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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나의 예상대로 히파르에서 캐머해릴로 가는 길은 상당히 험했고, 마물 역시 심심치 않게 출몰했다. 

       

       하루에 한두 번쯤은 반드시 마물을 마주쳤을 정도니, 그렘 마을에서 히파르로 갈 때처럼 평화로운 여정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전방에 홉고블린입니다!”

       “가자, 아르야!”

       “쀼웃!”

       

       마부의 외침에 나와 아르, 그리고 실비아는 즉시 마차에서 내렸다.

       

       “대략 열 마리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내가 손을 앞으로 뻗어 마법을 쓰려는 순간. 

       

       쐐애액!

       

       “…!”

       

       바로 뒤쪽에서 들린 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어깨 위의 아르를 손으로 감쌌다.

       

       티잉!

       

       “레온 씨, 뒤쪽에도 매복이 있어요. 제가 전방을 맡을 테니 후방을 봐 주세요.”

       

       아이스 실드를 시전할 틈도 없이 날아온 돌멩이를 정확히 검등으로 쳐낸 실비아가 말했다. 

       

       “고마워요. 실비아 씨.”

       “뭘요. 당연히 지켜 드려야죠.”

       

       실비아는 빙긋 웃더니 곧 전방의 홉고블린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저렇게 매번 웃으면서 같은 팀으로서 든든하기까지 하니 진짜 경계심이 안 풀어지려야 안 풀어질 수가 없네.’

       

       좋든 싫든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나는 실비아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씩 풀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진짜 수상함 그 자체였는데 말이야.’

       

       귀여운 드래곤이네요, 라는 말 때문에 시작된 의심은 어느새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었다. 

       

       -아르는 너무 귀여운 것 같아요.

       -저도 아르 배 한 번만 쓰다듬어 보면 안 될까요?

       -와아…. 너무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요…!

       -꼬리로 바닥을 톡톡 치는 건 무슨 뜻이에요?

       -기분 좋다는 뜻이라니 다행이에요. 헤헤.

       

       가식적으로 보이던 미소는 이제 햇살처럼 무해해 보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흠 잡을 데 없는 검술 실력은 동료로서도 항상 백 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특히나 이제는 아르랑도 조금 친해진 것 같고.’

       

       어린 아이일수록 누군가가 자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지 선의를 가지고 있는지 좀 더 민감하게 감지하기 마련.

       

       ‘게다가 아르는 드래곤이니까. 그런 직감적인 면에서 인간인 나보다 뛰어날 가능성이 높지.’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나서 드래곤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말고는 딱히 아르가 실비아에게 경계심을 내비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아르는 처음부터 실비아가 그다지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론 난 아르의 보호자니까, 설사 실비아가 진짜로 아무런 적의 없이 다가온 거라고 하더라도 조심할 의무가 있지만.’

       

       그래서 마치 조그마한 외부 자극에도 가시를 잔뜩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필요 이상으로 경계를 했던 거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가시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거둬 들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압!”

       

       티잉!

       

       전방으로 달려 나가는 실비아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멩이 하나를 가볍게 쳐냈다. 

       

       그리고 조금 측면의 사각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를 손목을 조금 틀어 정확히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근데 저게 진짜 4성 검사가 맞긴 한가?’

       

       내가 알고 있는 「레키온 사가」속 4성 검사들과 기본기 수준 자체가 좀 다른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엇? 하하, 운 좋게 돌멩이가 딱 반으로 갈라졌네?”

       

       실비아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듯 말하더니 다른 돌멩이를 다시 검등으로 쳐냈다. 

       

       ‘…….’

       

       역시 조금 수상한 것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스킬 동기화를 통해 ‘아르젠테’로부터 ‘아이스 실드’를 공유 받습니다.]

       

       “아이스 실드.”

       

       티티팅!

       

       홉고블린들이 매복해 있는 풀숲에서 날아온 후속타들을 이번엔 아이스 실드로 정확히 막아낸 나는,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스킬 동기화를 통해 ‘아르젠테’로부터 ‘아이스 애로우’를 공유 받습니다.]

       

       아이스 실드는 그대로 유지해 이후 날아오는 공격에 대비해 둔 채, 팔만을 앞으로 뻗은 나는 돌멩이가 날아온 풀숲을 향해 아이스 애로우를 발사했다. 

       

       “아이스 애로우.”

       “아이스 애로우!”

       

       양손에서 각각 뻗어 나간 얼음 화살이 풀숲을 뚫고 들어갔고.

       

       “케에엑!”

       “키엑!”

       

       풀숲 안에서 홉고블린 두 마리의 비명이 들려 왔다. 

       

       “키익!”

