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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높은 하늘엔 바람이 찼다.

         

       파스텔은 재채기를 했다.

         

       “에취이!”

         

       훌쩍.

         

       나이프를 발로 디딘 채 팔을 비비다가 탁 트인 하늘을 두리번거렸다. 볼을 툭툭 치자 호르몬의 몽롱한 감각이 가셔 갔다.

         

       “악마님! 악마님! 저 하늘을 날고 있어요!”

         

       팔을 날개처럼 파닥였다.

         

       파닥파닥.

         

       찬 공기를 원 없이 맛보자 정신이 더 빠르게 깼다.

         

       『그래. 일단 내려가는 게 좋겠군. 정신도 차리면서 말이다.』

       “네에.”

         

       파스텔은 양 손바닥을 내렸다가 올리길 반복했다.

         

       “다운! 다운!”

         

       손짓을 따라 나이프가 천천히 낙하했다.

         

       “슈웅~!”

         

       슈웅슈웅.

         

       “나이프 친구 다 좋은데 조종에 한 손이 묶이는 게 아쉽네요. 자립성이 부족해요.”

         

       파스텔은 손가락만 까딱이며 나이프를 조종했다.

         

       “저처럼 자립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호오? 네 어디가 자립적이지?』

         

       파스텔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전 혼자서 걷고 혼자서 달려요!”

         

       악마가 감탄했다.

         

       『그거 놀랍군.』

         

       전혀 안 놀라워하는 목소리.

         

       『그보다 나이프 연료를 확인해 봐라. 요 며칠 험하게 쓰고 충전하길 반복했으니 슬슬 부족해질 시점 아닌가?』

       “잠시만요.”

         

       파스텔은 몸을 숙였다. 나이프를 디딘 상태여서 나이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잉.

         

       나이프를 디딘 상태로 나이프를 어떻게 확인하지?

         

       멍하게 생각하다가 더 멍해졌다.

         

       오잉.

         

       슬쩍 나이프를 향해 말했다.

         

       “너 연료가 얼마나 남았어?”

         

       대답은 없었다.

         

       허억.

         

       당연하겠지?!

         

       으아아.

         

       “악마님! 악마님! 방금 제가 했던 말을 취소할게요! 전 전혀 자립적이지 않아요!”

       『호오? 나이프 연료를 확인하다가 무슨 훌륭한 깨달음을 얻은 거지?』

       “악마님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요!”

         

       파스텔은 마검을 들었다. 몸을 굽히곤 마검을 발아래로 슬쩍 내렸다. 발에 밟힌 나이프가 보일 위치였다.

         

       “대신 좀 봐주세요!”

       『자립을 원한다면 추락하고 나이프 상태를 확인한 다음 다시 나이프에 올라타면 된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지.』

       “그건 무서우니까 그냥 대신 봐주세요!”

       『전혀 자립할 마음이 없군.』

         

       악마가 나이프 연료를 확인했다.

         

       『흠? 다 떨어졌다. 잠시 뒤 추락할 예정이야.』

       “네?”

       『공중 도약을 몇 번이고 해댔으니 다 떨어질 만하지. 어서 충전시켜라. 연료통에 존재의 격이 대신 쌓였긴 해도 지상까지 내려갈 연료는 채워질 거다.』

         

       파스텔은 허둥지둥 품을 뒤적였다.

         

       마석, 마석.

         

       같은 부피의 금괴와 같은 가격이라 해도 밥 대신 마석을 먹고 사니 비상용 마석은 상비하고 다녔다. 마석 나이프가 생긴 뒤엔 더 그랬다.

         

       그런데 파스텔은 품을 뒤적이다가 당황했다.

         

       “잉.”

         

       마석이 없어.

         

       미니 후추통을 꺼내 마석 가루의 잔량을 확인했다.

         

       텅텅.

         

       며칠 간의 조난 겸 비밀 감사 동안 다 먹었나 보다.

