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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나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사람이다.

        

       아니, 뭐, 그러니까, 관심도 없는 사람 앞에서 괜히 내가 하는 게임 이야기를 꺼냈다가, 사실은 상대방이 별로 재미도 없으면서 예의상 끝까지 들어주는 것을 착각해 나 혼자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그건 고등학생 때의 이야기였고, 내 주변에는 여자애들이 없어서 그냥 씹덕이라는 소문이 도는 것 정도로 끝나긴 했고, 그 이후로 나는 사람 눈치 보는 법을 조금이라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자마자 호감을 느낄만한 외모도 아니고, 말주변도 없다. 인터넷에서야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하면서 살았지만, 그건 어차피 상대방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인터넷이 아니던가. 애초에 상대의 몸짓이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얼마나 불편하게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나름대로 회사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며 어떻게 행동하면 그럭저럭 무난하게 상황을 넘길 수 있는지 몸에 배었다. 적어도 이제는 본인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었을 때의 사람 표정 정도는 알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애들의 표정이라거나.

        

       예를 든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앞에 앉아있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표정이 그랬다.

        

       사람들은 표정 없는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을 생각보다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그 무표정한 사람이 저 위쪽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랬다.

        

       물론 그런 무표정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이 표정을 읽을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사람이나, 자기가 당당하게 그 무표정한 사람의 여동생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나, 어디서나 당당한 사람이나 아니면 주변에 온갖 종류의 여자들이 있어 무표정한 여자 하나가 추가된다고 별로 바뀔 것도 없는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렇게 말해두고 보니 내 주변에 참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은 모두 원작에서 주인공 일행이던 사람들이다. 좀 특이한 면이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정작 그 주인공께서는 여전히 나를 엄청나게 어려워하고 있기는 하지만, 뭐 그거야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줄 테니 넘어가도록 하고.

        

       문제는 미아 크로우필드였다.

        

       불과 저번 주만 하더라도 미아 크로우필드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를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나를 죽이겠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는 모습이라 오히려 헛웃음을 참아야 했을 정도로.

        

       이런 게임의 히로인이었으니 몸매는 꽤 굴곡 있었지만, 아무래도 키가 조금 작은데다 눈이 앞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때가 많다 보니 영 소심해 보였다. 실제로도 나를 노려볼 때가 아니면 그냥 소심한 상태 그대로일 때가 많았고.

        

       그러니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변화가 더 확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샤를로트나, 심지어 황제의 딸인 앨리스 앞에서도 겁먹은 토끼처럼 굴던 미아 크로우필드가 나만 보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었는데, 요즘 들어 내 시선을 피하는 경우가 점점 잦아졌으니까.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렇다면 왜, 무슨 이유로 그런 변화가 생긴 건지.

        

       “…….”

        

       “…….”

        

       음.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내가 직접 물어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나는 어차피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냥 앞에서 물어보면 그만인 일.

        

       게다가, 이전에 이미 이것보다 심한 말을 했던 적도 있었고.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학생회실에는 앨리스와 샤를로트가 전부 있었다. 다른 위원들도 있었고, 학생회장도 있었다.

        

       우리는 학생회에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마땅한 직책은 없었다. 학생회로서는 ‘일단 잡아두고 싶은’ 인재들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원작에서도 학생회장은 꽤 귀족적인 사람이긴 했지만, 동시에 능력을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이기도 했다. 다만 출신성분에 굉장한 가산점을 줄 뿐.

        

       그리고, 앨리스를 따라 당당하게 들어온 두 그레이스도 있었고.

        

       일단 두 사람에게도 밀크티를 권하기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나와 앨리스, 샤를로트, 그리고 미아 크로우필드를 반기는 만큼 반기지는 않았다. 그저 온 김에 줬다는 느낌이랄까.

        

       레오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고, 클레어는 무척 태연했다.

        

       음.

        

       나는 물어볼 수 있다. 어차피 주변에서 나를 보고 놀라더라도 시간을 돌리면 그런 시선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지니까.

        

       하지만 미아 크로우필드는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모른다. 그러니 대답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숨길지 모른다.

        

       이 자리에서 물어본다고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

        

       미아 크로우필드를 가만히 관찰하듯 바라보니, 그녀가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딱히 부끄럽다거나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왜 저럴까.

        

       괜히 저러니까 더 불안한데.

        

       “…….”

        

       흠.

        

       아, 모르겠다.

        

       “미아 크로우필드.”

        

       내가 조용히 이름을 부르자, 미아 크로우필드는 앉은 자리에서 그 자세 그대로 펄쩍 뛰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덜컥! 하고 의자와 책상이 끌리는 소리가 나고,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확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번에도 느껴본 감각이다. 물론 그때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미아 크로우필드의 반응도 사뭇 달랐고. 아직 그 정도로 심각한 대화가 오간 것은 아니었으니까.

        

       “네, 네네네, 네!?”

        

       돌아오는 대답도 당황 그 자체였다.

        

       그럴 만 한가?

        

       내가 다른 사람 이름을 먼저 부르는 일이 별로 없기는 했다. 굳이 대화를 길게 하면서 허점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시간을 돌리며 대화를 조정하면 될 일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대화를 끝내고 나면 심적으로 몹시 피곤해졌다. 몸이야 지치지 않더라도 내 정신이 느끼는 시간은 일반적인 대화 시간의 몇 배니까.

        

       태생적으로 아싸였던 나에게 다른 사람과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대화를 그만큼 길게 이어 나가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 괜찮겠습니까?”