       

       바로 옆에 숨어 있던 홉고블린들은 황급히 나를 향해 돌멩이를 더 발사하려고 했지만. 

       

       틱!

       티틱!

       

       “키엑?!”

       

       녀석들이 발사한 돌멩이들은 이번에는 풀숲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바보들아, 뭐 달라진 거 없냐?”

       “키엑!”

       

       그제야 홉고블린들은 자신들 앞에 있던 풀숲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아이스 애로우는 닿은 지점 및 그 주변까지도 동결시켜 버리는 효과가 있지.’

       

       첫 아이스 애로우 두 발이 풀숲을 뚫고 갔을 때, 이미 그 근처의 풀숲은 꽁꽁 얼어붙은 상태.

       

       얼핏 봐선 티가 안 나지만, 바람에 흔들리던 수풀이 미동도 안 하는 걸 보면 제대로 얼어붙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돌멩이를 쏴 봐야, 언 풀 깨기밖에 더 되나.

       

       “껙!”

       

       그 와중에 좀 굵은 나뭇가지 쪽에 맞은 돌멩이는 튕겨서 옆에 있던 홉고블린을 맞혔는지, 안쪽에서 작은 다툼이 일어났다. 

       

       더 이상 몸을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홉고블린들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작은 새총으로 돌멩이를 발사했지만.

       

       “아이스 애로우!”

       

       돌멩이는 아이스 실드를 뚫지 못했고, 더욱 표적이 되기 쉬워진 홉고블린들은 아이스 애로우를 맞고 하나씩 얼어붙은 채 쓰러졌다. 

       

       “이젠 잽도 안 되는 것들이 까불고 있….”

       

       그리고 내가 아이스 실드를 해제한 순간. 

       

       타닷!

       

       “키륵!”

       

       시야의 사각 지대, 마차의 짐칸을 이용해 내 위로 도약한 홉고블린 하나가 석단검石短劍을 든 채 내 머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쀼—”

       “—파이어 애로우!”

       

       화르르륵!

       

       하지만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한 아르는 이미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고, 마법진을 통해 그게 파이어 애로우임을 파악한 나는 자연스럽게 아르의 영창을 벽력 같은 외침으로 묻어 버렸다. 

       

       툭.

       

       까맣게 탄 홉고블린의 사체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이스, 아르.”

       “쀼웃!”

       

       나는 내 칭찬에 활짝 웃는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점점 아르랑 손발이 척척 맞아 가는구만.’

       

       처음엔 솔직히 뭔가 좀 어설픈 자작극 느낌이 있었다면, 몇 번의 전투를 거듭하며 몸에 익은 지금은 마치 내가 정말로 직접 마법을 시전하는 것처럼 그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

       

       ‘모르긴 몰라도 이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놓고 알려 주고 구분해 보라고 해도 아르의 영창 소리 없이는 누가 쓴 건지 구분하기 힘들걸.’

       

       실전에서는 어차피 아르의 쬐그만 영창 소리 정도는 잘 들리지도 않을 테니 더더욱 들킬 일도 없을 것이다. 

       

       혹여나 누군가가 들었다고 해도 그냥 어린 사역마니까 내가 마법 쓰는 걸 보고 같이 기합 넣어주는 느낌으로 쀼웃 소리를 내는 거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여튼. 후방 쪽은 이제 다 마무리 된 것 같은데.’

       

       후방에 매복해 있던 놈들이 전부 죽었음을 꼼꼼히 확인한 나는 전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에엑!”

       “케엑!”

       “케르륵…!”

       

       실비아는 예상대로 부상 하나 없이 홉고블린 열 마리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돌멩이를 모두 쳐 내며 접근해 새총을 쏘던 놈들을 먼저 처리하고, 이어서 단검을 든 놈들의 공격을 슥슥 피하며 다 대 일 전투를 물 흐르듯 이어 나갔다. 

       

       ‘역시 실비아 씨….’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유려한 몸놀림을 보며 나는 다시금 감탄했다. 

       

       ‘아니지, 감탄할 때가 아니라….’

       

       나는 전방을 향해 손을 뻗고, 신중히 조준해 아이스 애로우를 시전했다.

       

       “아이스 애로우!”

       

       쇄애액!

       

       “끼엑!”

       

       아이스 애로우는 실비아 옆에서 기회를 엿보던 홉고블린의 복부에 정확히 맞았고, 쓰러진 홉고블린은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스 애로우!”

       

       아이스 애로우를 두어 번 썼을 때쯤 실비아가 마지막 홉고블린을 베어 넘겼고.

       

       전투는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실비아는 검을 천천히 집어넣고 싱긋 웃으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지원 사격 고마워요, 레온 씨. 안 그래도 머릿수가 많아서 조금 시간이 끌리고 있었는데…. 역시 레온 씨는 빨리 마무리하고 오셨군요.”

