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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생각보다 짧구나.”

         

       진성은 자신에게 애원하는 원로를 보며 그리 말했다.

         

       원로는 생각보다 빨리 쾌락에 굴복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진성의 ‘축복’과 귀접, 부정의 주술의 시너지 효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원로의 정신 상태가 글러 먹어서 그랬던 것일까?

       둘 중 하나, 아니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원로는 손쉽게 진성에게 굴복했고, 그의 충실한 뒷배가 되어주기로 약조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귀접을 겪었던 다른 모든 이들도 진성의 뒤를 자신의 힘이 닿는 한 봐주는 것은 물론이고, 리세의 신사에도 커다란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닌가.

       권력자들은 쾌락을 얻어서 좋고, 진성은 도움을 얻어서 좋고, 켄지와 리세는 권력자의 비호 아래 돈과 영향력, 그리고 인지도를 확 끌어올릴 기회를 얻었다. 손해를 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고 모두가 행복하니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대신에 물귀신을 죄다 넨도로이드에 다시 쳐넣고 색귀로만 활동할 수 있게 봉인을 걸어 그들에게 쥐여줘야 했지만 그 정도 수고야 얻는 것이 많으니 기쁜 마음으로 해줄 수 있었다.

         

       다만 단 한 명.

         

       “으, 차기 신관님. 몸이 이상합니다. 눈에 이상한, 이상한 게. 이상한 게 보여요.”

         

       강령 주술 의식을 행했던 정치인만은 문제가 생겼다.

         

       정치인의 멀쩡했던 눈이 강령 주술 의식 이후 변해버린 것이다.

       불이 꺼진 화장실 안에서 냉장고 안에라도 들어갔다가 나온 듯 차가운 몸을 덜덜 떨면서 정신을 반쯤 놓은 채 발견된 정치인은 따뜻한 곳에서 한참이나 지나야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차가운 물에 오랫동안 닿아있었음에도 동상은커녕 피부가 짓무르지도 않았고, 물귀신에게 그 어떠한 해코지를 당하지도 않았다. 물귀신들은 정치인을 빙의 당한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자기들이 노릴 사냥감이 넘쳐나는데 굳이 하나가 선점한 사냥감을 건드릴 이유도 없기에 아무 문제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대신에 그의 눈은 렌즈라도 낀 듯 눈동자에 파란빛이 감돌게 되었다. 게다가 그 빛은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제 모습을 드러냈다 숨기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파란빛이 나타날 때마다 눈동자의 상에 기괴하고 끔찍한 것들의 모습을 비췄다.

         

       영안(靈眼).

       악령과 악귀가 되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눈을 얻은 것이다.

         

       정치인은 혼과 백, 영혼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하는 영안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냥 영안도 아니고 파사(破邪)의 힘을 조금이나마 품은 영안으로 보였다.

         

       진성은 이상을 호소하는 정치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보자. 눈은 영안으로 변했고, 목소리와 숨소리가 이상한 것을 보니 폐가 살짝 손상된 것 같고.’

         

       진성은 물을 살짝 띄워서 정치인에게 뿌려보았다.

         

       “앗 차가!”

         

       하지만 정치인은 물을 맞고도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물 알레르기는 걸리지 않았군. 운도 좋구나.’

         

       강령 주술 의식.

       그것도 인터넷을 통해서 이야기가 퍼져나간 주술 의식인데도 저 정도 대가밖에 치르지 않았다는 것은 운이 좋았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과거 진성이 이 주술 의식을 시험해봤을 때에는 대가 때문에 폐수종이 생겨서 수술까지 해야 했으며 뇌출혈까지 생겨서 크게 고생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 강령 주술 의식을 했을 때는 여러 주술의 대가 때문에 몸이 망가져 있는 상태라 후유증까지 찾아왔고, 그 때문에 폐에 염증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나마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떤 강령술사는 이 주술 의식을 했다가 물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다.

       그 강령술사는 자신의 체액을 포함해서 수분이 피부에 닿기만 하면 발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결국, 전투 중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가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와 출혈성 쇼크가 겹쳐서 그대로 죽어버렸다고 한다.

         

       “운도 좋구나.”

         

       진성은 그리 말하고는 정치인에게 그의 몸에 일어난 일에 관해서 설명했다.

       물론 의식의 대가라고 곧이곧대로 말하지는 않았고, 약간 비틀어서 말이다.

