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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 * *

       

       이 새끼는 앞의 두 가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실제 역사에서 하던 일이 그런 것이었으니. 아마 마지막 세 번째가 이놈이 느낀 핵심이겠지.

       

       열심히 체카에서 뛰어놀았는데 결과는 이 모양이었을 테니.

       

       

       “살아서 독일로 가려는 것은 아니고?”

       “차리나께서 이미 현실과 타협하신 수정자본주의를 꺼내셨습니다. 독일의 공산주의도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배부른 자가 어찌 공산주의에 빠지겠습니까?”

       

       

       이 새끼 눈을 보니 진심이네.

       

       살고 싶어서 강자에게 빌붙으려는 특유의 얍삽한 눈빛. 이놈은 진짜다.

       

       골수볼셰비키라 나를 죽여 최소한 혁명의 정당성을 증명하겠다. 그런 것도 아니다.

       

       살고 싶어서. 또 다른 출세의 기회를 가지고 싶어서 차리나인 나에게 매달린다.

       

       

       “차라리 두마의 의원들에게 매달리지?”

       “두마가 있다 하나 이 시대에 차리나의 인정을 받는 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내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

       

       아마 두마가 있다고 해도 한동안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

       

       

       “까놓고 말하지. 너는 출세하기 위해서는 어디든 붙을 놈이긴 했어.”

       “그것은.”

       “딱히 이걸로 널 까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너 같은 놈은 출세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놈이지. 능력 하나는 좋다는 소리다.”

       

       

       난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출세를 위해 날뛰는 놈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모자란 군주 옆에서 혓바닥 놀리면서 비위 맞추며 권력을 얻는 놈. 출세를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하며 자기가 갖춘 능력을 선보이는 그런 유형.

       

       이놈은 지금 적어도 두 번째 유형이었다.

       

       

       “!!”

       

       

       이미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는 끝났다.

       

       독일로 간다고 해도 근본도 없는 주제에 로자 룩셈부르크주의든 카를 리프크네히트주의든 내미는 놈들과 분파가 다르니 찬밥 신세에 좋은 취급은 받지 못할 터.

       

       독일에서 또 도망친다고 할지라도 체카에 꽤 시달리던 오흐라나는 끝까지 추격해 잡아 죽이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내 발치에서 내 발바닥이나 핥으며 출세의 줄을 잡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래. 좋다.

       

       레닌에게 실망한 자들도 많겠지.

       

       정말로 새로운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혁명을 했던 이들에게는 지금의 러시아를 보고 명분을 잃었을 거다.

       

       군부의 완벽한 지지를 받는 여제.

       

       러시아가 그토록 수복하고 싶던 콘스탄티노플 수복과 몽골초원, 북만주를 확보한 여제.

       

       사회주의 맛이 나는 개혁과 노동자 복지를 보장하고 대우하는 여제.

       

       숨 쉴 듯이 이 순간마저 다른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미래주의.

       

       반면 폭력과 권위로 더럽혀진 빨갱이 권력자들이 독재하는 소련.

       

       누가 이길지 뻔한 게 아닌가.

       

       하여 눈치 빠른 베리야는 이쪽에 붙은 것이다.

       

       안 그래도 좀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긴 했다.

       

       

       “오흐라나에는 임시 요원으로 들어가라. 조지아의 공산당을 토벌하는 일을 맡고, 대서양을 넘어라. 찾을 사람과 잡아야 할 사람이 있다.”

       

       

       어디 네놈 실력 한번 보자.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처단하면 된다.

       

       출세하고 싶은 이놈은 이놈대로 반드시 명령을 수행하려 하겠지만, 그래. 어디 차리나에 붙은 베리야란 놈의 능력을 볼까.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미국에서는 첫째로 로버트 고다드란 인물이다. 로켓을 개발하는 인물이지. 이 사람에게 로캣 개발에 힘을 실어 줄 테니. 힘이 아닌 설득으로 러시아로 오게 하라. 두 번째는 이고르 시코르스키다. 앞으로 러시아의 비행기를 책임질 인물이다.”

       

       

       로켓을 개발하는 인물.

       

       이 자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베르너 폰 브라운이 V2를 개발하고 다양한 로켓을 개발하였다.

       

       로버트 고다드란 인물이 만든 미사일은 정작 미국에선 그리 좋은 취급은 받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거지.

       

       해볼 수 있을 만큼 해 보라고 말이다.

       

       물론 러시아 사정이 열악하니 큰 예산은 줄 수 없지만. 자기 로켓에 관심을 두는 이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겠나.

       

       

       “그럼 잡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멕시코나 미국에 있을 트로츠키다. 찾을 수 있겠나?”

       

       

       원 역사에서 트로츠키는 멕시코로 갔다.

