으로 향하며 그리 물었다.

       중세 판타지물에 빠지면 섭한, 빠져서는 안되는 [마나]를 운용하는 힘, 즉 마력을 기르고 싶은 까닭이었다.

       다행히 여타 판타지물과는 다르게 이 세계는 대기 중에 흐르는 마나를 누구나 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 마나를 담을 수 있는 단전의 용량에 한계치가 정해져있을 뿐.

       

       용량이 남들보다 월등히 큰 이는 위대한 마법사나 마도사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갖춘 것이고, 적당한 이는 레이첼처럼 마나와 무술을 혼용하여 부족한 용량을 대신할 수 있으며, 적은 이는 모닥불을 피우거나 빛을 내는 정도의 마나를 운용할 수 있고, 현격히 작은 이들은 실생활에서조차 사용하지 못 할 미비한 운용력을 가져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라 했다.

       

       마나 운용 이론책에 그리 설명되고 있었으니, 나 역시 마나를 다루는 기본적인 힘은 탑재되어있을 터다.

       그 용량이 어떠한지는 운용을 해봐야 알 터.

       이론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단전을 일깨우고 마나를 운용해보려 했으나, 역시나 쉬이 깨우쳐지지가 않았다.

       

       활자로만 익혀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달까.

       두 눈으로 마나 운용 시범이라도 본다면 다소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레이첼에게 물은 것이었다.

       레이첼은 마나에 검술을 접목한, 낭만 가득한 마검사였으니까.

       그녀가 ‘자색’의 여기사라 불리우는 이유 또한 단순히 머리색이 보랏빛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로 보랏빛 마나를 피어올려 전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색의 여기사란 이명을 얻게 된 것.

       태생적인 근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나를 활용한 것이었고, 나 역시 그러한 이점을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 마나 운용부터 깨우치고 싶었다.

       

       최상급 몬스터를 식재료로 만들기 위해선, 우직한 외길을 걸어 무술(武術)로써 극상의 경지에 오르던지, 아니면 타고난 마력을 활용해 지름길을 걷던지, 둘 중 하나는 해내야 했다.

       당연하게도, 한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전자보다 후자가 쉽고 빠른 길이었다.

       물론 단전의 용량이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여담으로, 원작 소설의 세계관은 몬스터 등급이 평범한 판타지물과는 달랐다.

       드래곤이란 판타지 세계관의 최강 괴수가 중급에 위치해 있듯, 특이한 몬스터 등급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예로 최상급 몬스터로 분류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슬라임]인 걸 꼽자면 설명이 쉬울 터다.

       좋게 얘기한다면 상식을 뒤집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이 원작인 것이다.

       아니면.

       

       ‘원작 작가께서 슬라임 애호가였을지도 모르지.’

       

       몬스터 도감의 설명으로는 물컹거리면서도 탄력있는 몸체와 질기디 질기며 매끌거리는 외피는 모든 물리적 공격을 빗겨내는데다 마법 또한 불속성을 제외하고선 어떠한 데미지도 입히지 못 해 사냥이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몸체는 일순간 파도처럼 사냥꾼을 덮쳐 질식시킨 후, 몸체의 중앙으로 끌고가 소화액으로 서서히 녹여 먹는다고 한다.

       반투명한 몸체다보니 인간의 살점이 녹아드는 기괴한 광경이 그대로 보인다고 했다.

       그것과 별개로, 전체적인 외형은 현대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똑같이 포동한 원형체였다.

       

       웃긴 건, 해괴망측한 다른 몬스터와 달리 생김새가 귀엽다고 해서 최상위 귀족가에서 슬라임으로 만든 푸딩이 최고급 디저트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체수가 극도로 적은 데다 사냥 난이도도 최악이니 이해는 한다만, 한 접시가 작은 집 한 채 가격이라고 하니 쇠퇴한 백작가의 다과상에 오를 수는 없을 터였다.

       돈으로 못 사먹는다면, 직접 만들어 먹으리라.

       어쩌면, 나의 식도락 여행기의 최종 종착지가 [슬라임 푸딩]일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배움의 시작이 늦은 만큼, 마력이란 도움이 절실했다.

       부디, 단전의 용량이 느즈막히 배움을 시작한 무력에 뒷받침 정도는 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훈련 준비를 마친 레이첼이 목도를 쥐며 대꾸를 해왔다.

       

       “마나,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마력이 있으면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근데 책으로 배운 걸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단 말이지.”

       “흠…, 저 역시 우연찮게 깨우친 것이라 어찌 설명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우연히?”

       “네. 죽음 직전에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겠지요.”

       

       아.

       음.

       굉장히 살벌한 깨우침이었군?

       애석하게도 깨우침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걸 생각까지는 없었기에, 스승님께 재차 안전한 배움을 갈구해야 했다.

       

       “대충 느낌이라도 알려주면 안될까? 실제로 구현해내는 걸 보면 감이 잡힐 거 같아서.”

       “…….”

       

       레이첼의 흑색 동공이 내게 향했다.

       첫 훈련 때도 그랬었다.

       검술의 기본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제자의 간청에,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었다.

       고민에 찬 눈빛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내용을 정리해 내일 알려드리겠습니다.’라며 다음을 기약했었다.

       말주변이 없어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그날과 똑같은 눈빛이었고, 그렇기에 내일을 기약해야 하리라 여겼는데.