        

       “시, 시시시시시시, 싫은데요!?”

        

       내가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건넨 말은 곧장 거절당했다.

        

       아니,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 듣지 않는 곳에서 따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제안한 건데.

        

       참고로 주변 사람들의 입은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아니, 좀 얌전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이랑 단둘이 대화 좀 하고 싶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잠깐만. 설마 이거.

        

       나는 나름대로 쿨뷰티의 이미지를 잘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아싸찐따였던 건가? 남들한테 말도 제대로 못 거는 커뮤증 비슷한 걸로?

        

       설마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랑 비슷한 이미지라거나, 그런 건가?

        

       “……싫습니까?”

        

       “싫어요!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아무것도 할 생각 없는데.

        

       아니, 그보다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뭐 여자애 잡아먹는 레즈비언 캐릭터처럼 보이잖아. 물론 미아 크로우필드는 ‘죽인다’라는 말로 한 말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에 아주 좋은 말이었다.

        

       실제로도,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그 말을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앨리스를 제외하면 다들 입을 멍하니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닌가? 그냥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이런 쪽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봐서 제 발 저리는 건가?

        

       고개를 휘휘 저어서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시간을 돌릴 생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캐릭터성은 지켜야 했다.

        

       “아무런 짓도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그렇지.

        

       미아 크로우필드 시선으로 보기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지. 나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였으니까.

        

       문제는, 그 원수에게 보내는 시선이 왜 일주일 전과는 달라졌냐는 말이다.

        

       “정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앗.”

        

       그리고 정작 내가 그렇게 말해버리자, 미아 크로우필드의 표정이 조금 멍해졌다. 하긴, 여기서 내가 어떤 말을 할 줄 알고? 자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를 그런 ‘암살자’로 보고 있다면 내가 내놓을 정보가 어떤 파급력을 지니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 그러시던가요.”

        

       하지만, 미아 크로우필드는 마치 허세라도 부리듯 그렇게 말했다.

        

       “…….”

        

       나는 그런 미아 크로우필드를, 눈을 가늘게 뜬 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그리고 잠깐 쉬었다가,

        

       “미아 크로우필드. 지난주에 저를 보던 시선과 지금 저를 보는 시선의 감정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미아 크로우필드의 머리 위에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느낌표가 떠올랐다.

        

       뭐, 실제로 그랬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 세계에 시스템이나 상태창 같은 편리한 기능은 없었으니까.

        

       “그, 그그그…….”

        

       내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잠깐 말을 더듬다가,

        

       “그, 그런 변화가 있더라도!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 없잖아요!? 내가 왜 당신에게 그런 걸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는 거죠!?”

        

       그렇게 말한 미아 크로우필드는, 바로 몸을 돌려서 도망치듯 학생회실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

        

       음.

        

       잠깐 침묵에 싸인 학생회실에서, 나는 짧게 생각을 정리했다.

        

       반응이 저런 걸 보면 따로 불러서 대화를 나누었더라도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당장은 어쩔 수 없으려나.

        

       “실비아?”

        

       여전히 놀란 표정인 클레어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나는 슬슬 다시 상황을 원상 복귀시켜야 할 때라는 것을 떠올렸다.

        

       다시.

        

       *

        

       찻잎을 감별하는 능력은 없지만, 사실 정말 비싸고 좋은 것을 먹거나 마시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게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 정도는 느끼게 되는 법이다.

        

       실제로 학생회에서 마시는 밀크티는 맛이 좋았다. 부드럽고, 향기롭고. 마음 같아서는 설탕을 그냥 때려 박고 싶은 맛이긴 했지만, 그래도 각설탕 두 개 정도 넣으면 그럭저럭 달콤한 맛이 나서 참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쿨뷰티가 살이 찌는 건 좀 그렇지.

        

       고급 찻잎을 우린 차의 진한 향이 학생회실 곳곳을 감돌고 있었다. 매일같이 이렇게 차를 마셔대면 차의 향기가 방안 곳곳에 스며들기라도 하는지, 학생회실을 들어올 때면 아주 미미한 홍차 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고급 차를 느긋하게 즐기며,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관찰했다.

        

       시간을 돌리기 전처럼. 미아 크로우필드는 필사적으로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아직 내가 암살한 존재는 백작과 그 일당 정도가 다였다. 황제가 세계정세를 물어보기에 게임에서 보았던 본편 시점의 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해준다던가, 어디 가서 정보를 알아 온다던가 하는 임무를 맡은 적은 있지만, 내가 ‘죽였다’고 소문이 날 정도의 사람은 백작 정도가 전부였다.

        

       혹시 다른 곳에서 헛소문이라도 들은 걸까?

        

       내가 사실은 훨씬 더 위험한 존재라는 정보를 알고 나서 나에게 겁먹기라도 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 그런 반응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와 단둘이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

        

       나는 찻잔에 입을 대고 소리 없이 밀크티를 살짝 입 안으로 부어 넣었다. 기분 좋은 온도로 식은 차가 입 안을 적셨다.

        

       ……미행해볼까?

        

       어차피 내일부터 주말이었으니까. 미아 크로우필드의 행적을 한 번 제대로 살펴보면 어떨까.

        

       만약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받는다면 그 상대를 알 수 있을 거다. 원작에서는 그런 상대가 없었지만, 이 세계는 나로 인해서 각 캐릭터의 뒷배경이 상당히 변해버렸으니까.

        

       좋아.

        

       주말 일정은 정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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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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