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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적 선봉대 오거를 둘이서 잡아 죽이고 반란군의 보급선을 끊어 굶겨 죽이고 야간기동하는 적 침투조를 매복했다가 죽이고 큰 전투에서 둘만 살아남아 도망치다 공격받는 민간마을을 지나치지 못해 구원해 주고 적이 점령한 성벽을 몰래 타고 올라가 성문을 개방하고 군단장 몇을 암살하고 힌드라스타를 두들겨 패 전장에서 쫓아냈다.

       

       마지막으로는 디안의 도움을 받은 라이너스가 마왕을 반으로 갈라 죽이는 데에 성공.

       

       디안의 자신만만한 선언대로 마왕성까지 들이닥쳐 마왕을 죽이며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야 말았다.

       

       제국 사람들은 여기 나열한 모든 사건들이 용사 라이너스의 업적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고위장교들과 황성 대신들을 제외하고는 거기에 늘 또 다른 동료가 끼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병사 시절 디안을 가까이서 본 자들은 전쟁 후까지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고 장교로 진급해 특임대원이 되고 난 후부터는 그 신원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니까.

       

       그리고 이후 디안이 황성의 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잠적했고 그에 불쾌감과 불안함을 느낀 황제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지우며 디안은 그렇게 잊혀졌다.

       

       “만약 안 그랬으면 나도 너처럼 황성에서 개고생하고 있었겠지.”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몇 시간째.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운 늦은 저녁.

       

       라이너스가 특별히 준비한 최상급 비프 스테이크를 썰며 디안이 느긋한 웃음을 흘렸다.

       

       “자고로 조력캐는 엔딩을 맞이하면 은퇴해 조용히 살아가는 게 베스트야. 지금은 그게 좀 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하는군.”

       

       그런 디안을 보며 라이너스가 미소를 지었다.

       

       돌이켜 보면 정말 미친짓이었다.

       

       내가 빙의한 원작의 프롤로그는 마왕 특임대 창설 시점.

       

       즉 라이너스가 군단에 입대한 것은 프롤로그 이전이라 나도 사실 군단 입대부터 프롤로그 전까지의 일은 미리 내다볼 수가 없었다.

       

       다만 프롤로그 때까지 라이너스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기에 일단 놈을 찾아내 무작정 끌고 다녔던 것이고.

       

       라이너스는 정의감 충만한 놈이라 언제 어디서 급발진해 부나방처럼 뛰어들어 목숨을 버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놈은 몇 번이나 위험천만한 짓을 했고 내가 적절히 통제한 덕에 결국 프롤로그까지 무사히 살려낼 수 있었다.

       

       만약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 둘은 이 자리에 없었겠지.

       

       “그런데 디안.”

       

       내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며 라이너스가 물었다.

       

       “아카데미는 어때. 할만한가?”

       

       “뭐, 나쁘지는 않아. 일단 눈치 안 봐도 되니까 편해.”

       

       “네가 언제는 다른 사람 눈치본 적 있었니? 황제 눈치도 안 보는 애가 아카데미라고 어련하겠어?”

       

       셀린느가 웃으며 말했다.

       

       “거기 교장님하고 갈등은 없니? 라이너스한테 듣기로는 상당히 완고하신 분인 것 같던데.”

       

       “완고하다기 보다는 겁이 많아. 알고 있지? 네마라 일족 출신인 거.”

       

       “알아. 황제폐하 암살을 막고 유공자가 된 다크엘프의 딸이잖아. 일족 수장이 직접 청해서 교장이 됐다고는 들었어.”

       

       “그것 때문이야.”

       

       셀린느와 라이너스에게 키르린의 진퇴양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다크엘프 네마라 일족.

       

       그러나 마왕군에 협조한 이력이 있어 대놓고 숲을 나오지 못하고 대신 자신의 딸을 공직으로.

       

       혼혈이라 다크엘프 특유의 잔인하고 냉정한 성격이 무뎌 일족의 안 좋은 인식을 바꾸기에는 제격이라 판단.

       

       그러나 2황녀는 다크엘프에 대한 불신과 라이너스를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교장에 앉히려고 그녀를 해고하고 싶어 함.

       

       이에 키르린은 행여나 꼬투리를 잡힐까 무서워 사고가 날법한 모든 것을 축소 및 중단.

       

       키르린도 이것이 2황녀의 의도와 심기를 거스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2황녀 눈밖에 나는 것보다 퇴출당해 숲으로 쫓겨나는 두려움이 압도적.

       

       “악순환이군. 하지만 그 교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냐.”

       

       라이너스가 말했다.

       

       “다크엘프들은 사회화에 필수적인 감정이 결여된 자들이야.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타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지. 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잘 알다마다. 라조람 공방전에서 직접 봤으니까.”

       

       당시 우리는 우회기습하려는 다크엘프 침투조를 소탕했는데 그때 강렬한 의심을 느꼈다.

       

       다크엘프를 우리와 같은 지성종족에 포함해도 되는지에 대한.

       

       그것들이 라조람에서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하면 등골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놈들에 비하면 차라리 마족놈들은 오히려 정이 넘치고 친근하다 여겨질 정도.

       

       그래서 키르린은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저번에는 제발 도와달라고 무릎 꿇고 펑펑 울더라.”

       

       “저런.”

       

       “너 톨루즈 공작 알지? 그 사람 딸이 아카데미에 다니는데 걔 개인교습을 부탁했거든.”

       

       라이너스에게 이번에는 나이틀리 톨루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라이너스는 그 이야기를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다.

