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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0

   “이미 알른 가문으로 서신이 향했어. 베네딕도 슬슬 자기 일을 다 끝마칠 즈음이니까 바로 확인하지 않을까?”

   “아줌마. 그 안에 적힌 내용은 알아?”

   “별 거 없을 걸? 어쨌든 이번 일에서 잘못한 쪽은 1왕비님이니까. 베네딕이란 괴물이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태에서 명분이 있는 고용주님에게는 공손해야지.”

   

   할아버지가 말한 게 맞았네. 그 상황에서 내가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니까 1왕비 그 독한 인간도 뭐라고 못하는 구나.

   

   <긴 세월이 지나도 인간사가 돌아가는 것은 비슷하단 게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바보 같은 웃음밖에 지을 줄 모르던 용사.

   

   마법을 연구하는 데에 일생을 바친 탓에 사회성이 박살나있던 마법사.

   

   어디를 가더라도 그 곳의 여자를 꼬실 생각밖에 하지 않던 기사.

   

   이 폐급 인간들을 이끌고서 여러 단체와의 교섭을 이어나간 루엘의 정치력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흐려지지 않았다.

   

   <이제는 네가 지닌 여러 명분을 기반으로 1왕비의 팔다리를 묶기만 하면 된다. 그럼 어지간한 것은 다 얻어낼 수 있을 것이야.>

   ‘그 정신 나간 사람한테 뭔갈 받고 싶진 않은데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약속. 계약. 빚. 이런 무상의 무언가를 얻어내면 돼.>

   

   그게 아니라 그냥 1왕비랑 관계를 길게 잇고 싶지 않다는 건데요.

   

   내 말을 이해하질 못한 할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린 나였지만 할아버지는 속 검은 웃음을 지으며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네요.’

   <무슨 의미로 한 말이냐.>

   ‘할아버지의 동료분들과 할아버지가 동급이란 거죠.’

   <헛소리! 내가 그 애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끼리끼리라는 말을 하느냐!>

   ‘찔리세요?’

   <기가 차서 그런다! 네 논리로 따지자면 너도 리나님과 비스무리한 변태라는 이야기일 터!>

   ‘…그건 아니죠!’

   

   내가 다소 음습한 구석이 있을지는 몰라도 얼빠여우와 비교되는 건 좀 아니지!

   

   숲의 주인이라는 지위에 있으면서 자신의 존엄을 내다버린 그 쓰레기랑 같은 범주에 있다는 건 대놓고 싸우자는 거잖아!

   

   “고용주님. 대체 왜 화 내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랑 진심으로 투닥거리고 있으려니 카리아가 진심으로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쓰잘데기 없이 쉰 목소리 내지 마. 난 지금 낡아빠진 아줌마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중대한 쌍무을 하고 있다고!”

   

   다른 건 몰라도 이번 모욕만큼은 결코 넘어갈 수 없어 할배!

   

   메스가키 스킬에 의해 반강제로 단련된 내 말뽄새를 보여주겠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두 장인 분을 만나는 것보다 그게 중요해?”

   

   응? 아직 네 아지트에 도착하려면 꽤 시간이.

   

   어라. 왜 벌써 도착을 한 거야? 중간에 왜 시간이 사라져 버린 거지?

   

   얼빠여우랑 비교 당했단 사실에 엄청 열이 오르긴 했었나봐.

   

   얼빠여우가 혀를 날름거리던 걸 떠올리고 몸서리를 치던 나는 할아버지에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말하고서 아지트 안으로 들어섰다.

   

   “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어리군. 이제 10살은 됐나?”

   

   대장장이 이누키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무례한 어휘를 내뱉었다.

   

   분명 기분이 나쁜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저 쪽에서 먼저 명분을 제공해줬으니 이제 내 맘대로 매도를 할 수 있는 거잖아.

   

   “만날 심통 나 있는 개차반 할배는 제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낡아 빠졌네요♡ 그런 비실비실한 팔로 망치를 잡을 순 있긴 해요?♡ 저랑 악수만 해도 뼈가 부러질 것 같은데에에?♡”

   

   인자함과는 거리가 먼 이누키는 즉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그걸 옆에 있던 재봉사 할머님이 억눌렀다.

   

   “그러게 왜 손녀 뻘인 애한테 시비를 걸고 그래요?”

   “…이 정도면 그냥 인사지. 인사.”

   “그래서 당신 수준에 맞춰 화답을 해줬잖아요? 헛짓거리하지 말고 가만있어요.”

   

   나긋나긋하지만 힘있는 할머님의 목소리에는 상대를 찍어 누르는 힘이 있었다. 이누키가 투덜거리면서 목을 뒤로 빼자 할머님이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영애. 이전보다 키가 크셨네요. 옷을 새로 맞추셔야겠습니다.”

   “눈치가 좋네? 나이를 헛으로 먹진 않았나봐?”

   “이런 눈치가 없으면 재봉일을 여태까지 할 수가 없었겠죠.”

   “키가 큰 거라고? 저게?”

   

   화기애애한 우리 둘의 대화 속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던 이누키는 눈총을 받고는 혀를 차며 고갤 돌렸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는데 하는 짓은 사춘기 꼬맹이나 다를 바가 없네.

   

   “은둔생활을 너무 오래해서 사람이랑 대화하는 법을 잊었나?♡”

   “…”

   “아님 옛 영광에서 빠져나오질 못한 거려나?♡ 후자라면 거울 보고와. 개차반 할배♡ 당신의 거지같은 몰골을 보고 나면 주제 파악이 될 것 같은데♡”

   “소문이랑 다를 것이 하나도 없군! 소문이 너무 과장된 것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야!”

   

   제대로 긁힌 건지 이누키는 목에 핏대를 세웠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뜨진 않았다.

