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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1

    “시루드, 너는 생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어온 질문에 이야기를 듣던 이들은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새로운 질문이되어서 돌아온다니?

    심지어 그 질문조차도 앉은 자리에서 섣불리 대답하기엔 많은 학자와 마법사들이 밤낮을 고민하고 토론할 정도로 너무나도 광범위한 질문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생명의 본질?”

    “…생명의 본질, 말인가요.”

    당연히 시루드와 미셸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동안 그런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그도 그럴것이, 이제 막 세상에 빛을 본지 11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생명의 본질 따위를 고찰할 여유나 이유따위가 있을리 없었다.

    아이는 선인들이 남긴 지혜의 정수를 습득하는 것만해도 바빴고, 그러한 고차원적인 질문에 답하기에는 아직 지식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시루드보다 조금 더 오랜 경험이 있을 미셸도 그 질문에 답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일개 운전수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시루드가 출제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런 질문을 건넨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눈치를 보기 시작하자, 루크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니 아무 말이나 해보거라.”

    그렇게 말하는 루크의 모습은 여느때와 같은 ‘설교 모드’였다.

    즉,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정말이지 지루하고 복잡하면서 당장에 아무런 효용성이 없는, 일견 철학적이기까지 한 기나긴 이야기가 되리라는 것을 시루드는 쉽사리 눈치챘다.

    그래도 시루드는 루크가 일단은 처음처럼 자신을 내쫓으려는 것은 아닌 듯 하고, 또 뭔가 대답을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해서 일단은 가만히 들어보기로 생각하며 머릿속 한켠에 그저 대충 쌓여있던 상식과 지식의 애매한 경계에 놓인 정보 하나를 가까스로 끄집어냈다.

    “…글쎄, 생명의 본질이라면 역시 영혼이 아닐까…?”

    질문에 비하면 답을 내리는 방식이 굉장히 일차원적인데다 자신도 정확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일단 자신이 알기로 아카데미에서는 보통 그 본질을 ‘영혼’이라고 정의한다.

    똑같이 마나기반으로 이뤄진 모든 물질들 사이에서, 어쩌면 생물과 무생물을 나누는 관측 가능하고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특징이자 차이점이 바로 그것이었기에.

    그러나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그야 영혼은 생명의 연속성을 보증하는 수표이니까. 또, 가장 주제에 가까운 대답이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생명의 본질’과는 조금 엇나간 것 같군.”

    루크는 그렇게 시루드의 대답에대해 부정하면서도, 전혀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딱히 시루드를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5000년보다 더 전부터 이어져내려오던 역설을 아직 직관과 습득에 바쁜시기의 소년이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 있을거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사실 질문은 그저 시루드가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사전지식을 가늠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지, 애초에 시루드에게서 본질을 관통하는 대답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보낸 것이 아니었다.

    루크가 말을 이었다.

    “고작 영혼따위가 한 생물의 모든것을 나타낼 수는 없는 법이지. 그래, 영혼은 생명의 삶이 세계에 새긴 흔적에 불과하니….”

    ‘영혼’이란, 일종의 일대기다.

    그의 삶이 세계에 새겨진 방식과 흔적, 그것이 바로 모두가 ‘영혼’이라 부르는 것.

    그것은 마치 생명이라는 본질에 드리워진 그림자와도 같다.

    분명 본질의 형태에 가장 가깝고 또 많은 것을 내포하겠지만, 그 자체가 모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거다.

    레이스, 밴시, 고스트….

    가끔은 일상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몬스터들의 존재가 바로 ‘영혼은 생명의 본질이다’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영혼이 정말 생명의 본질이라면, 어째서 생명의 본질이어야 할 그들은 어째서 그 어떠한 생명활동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스스로 활동하기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작업을 하거나, 몸집을 키워내거나, 심지어는 번식도 하지 않는다.

    영혼은 단지 그 형태를 통해 생명을 비춰내는 그림자나 흔적일 뿐이며,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러한 사령들은 마치 등불 앞에서 그림자놀이를 하는 것처럼 술사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가능하며, 이는 결국 영혼이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또다른 증거다.

    해석과 관점에 따라 제멋대로 바뀌어버리는 것을 ‘본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진리는 변함이 없어야하고, 어떤 경우에서도 참이 되어야한다.

    따라서, 영혼과 생명의 본질간에는 차이가 있다.

    …루크가 하는 말을 간략화시키면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으음….”

    하지만 루크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문장이 시루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추상적이었던 탓에, 시루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 말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럼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혹시나 조금 더 경험이 있어보이는 미셸을 슬쩍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영혼은 삶이 세계에 새긴 어쩌구’부터 루크의 말을 듣고 있지도 않은 것으로 보이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시루드는 이내 ‘루크는 혹시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실제로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전부터 정보를 과다하게 들이부어 사람의 혼을 쏙 빼놓고 슬쩍 도망가버리는 것은 주제를 회피할 때 루크가 자주 쓰는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대체 지금 그게 무슨 얘기야? 이거 지금 내가 한 질문이랑 관련 있어?”