         

       뭐 괜찮아!

         

       평소에 마석 에너지를 충분히 섭취해 놓은 덕분에 며칠 굶는다고 죽진 않으니까!

         

       『없는 건가?』

         

       파스텔은 밝게 대답했다.

         

       “네!”

       『흠.』

         

       악마가 잠시 생각했다.

         

       『추락하겠군.』

       “네!”

         

       파스텔은 다시 밝게 대답했다. 그리고 멈칫하곤 자신의 대답을 곰곰이 되새겼다.

         

       추락.

         

       추락?

         

       지상을 내려봤다. 까마득한 상공에서 내려보는 지상은 작은 모형 세상 같았다.

         

       나, 추락하는 거야?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아.

         

       “살려주세요오!”

         

       덜덜덜.

         

       악마가 담담히 말해왔다.

         

       『일단 검을 다시 허리춤에 차라.』

         

       완전 믿음직한 목소리였다.

         

       허둥지둥 마검을 허리춤에 찼다.

         

       “다 했어요! 그리고요?”

       『안 아프게 죽길 기도해라.』

       “네에?!”

         

       전혀 기대도 하지 않은 대답!

         

       “악마님?!”

       『유감이다.』

         

       사람을 놀리는 듯이 혼자만 담담한 목소리였다.

         

       으아아.

         

       “저 이러다 납작 파스텔이 되는 거예요! 납작한 파스텔! 납작납작 파스텔!”

         

       허억.

         

       납작납작 파스텔이래……!

         

       어쩌다 이런 허접한 진화가?!

         

       으아아!

         

       문득 발을 디딘 나이프가 힘을 잃었다.

         

       “엣.”

         

       발치를 살펴봤다.

         

       나이프가 히잉~거리며 추락했다.

         

       히잉~.

         

       “으아아!”

         

       부유감이 몸을 휩쓸고 바람이 몰아쳤다.

         

       “파스텔 살려어!”

         

       분홍 소녀는 추락했다. 덩달아 추락하는 나이프 친구를 잡아채고 정처 없이 회전했다.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완전 착하게 살게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오!”

         

       비명이 길게 일었다.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날개가 펄럭이고 부리가 소녀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와악!”

         

       파스텔은 그대로 물려 붕 떴다. 추락이 멈추고 비행이 시작됐다.

         

       부리에 물린 채 몸을 덜덜 떨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흐아! 흐아! 흐아!”

         

       죽을 뻔!

         

       조금 진정하자 상황을 파악했다. 거대 새가 부리로 물고 날아가고 있었다.

         

       으잉.

         

       뭔가 굉장히 익숙한 상황. 물린 옷 너머로 느껴지는 부리의 아우라가 기시감을 만들어줬다.

         

       “호, 혹시 저희 구면인가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거대 새가 익숙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저 먼 곳에 보이는 바위산이었다.

         

       먹이로 착각 당해 물려갔던 곳.

         

       구면이 맞나봐!

         

       바위산의 친숙한 둥지가 보일쯤이 되자 많은 인파도 눈에 들어왔다. 레너드와 친구친구들 그리고 상인과 용병이었다.

         

       잉.

         

       모두 왜 여깄지?

         

       『공식적으론 조난이었으니 구조하러 왔나 보군.』

       “아앗!”

         

       과한 걱정을 끼쳤다.

         

       양손을 입가에 대고 외쳤다.

         

       “미안해 친구친구들!”

         

       호응하듯이 친구친구들이 양팔을 휘저었다.

         

       “둥지에 내려주세요! 친구들이 저깄어요!”

         

       새가 날갯짓하며 속도를 조절하더니 둥지에 착지했다.

         

         

         

       #

         

         

         

       “하늘고래를 포위해 놨어?”

         

       근처 바위 호수에서 간단히 샤워한 파스텔은 가벼운 옷차림이 됐다. 수건으로 젖은 분홍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닦았다.