       

       “참 신기한 우연이군. 톨루즈 공작의 영애가 네 제자가 되다니. 그래서, 해주기로 한 건가?”

       

       “해준다고 했어. 그렇게 울고불고 하는 거 거절하기도 그렇고 나도 좀 궁금했거든.”

       

       “어떤 것이?”

       

       “내가 가르쳤을 때 과연 걔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그러며 내가 톨루즈를 어떻게 교육했는지에 대해 말해주자 셀린느와 라이너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디안! 무슨 용사파티 양성하고 있니?”

       

       “괜찮아. 그래도 걔, 결국 다 해냈어. 싸가지는 스프 말아 처먹기는 했는데 그래도 실력은 있는 것 같더라.”

       

       “아무래도 톨루즈 공작가가 대대로 무인을 많이 배출했으니 그 영향을 받았겠지. 지금 톨루즈 공작도 그렇고.”

       

       톨루즈 공작은 전쟁 당시 귀족군 지휘관 중에서는 그나마 상식적이고 통솔력이 뛰어난 인물.

       

       만약 톨루즈 공작이 아니었다면 귀족군은 후퇴다운 후퇴도 못하고 전멸했을 것이다.

       

       다만 3군단의장이었던 2황녀를 위시한 일반 출신 장교단이 넘사벽이라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을뿐.

       

       “그 아이를 잘 키워보도록 해, 디안. 네 말마따나 졸업생들의 수준을 상향평준화하면 2황녀께서도 기뻐하실 거다.”

       

       “그 인성도 좀 뜯어고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네가 언제 한번 잡아줄래?”

       

       그 말에 라이너스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람 잡는 건 나보다는 네가 전문이지.”

       

       “그게 왜 상식이냐.”

       

       “지금 옥살이를 하는 마족 장교들을 불러다 놓고 물어보겠나? 그럼 바로 답이 나올 텐데.”

       

       “무조건 몰표 받지.”

       

       셀린느가 까르륵 웃어댔다.

       

       이후 주제는 전투학과 개편, 아카데미 상점가 조성, 힌드라스타의 분탕 사건 순으로.

       

       “이건 내 생각인데, 디안.”

       

       이야기를 듣던 셀린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너, 아카데미 내에서 처신을 잘해야 할 것 같아.”

       

       “왜?”

       

       “이건 그냥 내 감인데….”

       

       ‘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조금 긴장했다.

       

       셀린느는 사냥꾼 출신으로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는 감각이 엄청나게 발달해 있다.

       

       저 유명한 퀴라나 사냥꾼들이 대대로 전수된 사냥법에 능한 기술자들이라면 셀린느는 애초에 사냥꾼으로 태어났다고 보는 편이 옳다.

       

       셀렌느의 그 ‘감’으로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셀린느가 ‘감’으로 느낀 것은 어지간해서는 틀리지 않고 그래서 긴장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키르린 교장이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셀린느가 말하길 키르린은 정말로 나를 좋아하고 내게 의지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아마 지금 속으로 나와 어떻게든 엮여 보려고 제딴에 수를 쓰고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

       

       “그래…?”

       

       “그냥 감이니까. 확실한 건 아냐.”

       

       “셀린느의 말에 동의한다.”

       

       라이너스가 말했다.

       

       “나도 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어. 너는 교장에게 구원자나 마찬가지잖나. 그러면 나이틀리 학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이틀리 학생은 글쎄.”

       

       라이너스의 물음에 셀린느가 부정적인 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독점욕이라 생각해. 너를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거야. 비싸고 귀한 장신구처럼 여기는 거지.”

       

       “그래. 뭐, 그러거나 말거나야.”

       

       “그렇겠지. 디안 네가 남한테 단 한번이라도 영향을 받고 휘둘린 적이 있니? 로르마네 빼고.”

       

       로르마네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급격하게 기분이 다운되는 것을 느꼈다.

       

       “로르마네…. 무섭지.”

       

       “맞아.”

       

       “그러니까.”

       

       그것을 끝으로 우리 셋은 잠시 말없이 식사를 했다.

       

       “그런데 너네 아카데미 보건소 사제 말인데.”

       

       잠시 후 침묵을 깨고 셀린느가 입을 열었다.

       

       “신탁사제라고 했지? 로르마네가 추천했다고.”

       

       “어. 주교 서른 명을 보내려고 하기에 한 명이면 충분하다니까 걔를 보내더라.”

       

       “흐음, 그래….”

       

       셀린느가 포크를 놓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라이너스도 다소 걱정되는 눈빛.

       

       “아카데미에서 뭐 특별한 건 없었어?”

       

       “말수가 엄청 적은 거 빼고는 딱히. 자기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하고 있어.”

       

       “그으래…. 흐음….”

       

       연신 턱을 만지던 셀린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마야라는 사제. 조심하는 게 좋겠어.”

       

       “이유는?”

       

       “로르마네가 보냈다면서? 걔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가 가르치는 신탁사제를 네가 있는 아카데미로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그건 그렇지. 로르마네라면 당연히 그랬겠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낌새는 없어.”

       

       “분명 뭔가 있어. 로르마네는 그렇게 허술한 애가 아니야. 뭘까…. 뭘 시켰을까….”

       

       셀린느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자 조용히 듣고 있던 라이너스가 말했다.

       

       “디안. 그 사제가 보건소에서 일한다고 했지? 보건소라면 환자일지를 쓰지 않나?”

       

       “쓰지. 보건소 갈 때마다 보니까 열심히….”

       

       입을 다물자 라이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일지가 아닐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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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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