       

       물론 시대도, 역사도 달리 흘러가니 멕시코에 갔다 확신할 순 없지만. 오흐라나의 추격을 보면 트로츠키는 북유럽 통해서 독일 쪽으로 갔다가 행방불명이다.

       

       그놈 성격에 자신과 분파가 다른 독일에 오래 있지는 않을 테고. 최근 코뮌이 각 볼까 말까 하는 프랑스도 아닐 터.

       

       아마 대서양을 건널 것이다.

       

       미국이나 멕시코, 둘 중 하나로 추정되니 베리야를 이곳으로 보내는 것도 좋다.

       

       

       “그럼. 우선순위는 로버트 고다드란 인물과 시코르스키입니까?”

       

       

       맞다. 이 사람을 들여서 로켓을 개발하고 2차대전을 대비할 거다.

       

       실제 역사와 달리 질 떨어지는 공산 독일과 모든 것이 대비된 러시아의 싸움. 과연 독일이 백계 러시아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래. 트로츠키는 찾을 수 있으면 찾는 정도다. 지금 당장은 러시아 내에서 빨간 물만 빼내도 되니까. 조지아의 공산당을 일망타진해라.”

       “반드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두고 보겠다.

       

       실제 역사에서도 보여줬던 그 온갖 잔혹한 짓을 러시아 합중국을 위해 써봐라.

       

       그리만 하면 적어도 늙어서 죽을 수 있게 내 뒤는 봐줄 테니.

       

       물론 개버릇 남 못 주면, 죽이겠지만.

       

       

       * * *

       

       

       

       이 무렵 트로츠키는 반강제로 대장정을 펼치고 있었다.

       

       배를 타고 스웨덴까지 갔다가 공산화된 독일로 들어갔으나, 이내 트로츠키 특유의 과격한 성격과 레닌 동지나 자신과는 달리 보다 온건한 성격의 공산 혁명을 주장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주의라 트로츠키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련의 실패를 보고 만든 로자 룩셈부르크주의라니!

       

       이건 안 그래도 도망 나온 처지에서 완전히 공산주의자들 속에서 마저 패배를 인정하란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독일 공산당은 트로츠키가 다른 외국으로 망명하는 것을 도왔다.

       

       사실 중국 공산당 쪽으로 갈까도 생각했으나, 거기도 지금 공산당이 영 힘을 못 쓰고 있다고 했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미국.

       

       도무지 공산주의가 태동할 수 없는 이곳에 도착한 트로츠키는 참으로 참담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치르르르르륵

       

       트로츠키가 집게로 잡은 닭이 기름 속에서 현란한 움직임으로 맛있게 튀겨지고 있었다.

       

       저 닭을 바라보며 자신도 저 닭과 다름없다고 생각하자니 트로츠키는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내가 왜 이 닭이나 튀기는 처지지?”

       “동지 오흐라나의 추격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

       

       트로츠키는 오흐라나의 추격을 피하고자 미국 내 러시아 출신 공산주의자의 도움을 받아 닭을 튀기고 있었다.

       

       이제 이 짓도 눈치 보여서 못 해먹겠다.

       

       차라리 그날 황녀에게 죽었으면 모르겠는데. 지금 러시아에서는 소련은 혁명하겠다면서 총알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비리투성이 정권이라 선전되고 있다.

       

       소련을, 혁명을 완전히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그날 죽었으면 이런 굴욕을 받을 일이 없지 않았는가!”

       “동지. 이곳이라면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 말 한번 잘한다.

       

       문득 트로츠키는 눈을 창밖으로 돌렸다.

       

       가게 앞에는 온화하게 웃는 트로츠키가 치킨을 들고 있는 모형이 있었다.

       

       그래. 저딴 것도 기회라면 기회라 할 수 있겠지.

       

       닭을 튀기는 데 뼈를 묻는다면 말이야!

       

       트로츠키는 그런 인생이 싫었다.

       

       

       “새로운 기회는 무슨! 빌어처먹을 황녀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오늘도 늘 그렇듯 황녀를 쌍욕하면서 하루를 보내려고 하는 그때. 밖에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이들이 보였다.

       

       백인 남녀 커플과 그 아래에서 얻어맞는 흑인.

       

       

       “하, 이 흑인 새끼가 감히 누구를 쳐다보는 거야?”

       “아니, 어쩌다 보게 된 거요! 여자를 보려는 의도는 없었소!”

       

       

       미국 사회에 만연하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노예제를 폐지했다면서 여전히 넘쳐나는 흑인에 대한 차별과 팽창하여 날아오르는 듯 보이지만 그 아래에 가려진 각종 사회 문제.

       

       

       ‘이거 잘만 하면?’

       

       

       트로츠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 아직 죽기 직전까지 그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로츠키 동지.”

       “뭔가.”