         

       “자네는 말이야. 저열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했어. 권력자의 탈을 쓰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저들보다도 한 단계 위에 올라가 있기를 원했고, 그들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내가 그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자기 위로를 하기를 원했지. 그렇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자네의 소원은 이루어졌어. 보게. 자네를 경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음속으로 무시했을 이들은 물에 빠져서 살이 퉁퉁 불어서 흘러내리는 귀신들하고 몸을 섞고 중독되는 비참한 꼴이 되었고, 자네가 그토록 존경하던 원로라는 작자는 제 의지로 물귀신과 몸을 섞는 것을 바라게 되었지. 그리고 그 와중에 오직 자네. 자네만이 귀접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추태를 귀로 들었어.”

       “맞습니다. 화장실 밖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자네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네. 자네의 눈이 바로 그것이지.”

       “이 눈이요?”

         

       진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정치인에게 말했다.

         

       “그 눈은 영안이라고 해서 선택받은 이들만 가질 수 있는 눈이네. 자네에게 소질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그것을 개안시켜 준 것이야. 이제 자네는 영혼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네. 그래. 말하자면 자네의 인간으로서의 격 자체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해졌다는 말이야. 어떠한가. 만족스러운가?”

         

       그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격이 높아졌다는 것, 우월해졌다는 단어만큼은 똑바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의 눈에 생긴 것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축복받은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정치인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것은 사라졌으며, 자신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진성의 말을 듣고는 그 자리를 ‘저열한 쾌락’이 대신했다. 그 증거로 성교를 하거나 야한 장면을 보지 않았음에도 양물이 빳빳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진성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토강여유(吐剛茹柔)의 상이라. 내버려 두면 필시 나도 나락으로 보내려 할 것인즉.’

         

       하지만 아직은 쓸모가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치인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권력을 등에 업었으니 축제를 즐겨야 할 때가 왔다.

         

         

         

        * *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돗토리현의 한 신사에서 고성이 울려 퍼졌다.

         

       고성을 지르는 것은 무녀복을 입고 있는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여우를 닮은 듯 가는 눈을 치켜뜨며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

         

       “축제가 이틀 남았어요! 그런데 새로운 사람을 보내겠다니 무슨 말이에요?! 게다가 트럭에 실려 온 그 짐들은 뭐고, 불꽃놀이용 폭죽은 또 왜 바꾼 건데요! 이게 뭐하자는 거죠!”

       [ 키시모토(樫本) 씨. 정말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

       “어쩔 수가 없다뇨! 그게 시장이나 되는 사람이 할 말이에요?! 그래요, 어쩔 수 없다고 쳐요! 그러면 귀띔이라도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한 달 전, 하다못해 일주일 전도 아니고 이틀 전에 이런 짓을 하는 건 대체 뭐예요!”

       [ 아니 그게…. 저도 갑자기 연락이 와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

       “갑자기? 갑자기요?! 지금 신사에 온 짐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이건 갑자기 준비해서 될 게 아니에요! 돈을 처바르지 않는 이상 최소한 몇 주는 걸릴 정도의 양이라고요! 선대부터 좋은 교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믿음을 지금 등에 칼을 꽂는 짓으로 보답하시는 건가요?!”

       [ 하아….]

         

       키시모토라고 불린 무녀는 여과 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치는 뒤편에서는 인부들이 끊임없이 짐을 나르고 있었고, 그 짐들은 그녀의 말대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어디에 쓸 건지 모를 나무들은 신사 뒤편에 차곡차곡 쌓였고, 장작으로 보이는 것들은 이미 쌓이고 쌓여 2m가 넘는 높이가 되었다. 게다가 음식으로 추정되는 것들은 창고 하나를 털어온 게 아닌가 의심이 되는 수준이었으며, 취급 주의라고 적혀있는 뭔지 모를 것들은 드럼통과 철제 박스에 담긴 채 신사의 창고를 점령하고 있었다.

         

       [ 어쨌든 사죄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잘 진행해주시고, 최대한 짜증을 가라앉히고 지금 가시는 손님분들을 잘 대접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보다 까마득히 위에 계신 분이 보낸 분들이니까 절대 실례되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절대로요. 영리한 키시모토 씨라면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

         

       키시모토의 분노를 받아주고 있던 시장은 더는 참기 힘들었는지 제 할 말만 던져놓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 하!”

         

       그리고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겨버린 그녀는 다 타버리지 않은 분노를 어디에도 표출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녀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스마트폰을 세게 쥐고 바닥에 집어 던져버릴 뻔했으나 이내 그런 짓을 해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길게 한숨을 쉬고 근처 기둥에 몸을 기댔다.

         

       “대체 이게 뭐야….”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인부가 열심히 짐을 옮기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시장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을 정도면 대단한 정치인이 개입했다는 이야기인데. 이세신궁에서 하는 축제도 아니고, 고작 돗토리현에서 하는 축제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이 사달을….’

       “어?”

         

       그렇게 상념 속으로 빠져들려는 찰나.

       그녀의 눈에 신사로 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여자는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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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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