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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하아.”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계속 이기고 있는데! 생각보다 훨씬 강하시네요!”

       

       

       도로시의 잔뜩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여태껏 망할 거라며 잔뜩 침울해져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전투를 몇 번 치르더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왜 그렇게 자신감 넘쳤는지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어요!”

       

       “···.”

       

       “···뭐에요, 아까부터. 이기고 있는데 그런 얼굴이면 제가 다 불안한데.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냐. 미안.”

       

       

       도로시의 말에 그제야 눈치챘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같은 팀원이 승승장구하며 이기고 있는데 한숨이나 내쉬고 있으면 걱정되겠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빨리 말하세요.”

       

       “그, 그게···.”

       

       

       말해도 되나?

       

       시우는 잠깐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결론 내렸다. 말해서는 안 된다고.

       

       내가 제일 경계하는 대상인 아르테의 능력이 뭔지 눈치챘어! 그녀의 능력은 자기 옷을 실로 바꾸는 능력이야.

       

       그래서 그녀를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고 해!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었어!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하다.

       

       미친놈 취급받고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겠지.

       

       그것만은, 그것만은 안 된다.

       

       사회적으로 죽어버릴 거야.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한다.

       

       

       “···미안. 말할 수 없어.”

       

       “그래요. 말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말하고 싶어지면 말해줘요.”

       

       “응. 알았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우는 절대로 말할 생각이 없었다.

       

       아멜리아라면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아멜리아라면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자기가 더 흥분해서는 말하겠지. 최대한 질질 끌어서 알몸으로 만들어버리자고.

       

       하지만 아멜리아는 지금 아르테와 함께 있다.

       

       지금 내 동료는 도로시다. 같은 여성이, 이기기 위해서라지만 여자를 발가벗기겠다는 의견에 찬성할까?

       

       시우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멜리아와 함께 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문득 시우는 자신이 아멜리아와 닮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멜리아와 함께하기 전에는 이런 생각으로 고민을 할 리가 없었을 텐데.

       

       정정당당히, 단기 결전으로 승부를 보려 했을 텐데.

       

       근묵자흑이라고 했던가.

       

       어느샌가 시우의 사고방식은 아멜리아를 조금이나마 닮아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리는 왜 붙잡아요?”

       

       “아니, 그게.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한다는 걸 깨달아서.”

       

       “이상한 사람이네요. 당연한 걸 왜 지금 이야기하는지.”

       

       

       그래, 당연한 이야기다.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한다. 언제나 듣던 이야기.

       

       내 친구들은 멀쩡해. 만약 나쁜 짓을 한다고 해도 물들지 않을 자신이 있어.

       

       만약 나쁜 길로 빠진다면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 친구를 물들이면 되잖아?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먹물은 천천히 스며드는 법.

       

       그 사실을 친구에게 물들고 나서야 깨달아버렸다.

       

       아르테와 싸우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녀와 싸우기 전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만 했다.

       

       

       

       ***

       

       

       

       “아멜리아.”

       

       “응?”

       

       “도로시의 능력, 알고 계시나요?”

       

       “몰라.”

       

       “···네?”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해 물어봤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뭐지?

       

       

       “예전에 한 번 싸워보신 적 있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그때는 능력을 안 쓰더라. 잘 몰라.”

       

       “···흐음.”

       

       

       작가님에게 물어봐도 의미는 없었다.

       

       소설의 재미를 제1순위로 생각하는 사람이니 내가 대비한다면 재미가 떨어질 거라 생각한다며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내가 능력을 알고 있어야 극적인 연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말해보아도 의미가 없었다.

       

       뭐, 대충 무슨 의도인지는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이 활약해야 하는 아카데미. 심지어 토너먼트라면 우승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겠지.

       

       딱히 이런 곳에서 작가님과 싸울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해 굳이 따지지는 않았다.

       

       나도 작가님의 의견에는 동의하니까.

       

       뭐, 주인공이 활약하면 좋지. 적당히 싸워주다가 져줄까.

       

       

       [기대되네요! 어떤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주인공이랑 직접 싸우는 건 오랜만이에요!]

       

       

       작가님이 잔뜩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유시우와의 만남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승에서나 만날 줄 알았는데.

       

       설마 32강에서 만날 줄은 몰랐지. 나와 유시우, 둘 중 하나는 내일 수업 시간에 패자부활전을 치러야만 했다.

       

       

       “시작하겠네요. 슬슬 가볼까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겨보자고. 콧대를 눌러주겠어.”

       

       

       문제는 바로 이거. 나는 적당히 져주고 싶은데, 아멜리아가 너무 의욕이 넘친단 말이지.

       

       어떻게 해야 그녀가 의심하지 않게끔 져줄 수 있을까.

       

       

       “아르테 이시스, 유시우, 도로시 게일, 아멜리아 린드버그! 올라오도록! 너희들 차례다!”

       

       “아, 시작이네요.”

       

       “가자, 아르테! 목표는 1등!”

       

       

       ···으음, 잘 모르겠다.

       

       싸우다 보면 질 방법이 보이지 않을까?

       

       어쩌면 유시우가 뜬금없이 각성할 수도.

       

       그랬으면 좋겠다.

       

       

       

       ***

       

       

       

       “···준비, 시작!”

       

       

       타앙, 하고.