       “일단 한 마리 더 튀기셔야 합니다.”

       

       

       치르르르르르르륵

       

       그래. 일단은 눈앞에 있는 증오스러운 닭을 튀겨야만 한다.

       

       

       

       * * *

       

       조지아

       

       이 무렵, 러시아 합중국에 속한 조지아 공화국에서는 한바탕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조지아 공화국은 이 무렵 영국이 러시아랑 적당히 합작한 덕에 친러 정부가 수립되어 합중국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빨갱이들이 남아 있었다.

       

       소련 멸망 이후, 이들은 언젠가 다가올 혁명의 날을 꿈꾸며 조지아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아왔지만.

       

       오흐라나의 후원으로 조지아에서 결성된 백계 자경단들이 움직이면서 죽어 나갔다.

       

       이들의 뒤에는 베리야가 있었다.

       

       베리야는 자신이 볼셰비키에 있던 것은 사실 이날 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듯. 잔혹하게 움직이면서 혁명의 동지들이었던 자들을 철저하게 짓밟혔다.

       

       최소 고문이었고, 평균적으로는 즉결처형이었다.

       

       

       “베리야 동지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소!”

       “크흐흐흐흐. 동지? 이 위아래도 없는 놈들이 어디다 대고 동지래? 나는 처음부터 볼셰비키에 잠입한 백군이었어.”

       

       

       탕!

       

       핏발을 세우며 베리야에게 화를 내던 빨갱이는 베리야가 쏜 총탄에 그 유명을 달리했다.

       

       베리야가 조지아 내에서 조직한 백계 자경단과 오흐라나가 주도한 이 일방적인 공산당 토벌은 베리야를 혁명의 적으로 기록 하기에 충분할 수준이었다.

       

       그리고 같은 오흐라나 요원들은 베리야에게 혀를 내둘렀다.

       

       

       “내 오랫동안 오흐라나에 있었지만 저런 새끼는 처음이군.”

       “예. 내전기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자들을 저리 철저하게 잡다뇨.”

       

       

       그렇게 조지아 내의 불순분자들을 깡그리 소탕한 베리야의 눈은 저 멀리 유럽을 한참 넘은 대서양 쪽을 바라보았다.

       

       

       ‘트로츠키마저 잡으면. 내무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의 다음 목표는 트로츠키였다.

       

       물론 그전에 로켓 뭐시기부터 찾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 * *

       

       

       차르가 되고 나서는 신경 쓸 것이 많아졌다.

       

       일단 차르가 거하기에는 예카테린부르크 임시 정부 청사는 너무 좋지 못하니, 어느 정도 재건되자마자 모스크바에 멀쩡히 남은 크렘린궁에 머물고 있다.

       

       개인적으로 예카테린부르크도 수도로 괜찮다고 보는데.

       

       생각해 보라.

       

       밀릴 생각은 없지만, 공산 독일이 러시아 공격하겠다고 하는데 수도가 예카테린부르크란 말이야.

       

       독일군이 국경을 넘는다고 한들 예카테린부르크까지 가야 한다고 하면 개전 전부터 기운 빠질 걸.

       

       자, 일단 이쪽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바꾼 이 역사에서 적백 내전 때, 남러시아 백군의 치료를 맡았던 여의사 베라 게드로이츠가 다시 황실의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베라게드로이츠는 니콜라이 2세 일가의 남은 기록을 바탕으로 내 몸의 건강검진을 하고 있다.

       

       특히 아나스타샤는 몸이 좋지 못했으니까. 이점을 염려한 것이다.

       

       

       “어떻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지금까지 직접 전장에서 싸우신 것이 기적이라 볼 정도였습니다만.”

       “그 정도란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면 내가 참 기분이 묘한데 말이야.

       

       그 신선인지 뭔지 모를 늙은이는 나를 왜 이런 몸으로 만든 거지.

       

       

       “차리나께서는 태생적으로 건강이 좋지 못하셨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엄지발가락에 건막류가 생기고 고생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등근육도 약하셨는데. 마치 이건. 그러니까. 의학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만. 마치 무언가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그런 몸입니다.”

       

       

       그래. 아나스타샤는 성격은 좋지만, 건강은 나쁘다고 들었다.

       

       즉, 내가 이 아나스타샤의 몸으로 전쟁을 뛰어다닌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는 거지.

       

       그런데 지금 그게 나았다는 말인가.

       

       

       “지금은 나쁘지 않다는 말입니까?”

       “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전장에서 직접 뛰어보셨으니 차리나께서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겠죠.”

       

       

       딱히 뭐 그렇게 힘들 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 망할 노인이 아주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둔 것이 아닐까.

       

       

       

       

       

       러프 맛보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마 일러스트는 2월 10일 안에 될듯합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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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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