       

       

       “알겠습니다. 느낌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부족한 표현력은 감안하여 들어주십시오.”

       

       

       스승께서 제자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제자의 숙취를 위해 아버지의 비법인 꿀물을 타준 것도 모자라, 그린리자드 혀구이의 특미 부위를 양보해주었던 레이첼이 다소 무리일 수도 있는 제자의 부탁도 흔쾌히 들어준 것이다.

       오늘따라 참으로 친절한 스승님이 따로 없는 듯 싶다.

       

       

       **

       

       

       “이렇게…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위로….”

       

       “이렇게… 심장에 모은 다음….”

       

       “이렇게… 어깨로 올려보낸 다음….”

       

       “이렇게… 팔꿈치에 모은 다음…….”

       

       “이렇게… 사용하고 싶은 손가락 끝에다… 보내서….”

       

       팡!

       

       보랏빛 불꽃이 레이첼의 양손에서 피어올랐다.

       

       “이렇게, 마나를 운용하시면 됩니다.”

       

       ….

       

       …….

       

       친절한…….

       

       ………스승님이시로다.

       

       어때요, 참 쉽죠?

       

       뽀글머리 밥아저씨께서 순식간에 실사와 같은 풍경화를 그려내곤 약 올리듯 묻는 것마냥, 레이첼의 강습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침부터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선생님.

       이라며 항의를 해야겠지만,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도, 전수해본 적도 없는 레이첼이 최선을 다한 것임을 알기에, 묵묵히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보다 행동을.

       연습보다 실전을

       배움보다 독학으로써 성장한 레이첼에게 생사의 기로에서 우연히 터득한 것을 유창하게 설명해 달라는 것이 모순적인 바람일 것이다.

       

       무엇보다.

       

       확실히 글로 배웠을 때보다 와닿는 것이 있었다.

       레이첼의 시범 덕에 가시거리가 1M도 안될 짙은 안개가 다소 옅어져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조금 비약적으로 표현하자면, 레이첼의 단전에서부터 피어오른 마나가 혈류를 따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달까.

       조금은 감이 잡힌 것 같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자고로 조상님들께서도 깨우침에 있어,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효율적임을 진작 깨우치셨기에 그리 말씀을 남기셨을 터.

       

       부족한 표현력에도 최선을 다했을 스승님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단전 부근을, 손으로 짚었다.

       왜인지 모르게, 맥박이 느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언가 소용돌이치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을 주신다면 조금 더 내용을 가다듬어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레이첼이 그리 얘기했지만, 이미 집중을 시작한 내겐 와닿지 않은 소리였다.

       단전의 맥동을 느끼며, 레이첼이 했던 것을 따라 그것을 위로 끌어올려본다.

       

       “이렇게… 올려서.”

       

       심장에 그것을 가둔다.

       심장의 맥동이 순간적으로 빨라진다.

       

       “그 다음에… 어깨로 올려서….”

       

       한 곳에 모였던 맥동을 양쪽 어깨로 갈라낸다.

       심장의 맥동이 점차 느려진다.

       

       “양쪽 팔꿈치에 모은 다음…….”

       

       피워내려는 손가락 끝에 집중했지만, 무언가 막힌 듯한 느낌이었고 팔꿈치에 모인 맥동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이어, 그 맥동이 다시금 어깨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왼쪽 팔꿈치에서 느껴지던 맥동이 끊기고 말았다.

       

       어금니를 씹었다.

       손에 힘을 주었다.

       배에 힘을 주었다.

       왜인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한이 든듯,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진동이었고 약해지던 맥동이 다시금 격한 울음을 터뜨린다.

       이어, 오른쪽 팔꿈치로 모여든 무언가가 가는 혈관 줄기를 따라 손끝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우렁차게 터진 벼락이 가는 줄기를 뻗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팟….

       치직….

       

       

       손바닥 위로 흑색의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불꽃보다는 전류에 가까운 발광이었고, 한차례 굵은 빛줄기를 일으킨 스파크가 이내 꺼진다.

       동시에, 억누르고 있던 숨통이 트이며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무릎을 짚으며 숨을 허덕여야 했다.

       

       “허억…, 허억….”

       

       어느새 온몸이 젖어있었다.

       그렇게 격하게 호흡을 고른 후, 상체를 일으켰다.

       

       “…….”

       

       벙찐 스승님의 얼굴이 보였다.

       레이첼이 죽음의 순간에서야 터득했다는 깨우침을 왜인지 손쉽게(?) 해낸 듯한 느낌에, 머쓱히 뒷머리를 긁으며 말해야 했다.

       변명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하……, 이, 이게 될 줄은 진짜 몰랐네….”

       

       잠시 후.

       

       레이첼의 눈빛에 처음 보는 것이 깃들었다.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아리엘의 눈빛에 깃들었던 것과 엇비슷한 것이었다.

       

       희열… 흥분…?

       

       같은…?

       

       그리고 그날 저녁.

       

       함께 아리엘의 파티에 나서는 레이첼이 붉은빛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어깨가 파인, 그리고 몸매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나는 드레스였다.

       처음 보는 여성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이상합니까…?”

       

       

       레이첼이 쑥스러운 듯 붉은빛 드레스를 매만지며 물었고, 난 감상 그대로를 전해주었었다.

       

       “잘 어울려.”

       

       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지에 등장인물 일러스트 올려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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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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