       

       클레어 선생님이 권총을 쏴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아멜리아, 안 움직여?”

       

       “굳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너희들이 오는 게 더 편하거든?”

       

       “···그래, 그렇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본다면 확실해질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그녀들도 나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반격당하기 쉬운 능력이라 먼저 들어오기를 꺼리는 모양이네.

       

       ···좋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직접 확인할 수밖에.

       

       슬쩍 아르테를 바라보았다.

       

       반장갑 두 개, 교복, 슬쩍 보이는 레오타드, 그리고 스타킹. 새하얀 외투까지.

       

       평소 그녀가 입고 다니는 복장 그대로다.

       

       

       “도로시, 지혜로 부탁해.”

       

       “좋아요. ···또 토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안 해. 그건 처음뿐이었잖아.”

       

       “깜짝 놀랐다니까요. 어지럽다니, 뭐니. 다치는 사람은 있어도 토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요.”

       

       

       과연 어떻게 될는지.

       

       시우는 자기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수아비는 말했다. 나는 뇌를 갖고 싶어. 마법사는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도로시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극심한 두통과 함께 속이 뒤틀리는 듯한 복통이 함께 느껴졌다.

       

       세상이 뒤틀리는듯한 감각.

       

       이 세상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이 감각.

       

       도로시의 능력, 마법사. ···타인을 강화하는 능력.

       

       그 능력이 내게 적용되었다.

       

       억지로 극대화된 능력에 눈과 귀가 아파졌다.

       

       도로시와의 연습은 항상 이 상태였지. 직감이 극대화된 나머지 다른 감각이 무뎌져서 힘들다.

       

       내 육체와 함께 능력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지정한 것만이 강화되는 능력.

       

       그렇기에 능력을 육체가 감당하지 못한다.

       

       다른 것도 강화할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익숙해진 건 이것밖에 없었다.

       

       만약 불을 뿜는 능력자라면, 화력이 극대화되는 대신 자신의 불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다치겠지.

       

       나의 경우는 감각의 극대화. 직감이 역겨울 정도로 강해진다.

       

       

       “···격, ···해? 그···면, 우리···먼···간···!”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

       

       보통 사람들은 그 상태에서 싸울 수 없다.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할 테니.

       

       하지만 나는 아니야.

       

       

       귀를 닫았지만 느껴진다. 아멜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짜증을 내는 소리가.

       

       눈을 감았지만 느껴진다. 아르테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 모습이.

       

       느낄 수 없지만 느껴진다. ···아멜리아가 내게로 창을 내지르는 바람이.

       

       

       “?!”

       

       “···잡았다.”

       

       

       손에 감각은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멜리아의 창을 잡아챘다.

       

       얇은 실들이 바닥을 타고 기어 오는 소리가 느껴진다. 검을 휘둘러 잘라냈다.

       

       그리고 붙잡은 창을 강탈하려던 순간, 무언가가 느껴졌다.

       

       ···뭐지?

       

       아르테의 주위에, 무언가 있었다.

       

       아멜리아는 아니다. 내 앞에 존재했으니까.

       

       선생님도 아니다. 클레어 선생님은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어. 느껴진다.

       

       ···그렇다면, 아르테의 옆에 느껴지는 저 존재감은 뭐지?

       

       극대화된 직감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존재감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세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 우윽···! 커흑···! 컥···!”

       

       “괘, 괜찮아요?! 토 안 하죠?!”

       

       “처, 첫날뿐이라고 했잖아···! 자꾸 그럴래···?!”

       

       “미, 미안해요. 너무 인상 깊어서.”

       

       

       후윽, 후으윽···.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 머리 아파···.

       

       도로시의 능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았다.

       

       타인을 강화하는 건 좋지만, 내 능력은 상시 발동에 가까운 나머지 강화된 능력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꼴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게는 부담이 너무 심해. 윽, 아파라···.

       

       그렇기에 아멜리아를 재빨리 처치하려 했는데, 순간 아르테의 옆에 느껴지는 기묘한 존재감에 멈칫한 사이에 벗어나 버렸다.

       

       

       “까, 깜짝이야···! 너, 너 뭐야!? 눈을 감은 상태에서 나를 잡아!? 아, 아빠한테도 잡힌 적 없는데!”

       

       “그거 식상해, 아멜리아···. 언제 적 대사야···.”

       

       “어, 그, 그런가? 고전 영화에 가끔 나오더라고. 해보고 싶었어.”

       

       

       헛소리하는 아멜리아에게 맞장구를 치는 사이 잠깐 아르테의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다면 내가 느꼈던 그 존재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착각인가?

       

       

       “방금은 방심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제대로 처치해주겠어!”

       

       “으, 으꺄악! 따라오지 마세요!”

       

       “너 이리 와! 네가 한 거지?!”

       

       

       내가 느꼈던 기묘한 존재감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를 잡아챈 이유가 도로시라고 생각한 아멜리아가 도로시를 쫓고 있었으니까.

       

       1대2로 가면 불리해진다.

       

       도로시를 구해야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딱히 할말이 없네요!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우엑, 졸려.

    ***

    OO451 님, 777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두 번째 TS소설에, 첫 TS후원이라니! 기쁩니다! TS단이 한명 늘었군요! 전 세계의 독자들이 TS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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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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