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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잡귀들아, 물렀거라.”

       

       크리스의 말이 울리자 주변의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딸랑 –

       

       크리스가 몸을 돌려 성벽을 바라봤다.

       

       방울을 손에 쥐고 뒷짐을 지고 있는 크리스.

       

       크리스의 눈이 천천히 성벽 위를 훑으며 지나갔다. 

       

       움찔.

       

       시선이 닿은 곳에 있는 언데드들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 언데드들을 마주한 병사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벤시에게서 울음이 터져 나왔으나, 사람을 홀리던 울음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두려움에 가득 차 지르는 비명이 이런 소리일까.

       

       언데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성벽을 내려간다…!”

       

       내려간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았다.

       

       그들이 하는 것은 자살에 가까웠으니까.

       

       스켈레톤이 겁에 질린 듯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왔던 곳이었다.

       

       휘익 –

       

       퍼석 –

       

       성벽에서 떨어진 스켈레톤들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스펙터와 벤시는 이미 사라져 그 존재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에 소리를 치던 병사가 몸을 떨며 입을 다물었다.

       

       성병위를 훑던 크리스의 시선과 마주한 것이다.

       

       “흐읍…!”

       

       “허억…!”

       

       크리스와 눈을 마주친 병사들이 숨을 들이키며 어깨를 움츠렸다.

       

       눈빛이 너무 강렬했다.

       

       무섭기도 하며, 크기도 한 존재감.

       

       절로 몸을 움츠릴 만큼 무서운 눈빛이었다.

       

       “허억…허억…!”

       

       성벽 밖에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크리스가 서 있는 그곳.

       

       그곳을 기준으로 선이라도 그어진 듯 언데드들이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퇴각하는 것이 아닌, 크리스에게 쫓겨나는 모양새였다.

       

       딸랑 –

       

       저벅.

       

       방울을 흔들며 한걸음 씩.

       

       저벅.

       

       땅을 딛는 발을 따라 언데드들의 다리 또한 움직였다.

       

       크리스와의 거리를 벌리듯 언데드들이 뒤로 물러났다.

       

       크리스의 뒤에 서 있던 파라몬 마저 기세에 몸을 움찔거렸다.

       

       “이걸…도대체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크리스의 행동은 마치 언데드와 기 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중요한 것은 언데드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아라.

       

       언데드들의 움직임은 크리스가 두려워 뒷걸음질 치는 것만 같았다.

       

       크리스의 눈이 가서 닿으면 벤시와 스펙터 마저 시선을 피했다.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듯.

       

       아니, 그조차도 불가능해 보였다.

       

       입에서 휫파람 소리가 나올때마다 언데드들의 머리가 크리스를 향해 돌아갔다.

       

       눈을 마주친 언데드들이 그때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벤시의 비명이 침묵으로 바뀌고, 스켈레톤들이 뿜어내던 죽음의 기운이 몸을 웅크렸다.

       

       딸랑 –

       

       크리스가 방울을 흔들며 작게 읊조렸다.

       

       “세레나.”

       

       그 말과 동시에 피리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들어 본 적이 없는 가락.

       

       신비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순간.

       

       “흡…!”

       

       파라몬은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기세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강한 기사가 뿜어내는 살기와도 같았다.

       

       그 기운은 성문 앞에 박힌 목상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장승이라 하였던가…”

       

       크리스가 세계수를 깎아 만든 목상.

       

       파라몬의 귀로 크리스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하늘 아래 있는 귀신들아. 대장군이 노하신다.”

       

       딸랑 –

       

       그 말에 스펙터와 벤시들이 몸을 움츠리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크리스를 바라보지 못하고 떨고 있던 벤시들이 장승과 마주하자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미끄러졌다.

       

       “땅 밑에서 온 것들아. 여장군이 노하신다.”

       

       스켈레톤 또한 마찬가지였다.

       

       뼈만 남은 그것들조차 두려움을 느끼는 듯 몸을 떨었다.

       

       딸랑 –

       

       크리스의 몸이 피리소리를 따라 흔들렸다.

       

       덩실거리며 춤을 추는 몸.

       

       한쪽 어깨 위에 얹혀진 방울이 소리를 울려댔다.

       

       딸랑 –

       

       딸랑 –

       

       전쟁터에서의 춤사위.

       

       그 이질적인 광경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의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 움직임에서는 신성함 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몸이 하늘로 뛰어오를 때마다 전율이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떨림이었다.

       

       “언데드가 도망친다…!”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한 사람이 언데드를 몰아내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도, 마법도 없었다.

       

       그저 서슬 퍼런 기세 만으로 도망을 치는 언데드.

       

       방울을 흔드는 사람의 호통에 혼쭐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돌렸다.

       

       성벽 위의 병사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저분은…”

       

       “신의 사자다….!”

       

       “신께서 보내신 성자시다! 성자님이 나타나셨다!”

       

       크리스의 몸짓이 격해지며 기세가 강렬해졌다.

       

       장승을 바라보던 파라몬이 침을 삼킬 정도로.