         

       레너드가 미묘하게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과잉 조치라 생각할 순 있겠는데 포위할 만은 했어. 조난된 후작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누군가 딴 속셈을 품었다는 거지.”

       “그런가?”

         

       신분 자각이 잘 안되는 파스텔은 대강 수긍했다.

         

       어차피 교단과 연관이 확실하게 있는 프레지 상단의 주요 인원이 도망치지 못하게 조치할 필요는 있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줬네.

         

       “잘했어! 잘했어!”

         

       키 큰 레너드의 어깨를 팡팡 때려줬다.

         

       명예 인력업체!

         

       훌륭해! 훌륭해!

         

       레너드가 떨떠름하게 내려봤다.

         

       “겨우 말 한마디로 넘어가려고? 이 고생을 했는데 여전히 무임금인 건 아니겠지?”

       “우아아~!”

         

       입을 가리며 깜짝 놀랐다.

         

       “깐깐해!”

         

       파스텔은 그리 말하곤 혼자 빵 터졌다.

         

       “아하하!”

         

       수건을 착착 접었다.

         

       깔끔한 파스텔은 다 쓴 수건을 접어놓아요~.

         

       악마님의 잔소리 때문이죠~.

         

       착착.

         

       “야! 얼렁뚱땅 넘기지 마라!”

         

       깔끔하게 접은 수건을 뿌듯하게 들었다.

         

       레너드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파스텔은 흥얼거리다가 수건을 꼭 끌어안고 레너드와 시선을 마주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젖은 분홍 머리카락이 소녀의 어깨를 타고 흘렀다.

         

       “날 걱정해 준 거지?”

         

       레너드가 멈칫했다.

         

       파스텔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목소리가 대기에 녹아들었다.

         

       소녀는 시선을 더 마주치다가 걸음을 옮겼다.

         

       “가자, 친구! 상황도 정리해야 하고, 하늘고래 채집도 해야지! 시간은 돈이야!”

         

       레너드가 쳐다보다가 뒤따랐다. 작은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씨이, 결국 무임금이잖아.”

         

       앗.

         

       파스텔은 그냥 아하하 웃었다.

         

       “야! 웃지 마라!”

       “왜 그래 친구친구!”

       “누가 친구친구야!”

       “아하하!”

         

       구조대가 집결한 둥지 근처로 돌아왔다. 이동 준비가 끝나가는지 반쯤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파스텔을 찾는다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인원이 전부 모이면 이동할 것이다.

         

       파스텔은 새와 작별 인사라도 할 겸 두리번거렸다. 둥지에 다가가자 거대한 새와 아기새 세 마리가 보였다.

         

       “앗!”

         

       아기새들!

         

       “얘들아!”

         

       아기새들이 돌아봤다.

         

       ―삐약!

         

       반갑게 날개가 파닥였다.

         

       파스텔도 덩달아 양팔을 파닥였다.

         

       “기쁨의 인사!”

         

       함께 파닥파닥.

         

       다 같이 파닥파닥.

         

       대화는커녕 날개와 팔만 파닥였다. 어미새가 묘하게 바라봤다. 그러더니 계속 날개를 파닥이는 아기새들을 돌아보곤 날개로 후려쳤다. 무슨 경박한 짓이냐고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삐약!

         

       얻어맞은 아기새들이 엎어졌다.

         

       엣.

         

       파스텔은 벙쪘다.

         

       으아아?

         

       새 문화엔 너무 경박 맞았나 봐!

         

       파닥이던 양팔을 조심스럽게 내리고 평범하게 다가갔다. 버둥거리다 일어난 아기새들이 바라봤다.

         

       “어쨌든 너희 안 다쳐서 다행이야! 게다가 셋 전부 돌아왔고!”

         

       파스텔은 한 마리씩 셌다.

         

       “하나, 둘, 셋!”

         

       와, 세 마리!