   

   저 성질 더러운 할배가 투덜대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건.

   

   흐흥. 흐흐흥.

   

   일부러 요정이 꽃 위를 거니는 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이누키의 앞에 다가간 나는 홱 돌아간 그의 얼굴 앞에 웃음을 들이 밀었다.

   

   “그렇게 내가 싫으면 사라지면 되잖아?♡ 왜 굳이 싫다싫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거야?♡”

   “…쯧.”

   “첫 눈에 반해버렸어?♡ 푸흐흫♡ 가운데 다리에 힘도 안 들어갈 텐데 성욕에 참 솔직하네♡ 대장장이가 아니라 노망난 로리콘 변태♡…”

   “아! 젠장! 알겠다! 인정하마! 널 기싸움에서 못 이기겠다! 그렇다고 너 같은 재능이 어줍잖은 갑옷을 입고 사는 것도 못 내버려두겠고! 무슨 갑옷을 바라는 진 모르겠지만 의향에 맞춰 만들어주마! 그러니 그 재앙 같은 입을 닫아라!”

   

   갑옷? 갑옷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 난 그냥 화풀이하려고 깐족댄 것 뿐인데?

   

   “후후. 과연. 예술 교단의 사도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귀여운 얼굴 아래에 많은 걸 감추고 계시군요.”

   

   네? 제가요? 제가 뭘 감춰요. 할머니?

   

   어. 음.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잘 풀린 것 같으니까 그냥 가만 웃고 있자.

   

   대충 있어 보이는 척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으면 알아서 잘 되겠지. 뭐.

   

   “그럼요. 어디 제 안목이 틀린 적이 있습니까.”

   

   어둠 아래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 변태 사도를 본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 루카를 감시하고 있어야 할 인간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루카 교수는 현재 저희 교단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검성님을 비롯한 저희의 교단원들이 그 곳을 철저히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저번에도 너희 변태들사이에 정신병자가 끼어있었잖아.”

   “음. 뼈 아픈 말씀입니다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삿된 기운이 결코 기를 펴지 못하도록 여러 장치를 설치해 두었거든요.”

   

   …여러 장치? 예술 교단에 그런 게 있었나? 내가 조심스레 의문을 드러내자 변태 사도가 웃음을 지었다.

   

   “보러 오시겠습니까? 영애라면 기꺼이 저희의 가장 비밀스러운 곳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만.”

   

   그 물음을 들은 순간 위기감지가 내게 경종을 울렸다.

   

   결코 저 제안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숨겨진 것을 본 순간 어떤 끔찍한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고.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낀 내가 다급히 고개를 젓자 변태사도가 대놓고 아쉬운 티를 냈다.

   

   “그렇습니까. 뭐어. 어쨌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여신과 영애를 경배하는 마음을 걸어도 괜찮을 만큼 안전하니까요.”

   

   정신나간 변태이긴 해도 신앙 하나는 멀쩡한 이 녀석이 저렇게까지 말을 할 정도면 정말 뭐가 있긴 한거겠지.

   

   응.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자. 이 이상 관여되고 싶지 않아.

   

   “안전하단 건 알겠는데 그래서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교단보다 성욕이 중요한 변태 사도?”

   “어제 복귀하는 길에 우연찮게 니키스님과 만나게 되어서요. 영애께 바칠 의상에 대한 조언도 구하고. 이 소울 아카데미 내에 풍경 좋은 곳이 어디 있나 하는 것도 여쭤보려고요.”

   

   나는 그제서야 내가 변태 사도에게 내어주었던 계약의 내용을 떠올렸다.

   

   이 녀석이 만들어 준 옷을 입고, 바라는 포즈를 취한 채, 장신구를 비롯한 여러 물품 속에 들어갈 그림의 모델이 되어야 한단 사실 말이다.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사도께서 저의 조언이 필요하신가요?”

   “그럼요. 여전히 니키스님께서 만드신 의복을 보면서 감탄하는 저입니다. 부디 제가 만들 옷에 고언을 부탁드립니다.”

   “후후. 안 그래도 잘 됐네요. 저 또한 사도께 부탁드릴 것이 있었는데.”

   

   내게 입힐 의상을 가지고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교양이 넘쳤지만 기이하게도 그걸 보는 내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자꾸만 흘렀다.

   

   지금이라도 도망을 쳐야 하나? 아니 그래봐야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될 테니 그냥 이 악물고 버티는 게 낫나?

   

   그래. 그게 맞아. 얼빠 여우가 혀로 핥을 듯한 시선으로 바니걸을 입은 내 피부를 보던 것도 버틴 나잖아. 이 정도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음!

   

   마음의 결심을 굳힌 채 자꾸만 뒤로 향하려는 걸음을 붙잡은 나는 두 사람의 대화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뭐가 됐든 간에 이 곳에서의 대화를 빨리 끝마치고 알른 가문에 연락을 취해봐야 하니까.

   

   “…음? 아니. 잠시만.”

   

   그 때였다. 신이 나서 주절대는 두 사람을 고깝게 보던 이누키가 문득 목소리를 높인다.

   

   “알른 가문의 영애. 방금 전 내게 다가올 때 했던 걸음을 재현할 수 있나?”

   “개차반 할배. 내 냄새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맡고 싶은 거야? 당신도 은근히 역겨운 구석이.”

   “시끄럽고 할 수 있나 없나. 그것만 답해라.”

   

   이누키의 눈빛이 진지한 것을 느낀 나는 그의 의도가 뭔지 모르면서도 일단 요정의 걸음을 재현해 보였다.

   

   “…허.”

   

   짧게 탄성을 낸 이누키는 팔짱을 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여 고뇌를 이어가다 이내 팩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디서 요정의 걸음을 익힌 거지?”

   

   그의 물음은 내 예상과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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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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