       

       화아악 –

       

       모두의 피부를 타고 격정적인 감정이 흘렀다.

       

       살았다는 안도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고양감.

       

       그 감정은 언데드에게도 똑같이 흘러내렸다.

       

       전혀 다른 형태로.

       

       언데드들의 뒷걸음질이 한층 더 빨라지며 성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저건…도망치는 것에 가깝군.”

       

       언데드를 도망치게 하는 사람.

       

       언데드에게 공포를 주는 사람.

       

       크리스를 도대체 무어라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파라몬이 검을 밑으로 늘어뜨리며 크리스를 바라봤다.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몸을 흔드는 크리스.

       

       쉴 새 없이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며 방울을 흔들고 있었다. 

       

       딸랑 –

       

       목소리에 담긴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언데드를 나무라며 혼내는 느낌.

       

       왔던 곳으로 썩 돌아가라며 크리스가 화를 내고 있었다.

       

       “….”

       

       파라몬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언데드들이 가란다고 간다면 왜 대륙전쟁이 일어났겠는가.

       

       쫓아 낸다고 발을 돌릴 언데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허허…”

       

       저 언데드를 막기 위해 했던 전투.

       

       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갔으며, 그동안에 자신이 휘두른 검의 횟수는 셀 수도 없을지경이다.

       

       수북이 쌓인 뼈 무더기들이 그것들을 증명했다.

       

       하지만 결국 소드 마스터의 검술도, 대마법사의 마법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희생자 없이 저들을 상대하는 것은 말이다.

       

       “…매번 느끼지만 인생이 부질없군.”

       

       “나 또한 그렇다네.”

       

       클로셀이 성벽 위에서 파라몬의 옆으로 내려왔다.

       

       “난 이대로 끝날 줄 알았다네.”

       

       “나 역시 마찬가지네.”

       

       둘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몸을 빼는 것쯤이야 힘들기는 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으니.

       

       하지만 둘을 제외 하면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클로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빌어먹을 교단을 욕하는 순간…”

       

       “음?”

       

       “하늘에서 방울 소리가 들리더군.”

       

       “허…”

       

       “오지 않는 신관들 대신에 하늘에서 크리스가 내려왔다네.”

       

       파라몬은 순간 생각했다.

       

       마치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의 한 장면 같다고 말이다.

       

       클로셀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이 정리되는대로 정식으로 항의 할 생각이네.”

       

       파라몬이 손에 쥔 검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힘을 보태겠네.”

       

       “클라우스와 아스테르의 항의라…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두 영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는 것을 넘어서 분노를 품고 있었다.

       

       클로셀이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든, 아직 끝난 것이 아니네. 네크로맨서들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어.”

       

       클로셀의 의문은 당연했다.

       

       전투하는 내내 느꼈던 사실이다.

       

       지금 몰려온 언데드는 통제를 받는 느낌이 아니었다.

       

       몬스터를 풀어놓은 듯했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최소한의 통제만 이루어졌다.

       

       “크리스가 산 위에 네크로맨서들이 있다고 했었던 걸 기억하는가?”

       

       파라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리로 가고 싶지만…”

       

       희생자가 너무 많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으리라.

       

       그들의 떨어진 사기로는 더 이상 전투는 불가능했다.

       

       딸랑 –

       

       방울 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피리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어느새 근처에 남아 있는 언데드는 없었다.

       

       “…끝이 났군.”

       

       헝클어진 머리로 헐떡이며 숨을 쉬는 크리스.

       

       방울을 손에 쥐며 돌아서는 모습에 파라몬과 클로셀이 놀란 듯 감탄을 흘렸다.

       

       “허어…”

       

       크리스의 존재감이 이렇게나 컸던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때는 신비로운 청년이었다면, 지금은···.

       

       “경지에 올랐군.”

       

       강렬한 눈빛에 두 영감의 가슴마저 서늘해 질 정도였으니.

       

       언젠가 크리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무당은 기가 쎄야 해요.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던 말이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두 영감이 서둘러 크리스에게로 달려갔다.

       

       “….자네 많이 변했군.”

       

       크리스는 영감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언데드들이 도망가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격하지 마세요.”

       

       “…음?”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크리스가 저렇게 말하니 이유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크리스가 다시 입을 열며 서늘하게 웃었다.

       

       “말 안 듣는 놈들이 저기 있거든요. 신령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어요.”

       

       “…신관들 말인가?”

       

       “신관 아닌 것 같던데…”

       

       크리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늘을 날아오면서 그들을 보았다.

       

       알루어드를 빼고는 빛이 나는 자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

       

       “알루어드만 아니었으면 싹 다 잡귀가 되는 건데…”

       

       몸의 피로가 어마어마하게 몰려왔다.

       

       잠도 못 자고 치성을 드린데다가, 이곳에 오면서 연속으로 굿판을 벌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데드들은 당분간 접근 못 할 거예요.”

       

       크리스가 자신만만하게 장승을 가리켰다.

       

       천하 대장군과, 지하 여장군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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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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