    그러나 루크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야 물론. 내가 무슨 실험을 하고 있냐고 물었지? 하지만 이걸 알지 못하면 네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

    대체 무슨 실험이길래 이런 질문이 필요한 걸까?

    시루드는 순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루크가 하는 말이니까 분명 이유는 있을 터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루드는 이어질 루크의 말을 기다렸다.

    시루드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약간의 호기심이 서린 것을 발견한 루크는 곰곰히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역시 직접적인 방식은 어렵겠지…. 좋아,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들어주마.”

    루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자, 박물관에 책이 한권 있다고 가정하자. 너무나 약하고 오래된 책이기에 아무리 잘 보관한다해도 페이지가 삭아서 떨어지는 중이지. 하지만 책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너무나 높기에, 그럴때마다 복원전문가들이 그것을 새로 만들어 끼워넣는 상황이다. 알겠지?”

    “응. 이해했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결국에는 책의 모든 부분이 복원되었다. 과정에서 내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이름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더이상 그 옛날에 책을 엮을 때 사용된 페이지들은 모두 사라졌어. 여전히 동일한 이름의 책이고 책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내용 역시 여전히 동일하며, 그 과정에서 단 한번도 그 책은 다른 책이었던 적이 없지만, 이를 구성하는 모든 마나입자는 바뀐 상태지.”

    그리고 여기서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여전히 그 오래된 책이 맞을까?”

    이번엔 비유를 통해 건네어진 루크의 질문은 이전의 질문보다는 확실히 그 요지를 이해하기 쉬웠다.

    ‘생명의 본질’에 관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비유였기 때문에, 이는 생명의 ‘성장과정’을 비유한다는 걸 시루드가 눈치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건 같은 책이겠지, 아마도.”

    의도를 알아챈 듯한 시루드의 반응에 루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나입자가 달라졌더라도, 같은 책으로 볼 수 있겠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는 듯한 루크의 반응에 괜히 뿌듯해진 시루드가 마치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답을 써내린 시험자의 기분으로 잠시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하며 찻잔을 들어올린 바로 그 순간, 루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어떨까?”

    “응? 아직 뭐가 남았어?”

    “그래, 이게 더 중요한 질문이야.”

    그 말에 시루드가 속으로 허망해하든 말든, 루크는 이전에 들었던 예시를 살짝 바꿔 다시 물었다.

    “책이 복원되는 것은 전과 같되, 이전에는 책에서 망가진 부분을 곧장 교체하여 복원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훼손을 복원할때마다 복원된 페이지를 원본 곁에 두어 새로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이 경우에도 그 책은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어?”

    루크가 꺼낸 두번째 예시는 조금 더 미묘했다.

    이전의 작업과는 어떠한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복원된 위치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결국 그 결과물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그 과정이 받아들여지는 심리적인 차이가 너무나 달랐다.

    “글…쎄? 그렇게되면 한 시점에 분명 두개가 존재한게 아닌가? 원본은 하나여야 하는 거잖아…? 그 두개가 같은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데….”

    시루드의 혼란스러워하는 대답에 루크는 부드럽게 반박했다.

    “하지만 과일 하나를 반으로 가른다고해서 그 과일이 두개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원래 하나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지. 책 역시 그저 잠시 나뉘어 있었을 뿐, 본질적으로 하나의 개체를 구성하고 있음은 달라지지 않아.”

    “그러면 그것도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말이야?”

    자신이 틀린 답을 말했다고 생각한 시루드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를 생각하며 물었으나, 루크는 그것도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것은 복제에 가깝지. 방식에따라 복원과 복제는 한끗차이니까. 지금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사고실험이니 괜찮다고해도, 실제라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사정이 많이 달라질테니. 비슷하게 생명단계에서 둘로 분리된 쌍둥이는 서로 매우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사람으로 취급할 수는 없잖느냐.”

    결국 선택지를 모두 부정하는 루크의 대답에 시루드는 자신이 그동안 열심히 대답한게 전부 바보취급당했다는 생각에 버럭 되물었다.

    “둘 다 아니라니,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정답이 없으면 나한테 왜 이런걸 물어? 그래서 이게 네가 말한 ‘실험’은 대체 이거랑 무슨 관련인건데?”

    아마도 루크가 그냥 책 복사하는 실험이나 하겠다고 본질이니, 생명이니 하는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루드는 방금의 이야기를 루크의 실험과 연관지을 구석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평소에도 루크는 어떤 질문에 대해 곧장 답을 말하는 것보다는 그 사전지식을 모조리 읊으며 몰입하게 만드는 화법을 좋아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조금 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관련이 있지, 물론.”

    하지만 루크는 마지막 대답을 던진 뒤, 고요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어올린채 대답을 늦췄다.

    마치 갑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루크의 태도에 다시금 화를 내려던 찰나, 루크가 조용히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의 내가, 방금 말한 그 오래된 책이니까.”

    “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존에 너무 생략한 묘사가 많아 보충하고 보완하다보니 완전히 설명하는 회차가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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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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