       “하하, 저쪽이 숫자가 더 적어서 할 만했죠. 혼자서 열 마리 이상 되는 홉고블린을 상대하면서 부상 하나 없는 실비아 씨가 더 대단한데요.”

       

       오히려 실비아 정도의 실력이면 더 빨리 쓸어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끌린 게 의아할 정도였다. 

       

       ‘한 대도 안 맞고 잡느라 그런 건가?’

       

       하긴, 아무리 「재생」 특성이 있어도 맞으면 아픈 건 똑같을 테니.

       

       안 맞을 수 있으면 안 맞는 게 좋지.

       

       마차로 복귀한 우리는 전투 후에 항상 그렇듯 마이어 씨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번에도 고생하셨습니다! 레온 님도, 실비아 님도 정말 너무 든든합니다. 이렇게 험한 길을 가면서 마차가 이렇게 멀쩡한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마이어 씨의 말에 따르면 그간 2~3서클 정도 되는 용병들을 다수 데리고 다녔을 때에는 오히려 난전이 일어나고 그 와중 마차나 짐칸, 나아가 납품할 물건도 손상을 입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 놓고 지켜 줬다고 생색은 엄청 내면서 부서진 납품 상자 속 간식을 탐내기도 한다고.

       

       그런데 나와 실비아처럼 한 단계씩 급이 높은 용병을 소수 정예로 운용하니, 마차와 물건들이 멀쩡할뿐더러 마음고생 할 일도 없다고, 마이어 씨는 거듭 감사를 표했다.

       

       “자, 자. 사양 말고 드시지요. 이것도 드시고요.”

       

       용병 숫자가 적으니 그만큼 식량도 남겠다, 간식 역시 전에 말했던 자투리 상품이 든든하게 있어, 우리는 항상 전투 후에 만족스럽게 배를 채웠다. 

       

       “쀼우!”

       “맛있어, 아르야?”

       “쀼!”

       “허허, 아르야. 후식으로 이것도 한번 먹어 보련? 레온 님이랑 실비아 님도 드셔 보시지요.”

       

       아르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마이어 씨는, 히파르에서 새로 구해 온 간식 중 하나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건…. 젤리인가요?”

       “그렇습니다! 꽤나 귀한 간식인데, 잘 아시는군요.”

       “하하. 어쩌다 보니.”

       

       빙의 전에 하립보이 젤리와 고블리 젤리를 꽤나 좋아했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이어 씨가 내민 젤리를 받아들었다. 

       

       작고 얇은 종이 포장지를 벗겨, 오렌지색 젤리를 입에 넣고 씹자 새콤달콤한 맛이 사르르 퍼졌다.

       

       “오오…. 맛있는데요? 진짜 오렌지맛이 뭔가 생생하게 느껴지면서도 쫄깃하니까 신기해요.”

       

       보통 생과일 과즙 맛을 강조하는 젤리는 비교적 물컹해 씹는 맛이 덜하고, 씹는 맛이 쫄깃한 젤리는 인공적인 맛이 강한데, 이 젤리는 생과일 맛을 살리면서 쫄깃쫄깃한 식감도 함께 살리고 있었다.

       

       “이건 사과 맛인가 봐요. 맛있어요.”

       “쀼우?”

       

       나와 실비아의 반응에 아르도 궁금했는지, 마이어 씨에게 받은 젤리의 포장지를 쬐그만 손으로 열심히 벗기려 했다.

       

       “쀼우.”

       

       앞발의 말랑한 부분으로는 잘 벗겨지지 않자, 숨겨 뒀던 발톱으로 한 부분을 살짝 찢은 아르는 보라색 젤리를 꺼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쀼우우…!”

       

       처음 느껴 보는 젤리 특유의 식감과, 달콤한 포도맛에 아르의 눈이 커졌다. 

       

       “쀼우, 쀼!”

       “허허, 우리 아르 맘에 든 것 같아 다행이구나. 여기 종류별로 다양한 맛이 있으니 하나씩 먹어 보렴.”

       

       포도맛 젤리를 열심히 씹어 삼킨 아르는 기분 좋은 듯 꼬리로 의자 쿠션을 톡톡 두드린 뒤, 얼른 새 젤리를 받아 발톱으로 포장지를 벗겨 입에 넣었다. 

       

       “쀼우우…!”

       “잘 먹네, 아르.”

       

       아르가 행복하게 젤리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시야 한쪽에 뜬 느낌표를 발견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실비아를 도와 홉고블린을 잡고 나서 떴었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확인.’

       

       나는 밀린 메시지를 불러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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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옥빛일각고래님 1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HKM813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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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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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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