         

       실종됐던 한 마리가 어느새 돌아왔어!

         

       셋 전부 비슷하게 생겨서 누가누군지 구분이 전혀 안 됐지만 누가 실종됐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기새 한 마리가 털이 온통 그을린 채 새까만 자태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파스텔은 팔짱을 끼고 새까만 애를 흘겨봤다.

         

       “너어?”

       ―삐약.

         

       실종자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뻔뻔한 사고뭉치!

         

       다르게 말하면 파스텔 아기새……!

         

       헉?

         

       방금 속마음은 실수!

         

       마음속에서 고개를 젓곤 실종자를 살펴봤다.

         

       얼마나 사고를 친 건지 털이 온통 그을렸네.

         

       “어디서 뭐 하다 이렇게 탄 거야?”

         

       웬 엔진 고장으로 분쇄되는 비공정에서 그을릴 만한 일이 뭐가 있지?

         

       문득 명탐정 파스텔의 두뇌에 해답이 번뜩였다.

         

       맞아, 그거야!

         

       새까만 아기새를 삿대질했다.

         

       “바로 네가 비공정 추락의 범인이구나! 엔진실에 침입해서 난리를 부린 거야!”

         

       두둥.

         

       나머지 아기새가 본인들은 상상도 못 한 추론을 듣고 놀라더니 새카만 아기새를 돌아봤다.

         

       새까만 아기새가 부리를 벌리며 경악했다. 완전 범죄를 들킬 줄 몰랐다는 표정이다.

         

       초지능 앞에 미스터리는 없는 법.

         

       완전 범죄, 풀어버렸다.

         

       “탈출 방법이 마땅치 않았으면 모를까 멀쩡히 탈출하고 있었는데 혼자만 빠져나가서 그런 사고를 치다니! 그러면 안 되지! 무고한 생명도 휩쓸리는 짓이잖아!”

       ―삐야악…….

         

       새까만 아기새가 사과했다.

         

       그래도 순순히 사과는 하는구나.

         

       걸음 소리가 들렸다.

         

       “파스텔, 돌아갈 준비 끝났어.”

         

       레너드가 사람들을 가리켰다.

         

       “앗, 잠시만.”

         

       아기새들을 돌아봤다.

         

       “친구들! 난 이만 돌아갈게!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야! 진짜 말 그대로! 어차피 하늘고래 채집하려고 당분간 돌아다닐 예정이거든! 또 보자!”

       ―삐약!

         

       아기새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구조대를 데리고 바위산을 내려왔다.

         

       “상단 포위는 제대로 됐대?”

       “병사를 동원했으니 어려울 건 없지.”

       “잘했어, 레너드!”

         

       레너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고마우면 돈으로 줘, 이 뻔뻔한 녀석아.”

       “아하하!”

         

       순조롭게 정박장 근처의 상단 야영지로 돌아왔다.

         

       군사 비공정이 하늘고래를 둘러싸고 병력이 상단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상인의 대표 자리를 얻은 듯한 싱클레어 상단주가 황급히 다가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무리 귀족이셔도 이건 과한 재산권 침해입니다!”

         

       파스텔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싱클레어 상단주를 삿대질했다.

         

       “당신과 프레지 상단을 크래프트 후작에 대한 청부 살인 혐의로 전격 체포하겠습니다.”

         

       증거는 나.

         

       “처, 청부 살인?!”

         

       싱클레어 상단주의 눈이 커졌다.

         

       “잡아가세요!”

         

       병사들이 상단주의 팔을 잡아챘다.

         

       “이건 모함입니다!”

         

       진짜 모함인 상단주가 끌려갔다.

         

       모르겠고.

         

       분해, 분해, 공중분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공지를 올렸는데 알람이 안 갔군요.

    주6일 화수목금토일 연재로 변경합니다.

    지금 연재분은 사실 토요일 연재분이니 다음편 연재하고 하루 쉰다는 얘기입니다.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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